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비오 칸나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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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선수, 축구 감독, 중앙 수비수, 스포츠인 축구 선수

파비오 칸나바로는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중앙 수비수이자 현 축구 감독입니다. 그는 2006년 FIFA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우승으로 이끌며 '베를린 장벽'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같은 해 수비수로서 유일하게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며 세계 최고의 수비수로 인정받았습니다. 은퇴 후 다양한 클럽에서 감독 경력을 쌓으며 지도자로서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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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73

[파비오 칸나바로 탄생]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태어나 축구 선수로서의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겔소미나 콘스탄초와 파스콸레 칸나바로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축구에 대한 열정을 키웠습니다.

1988

[SSC 나폴리 유소년 아카데미 합류]

유년 시절 선망의 구단인 SSC 나폴리의 유소년 아카데미에 합류하여 축구 선수로서의 기량을 닦았습니다.

바뇰리에서 활약하다 나폴리 스카우터에 포착되어 입단했습니다. 어린 시절 우상인 디에고 마라도나와 치로 페라라의 활약상을 지켜보며 볼보이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훈련 중 마라도나에게 강한 태클을 가하며 그의 잠재력을 인정받았습니다.

1993

[세리에 A 프로 데뷔]

유벤투스와의 경기에서 나폴리 소속으로 세리에 A에 성공적으로 데뷔하며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나폴리가 유벤투스에 3-4로 패한 토리노 원정 경기에서 세리에 A 신고식을 치렀습니다. 치로 페라라와 함께 중앙 수비를 맡아 뛰어난 태클과 공수 전환 능력을 선보였습니다.

1995

[파르마 FC 이적]

나폴리의 재정난으로 파르마 FC로 이적하여, 유럽 최고의 수비진을 구축하며 선수 경력의 황금기를 열었습니다.

나폴리의 재정난으로 파르마로 매각되었습니다. 이적 후 한 시즌 만에 주전으로 자리 잡았으며, 잔루이지 부폰, 릴리앙 튀랑 등과 함께 유럽 최강의 수비 라인을 형성했습니다. 이 시기에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 UEFA컵 우승 등 수많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나폴리에서 첫 골 기록]

AC 밀란과의 원정 경기에서 나폴리 소속으로 프로 경력 첫 득점을 기록했습니다.

AC 밀란과의 산 시로 원정 경기에서 나폴리 소속으로 첫 골을 기록하며 공격적인 재능도 선보였습니다.

1996

[U-21 유럽 선수권 대회 우승 (2연패)]

이탈리아 U-21 국가대표팀 일원으로 1994년과 1996년 UEFA U-21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국제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체사레 말디니 감독이 이끄는 이탈리아 U-21 대표팀에서 알레산드로 네스타와 함께 수비를 맡아 1994년과 1996년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 성과는 그의 국제적인 명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7

[이탈리아 성인 국가대표팀 데뷔]

북아일랜드와의 친선 경기에서 이탈리아 성인 국가대표팀에 처음으로 출전하며 A매치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북아일랜드와의 친선경기에서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신고식을 치렀습니다. 같은 해, 웸블리에서 열린 월드컵 예선전에서 잉글랜드의 앨런 시어러를 효과적으로 막아내며 찬사를 받았습니다.

1998

[1998년 FIFA 월드컵 참가]

1998년 FIFA 월드컵에 참가하여 8강에 진출했으며, 경험 많은 선수들과 함께 신예 수비수로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습니다.

1998년 FIFA 월드컵에 참가하여 주세페 베르고미,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 파올로 말디니 등 경험 많은 선수들과 신예 알레산드로 네스타와 함께 활약했습니다. 이탈리아는 8강에서 개최국 프랑스에 승부차기로 패배하며 탈락했습니다.

1999

[약물 주입 영상 유출 논란]

UEFA컵 결승전 전날, 미확인 물질(네오톤)을 주입하는 영상이 유출되었으나, 해당 물질은 금지 약물이 아니었으며 별다른 조치는 없었습니다.

UEFA컵 결승전 전날 밤, 칸나바로가 네오톤(크레아틴 인산)을 주입하는 영상이 유출되어 논란이 되었습니다. 이 물질은 심장 수술 시 저산소증과 스트레스 발생 시 심장 보호에 사용되며 금지 약물 목록에는 없었습니다.

[UEFA컵 및 코파 이탈리아 우승 (파르마)]

파르마 소속으로 UEFA컵 1998-99 시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클럽 커리어의 중요한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같은 시즌 코파 이탈리아도 우승하며 더블을 달성했습니다.

구단에서의 4년차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유럽대항전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코파 이탈리아에서도 우승하며 겹경사를 누렸고, 그 시즌 세리에 A는 4위로 마감했습니다.

2000

[UEFA 유로 2000 준우승]

UEFA 유로 2000에서 이탈리아를 결승으로 이끌었으나, 프랑스에 골든골을 허용하며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습니다.

디노 초프 감독 아래 알레산드로 네스타와 함께 중앙 수비를 맡아 뛰어난 활약을 펼쳤습니다. 이탈리아는 결승까지 단 2골만 실점하며 강력한 수비를 선보였습니다. 프랑스와의 결승전에서 추가시간 동점골과 연장전 골든골로 패배했습니다.

2002

[2002년 FIFA 월드컵 참가]

조반니 트라파토니 감독 지도 하에 2002년 FIFA 월드컵에 참가했으나, 부상과 감독의 전술적 문제로 16강에서 대한민국에 패해 탈락했습니다.

알레산드로 네스타의 부상과 마르코 마테라치의 활약 미달로 수비에 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칸나바로는 조별 리그에서 경고 누적으로 16강전에 결장했고, 이탈리아는 공동 개최국인 대한민국에 골든골을 허용하며 탈락했습니다.

[인테르나치오날레 이적]

재정난을 겪던 파르마를 떠나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로 이적하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2002년 여름, 2,300만 유로에 4년 계약을 맺고 인테르나치오날레로 이적했습니다. 당시 파르마는 재정난에 빠져 있었고, 인테르는 팀 재편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UEFA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진출과 세리에 A 준우승을 경험했습니다.

[코파 이탈리아 우승 (파르마)]

파르마 소속으로 코파 이탈리아 2001-02 시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유벤투스를 꺾고 또 하나의 트로피를 추가했습니다.

파르마에서의 마지막 시즌에 유벤투스를 이기고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거두었습니다. 파르마는 같은 시즌 UEFA컵 16강에서 탈락하였고 세리에 A는 10위로 마감했습니다.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주장 완장 첫 착용]

말디니의 은퇴 이후, 슬로베니아와의 경기에서 처음으로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주장 완장을 찼습니다.

파올로 말디니의 국가대표팀 은퇴 이후, 슬로베니아와의 경기에서 처음으로 주장 완장을 차고 팀을 이끌었으나, 0-1로 패배했습니다. 이후 아제르바이잔과의 UEFA 유로 2004 예선전에서는 2-0 승리를 거두며 신임 주장으로서 첫 승리를 기록했습니다.

2004

[UEFA 유로 2004 참가]

UEFA 유로 2004에 참가했으나, 조별 리그에서 2번의 경고를 받아 최종전에 결장했고, 이탈리아는 골득실차로 다음 라운드 진출에 실패하며 실망스러운 결과를 얻었습니다.

포르투갈에서 열린 UEFA 유로 2004는 칸나바로에게 실망스럽게 끝났습니다. 덴마크전과 스웨덴전에서 2번의 경고를 받아 조별 리그 최종전에 결장했고, 이탈리아는 불가리아를 꺾었지만 골득실차로 다음 라운드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국가대표팀 첫 득점]

튀니지와의 경기에서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첫 득점을 기록하며 팀의 4-0 승리에 기여했습니다.

튀니스에서 벌어진 튀니지와의 친선 경기에서 첫 국가대표팀 득점을 기록했습니다. 이탈리아는 이 경기에서 4-0으로 완승을 거두었습니다.

[유벤투스 이적]

인테르나치오날레에서의 2년 생활을 마치고 유벤투스와 계약하며 이적했습니다.

인테르나치오날레에서의 2년 후, 여름 이적 시장 말일에 유벤투스와 계약했습니다. 파르마 시절 동료였던 릴리앙 튀랑과 잔루이지 부폰과 재회하여 세리에 A 최고의 수비진을 재결성했습니다. 유벤투스에서 두 시즌 연속 스쿠데토를 획득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2005

[세리에 A 최고 수비수 및 이탈리아 최고 선수 선정]

이탈리아 축구 오스카르 델 칼초에서 2005년과 2006년 연속으로 올해의 수비수와 이탈리아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며 리그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았습니다.

유벤투스 소속으로 2004-05 시즌과 2005-06 시즌 스쿠데토 획득에 크게 기여하며 이탈리아 축구 오스카르 델 칼초에서 여러 차례 수상했습니다. 특히 2005년과 2006년에는 올해의 수비수와 이탈리아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며 리그 내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쳤음을 입증했습니다.

2006

[2006년 FIFA 월드컵 우승]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의 주장으로 2006년 FIFA 월드컵에서 조국을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뛰어난 수비 활약으로 '베를린 장벽'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실버 볼을 수상했습니다.

마르첼로 리피 감독 하에 이탈리아의 주장을 맡아 평정심을 유지하며 팀을 이끌었습니다. 결승전까지 690분을 뛰며 경고나 퇴장 없이 맹활약했습니다. 이탈리아 수비는 5경기를 무실점으로 마치고 대회 기간 동안 단 2골만 허용했습니다. 그의 활약으로 이탈리아는 우승을 차지했고, 그는 실버 볼과 함께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 이적 및 라리가 2연패]

'칼초폴리' 스캔들 이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여 2007년과 2008년에 라리가 2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스페인 무대에서도 성공을 이어갔습니다.

2006년 FIFA 월드컵 직후, '칼초폴리' 스캔들로 유벤투스가 세리에 B로 강등되자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습니다. 이곳에서 3시즌 동안 활약하며 2006-07 시즌과 2007-08 시즌 라 리가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발롱도르 & FIFA 올해의 선수 동시 수상]

2006년 한 해 동안의 뛰어난 활약을 인정받아 수비수로서 유일하게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이는 수비수로서는 세 번째 수상 기록입니다.

2006년 FIFA 월드컵 우승과 클럽에서의 활약으로 2006년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는 10년 동안 이 상을 획득한 유일한 수비수이자, 독일의 프란츠 베켄바워와 마티아스 자머에 이어 세 번째 수비수 수상자로 기록되었습니다.

2008

[국가대표팀 두 번째 득점]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포르투갈과의 친선 경기에서 국가대표팀 두 번째 득점을 기록했습니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포르투갈과의 친선 경기에서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두 번째 득점을 기록하며 팀의 3-1 승리에 기여했습니다.

[UEFA 유로 2008 부상 불참]

UEFA 유로 2008을 앞둔 훈련 중 심각한 발목 부상을 당해 대회에 불참하게 되었습니다.

UEFA 유로 2008을 앞둔 첫 훈련에서 동료 수비수 조르조 키엘리니의 태클에 왼쪽 발목 인대가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대회에 불참하게 되었고, 주장 완장은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에게 넘어갔습니다.

2009

[유벤투스 복귀 발표]

레알 마드리드와의 계약 종료와 함께 세리에 A 2009-10 시즌을 앞두고 유벤투스로 복귀하는 것을 발표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마지막 시즌을 마친 후 유벤투스로 복귀할 것을 결정했습니다. 그는 니콜라 레그로탈리에, 조르조 키엘리니 등과 함께 수비 조합을 이루며 잔루이지 부폰 앞에 배치되었습니다.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참가 및 최다 출장 타이기록]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조별 리그 브라질전에서 파올로 말디니와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최다 출장 기록 타이를 이뤘으나, 팀은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습니다.

브라질과의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조별 리그 최종전 경기에서 126경기에 출전하며 파올로 말디니와 국가대표팀 최다 출장 기록으로 어깨를 나란히 했습니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0-3으로 패해 조별 리그에서 탈락하며 기록이 빛이 바랬습니다.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최다 출장 기록 경신]

스위스와의 친선 경기에서 127번째 국가대표팀 경기에 출전하여 파올로 말디니의 기록을 넘어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최다 출장 선수로 등극했습니다.

스위스와의 친선전에서 127번째 국가대표팀 경기에 출전하며 126번 출전한 파올로 말디니의 기록을 제치고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역사상 최다 출장 선수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도핑 테스트 양성 반응 논란]

도핑 테스트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지만, 심각한 말벌 독침 알레르기 약물 복용 때문이었으며, 기량 향상과 무관하여 징계를 면했습니다.

도핑 테스트에서 양성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유벤투스 측은 심각한 말벌 독침 알레르기 반응에 쓰이는 약물로, 긴급 조치 과정에서 이탈리아 국가 올림픽 위원회(CONI)의 허가를 제때 구하지 못했다고 해명했습니다. CONI는 이후 그의 징계를 면했습니다.

2010

[알아흘리(두바이)로 자유 이적]

2010년 FIFA 월드컵 이후 UAE 아라비안 걸프 리그의 알아흘리로 자유 이적하며 새로운 리그에서 활약했습니다.

2010년 FIFA 월드컵 이후 알아흘리로 2년 계약에 자유 이적한 것으로 발표되었습니다. 그는 두바이 연고 구단 소속으로 16경기에 출전해 2골을 넣었습니다.

[국가대표팀 은퇴 선언]

2010년 FIFA 월드컵에서 이탈리아가 조별 리그 탈락 후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2010년 FIFA 월드컵에서 이탈리아가 조별 리그 통과에 실패한 후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그는 1997년부터 2010년까지 총 136번의 국가대표팀 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했습니다.

2011

[현역 축구 선수 은퇴]

심각한 무릎 부상으로 인해 소속팀 알아흘리에서 현역 축구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주치의로부터 더 이상 활약하기 어렵다는 진단을 받고 현역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은퇴 후 알아흘리의 전세계적 홍보대사 및 기술 고문으로 합류하며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알아흘리의 홍보대사 및 기술 고문 취임]

현역 은퇴 후 두바이 알아흘리의 전세계적 홍보대사와 기술 고문으로 취임하며 클럽 경영에 참여했습니다.

선수 은퇴 후, 두바이 알아흘리의 전세계적 홍보대사와 기술 고문으로 취임하여 2013년까지 활동했습니다.

2013

[알아흘리 수석 코치 이직]

알아흘리의 신임 감독 코스민 올러로이우 취임과 함께 1군 수석코치로 이직하며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코스민 올러로이우가 알아흘리의 신임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1군 수석코치로 이직했습니다. 이직 첫 시즌에 알아흘리의 UAE 아라비안 걸프 리그와 UAE 리그 컵 우승에 공헌했습니다.

2014

[광저우 에버그란데 감독으로 취임]

중국 슈퍼리그 4회 우승팀인 광저우 에버그란데의 신임 감독으로 취임하며 지도자 경력을 이어갔습니다.

마르첼로 리피의 뒤를 이어 광저우 에버그란데의 신임 감독으로 취임했습니다. 취임 당일 입단식을 치렀습니다.

2015

[무단 진입 및 탈세 혐의 징역형 선고]

2009년 사기 및 탈세 조사 과정에서 몰수된 자신의 거처에 무단 진입한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나, 최종 판결 전까지 집행이 유예되었습니다.

파비오 칸나바로와 그의 아내, 남동생 파올로는 2009년에 사기 및 탈세 조사 과정에서 몰수된 파비오의 거처로 무단 진입한 죄로 각각 10개월, 4개월, 그리고 6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셋 모두 최종 판결이 내려지기 전까지 집행이 유예되었습니다.

[광저우 에버그란데 감독직 사임]

톈진 터다와의 슈퍼리그 경기 후 광저우 에버그란데 감독직에서 물러났습니다.

광저우 에버그란데는 톈진 터다와의 슈퍼리그 경기 후 루이스 펠리피 스콜라리가 그의 후임을 맡을 것임을 발표하며 감독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알나스르 감독으로 취임]

사우디아라비아의 알나스르 감독으로 취임하며 중동 무대에서 지도자 경력을 이어갔습니다.

호르헤 오로스만 다 실바를 대신해 사우디아라비아의 알나스르 감독으로 취임했습니다.

2016

[알나스르 감독 계약 해지]

알나스르와의 감독 계약을 해지하고 팀을 떠났습니다.

알나스르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팀을 떠났습니다.

[톈진 취안젠 감독으로 취임]

7경기 무승을 거둔 반데를레이 루솀부르구 감독의 후임으로 톈진 취안젠의 신임 감독으로 내정되었습니다.

7경기 무승을 거둔 반데를레이 루솀부르구 감독의 후임으로 톈진 취안젠의 신임 감독으로 내정되었습니다. 당시 톈진 취안젠은 리그 8위에 올라 있었습니다.

[톈진 취안젠의 중국 리그 1 우승 및 슈퍼리그 승격]

톈진 취안젠을 중국 리그 1 우승으로 이끌며 팀의 중국 슈퍼리그 승격을 확정지었습니다.

톈진 취안젠을 중국 리그 1 우승으로 이끌어 중국 슈퍼리그 2017 시즌 승격을 확정지었습니다. 이 공로로 그는 중국 FA 올해의 감독으로 선정되었습니다.

2017

[광저우 에버그란데 감독 복귀 및 슈퍼리그 우승]

루이스 펠리피 스콜라리 감독 후임으로 광저우 에버그란데 감독으로 복귀하여 2019년 차이니스 슈퍼리그 우승을 포함, 여러 차례 리그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루이스 펠리피 스콜라리 감독의 뒤를 이어 광저우 에버그란데 감독으로 재부임했습니다. 2018년 차이나 FA 슈퍼컵, 2019년 차이니스 슈퍼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팀의 성공을 이끌었습니다.

2021

[광저우 FC 감독 계약 해지]

광저우 FC와의 감독 계약을 상호 합의 하에 해지하고 팀을 떠났습니다.

광저우 FC와 상호 합의 하에 계약을 해지하고 팀을 떠났습니다. 이는 모기업의 재정난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2024

[우디네세 칼초 감독 부임]

이탈리아 세리에 A 클럽인 우디네세 칼초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팀을 이끌었습니다.

이탈리아 세리에 A 소속의 우디네세 칼초 감독으로 취임했습니다.

[GNK 디나모 자그레브 감독 부임]

크로아티아의 GNK 디나모 자그레브 감독으로 부임하여 팀을 지휘했습니다.

크로아티아의 명문 구단인 GNK 디나모 자그레브의 감독으로 부임했습니다.

2025

[우즈베키스탄 국가대표팀 감독 부임]

우즈베키스탄 축구 국가대표팀의 사령탑을 맡아 새로운 국제적인 도전에 나섰습니다.

현재 우즈베키스탄 축구 국가대표팀의 사령탑을 맡고 있으며, 아시아 축구 무대에서 팀을 이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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