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 에스코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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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에스코바르
마약 밀매업자, 범죄자, 정치인, 테러리스트 + 카테고리
역사상 가장 악명 높고 부유했던 마약왕으로, 콜롬비아 메데인 카르텔을 창설해 전 세계 코카인 시장을 장악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습니다. 합법적인 권력을 얻고자 정계에 진출했으나, 실체가 폭로된 후 국가 시스템과 전면전을 벌여 무수한 정치인, 언론인, 경찰, 민간인을 희생시키는 끔찍한 마약 테러리즘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한때 '빈민들의 로빈후드'라 불리기도 했으나, 결국 자신을 쫓는 정부 수색대와 적대 세력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범죄 제국의 지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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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49

[콜롬비아 리오네그로 출생]

콜롬비아 안티오키아주 리오네그로의 농부 아버지와 초등학교 교사 어머니 사이에서 7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넉넉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지만, 어릴 적부터 남다른 사업적 수완을 보이며 성장했습니다.
그의 조상과 친척 중에는 정치가나 밀수업자 등 다양한 배경의 인물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복권을 팔거나 만화책, 시험지 등을 거래하며 돈을 버는 데 천부적인 기질을 드러냈습니다.

1969

[고등학교 졸업 및 대학 중퇴]

루크레시오 하라미요 벨레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라틴아메리카 자치 대학교 경제학부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학업보다는 개인적인 불법 사업에 더 큰 흥미를 느껴 결국 대학을 중퇴했습니다.
대학 중퇴 전후인 196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청부 살인과 차량 절도 등의 범죄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에 훗날 거대한 마약 제국을 세우게 될 범죄자로서의 밑바탕을 다졌습니다.

1976

[빅토리아 에우헤니아 에나오와 결혼]

당시 15세였던 빅토리아 에우헤니아 에나오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이 결혼을 통해 훗날 자신의 거대한 범죄 제국을 물려주고자 했던 두 자녀를 얻게 됩니다.
그의 사촌이자 절친했던 글로리아 가비리아가 이 결혼식의 증인이자 대모 역할을 맡았습니다. 훗날 에스코바르가 사망한 뒤, 그의 아내와 자녀들은 신변 보호를 위해 이름을 바꾸고 아르헨티나로 망명해야만 했습니다.

1977

[장남 후안 파블로 에스코바르 출생]

아내 빅토리아 에우헤니아 에나오와의 사이에서 첫째 아들인 후안 파블로 에스코바르 에나오가 태어났습니다. 그는 자신의 범죄 제국을 굳건히 이어갈 후계자로 장남을 강력히 염두에 두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일군 막대한 부와 마약 카르텔이 혈통을 통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후 아들은 아버지의 길을 거부하고 후안 세바스티안 마로킨 산토스로 개명하여 평범한 건축가로 살아가게 됩니다.

1979

[메데인 카르텔 창설 및 마약 사업 확장]

1970년대 후반부터 코카인 생산 및 해외 유통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곤살로 로드리게스 가차, 카를로스 레데르, 오초아 형제 등과 동맹을 맺고 악명 높은 메데인 카르텔을 창설했습니다.
메데인 카르텔은 전성기 시절 전 세계 코카인 생산량의 80% 이상과 미국 불법 마약 시장의 60%를 독점했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포브스지 선정 세계 최고 부자 명단에 7년 연속 오를 만큼 엄청난 부를 축적하게 됩니다.

1981

[무장 단체 'MAS(납치범에게 죽음을)' 창설]

콜롬비아 내 좌익 게릴라 단체들의 빈번한 납치 행위에 대응하기 위해 메데인 카르텔의 자금력을 동원하여 '납치범에게 죽음을(MAS)'이라는 준군사조직을 창설했습니다.
이 조직은 마르타 니에베스 오초아 납치 사건과 카를로스 레데르 납치 미수 사건에 대한 철저한 보복 차원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이는 범죄 조직이 사병 집단을 거느리며 극우 무장 세력의 뿌리가 된 중대한 사건이었습니다.

1982

[콜롬비아 하원의원 당선]

불법 마약 자금을 세탁하고 합법적인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해 정계에 진출했습니다. 대안 자유당 소속으로 나서 콜롬비아 하원의원(예비후보)에 당선되며 권력의 중심에 다가섰습니다.
그는 빈민층을 위해 주택과 축구장을 지어주는 등 철저히 계산된 자선 사업을 통해 대중의 지지를 얻는 포퓰리즘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같은 해 스페인 펠리페 곤살레스 총리의 취임식에도 초대받을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했습니다.

1983

[범죄 사실 폭로와 정계 퇴출]

로드리고 라라 보니야 법무장관과 일간지 '엘 에스펙타도르'의 대대적인 탐사 보도로 인해 그의 마약 밀매 범죄가 세상에 폭로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의원 면책 특권을 잃고 정계에서 불명예스럽게 퇴출당했습니다.
정계에서 축출된 직후 그의 미국 비자마저 전격 취소되었으며, 공권력의 포위망이 좁혀오기 시작했습니다. 정치적 방패를 잃은 이 사건은 훗날 그가 국가를 상대로 피비린내 나는 마약 테러리즘 전쟁을 벌이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1984

[로드리고 라라 보니야 법무장관 암살]

자신의 범죄를 폭로하고 정치 생명을 끊어놓은 로드리고 라라 보니야 법무장관을 길거리에서 청부 살해했습니다. 이 대담한 암살을 기점으로 콜롬비아 정부와 마약 카르텔 간의 무자비한 유혈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암살 직후, 그동안 범죄인 인도에 반대해 오던 벨리사리오 베탕쿠르 콜롬비아 대통령은 즉각 마약 사범의 미국 범죄인 인도를 전격 승인했습니다. 이에 카르텔 수뇌부들은 파나마로 도피해 임시 은신처를 마련해야 했습니다.

[장녀 마누엘라 에스코바르 출생]

정부의 추적을 피해 파나마와 니카라과 등으로 도피 생활을 이어가던 불안정한 시기에 둘째이자 유일한 딸인 마누엘라 에스코바르 에나오가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의 잔혹한 범죄 행위와 카르텔 간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 때문에 그녀의 유년 시절은 철저히 통제된 은신처를 전전하는 삶으로 점철되었습니다. 그녀는 훗날 신변 보호를 위해 후아나 마누엘라 마로킨 산토스로 개명하게 됩니다.

1985

[보고타 대법원 점거 사건 후원]

콜롬비아의 좌익 게릴라 단체인 M-19이 수도 보고타의 대법원을 무력으로 점거하고 인질극을 벌인 사건의 배후 자금줄로 지목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수많은 대법관들이 희생되었고 중요한 재판 기록들이 불탔습니다.
미국으로의 범죄인 인도를 두려워한 그가 이를 저지하기 위해 게릴라 단체에 막대한 무기와 자금을 지원하여 국가 사법 시스템의 심장부를 타격했다는 강한 혐의를 받았습니다. 이는 콜롬비아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무력 도발 중 하나입니다.

1986

[엘 에스펙타도르 국장 기예르모 카노 암살]

마약 카르텔의 범죄 행위를 끊임없이 고발하며 자신의 실체를 세상에 알렸던 일간지 '엘 에스펙타도르'의 기예르모 카노 이사사 국장을 무참히 암살했습니다.
언론의 입을 틀어막고 사회 전체에 극한의 공포를 심어주기 위해 자행된 테러였습니다. 기예르모 카노는 그의 마약 밀매와 정계 로비 자금의 실체를 파헤치는 데 가장 앞장섰던 정의로운 지식인이었습니다.

1989

[정부와의 전면전 선포 및 연쇄 암살]

정부와의 평화 협상이 무위로 돌아가자, '인도 대상자들(Los Extraditables)'이라는 이름 아래 판사, 정부 관료, 주요 공인들을 향한 연쇄 암살을 지시했습니다. 범죄 조직이 국가 시스템 전체를 상대로 사실상 전면전을 선포한 사건입니다.
자신의 범죄인 인도를 담당했던 변호사 엑토르 히랄도 갈베스를 비롯해 수많은 사법부 인사들이 잔혹하게 살해되었습니다. 이후 방송국 본부에 폭탄을 터뜨리는 등 본격적인 마약 테러리즘의 광풍이 몰아치기 시작했습니다.

[비밀경찰국장 암살 시도 및 폭탄 테러]

마약 카르텔 척결에 앞장서던 콜롬비아 비밀경찰(DAS) 국장 미겔 마사 마르케스 장군을 노리고 보고타 시내에서 강력한 차량 폭탄 테러를 감행했습니다.
이 공격으로 타겟이었던 마르케스 장군은 살아남았으나 무고한 시민 7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콜롬비아 주요 도시 전역에서 카르텔의 무차별적인 차량 폭탄 테러가 일상처럼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대통령 후보 루이스 카를로스 갈란 암살]

마약 사범의 미국 인도를 강력히 지지하며 차기 대통령 당선이 가장 유력했던 자유당의 루이스 카를로스 갈란 후보를 소아차 지역 정치 유세 현장에서 잔혹하게 암살했습니다.
같은 날 오전에는 안티오키아 경찰청장 발데마르 프랑클린 킨테로 대령까지 무참히 살해했습니다. 국가의 가장 촉망받는 지도자와 경찰 고위 간부가 연이어 살해되면서 콜롬비아 사회는 엄청난 충격과 분노에 휩싸였습니다.

[국가 비상사태 선포 및 범죄인 인도 법령 시행]

유력 대통령 후보의 암살 직후, 콜롬비아 정부는 즉각 대국민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대법원의 판결 없이도 행정부의 권한만으로 마약 사범을 미국으로 인도할 수 있는 강력한 법령(Decreto 1830)을 발동했습니다.
이러한 국가의 강경 대응에 맞서 에스코바르는 더욱 극단적인 보복을 예고했습니다. 정치인, 판사, 언론인 등을 상대로 전례 없는 무차별적인 폭탄 공격이 이어지며 국가는 사실상 내전 상태로 빠져들었습니다.

[아비앙카 항공 203편 공중 폭파 사건]

갈란의 후계자인 세사르 가비리아 대통령 후보를 암살할 목적으로 민간 여객기인 아비앙카 항공 203편에 폭탄을 설치하여 공중 폭파시켰습니다. 이로 인해 113명의 무고한 인명이 억울하게 희생되었습니다.
정작 암살의 타겟이었던 세사르 가비리아 후보는 직전에 비행기 탑승 일정을 변경하여 기적적으로 화를 면했습니다. 민간 항공기까지 테러의 표적으로 삼은 이 사건은 전 세계에 그의 잔악성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비밀경찰(DAS) 본부 대형 폭탄 테러]

보고타에 위치한 콜롬비아 비밀경찰(DAS) 본부 건물 외곽에서 무려 500kg의 엄청난 폭약을 실은 버스를 원격으로 폭파시켰습니다. 이 폭발로 89명이 사망하고 600명 이상이 중상을 입는 끔찍한 대참사가 발생했습니다.
미겔 마사 마르케스 장군을 끈질기게 노린 두 번째 테러 공격이었으나, 장군은 또다시 살아남았습니다. 대신 주변 상가와 거리를 걷던 수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형체도 없이 산화하며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1991

[콜롬비아 정부에 자수 및 라 카테드랄 수감]

콜롬비아 제헌 의회가 자국민의 해외 범죄인 인도를 전면 금지하는 새로운 헌법을 통과시키자, 이를 조건으로 정부에 자수했습니다. 이후 자신이 직접 부지를 사고 초호화 시설로 꾸민 '라 카테드랄'이라는 사설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감옥은 당구장, 축구장, 자쿠지 등을 갖춘 사실상의 초호화 별장이었습니다. 그는 정부와의 밀약을 통해 자신이 고용한 무장 경호원의 호위를 받으며 감옥 안에서도 버젓이 카르텔을 지휘하고 범죄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1992

[라 카테드랄 감옥 탈옥]

감옥 내부로 측근들을 불러들여 잔혹하게 고문하고 살해하는 등 범죄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 언론에 발각되었습니다. 이에 정부가 그를 일반 군사 교도소로 강제 이감하려 하자, 이를 눈치채고 손쉽게 감옥을 탈출해 버렸습니다.
이 어처구니없는 탈옥 사건은 콜롬비아 교정 당국과 정부 시스템의 부패를 전 세계에 보여주며 엄청난 국가적 굴욕을 안겼습니다. 직후 분노한 정부는 그를 사살하기 위해 대규모 특수 부대인 '수색대(Bloque de Búsqueda)'를 창설했습니다.

1993

[반 에스코바르 자경단 '로스 페페스' 등장]

경쟁 조직인 칼리 카르텔과 그에게 가족을 잃은 희생자들이 연합하여 '로스 페페스(Los Pepes)'라는 무장 자경단을 결성했습니다. 이들은 에스코바르의 조직원과 가족, 자금줄을 향해 잔혹한 피의 보복을 시작했습니다.
로스 페페스는 그의 변호사, 친척, 핵심 수하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그의 자산에 폭탄 테러를 가하며 범죄 제국을 빠르게 붕괴시켰습니다. 콜롬비아 정부의 전방위 압박과 로스 페페스의 맹렬한 보복으로 그의 세력은 급격히 쇠락하게 됩니다.

[은신처 발각 및 경찰 총격으로 사망]

정부 수색대의 17개월에 걸친 끈질긴 추적 끝에, 가족과의 전화 통화 도중 위치가 추적되어 메데인의 로스 올리보스 지역 은신처가 포위되었습니다. 지붕을 통해 필사적으로 도주를 시도하던 중 수색대의 총격에 맞아 마침내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죽음으로 수많은 무고한 피를 흘리게 했던 악명 높은 메데인 카르텔은 완전히 와해되었습니다. 수천 명의 희생자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장례식에는 과거 그가 금전적으로 지원했던 빈민층 지지자 수만 명이 몰려들어 애도를 표하는 아이러니한 장면이 연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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