퍼렐 윌리엄스
연표
1973
[퍼렐 윌리엄스 출생]
미국 버지니아주 버지니아 비치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교사인 어머니와 잡역부인 아버지 사이의 삼형제 중 첫째였습니다.
퍼렐 윌리엄스는 1973년 4월 5일, 미국의 버지니아주 버지니아 비치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교사인 어머니 캐럴린 윌리엄스와 잡역부인 파로아 윌리엄스 사이의 삼형제 중 첫째였습니다.
1985
[채드 휴고와의 운명적 만남]
중학교 1학년 때 여름 방학 밴드 캠프에서 훗날 음악적 파트너가 될 채드 휴고를 처음 만났습니다. 윌리엄스는 키보드와 드럼을, 휴고는 테너 색소폰을 연주했습니다.
퍼렐 윌리엄스는 그의 음악적 파트너인 채드 휴고와 중학교 1학년(7학년)때 여름 방학 밴드 캠프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그때 윌리엄스는 키보드와 드럼을 연주했고, 휴고는 테너 색소폰을 연주했습니다. 그들은 학교의 마칭 밴드의 멤버이기도 했습니다.
1990
[초기 넵튠스 결성 및 테디 라일리와의 계약]
고등학생이 된 퍼렐 윌리엄스는 채드 휴고, 셰이 헤일리, 마이크 에더릿지와 함께 밴드 '초기의 넵튠스'를 조직했습니다. 그들은 프로듀서 테디 라일리의 눈에 띄어 계약을 맺게 되었습니다.
고등학생이 된 그는 1990년에 휴고와 학교 친구인 셰이 헤일리, 마이크 에더릿지와 함께 정통 R&B를 연주한 밴드인 초기의 넵튠스를 조직하였습니다. 그들은 밴드의 공연을 위해 고등학교의 작은 탈렌트 쇼에 나가게 되었는데, 쇼를 구경하러 온 프로듀서 테디 라일리의 눈에 띄게 되었고 그들은 그렇게 라일리와 계약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후에 셰이 헤일리는 개인 사정상 팀에 남지 못하게 되었고 마이크 에더릿지는 부모의 반대로 인해 팀을 탈퇴하였습니다. 때문에 넵튠스는 잠시 동안 해체되었습니다. 그러나 윌리엄스와 휴고의 계약은 그 이후로도 유효했습니다.
1992
[음악계 데뷔 및 초기 활동]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린 Wreckx-N-Effect의 'Rump Shaker'의 verse 부분 가사를 쓰고, SWV의 'Right Here'에 짧은 랩으로 참여하며 음악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테디 라일리와 함께 작업한 윌리엄스는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린 Wreckx-N-Effect의 'Rump Shaker'의 verse 부분 가사를 썼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에 발매된 SWV의 Right Here에 짧은 랩(S-Double-U-S-Vee-)을 하여 참여하였습니다.
1994
[넵튠스 재결성 및 프로듀서 활동 시작]
퍼렐 윌리엄스와 채드 휴고는 '넵튠스'로 다시 뭉쳐 프로듀서 집단으로 전향했습니다. 테디 라일리의 도움으로 Blackstreet의 데뷔 앨범 수록곡 'Tonight's The Night'을 제작했습니다.
1994년, 윌리엄스와 휴고는 다시 한 번 넵튠스로 뭉쳤고 프로듀서 집단으로 전향하였습니다. 테디 라일리의 도움으로 테디 라일리의 그룹인 Blackstreet의 데뷔 앨범 수록곡 'Tonight's The Night'를 제작하였습니다.
1998
[넵튠스, 'Superthug'으로 주목받다]
Noreaga의 'Superthug'을 제작하며 팬들과 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 곡은 넵튠스의 메인스트림 활동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넵튠스는 Mase의 1997년작 'Lookin' At Me'를 제작하여 승승장구하다 1998년에 Noreaga의 'Superthug'을 제작해 팬들과 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합니다.
2000
[N.E.R.D 결성 및 대중적 성공]
어린 시절 친구 셰이 헤일리와 함께 'N.E.R.D'를 결성했습니다. 같은 해 제이-지의 'I Just Wanna Love U'를 제작하며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2000년이 되고, 넵튠스는 그들의 어린 시절 친구인 셰이 헤일리와 다시 한 번 팀을 이루기로 결정합니다. 그러고는 N.E.R.D를 결성하게 됩니다. 같은 해, 제이-지의 'I Just Wanna Love U'를 제작하여 대중적인 성공을 얻었습니다.
2001
['I'm A Slave 4 U' 히트 및 클립스 앨범 제작]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싱글 'I'm A Slave 4 U'를 제작하여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또한 클립스의 데뷔 앨범 'Lord Willin'' 전곡을 제작하며 '미니멀한 넵튠스 사운드의 절정'을 선보였습니다.
2001년에는 그들이 제작한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싱글 'I'm A Slave 4 U'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또한, 같은 해에 발매된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솔로 데뷔 앨범 의 수록곡 다수를 제작하여 2004년, 첫 번째 그래미 상(최우수 팝 보컬 앨범 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고등학교 친구인 형제 랩 듀오 클립스의 데뷔 앨범인 의 전곡을 제작하기도 하는데, 수록곡 'Grindin''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인상을 남겼으며, 현재에도 많은 이들에게 '미니멀한 넵튠스 사운드의 절정'으로 화자되고 있습니다. 그해 여름, 패럴 윌리엄스가 "우리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신시사이저로 구현한 일렉트릭 락."이라고 설명한 N.E.R.D의 데뷔 앨범 가 유럽에서 처음 발매되었습니다. 앨범의 모든 수록곡에 넵튠스스러운 사운드가 전면에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2002
[N.E.R.D 앨범 평단 호평 및 'Hot In Herre' 히트]
N.E.R.D의 데뷔 앨범 미국 발매판은 '락과 힙합의 성공적인 융합'으로 평단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Nelly의 'Hot In Herre'를 제작하며 전성기를 알렸습니다.
미국 발매를 앞두고 휴고가 "넵튠스와 N.E.R.D는 별개의 팀이어야 하지 않겠나, 미국판에선 실제 악기를 쓰자."라고 건의하였고 윌리엄스가 이에 동의하여 결국 그들은 밴드 'Spymob'를 초빙하여 앨범 전곡을 전면 재녹음하게 됩니다. 덕분에 2002년에 발매된 의 미국 발매판은 인지도의 부족으로 대중적인 성공을 얻지는 못하였으나, '락과 힙합의 성공적인 융합'으로 평단의 호평을 받는 데에 성공하였습니다. 이후 전 세계적으로 히트한 Nelly의 'Hot In Herre'를 제작하여 그들의 전성기를 알립니다.
2003
['Frontin''과 'Beautiful' 대히트, 넵튠스 전성기]
솔로 싱글 'Frontin''이 빌보드 차트 5위, 스눕독의 'Beautiful'이 빌보드 차트 6위에 오르며 대중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 해 미국 전역 라디오 음악의 43%가 넵튠스 트랙이라는 통계가 나올 정도로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2003년, 넵튠스는 ''라는 컴필레이션 앨범을 발매합니다. 제이-지, 버스타 라임스, 스눕독, 루다크리스, 클립스, 스파이몹, 제이다키스, 슈퍼캣 등이 게스트로 참여한 이 앨범은 평단의 호평과 대중적 인기를 얻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앨범 발매에 앞서 발매된 제이-지가 피쳐링한 패럴의 싱글 'Frontin''은 빌보드 차트 5위까지 오르는 데 성공하여 자신의 존재를 알렸고, 넵튠스가 제작하고 윌리엄스가 피쳐링한 스눕독의 싱글 'Beautiful'이 빌보드 차트 6위까지 올라 윌리엄스는 대중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성과로 인해 2003년에 미국 전역의 라디오에서 방송된 음악의 43%가 넵튠스가 제작한 트랙이라는 통계도 나왔습니다.
2004
['Drop It Like It's Hot' 빌보드 1위, 스눕독 제2의 전성기 선사]
N.E.R.D의 두 번째 앨범 가 빌보드 앨범 차트 6위에 올랐습니다. 스눕독의 'Drop It Like It's Hot'을 제작하여 빌보드 1위에 올리며 스눕독에게 제2의 전성기를 선사했습니다.
2004년, N.E.R.D의 두 번째 앨범 가 발매되는데, 윌리엄스의 인지도 상승 효과로 인해 빌보드 앨범 차트 6위에 올랐습니다. 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수록곡 'Maybe'를 제외한 전곡의 연주를 멤버들 본인이 직접 했다는 것인데, 락밴드도 아닌 그룹의 멤버로서는 드문 경우였습니다. 스눕독이 윌리엄스와 휴고가 설립한 레이블인 Star Trak과 계약한 이후 패럴 윌리엄스는 인터뷰에서 "스눕독에게 제2의 전성기를 선사할 준비가 되어있다."라며 포부를 밝혔고, 2004년에 발매된 싱글 'Drop It Like It's Hot'은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며 스눕독에게 제2의 전성기를 선사하였습니다.
[패션 브랜드 BBC, Ice-Cream 설립]
절친한 친구이자 BAPE의 설립자 니고와 함께 패션 회사 'Billionaire Boys Club (BBC)'과 'Ice-Cream'을 설립하며 사업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지난 2004년에 그의 절친한 일본인 친구이자 BAPE의 설립자인 일본의 DJ 니고와 함께 패션 회사 BBC, Ice-Cream 등을 설립하였습니다.
2005
[N.E.R.D 해체와 솔로 활동 성공]
N.E.R.D가 버진 레코드사와의 분쟁으로 해체되었으나, 그웬 스테파니의 'Hollaback Girl'을 홀로 제작하여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습니다.
멤버들과 N.E.R.D가 소속되어 있던 버진 레코드사와의 분쟁으로 인해 N.E.R.D는 해체되었습니다. 같은 시기에 윌리엄스는 그웬 스테파니의 'Hollaback Girl'을 홀로 제작하는데,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며 히트했습니다. 2005년 9월, 윌리엄스는 'Hollaback Girl'의 성공에 힙 입어 그웬 스테파니가 피쳐링한 싱글 'Can I Have It Like That'을 발매하였습니다. 안타깝게도 빌보드 차트 48위까지 밖에 오르지 못 하여 미국에선 실패했지만, 영국의 UK 차트에선 3위까지 오르며 선전하였습니다.
2006
[솔로 앨범 발매]
솔로 앨범 를 발매하여 빌보드 앨범 차트 3위에 올랐습니다. 또한 클립스의 앨범 전곡을 홀로 제작하여 '길이 남을 명작'이라는 비평을 받았습니다.
2006년에는 솔로 앨범 를 발매하였습니다. 앞서 발매된 싱글들이 모두 미국 시장에서 참패하였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앨범은 빌보드 앨범 차트 3위에 올랐습니다. 훗날 윌리엄스는 에 대해 "시간이 많이 부족했다."라며 완성도에 큰 아쉬움을 나타내었습니다. 윌리엄스는 같은 해에 발매된 클립스의 앨범 의 전곡을 홀로 제작하였는데 상업적으로는 실패하였으나 비평적으로는 "길이 남을 명작을 만들었다." 이후에도 그는 독자적인 활동을 벌이는데 그렇다할 성과를 나타내지는 못 하였으나, 2008년 여름에 발매된 마돈나의 앨범 의 제작에 큰 비중으로 참여합니다.
2007
[힙합 그룹 Child Rebel Soldier 조직]
루페 피에스코, 칸예 웨스트 등의 래퍼들과 함께 힙합 그룹 'Child Rebel Soldier'를 조직했습니다.
그는 2007년에 루페 피에스코, 칸예 웨스트 등의 랩퍼들과 함께 Child Rebel Soldier라는 힙합 그룹을 조직하였으며, 2009년 기준으로 앨범 제작 준비 중에 있습니다.
2008
[N.E.R.D 재결합 및 발매]
N.E.R.D가 재결합하여 세 번째 앨범 를 발매했습니다. 이 앨범은 빌보드 앨범 차트 7위로 데뷔하며 팬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습니다.
N.E.R.D가 공식적으로는 해체되었지만 멤버들이 자비로 N.E.R.D의 투어를 다니고 있을 때, 멤버들은 팬들이 보여준 에너지에 '꽂혔다'고 합니다. 비슷한 시기에 그들의 독자적인 레이블인 Star Trak Entertainment를 인터스코프 레코드사의 자회사로 편입시켰으며, 셰이 헤일리를 레이블로 영입합니다. 2006년에 N.E.R.D의 세 번째 앨범 작업에 돌입하게 되는데 이후 "디스커버리 채널에 나온 공감각 프로그램에서 영감을 받아." 프로젝트의 이름을 로 변경하게 됩니다. 2008년 여름에 드디어 는 발매되는데, 빌보드 앨범 차트 7위로 데뷔했으며, 발매 첫 주에 8만장이 팔려 나가는 선전을 했습니다.
[루이비통과 협업, 디자이너 활동 확장]
루이비통의 선글라스와 주얼리 라인을 공동 디자인하며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영역을 확장했습니다.
2008년에는 루이비통의 선글라스와 주얼리 라인을 공동 디자인했습니다.
2013
['Blurred Lines'와 'Get Lucky'로 상업적 재기 성공]
로빈 시크의 'Blurred Lines'를 제작하고 피처링하여 대단한 상업적 성과를 냈습니다. 또한 다프트 펑크의 'Get Lucky'에 가수로 참여하여 전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하며 상업적 재기에 성공했습니다.
2013년에는 로빈 시크의 'Blurred Lines'를 제작하고 피쳐링해 대단한 상업적 성과를 냈습니다. 또한 다프트 펑크의 Random Access Memories에 가수로 참여하였는데 그가 피쳐링한 수록곡 Get Lucky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함에 따라 상업적 재기에 완전히 성공하였습니다. 2000년대 중후반 이후로는 상업 작곡가이자 프로듀서로서 차트와는 인연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2014
2014년 씨 로 그린을 대신해 《더 보이스》의 새로운 코치로 합류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