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비오 카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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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선수, 축구 감독 축구 선수

파비오 카펠로는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냉철한 전략가이자 승부사로 명성이 높습니다. 선수 시절 미드필더로서 세리에 A와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경험했으며, 이탈리아 국가대표로도 활약했습니다. 감독으로서는 AC 밀란, 레알 마드리드, AS 로마 등 유럽 유수의 클럽들을 이끌며 수많은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그의 실용적이고 규율 잡힌 축구는 여러 팀에 성공을 안겼으며, 역대 가장 위대한 감독 중 한 명으로 평가받습니다.

주요사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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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46

[파비오 카펠로 출생]

이탈리아 산칸치안디존초에서 태어나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서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학교 교사였고, 삼촌 마리오 토르툴도 축구 선수로 활동했습니다.

파비오 카펠로는 1946년 6월 18일 이탈리아 북동부 고리치아 인근의 산칸치안디존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친은 게리노 카펠로였고, 모친은 에벨리나 카펠로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학교 교사였으며 축구를 한 적이 있고, 그의 삼촌 마리오 토르툴도 축구 선수로 트리에스티나, 파도바, 삼프도리아 등에서 활약했습니다. 카펠로는 청년기 전부를 축구에 바쳤습니다.

1964

[SPAL 1군 데뷔]

유소년 클럽 SPAL에서 2년차를 보내던 중, 삼프도리아와의 세리에 A 원정 경기에서 1군에 데뷔했습니다. 이 시기 SPAL은 이탈리아 청소년 리그 우승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유소년부 2년차에, 카펠로는 소속 구단 SPAL의 이탈리아 청소년 리그 우승을 거두었는데, 동시에 1-3으로 패한 UC 삼프도리아와의 1964년 3월 29일 세리에 A 원정 경기에서 1군 신고식도 치렀습니다.

1967

[AS 로마 이적 및 부상]

SPAL에서의 활약을 뒤로하고 AS 로마로 이적했습니다. 로마 입단 첫 해에는 유벤투스전에서 결승골을 기록하며 팀을 선두로 이끌었으나, 왼쪽 무릎 부상으로 시즌을 일찍 마감했습니다.

1967년, 카펠로는 AS 로마로 이적해 구단의 요주 선수로 활약했습니다. 로마 1년차에, 그는 8경기 만에 구단을 선두로 이끌었는데, 1-0으로 이긴 유벤투스 FC전에서 결승골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왼쪽 무릎 부상이 재발하면서 시즌 남은 기간을 빠지게 되었고, 로마는 결국 리그 10위로 굴러떨어졌습니다.

1969

[코파 이탈리아 우승 (선수)]

로마 소속으로 코파 이탈리아에서 우승하며 선수 경력의 첫 주요 대회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듬해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준결승까지 진출하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쳤습니다.

1969년, 카펠로는 로마에서 6골을 득점하며 리그 8위와 구단의 첫 주요 대회인 코파 이탈리아 우승에 일조했습니다. 이 대회를 우승한 로마는 코파 디 레가 이탈로-잉글레세에서 스윈던 타운을 상대했습니다. 카펠로는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준결승전까지 올라갔지만, 폴란드의 구르니크 자브제에 동전 던지기로 패해 탈락했습니다.

1970

[유벤투스 이적]

유벤투스로 이적하여 등번호 10번을 받고 새로운 선수단의 중심으로 거듭났습니다. 유벤투스에서 가장 화려한 선수 시절을 보냈습니다.

1970년, 카펠로는 유벤투스로 매각되었습니다. 그는 초창기에 부진했지만, 체스트미르 비츠팔레크 후임 감독의 지도 하에 불과 24세임에도 불구하고 등번호 10번을 받으면서 새로운 선수단의 중심으로 거듭났습니다. 그는 리즈 유나이티드와의 1971년 인터시티스 페어스컵 결승전에서 선수단의 중심임을 재확인시켰습니다.

1971

[인터시티스 페어스컵 결승 및 세리에 A 우승]

유벤투스 소속으로 인터시티스 페어스컵 결승전에서 리즈 유나이티드를 상대했으나, 원정 다득점에서 밀려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같은 해 유벤투스는 세리에 A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카펠로는 스타디오 올림피코 그란데 토리노에서 열린 안방 경기에서 득점을 올렸지만, 원정 다득점에서 밀려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유벤투스는 세리에 A 1971-72 시즌에 리그 우승을 거두었습니다.

1972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데뷔]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경기에 처음 출전했습니다. 벨기에와의 경기에서 1-2로 패했습니다. 이후 1978년까지 총 32번의 국가대표팀 경기에 출전해 8골을 기록했습니다.

카펠로는 1972년부터 1978년까지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경기에 32번 출전해 8골을 기록했습니다. 그가 출전한 첫 국가대표팀 경기는 1972년 5월 13일, 1-2로 패한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였습니다.

1973

[유벤투스 세리에 A 2연패]

유벤투스 소속으로 세리에 A에서 우승하며 리그 2연패를 달성했습니다. 하지만 유러피언컵 결승전에서 '토탈 풋볼'의 아약스에 0-1로 패해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유벤투스는 세리에 A 1972-73 시즌에 리그 우승을 거두며 2연패를 달성했습니다. 유벤투스는 1973년에 유러피언컵 결승전에도 올랐지만, 당시 '토탈 풋볼'로 위세를 떨치던 AFC 아약스에 0-1로 패했습니다.

[웸블리에서의 역사적 결승골]

잉글랜드와의 웸블리 스타디움 경기에서 1-0 결승골을 기록하여 이탈리아가 사상 처음으로 웸블리에서 잉글랜드를 이기는 역사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는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넣은 1-0 결승골로 회자되는데, 이탈리아는 1973년 11월 14일에 사상 처음으로 웸블리에서 잉글랜드를 이겼고, 카펠로 본인 또한 이 시기를 선수 시절 최고점을 찍은 시기로 보았습니다.

1974

[1974 FIFA 월드컵 참가]

FIFA 월드컵에 참가하여 폴란드전에서 이탈리아의 득점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 1-2로 패하며 2차 조별 리그 진출이 무산되었습니다.

카펠로는 폴란드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1974년 FIFA 월드컵 경기에서도 이탈리아의 득점을 기록했지만, 이 경기에서 1-2로 패하면서 2차 조별 리그 진출이 무산되었습니다.

1975

[유벤투스 세리에 A 우승]

유벤투스 소속으로 세리에 A에서 또다시 우승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이는 유벤투스에서의 세 번째 리그 우승이었습니다.

유벤투스는 세리에 A 1974-75 시즌에 리그 우승을 거두었습니다.

1976

[AC 밀란 이적]

밀란으로 이적하며 유벤투스와의 화려했던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그의 고질적인 무릎 부상이 이적의 주된 원인이었습니다.

유벤투스는 카펠로의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고민하다가 1976년에 밀란과 로메오 베네티에 100M ITL을 얹어 교환했습니다.

1977

[코파 이탈리아 우승 (선수)]

AC 밀란 소속으로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차지하며 개인 통산 두 번째 코파 이탈리아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밀란 소속으로는 1977년에 또다시 코파 이탈리아 정상에 올랐습니다.

1979

[AC 밀란 세리에 A 우승]

AC 밀란 소속으로 세리에 A 우승을 경험했습니다. 이는 그의 선수 경력 마지막 리그 우승이었습니다.

밀란 소속으로는 세리에 A 1978-79 시즌에 리그를 우승했습니다. 이 시즌에는 단 8경기 출전하는 데 그쳤습니다.

1980

[축구 선수 은퇴]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인해 더 이상 축구 선수로 활동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현역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15년간의 화려했던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그는 세리에 A 1979-80 시즌에 3경기만을 출전하다가, 축구 선수로 계속 활동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은퇴했습니다.

[AC 밀란 유소년부 감독 부임]

은퇴 후 몇 년 동안 이탈리아 TV SPW의 축구 평론가로 활동하다가 AC 밀란 유소년부 감독으로 부임하며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은퇴 후 몇년 동안, 카펠로는 이탈리아 TV SPW의 축구 평론가로 활동했고, 1980년대 초에 AC 밀란 프리마베라(밀란 유소년부)를 지도했습니다. 파올로 말디니나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와 같은 신예 선수들을 육성한 그는 U-19 선수단을 이끌고 많은 유소년 대회 우승을 거두었습니다.

1984

[전술 논문 발표]

코베르차노 연수 중 '지역 방어 체계'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며 전술적 지식을 선보였습니다. 이 시기 야구, 아이스 하키 등 다양한 스포츠 단장으로도 활동했습니다.

코베르차노 연수 도중 1984년에 '지역 방어 체계'라는 제목의 논문을 내기도 했습니다. 코베르차노 시절, 카펠로는 야구, 아이스 하키, 배구, 럭비 유니언 등의 다양한 스포츠의 단장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1987

[AC 밀란 감독 대행]

AC 밀란 1군 감독진으로 승격되어 닐스 리드홀름 감독을 보좌했습니다. 이후 리드홀름 감독을 대신해 밀란의 막판 6경기를 지도하며 처음으로 1군을 지휘, UEFA컵 진출권을 획득했습니다.

그는 1987년에 1군 감독진 일원으로 승격되어 닐스 리드홀름 감독을 보좌했습니다. 그는 세리에 A 1986-87 시즌에 리드홀름을 대신해 밀란의 막판 6경기를 지도하면서 처음으로 1군을 지도했고, 삼프도리아와의 플레이오프전에서 승리해 UEFA컵 진출권을 손에 넣었습니다.

1991

[AC 밀란 감독 정식 취임]

아리고 사키의 후임으로 AC 밀란 감독으로 정식 취임했습니다. 언론으로부터 '베를루스코니의 무조건적 찬동자'라는 이미지가 있었으나, 성공적인 밀란 1기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1991년 6월, 카펠로는 사키의 후임으로 밀란 감독으로 취임했는데, 카펠로는 부담감(구단의 재정적인 면과 선수 관리 측면 모두 고려하여)이 있지만 성공적이었던 사키와 비교해 언론으로부터 베를루스코니의 '무조건적 찬동자'라는 이미지가 있었기에 논란이 있었습니다.

1992

[AC 밀란 세리에 A 무패 우승]

AC 밀란을 이끌고 세리에 A에서 무패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이는 카펠로의 감독 경력 중 첫 리그 우승이었습니다. 또한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에서도 우승했습니다.

공격진이 창의성을 더욱 발휘토록 하면서, 밀란은 세리에 A 1991-92 시즌 세리에 A에서 무패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그는 또한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1992에서 우승했습니다.

1993

[AC 밀란 세리에 A 우승 및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AC 밀란은 1992-93 시즌에도 리그를 평정하며 세리에 A 정상을 방어했고,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도 올랐지만 마르세유에 0-1로 패했습니다.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도 차지했습니다.

그는 잔루이지 렌티니의 영입에 약 £15M을 들이면서 축구 역대 최고 이적료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밀란은 1992-93 시즌에도 리그를 평정하며 세리에 A 정상을 방어했고, 같은 해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도 올랐지만,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에 0-1로 패했습니다. 또한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1993에서 우승했습니다.

[AC 밀란, 이탈리아 축구 최장 기간 무패 기록 달성]

AC 밀란은 1991년 5월 19일부터 1993년 3월 21일까지 58경기 무패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는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장 기간 무패 기록으로, 파르마 칼초 1913과의 경기에서 0-1로 패하며 중단되었습니다.

밀란은 58경기 무패 기록을 세웠는데, 1991년 5월 19일부터 1993년 3월 21일까지 이 기록을 이어나갔는데, 이 중 1991-92 시즌은 전체를 포함하는 이탈리아 축구 최장 기간 기록이었습니다. 무패행진은 파르마 칼초 1913과의 경기에서 파우스티노 아스프리야에게 결승골을 내주어 0-1로 패하면서 끝났습니다.

1994

[AC 밀란 챔피언스리그 우승 및 세리에 A 3연패]

AC 밀란을 이끌고 3시즌 연속 세리에 A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특히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는 요한 크라위프의 '꿈의 선수단' FC 바르셀로나를 4-0으로 대파하며 우승했습니다. 세바스티아노 로시는 세리에 A 역사상 최장 시간 무실점 기록(929분)을 세웠습니다.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와 UEFA 슈퍼컵에서도 우승했습니다.

AC 밀란 1993-94 시즌을 준비하면서, 카펠로는 크리스티안 파누치, 브리안 라우드루프, 플로린 러두치오이우, 그리고 마르셀 드사이를 선수단에 합류시켰습니다. 밀란은 상파울루 FC와의 1993년 인터콘티넨털컵 경기에서 2-3으로 패했지만, 세리에 A 정상을 또다시 방어하며, 3시즌 연속으로 '작은 방패'(Scudetto)를 확보했고, 같은 해 1994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는 요한 크라위프의 '꿈의 선수단' FC 바르셀로나를 4-0으로 대파했습니다. 당시 밀란의 수비를 책임지는 4인방인 마우로 타소티, 프랑코 바레시,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 그리고 파올로 말디니는 당대 최고의 수비진으로 손꼽힙니다. 밀란은 카펠로 감독의 지도 하에 탄탄한 수비를 구사하며 로시가 1993-94 시즌에 세리에 A 역사상 최장 시간 무실점 기록을 세우도록 했습니다: 로시는 1993년 12월 12일부터 1994년 2월 27일까지 11경기 동안 단 1골도 실점하지 않았고, 밀란의 수비는 929분 동안 단 1골도 내주지 않았습니다. 이 기록은 유벤투스의 잔루이지 부폰이 세리에 A 2015-16 시즌에 경신했습니다. 또한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1994와 UEFA 슈퍼컵 1994에서 우승했습니다.

1995

[AC 밀란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AC 밀란을 3년 연속 챔피언스리그 결승으로 이끌었으나, 아약스에 패해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리그에서는 4위에 그치며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놓쳤습니다.

AC 밀란은 1994-95 시즌에 고전하였고, CA 벨레스 사르스피엘드와의 인터콘티넨털컵을 패했습니다. 그러나, 1994년 UEFA 슈퍼컵에서는 아스널을 격파했고, 3년 연속 챔피언스리그 결승행에 성공했지만, 아약스에 패해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이 시즌 리그에서 4위에 그치면서 이듬해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물건너갔습니다.

1996

[AC 밀란 세리에 A 우승]

조지 웨아와 로베르토 바조를 영입하며 전력을 보강한 AC 밀란은 승점 8점차로 리그 우승을 거두었습니다. 이로써 카펠로는 밀란에서 4번째 세리에 A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AC 밀란 1995-96 시즌을 앞두고, 밀란은 조지 웨아와 로베르토 바조를 영입했고, 측면 미드필더 파울루 푸트르도 같은 시기 입단했습니다. 그로 인해 카펠로는 디 카니오, 렌티니, 사비체비치, 에라니오, 로베르토 도나도니, 그리고 마르코 시모네와 같은 공격수와 측면 미드필더가 넘쳐 교통정리에 신경써야 했습니다. 그러나, 카펠로는 다시 선발대를 효율적으로 교체하는 정책을 활용하였고, 밀란의 4-4-2 배치 형태로 바꾸어, 공격 3각 편대를 구성하고 웨아가 바조와 사비체비치의 지원을 받는 1명의 스트라이커로 배치되어 두 명의 플레이메이커가 협력하여 경기를 전개해 나가도록 만들었습니다. 이 시기에 밀란은 승점 8점차로 리그 우승을 거두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 감독 취임]

레알 마드리드의 사령탑에 취임했습니다. 다보르 슈케르, 프레드라그 미야토비치, 라울 곤살레스 등 공격진을 조합하며 3명의 공격수를 배치하는 파격적인 대형으로 팀을 이끌었습니다.

카펠로는 1996년에 레알 마드리드 CF의 사령탑에 취임했습니다. 카펠로의 첫 과제는 다보르 슈케르, 프레드라그 미야토비치, 그리고 라울 곤살레스와 같은 공격진을 한 선수단에 조합하는 일이었는데, 카펠로는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기존의 신중한 수비형 축구를 하는 대신에 3명의 공격수를 배치하는 대형을 활용했습니다.

1997

[레알 마드리드 라 리가 우승]

레알 마드리드를 이끌고 첫 해인 1996-97 시즌에 라 리가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바르셀로나를 2점 차로 따돌리고 정상에 올랐으며, 훗날 챔피언스리그를 누빌 선수들의 초석을 다졌습니다.

그는 레알 마드리드를 1년 동안 지휘하면서 라리가 1996-97 시즌에 라 리가 정상을 차지했습니다. 마드리드는 철천지 원수 바르셀로나를 단 2점차로 따돌리고 리그 정상에 올랐습니다. '머랭 군단'(Los Merengues)에서 단 1년을 보내는 데 그쳤지만, 그는 슈케르, 미야토비치, 호베르투 카를루스, 그리고 클라렌서 세이도르프의 영입에 일조해 훗날 챔피언스리그 무대를 누빌 초석을 다졌습니다.

[AC 밀란 감독 재복귀]

AC 밀란 감독으로 다시 복귀했으나, 짧고 부진한 시기를 보냈습니다. 1997-98 시즌에 리그 10위에 그치며 시즌이 끝나기도 전에 팀을 떠났습니다.

세르조 크라뇨티 SS 라치오 구단주는 카펠로가 구단과 구두계약을 맺었다고 생각했지만, 카펠로는 밀란 복귀를 결정했고 1년동안 짧고 부진한 시기를 보냈습니다. 밀란은 선수단 정비가 필요한 곳이 많았는데, 파트릭 클라위버르트, 레오나르두, 빈스톤 보하르더, 크리스티안 치게, 안드레 크루스, 그리고 이브라힘 바의 영입으로도 신통치 않았습니다. 밀란은 시즌을 통틀어 11경기를 승리하는 데 그쳤고, 세리에 A 1997-98 시즌에 10위의 초라한 성적을 거두었으며, 카펠로는 시즌이 끝나기도 전에 구단을 떠났습니다.

1999

[AS 로마 감독 취임]

1년간의 휴식기를 보낸 후, 자신이 선수 시절 뛰었던 AS 로마의 감독으로 부임했습니다. 프랑코 센시 회장은 그에게서 우승을 기대했습니다.

밀란을 떠난 카펠로는 1년의 휴식기를 보냈습니다. 그는 기자에게 '벤치에 앉아 축구에 관해 고찰했다'라고 밝혔습니다. 1999년 5월, 그는 로마로 이주해 자신이 30년 전에 뛰었던 구단으로 돌아왔습니다. 프랑코 센시 로마 회장은 '카펠로는 우리에게 우승을 가져다 줄 거라 믿습니다'라며 그를 융숭히 환영했습니다.

2001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

세리에 A 우승에 이어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2001에서도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로마의 성공 시대를 이끌었습니다.

로마의 2000-01 시즌 세리에 A 우승에 이어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2001에서도 우승했습니다.

[AS 로마 세리에 A 우승]

왈테르 사무엘과 가브리엘 바티스투타를 영입하며 전력을 강화한 AS 로마를 이끌고 2000-01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는 로마의 10여년 만의 유일한 주요 대회 우승이자 통산 3번째 리그 우승이었습니다.

카펠로의 로마는 세리에 A 2000-01 시즌에 대도약했는데, 왈테르 사무엘 영입으로 후방을 보강하고, 가브리엘 바티스투타를 주 득점원으로 영입했습니다. 로마는 시즌 초에 고전하는 가운데 분노한 지지자들은 구단의 트리고라 훈련장에서 과격한 시위를 벌였고, 선수들이 폭행당하고 차량이 파손되기도 했습니다. 카펠로는 사임을 고려하기까지도 했지만, 구단 성적은 브라질 미드필더 이메르송의 맹활약과 함께 급격히 호전되었습니다. 로마는 2001년 6월 17일에 스타디오 올림피코 안방에서 파르마를 3-1로 제압하고 리그 우승을 확정지었습니다.

2004

[유벤투스 감독 계약]

부채에 시달리던 AS 로마를 떠나 유벤투스와 계약하며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로마의 핵심 선수 이메르송을 데려오며 로마 지지자들의 공분을 샀습니다.

2004년, 카펠로는 부채가 쌓인 로마를 떠나 유벤투스와 계약했습니다. 그는 앞서 루차노 모지와 열띤 언쟁을 벌였었고, 비밀리에 이적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놀랍다는 반응이 주류였었습니다. 카펠로는 유벤투스로 둥지를 옮긴 후 로마에서 이메르송을 빼오면서, 카펠로가 로마를 배신했다고 보는 비평가들의 공분을 샀습니다.

2006

[레알 마드리드 감독 재취임]

칼초폴리 스캔들에 연루되어 유벤투스 지휘봉을 내려놓고 레알 마드리드 감독으로 재취임했습니다. 라몬 칼데론 신임 회장의 공약에 따라 복귀가 결정되었습니다.

2006년 7월, 유벤투스가 칼초폴리 스캔들에 둘러쌓이자, 카펠로는 유벤투스 지휘봉을 내려놓았습니다. 언론은 그가 레알 마드리드로의 복귀가 유력한 것으로 보도했습니다. 이 보도는 라몬 칼데론 신임 회장이 카펠로를 복귀시킬 것을 공약으로 내세운 것 때문에 나왔고, 2006년 7월 5일부로 레알 마드리드 공식 웹사이트에 카펠로 감독의 취임을 발표했습니다.

2007

[레알 마드리드 라 리가 우승 및 해임]

레알 마드리드에서 수비적인 경기 방식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2006-07 시즌 라 리가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은하 군단'의 향수에 취한 구단의 방침으로 인해 우승에도 불구하고 해임되었습니다.

2006년, 카펠로는 마드리드에 복귀해 약 반 세기 만에 역대 최장 기간 무관의 수렁에 빠진 레알 마드리드의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그는 수비적인 경기 방식 때문에 바로 마드리드의 열정적인 지지자들의 비난을 받았습니다. 마드리드는 RCD 마요르카와의 안방 최종전 경기에서 3-1로 이기며 통산 30번째 리그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라 리가를 우승하고도 카펠로는 2007년 6월 28일에 실용적인 경기를 펼쳐 우승의 실적을 냈지만, 역설적이게도 실패했지만, 개인적이며 자유분방한 '은하 군단'(Galácticos)의 향수에 취한 마드리드의 감독직에서 해임되었습니다.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감독 취임]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정식 취임했습니다. 4년 반짜리 계약에 연봉 6백만 파운드로 알려졌으며, 감독직을 끝으로 은퇴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카펠로는 2007년 12월 14일에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정식 취임했습니다. 그는 2008년 1월 7일에 4년 반짜리 계약서에 서명하고 정상적인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그의 연봉은 £6M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취임이 확정된 후, 그는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을 끝으로 은퇴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2008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감독 데뷔전]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 첫 경기를 치렀습니다. 웸블리에서 열린 스위스와의 경기에서 저메인 제너스와 숀 라이트-필립스의 골로 2-1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잉글랜드가 카펠로 감독 체제에서 벌인 첫 경기는 2008년 2월 6일,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스위스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였습니다. 웸블리에서 벌어진 이 경기는 저메인 제너스와 숀 라이트-필립스의 골로 잉글랜드가 2-1로 이겼습니다.

2009

[2010년 월드컵 본선 진출 확정]

크로아티아를 5-1로 대파하며 잉글랜드를 2010년 FIFA 월드컵 본선에 안착시켰습니다. 웨인 루니는 예선전에서 맹활약했습니다.

2009년 9월 9일, 카펠로는 안방에서 크로아티아를 5-1로 대파하면서 잉글랜드를 2010년 월드컵 본선에 안착시켰습니다. 예선전에서 수훈을 세운 선수는 웨인 루니였는데, 앞서 명시한 7번의 경기에서 8번 골망을 흔들었습니다.

2010

[2010년 월드컵 16강 진출]

잉글랜드는 슬로베니아를 1-0으로 꺾고 2010년 FIFA 월드컵 16강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조별리그를 통과했으나, 이후 독일과의 16강전에서 1-4로 패하며 탈락했습니다.

로버트 그린 골키퍼의 실책으로 미국과의 1차전에서 1-1로 비기고, 알제리전에서도 0-0 무승부를 기록하며 비판을 받았습니다. 6월 23일, 카펠로호는 슬로베니아를 1-0으로 이기면서 월드컵 16강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16강전에서 독일에 1-4로 패하면서 조기에 짐을 싸야 했습니다.

2011

[유로 2012 본선 진출 확정]

잉글랜드는 몬테네그로 원정에서 2-2 무승부를 기록하며 유로 2012 본선행을 확정지었습니다. 예선전에서 5승 3무 무패를 기록하며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카펠로는 이 경기 이후 전략을 바꾸어 퍼디난드와 제라드를 배제하고 존 테리를 다시 주장으로 선임하여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전술 실험이 적중하여 잉글랜드는 2011년 3월 26일에 웨일스를 2-0으로 완파했습니다. 2011년 10월 7일, 잉글랜드는 몬테네그로 원정에서 2-2로 비기면서 유로 2012 본선행을 확정지었습니다. 잉글랜드는 이번 예선전에서 5승 3무 무패를 기록했습니다.

2012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감독 사임]

잉글랜드 축구 협회와의 불화로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사임했습니다. 존 테리의 주장 완장 박탈에 대한 이견이 주된 원인이었습니다.

2012년 2월 8일, 카펠로는 존 테리의 주장 완장 박탈에 대한 이견으로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러시아 국가대표팀 감독 취임]

딕 아드보카트의 사임으로 공석이 된 러시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했습니다. 그의 첫 공식 경기에서 북아일랜드를 2-0으로 이겼습니다.

2012년 7월 26일, 카펠로는 딕 아드보카트의 사임으로 공석이 된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했습니다. 그가 지휘한 첫 경기는 1-1로 비긴 코트디부아르와의 경기였습니다. 카펠로의 첫 러시아 국가대표 공식경기는 북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2014년 월드컵 예선전 1차전 경기로, 안방에서 2-0으로 이겼습니다.

2014

[2014년 월드컵 조별 리그 탈락]

2014년 월드컵 본선에서 알제리와의 최종전을 1-1로 비겨 조별 리그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유로 2016 예선전에서도 6경기 동안 2승 2무 2패를 기록하는 등 부진했습니다.

러시아는 2014년 FIFA 월드컵 본선에서 알제리와의 최종전을 1-1로 비겨 조 3위로 조별 리그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UEFA 유로 2016 예선 G조에서 카펠로는 러시아를 6경기 동안 지도했습니다: 그동안 거둔 성적은 2승 2무 2패였습니다.

[러시아 국가대표팀 계약 연장]

러시아 국가대표팀과의 계약을 2018년 월드컵까지 연장했습니다. 그가 이끄는 러시아는 2014년 월드컵 본선에 직행했습니다.

그가 이끄는 러시아 국가대표팀은 F조 1위를 차지하여 2014년 월드컵 본선에 직행했습니다. 2014년 1월, 카펠로는 러시아 국가대표팀과의 계약을 2018년 FIFA 월드컵까지로 연장했습니다.

2015

[러시아 국가대표팀 감독 해임]

오스트리아에 0-1로 패배한 여파로 러시아 국가대표팀 감독직에서 해임되었습니다. 이후 레오니트 슬루츠키가 후임으로 내정되었습니다.

2015년 6월 14일, 러시아는 오스트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 0-1로 패했습니다. 그 여파로, 카펠로는 2015년 7월 14일에 러시아 국가대표팀 감독직에서 해임되었습니다. 러시아 축구 협회는 그를 경질하고 레오니트 슬루츠키를 후임으로 내정했습니다.

2017

[장쑤 쑤닝 감독 계약]

중국의 장쑤 쑤닝과 계약하며 중국 슈퍼리그에 진출했습니다. 전 시즌 12위였던 팀을 맡아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2017년 6월 11일, 카펠로는 중국의 장쑤 FC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 구단은 앞서 중국 슈퍼리그 2017 전 시즌에 12위(16개 구단 참가 리그에서)의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2018

[장쑤 쑤닝 감독 경질 및 은퇴]

장쑤 쑤닝 감독직에서 경질되었습니다. 시즌 개막 후 3경기 만의 일이었습니다. 이듬해 4월, 그는 축구 감독으로서 전격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2018년 3월 28일, 카펠로는 시즌 개막 후 3경기 만에 장쑤 쑤닝 감독직에서 경질되었습니다. 한 달여 후인 4월, 그는 공식적으로 축구 감독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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