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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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비교
독일계 이민자 부부가 퀸즈의 작은 빈 구역에서 시작한 이 회사는, 20세기를 거치며 뉴욕 스카이라인을 지배하는 거대한 부동산 제국으로 성장했습니다. 프레드 트럼프가 브루클린과 퀸즈의 중산층 주거지를 개척하며 부를 축적했다면, 아들 도널드 트럼프는 맨해튼의 화려한 랜드마크와 화려한 카지노를 건설하며 전 세계적인 브랜드로 기업의 이름을 알렸습니다. 하지만 파산 위기와 흑인 차별 소송 등 숱한 논란의 중심에 섰으며, 오너의 대통령 당선 이후에는 심각한 이해충돌과 대규모 금융 사기 및 조세 포탈 혐의로 사법 당국의 철퇴를 맞아 '기업 사형 선고' 위기에 직면하는 등 영광과 오욕이 극적으로 교차하는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연표
1907
1907
[뉴욕 퀸즈로의 이주와 시작]
- 독일 출신의 이민자 부부가 아메리칸드림을 품고 뉴욕 퀸즈 자치구에 정착함. - 남편이 선구적으로 지역 내 빈민가를 중심으로 부동산 개발을 시작함. - 이 소박한 출발은 훗날 전 세계를 아우르는 거대한 부동산 제국의 든든한 초석이 됨.도널드 트럼프의 조부모인 프레더릭 트럼프와 엘리자베스 크라이스트 트럼프는 독일에서 이주하여 뉴욕 퀸즈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프레더릭은 이 지역에서 빈 땅을 매입하고 본격적으로 부동산 개발 사업을 시작하며 가문의 부를 축적할 첫 단추를 끼웠습니다.
1918
1918
[설립자의 비극과 아내의 계승]
- 전 세계를 휩쓴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인해 가문의 기둥이었던 남편이 돌연 사망함. - 슬픔에 빠질 겨를도 없이 아내가 남편의 빈자리를 채우며 부동산 사업을 억척스럽게 이어받음. - 빈 땅에 집을 짓고 모기지 수익을 올리는 수완을 발휘하며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냄.가문의 기반을 닦던 프레더릭 트럼프가 '스페인 독감' 팬데믹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겨진 자산은 약 3만 달러(2020년 기준 약 53만 달러)였으며, 아내 엘리자베스는 도급업자들을 고용해 남편이 남긴 빈 부지에 주택을 건설하고 판매하여 모기지 수익을 창출하는 등 훌륭하게 사업을 지속했습니다.
1921
1921
['E. 트럼프 & 선' 상호 등장]
- 아들을 전면에 내세우기 위해 어머니가 지역 광고에 새로운 상호를 사용하기 시작함. - 가족 경영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며 지역 사회에 신뢰감 있는 건축업자로 이름을 알림. - 이것이 훗날 거대 그룹으로 성장할 기업의 실질적인 첫 브랜드 네이밍이었음.엘리자베스 트럼프는 사업을 확장하며 지역 광고에 처음으로 'E. 트럼프 & 선(E. Trump & Son)'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그녀의 십 대 아들인 프레드 트럼프가 향후 사업의 핵심적인 역할을 맡게 될 것임을 예고하는 조치였습니다.
1927
1927
[정식 법인 설립과 본격화]
- 목공 기술을 배운 아들이 성년이 되자 가업을 정식 주식회사로 공식 출범시킴. - 본격적으로 단독 주택 건축에 뛰어들며 개발업자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시작함. - 가내 수공업 수준이던 사업이 전문적인 형태를 갖춘 기업으로 도약하는 결정적 순간임.고등학교 졸업 후 목공업에 종사하던 프레드 트럼프가 성년(만 21세)이 되자, 그동안 사용해 오던 'E. 트럼프 & 선'이 정식으로 법인화되었습니다. 이때를 기점으로 프레드 트럼프는 퀸즈 지역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단독 주택 건설업자로 나서며 훗날의 거대한 부를 쌓기 시작했습니다.
1929
1929
[자메이카 에스테이츠 진출]
- 젊은 대표의 지휘 아래 더 높은 수익을 노리고 인근의 고급 주택가 개발에 뛰어듦. - 고가 주택 시장을 공략하며 회사의 외형과 평판을 한 단계 끌어올림. - 하지만 불어닥친 거대한 경제 대공황의 파도를 피하지 못하고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됨.프레드 트럼프가 회사의 운전대를 잡고 퀸즈의 부유한 지역인 자메이카 에스테이츠(Jamaica Estates)에서 고가의 주택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1929년에 시작된 전례 없는 경제 대공황의 여파로 주택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결국 회사는 잠시 문을 닫는 위기를 겪었습니다.
1933
1933
[부동산 시장으로의 화려한 복귀]
-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잠시 슈퍼마켓을 운영하다 매각 후 본업으로 다시 돌아옴. - 파산한 모기지 회사의 자회사를 헐값에 인수하는 탁월한 수완을 발휘함. - 압류 직전의 부동산에 접근할 수 있는 특권을 얻어 막대한 시세 차익을 챙기기 시작함.대공황 시절 프레드는 '트럼프 마켓'이라는 슈퍼마켓을 열었다가 단기간에 매각하고 다시 부동산 사업으로 복귀했습니다. 그는 파산하여 사기 혐의로 해체된 브루클린의 J. Lehrenkrauss & Co.의 모기지 서비스 자회사를 파트너와 함께 인수했고, 이를 통해 압류 위기에 처한 여러 부동산의 소유권을 헐값에 매입해 큰 수익을 남겼습니다.
1935
1935
[브루클린으로의 본사 이전]
- 확장된 사업 규모에 발맞춰 회사의 본거지를 퀸즈에서 브루클린으로 전격 이동함. - 두 자치구를 아우르며 단독 주택 건설을 폭발적으로 늘려나감. - 뉴욕에서 가장 성공하고 전도유망한 젊은 사업가 중 한 명으로 대중에게 각인됨.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주택 수요와 확장되는 사업을 감당하기 위해 회사는 본사를 브루클린으로 옮겼습니다. 프레드 트럼프는 브루클린과 퀸즈 전역에 걸쳐 수많은 단독 주택을 건설하는 다작(多作) 건축가로 명성을 떨쳤고, 뉴욕시에서 가장 돋보이는 청년 실업가로 조명받았습니다.
1944
1944
[대규모 아파트 단지 구상]
- 세계 대전 중 군인들을 위한 임시 주택을 건설하며 얻은 노하우를 민간 시장에 적용하기로 결심함. - 기존의 단독 주택 위주 사업에서 대규모 다가구 아파트 단지 개발로 사업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꿈. - 폭발하는 전후 인구 증가와 주택난을 정확히 꿰뚫어 본 탁월한 선구안이었음.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버지니아와 펜실베이니아에서 군인 및 해군 요원들을 위한 아파트와 임시 주택을 건설했던 프레드는 다시 브루클린으로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는 전후 주택 수요가 폭발할 것을 예측하고 대규모 아파트 건물 단지 개발 계획을 본격적으로 수립하기 시작했습니다.
1949
1949
[쇼어 헤이븐 단지 개장]
- 수년간의 기획 끝에 천 세대가 넘는 엄청난 규모의 거대 주거 단지를 성공적으로 완공함. - 지역 내 서민과 중산층에게 안정적인 보금자리를 제공하며 막대한 임대 수익의 기반을 다짐. - 이후 연이은 대형 주거 단지 건설의 신호탄이 되며 기업 자산을 폭발적으로 불림.프레드 트럼프는 브루클린에 무려 1,344세대를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아파트 단지인 '쇼어 헤이븐(Shore Haven)'을 개장했습니다. 이는 단일 규모로는 당시 매우 혁신적인 프로젝트였으며, 이어 1950년 '비치 헤이븐(Beach Haven)', 1964년 '트럼프 빌리지(Trump Village)' 등 거대 단지들을 연달아 성공시키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1968
1968
[도널드 트럼프의 공식 입사]
- 대학 재학 중 틈틈이 아버지의 일을 돕던 후계자가 학업을 마치고 회사에 정식으로 합류함. - 브루클린의 서민용 아파트를 넘어 맨해튼의 화려한 스카이라인을 꿈꾸는 야심 찬 청년의 등장이었음. - 가족 기업의 역사에 가장 극적이고 논쟁적인 변화를 가져올 인물이 무대에 오름.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 스쿨에 재학하면서 이미 아버지 프레드의 부동산 업무를 돕고 있던 도널드 트럼프가 회사에 공식적으로 입사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서민층 임대 아파트 사업에 만족하지 않고, 뉴욕의 심장부인 맨해튼으로 진출하여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건물을 짓겠다는 강렬한 열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1971
1971
[2세 경영 체제의 시작]
- 창업주 아버지가 회장으로 물러나고 패기 넘치는 아들에게 경영의 전권을 위임함. - 보수적이었던 주택 임대업에서 공격적인 상업 부동산 및 럭셔리 개발업으로 체질이 급변함. - 오늘날 대중이 인식하는 화려한 제국으로서의 기틀이 본격적으로 다져지기 시작함.1970년대 초반, 프레드 트럼프는 스스로를 이사회 의장(Chairman of the Board)으로 올리고 아들 도널드를 회사의 사장(President)으로 임명했습니다. 도널드는 이때부터 실질적으로 사업을 주도하며, 회사의 중심축을 브루클린과 퀸즈에서 맨해튼의 거대한 개발 프로젝트로 대거 이동시켰습니다.
1973
1973
['트럼프 기업' 명칭 공식화 및 피소]
- 새 사장이 여러 계열사를 아우르는 단일 그룹명으로 지금의 상호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함. - 동시에 유색인종 세입자를 차별했다는 혐의로 연방 법무부로부터 거대 민권 소송을 당함. - 사업의 도약과 끔찍한 인종 차별 스캔들이 동시에 터지며 전국적인 논란의 중심에 섬.도널드 트럼프는 그동안 '프레드 트럼프 조직' 등으로 혼용되던 회사를 '트럼프 기업(The Trump Organization)'으로 통일하여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공교롭게도 같은 해, 미 법무부 인권국은 이 기업이 흑인 세입자의 입주를 고의로 거부하여 1968년 공정주택법(Fair Housing Act)을 위반했다며 거대한 민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조사 결과 임대 신청서에 인종을 암호화하여 분류한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1975
1975
[인종 차별 소송 합의]
- 끝없는 법적 공방 끝에 정부 당국과 차별 관행을 시정하는 내용의 동의 명령에 합의함. - 유색인종 매체에 빈방을 광고하고 도시 연맹에 공실을 알리도록 강제되는 등 굴욕적인 결과를 맞음. - 혐의를 부인하면서도 막대한 법적 리스크를 무마하며 오명을 안은 채 사태를 일단락 지음.법무부와의 치열한 공방 끝에 트럼프 기업은 법적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조건으로 차별을 금지하는 '동의 명령(consent decree)'에 서명했습니다. 당시 법무부 주택국장은 이를 "역대 가장 광범위한 합의 중 하나"라고 평가했으며, 회사는 흑인 커뮤니티 매체에 의무적으로 아파트 광고를 게재해야만 했습니다.
1980
1980
[그랜드 하얏트 뉴욕 개장]
- 낙후된 코모도어 호텔을 최신식 유리 건물로 재탄생시키며 맨해튼 진출의 눈부신 성공을 알림. - 대형 호텔 체인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세간의 의구심을 잠재우고 탁월한 기획력을 입증함. - 막대한 세금 감면 혜택을 이끌어내며 협상의 달인이라는 수식어를 얻기 시작함.도널드 트럼프는 파산 위기에 처한 맨해튼의 오래된 코모도어 호텔(Commodore Hotel)을 하얏트(Hyatt) 사와 파트너십을 맺고 전면 개조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엄청난 시의 세금 감면 혜택을 바탕으로 진행되었으며, 새롭게 문을 연 '그랜드 하얏트 뉴욕'은 쇠락해가던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 인근의 부흥을 이끌며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1983
1983
[초호화 랜드마크 트럼프 타워 완공]
- 뉴욕 최고의 노른자위 땅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황금빛 초고층 럭셔리 빌딩을 세움. - 당대 최고의 유명 인사들이 입주하며 글로벌 최고급 브랜드로서의 입지를 완벽하게 굳힘. - 이 건물의 성공은 그룹의 본사이자 대표적인 정체성으로 자리 잡는 역사적 이정표가 됨.맨해튼 5번가에 디 에퀴터블(The Equitable) 사와 공동으로 개발한 초호화 복합 용도 건물 '트럼프 타워(Trump Tower)'를 건설했습니다. 쏟아지는 폭포와 황금빛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이 건물은 세계적인 억만장자들과 유명 인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으며, 오늘날까지도 트럼프 기업의 글로벌 본부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1984
1984
[트럼프 플라자 및 카지노 진출]
- 맨해튼 요지에 최고급 주거 타워를 연이어 개발하며 승승장구함. - 동시에 규제가 풀린 동부 해안 도시에 화려한 도박장을 열며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눈을 돌림. - 끝없는 탐욕으로 몸집을 불리며 훗날 닥쳐올 거대한 파산의 씨앗을 잉태하기 시작함.맨해튼 어퍼 이스트 사이드에 또 다른 고급 주거용 건물인 '트럼프 플라자(Trump Plaza)'를 개발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도박 산업이 합법화된 뉴저지주 애틀랜틱시티에 하라스(Harrah's)와 합작하여 첫 번째 카지노 호텔인 '트럼프 플라자'를 성대하게 개장하며 호스피탈리티 및 도박 산업으로 제국을 확장했습니다.
1985
1985
[트럼프 캐슬 개장]
- 완공 직전의 타사 호텔을 낚아채듯 인수하여 자신의 이름을 덧씌워 화려하게 문을 염. - 애틀랜틱시티 내에서 자사 카지노들끼리 제살깎아먹기식 경쟁을 벌이는 무리수를 둠. - 과도한 차입에 의존한 무분별한 팽창 전략이 점차 수면 위로 드러나는 계기가 됨.힐튼 호텔이 애틀랜틱시티에 건설 중이던 거대 카지노 리조트가 카지노 라이선스 획득에 실패하자, 트럼프가 이를 3억 2천만 달러에 전격 인수하여 '트럼프 캐슬(Trump Castle)'이라는 이름으로 개장했습니다. 이는 불과 1년 전 개장한 자신의 또 다른 카지노인 트럼프 플라자와 인근에서 고객을 두고 경쟁하는 비정상적인 구조를 낳았습니다.
1989
1989
[그랜드 하얏트 임대료 축소 스캔들]
- 화려한 성공의 상징이었던 호텔에서 수백만 달러의 시 임대료를 누락한 사실이 적발됨. - 대표가 직접 승인한 기이한 회계 조작으로 재무 기록이 엉망이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남. - 기업의 재무적 투명성에 대한 심각한 경고등이 켜진 뼈아픈 불명예 사건이었음.뉴욕시 감사관의 조사 결과, 트럼프 기업과 하얏트가 공동 소유한 그랜드 하얏트 뉴욕이 1986년에 비정상적인 회계 장부 조작을 통해 뉴욕시에 지불해야 할 임대료 290만 달러를 고의로 누락한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조사 보고서는 도널드 트럼프가 승인한 이 '비정상적인' 회계 변경이 기본적인 일반회계원칙(GAAP)마저 위반했다고 지적했습니다.
1990
1990
[트럼프 타지마할 개장과 파산 위기]
-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카지노를 야심 차게 열었으나 곧바로 끔찍한 금융 침체에 직면함. - 수십 개 은행에 진 수십억 달러의 빚더미에 짓눌려 그룹 전체가 공중 분해될 위기에 처함. - 재무 전문가를 긴급 투입하고 채권단에 무릎을 꿇으며 혹독한 구조조정의 늪에 빠짐.애틀랜틱시티에 세 번째이자 최대 규모인 '트럼프 타지마할(Trump Taj Mahal)' 카지노를 개장했으나, 극심한 부동산 침체와 막대한 부채가 겹치며 회사는 붕괴 위기에 내몰렸습니다. 72개 은행에 총 40억 달러(이 중 8억 달러는 개인 보증)의 빚을 진 도널드 트럼프는 스티븐 볼렌바흐를 최초의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영입하고, 채권단과 피 말리는 채무 재조정 협상에 돌입했습니다.
1995
1995
[카지노 부문 주식 상장]
- 감당하기 힘든 빚을 대중에게 떠넘기기 위해 카지노 사업부를 주식 시장에 상장시킴. - 외부 자본을 수혈받으며 간신히 파산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와 재정적 숨통을 틔움. - 하지만 이 상장 기업은 훗날 방만한 경영으로 또다시 파산하며 숱한 주주들에게 피눈물을 안김.극심한 자금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중대한 조치로, 도널드 트럼프는 자신의 애틀랜틱시티 카지노 자산들을 묶어 '트럼프 호텔 & 카지노 리조트(Trump Hotels & Casino Resorts)'라는 이름의 상장 기업(Publicly traded company)으로 출범시켰습니다. 이를 통해 채무 부담을 분산하고 1996년경에는 대중들에게 화려하게 재기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결국 이 법인은 훗날 여러 차례 파산 보호를 신청하게 됩니다.
1997
1997
[창업주의 재산 편법 증여]
- 죽음을 앞둔 창업주가 자신의 거대한 아파트 제국을 네 명의 자녀들에게 미리 물려줌. - 이 과정에서 부동산 가치를 턱없이 낮게 평가하여 세무 당국에 신고하는 꼼수를 부림. - 훗날 언론의 집요한 추적을 통해 탈세 의혹의 진원지로 지목되는 어두운 그림자를 남김.고령의 프레드 트럼프는 자신이 수십 년간 쌓아 올린 브루클린과 퀸즈의 방대한 아파트 포트폴리오 대부분의 소유권을 도널드 트럼프를 포함한 네 명의 자녀에게 이전했습니다. 당시 제출된 세금 신고서에는 이 막대한 자산의 가치가 불과 4,140만 달러로 터무니없이 축소 신고되어 있었으며, 이는 훗날 대규모 조세 회피 논란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1998
1998
[도이치뱅크와의 위험한 밀월]
- 연이은 파산 이력으로 미국 월가 은행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자 외국계 은행으로 눈을 돌림. - 미국 시장 확장을 노리던 유럽계 거대 은행으로부터 거액의 대출을 끌어내는 데 성공함. - 투명하지 못한 거대 자금줄과 결탁하며 범죄 자금 세탁의 도구로 이용되었다는 치명적인 의혹을 잉태함.과거 카지노 파산으로 인해 채권자들에게 막대한 손실을 입힌 후 미국 주류 금융권에서 대출이 막히자, 미국 시장 확장을 노리던 도이치뱅크(Deutsche Bank)로부터 약 4억 2,500만 달러의 대출을 확보했습니다. 훗날 도이치뱅크는 러시아 올리가르히들의 돈세탁에 연루되어 거액의 벌금을 내는 등 수많은 불법 관행에 연루되었으며, 이로 인해 트럼프의 자금 출처에 대한 세간의 의혹이 끝없이 제기되었습니다.
1999
1999
[창업주 프레드 트럼프 타계]
- 서민들을 위한 견고한 벽돌 아파트로 부를 일궜던 1대 회장이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함. - 보수적이고 착실했던 아버지의 시대가 완전히 저물고 화려함을 좇는 아들의 1인 체제가 확고해짐. - 가문의 뿌리였던 초창기 부동산 자산들은 점차 처분 수순을 밟게 됨.트럼프 기업의 창업주이자 뉴욕 외곽 지역에서 수많은 단독 주택과 거대 아파트 단지를 건설했던 프레드 트럼프가 알츠하이머병 등의 투병 끝에 9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죽음으로 회사는 도널드 트럼프의 화려하고 위험한 팽창 전략에 완전히 종속되었습니다.
2004
2004
[창업주 포트폴리오 전량 매각]
- 아버지가 남긴 수많은 임대 아파트들을 일거에 거액을 받고 외부 투자자에게 팔아치움. - 선대가 피땀 흘려 개척한 주거용 부동산 임대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화려한 상업용 부동산에 집중함. - 수십 년간 이어온 가족 기업의 역사적 근간을 현금화하며 새로운 시대의 종잣돈으로 삼음.프레드 트럼프가 일생을 바쳐 지어 올린 브루클린과 퀸즈의 방대한 아파트 단지들을 도널드를 비롯한 4명의 남매가 루비 슈론(Rubie Schron)이 이끄는 투자 그룹에 7억 3,790만 달러라는 거액을 받고 전량 매각했습니다. 이로써 트럼프 가문은 창업주가 세운 초창기 주택 임대 사업에서 공식적으로 완전히 철수했습니다.
2017
2017
[3세 경영 체제로의 전환과 이해충돌]
- 오너가 미국 최고 권력의 자리에 오르면서 회사 경영권을 급하게 두 아들에게 넘김. - 대통령의 직무 수행과 사기업의 이익 추구가 얽히는 전례 없는 국정 이해충돌 스캔들이 점화됨. - 해외 신규 사업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으나 은밀하게 브랜드 수익을 챙긴다는 거센 비판을 받음.도널드 트럼프가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헌법상 이해충돌 문제를 피하기 위해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와 차남 에릭 트럼프에게 기업의 전반적인 경영권을 위임했습니다. 회사 측은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신규 해외 거래를 중단하겠다고 밝혔으나, 대통령이 계속해서 회사 수익의 최종 수혜자로 남고 아들들로부터 재무 보고를 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져 거센 윤리적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2021
2021.5.18
[뉴욕주 검찰의 형사 수사 합류]
- 민사로만 진행되던 주 법무장관의 수사가 갑자기 형사 사건으로 끔찍하게 확대 전환됨. - 맨해튼 지방검찰청과 합동 수사망을 구축하며 오너 일가와 경영진을 정조준함. - 정치적 보복이라는 반발 속에서도 겹겹이 쌓인 장부 조작의 민낯이 철저히 파헤쳐지기 시작함.레티샤 제임스 뉴욕주 법무장관(검찰총장)실은 트럼프 기업에 대해 진행하던 기존의 민사 조사가 '형사적 역량(criminal capacity)'을 띠게 되었으며, 사이러스 밴스 주니어 맨해튼 지방검사장과 공조하여 회사의 탈세 및 금융 사기 혐의에 대해 강력한 합동 형사 수사에 돌입했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2021.7.1
[조세 포탈 혐의 형사 기소]
- 오랜 기간 고위 임원들에게 불법적인 특혜를 제공하여 세금을 탈루한 혐의로 법인과 수뇌부가 기소됨. - 무료 고급 아파트, 고급차 리스, 사립학교 학비 등을 장부에 숨겨 몰래 지급한 파렴치한 행태가 드러남. - 전직 대통령의 기업이 사상 초유의 중범죄 피고인 신분으로 형사 법정에 서는 굴욕을 겪음.맨해튼 지방검찰청은 트럼프 기업과 산하 급여 관리 법인, 그리고 오랜 기간 재무를 책임져 온 최고재무책임자(CFO) 앨런 와이셀버그를 15년에 걸친 대규모 조세 회피 혐의(1급 중절도, 사업 기록 위조 등 15개 중범죄)로 전격 기소했습니다. 검찰은 회사가 와이셀버그 등에게 장부에 기록되지 않은 아파트 임대료, 자동차, 손주 학비 등 무려 176만 달러에 달하는 뒷돈 성격의 혜택을 제공했다고 폭로했습니다.
2022
2022.8
[핵심 재무 책임자의 유죄 인정]
- 반세기 가까이 회사 금고를 지키던 최고재무책임자가 법정에서 꼬리를 내리고 탈세 범행을 자백함. - 검찰과의 감형 거래를 위해 오랜 주군이었던 회사를 향해 불리한 증언을 하기로 합의함. - 오너 일가를 지키려던 굳건한 방어막이 무너지며 기업의 유죄 판결이 기정사실화되는 치명타를 입음.트럼프 기업의 '금고지기'이자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앨런 와이셀버그가 뉴욕 지방법원에 출석하여 세금 사기 및 중절도 등 15개 혐의에 대해 전면 유죄를 인정(Plea guilty)했습니다. 그는 징역형을 감형받는 대가로 향후 진행될 트럼프 기업 본안 형사 재판에서 회사의 불법 행위를 직접 증언하기로 검찰과 합의했습니다.
2022.9
[초대형 민사 사기 소송 피소]
- 자산 가치를 턱없이 부풀려 대출을 받고, 세금을 낼 때는 가치를 후려친 희대의 사기 행각이 철퇴를 맞음. - 주 검찰총장이 오너와 자녀들, 그리고 회사를 상대로 천문학적인 벌금과 영업 정지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함. - 부의 상징이었던 재산 목록이 철저한 조작과 거짓의 산물이었음을 고발하는 거대한 심판의 서막이 오름.레티샤 제임스 뉴욕주 법무장관은 도널드 트럼프와 그의 성인 자녀들, 그리고 트럼프 기업이 대출 기관과 보험사에는 자산 가치를 허위로 부풀려 보고하고, 세무 당국에는 가치를 축소하여 부당 이득을 챙겼다며 뉴욕 최고 법원에 2억 5천만 달러 규모의 반환을 요구하는 초대형 민사 사기 소송을 공식 제기했습니다.
2022.12.6
[17개 혐의 전면 유죄 평결]
- 형사 재판 배심원단이 탈세 및 장부 조작 등 기소된 모든 혐의에 대해 만장일치로 유죄를 선언함. - 미국의 상징적인 억만장자 가문 기업이 공식적으로 범죄 조직으로 전락하는 치욕을 맛봄. - 이 판결로 인해 향후 은행 대출과 비즈니스 거래에서 회복 불가능한 심각한 신뢰의 타격을 입게 됨.맨해튼 형사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배심원단은 트럼프 기업(Trump Corp. 및 Trump Payroll Corp.)이 임원들에게 불법적인 면세 혜택을 제공하여 세금을 포탈한 사기, 음모, 기업 기록 위조 등 17개 혐의 전부에 대해 만장일치 유죄 평결을 내렸습니다. 검찰은 회사가 '속임수와 밀수'의 문화를 배양했다고 강력히 비난했습니다.
2023
2023.9
['기업 사형 선고' 판결]
- 담당 판사가 정식 재판도 열기 전에 제출된 증거만으로 수십 년간의 자산 뻥튀기 사기를 인정함. - 회사의 영업 허가를 전격 취소하고 자산을 강제 청산하라는 파멸적인 명령을 내림. - 반세기 넘게 뉴욕을 호령하던 트럼프 제국의 심장부를 도려내는 최악의 판결로 전 세계를 경악하게 함.민사 사기 소송을 맡은 아서 엔고론 판사는 약식 판결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와 그의 아들들, 그리고 트럼프 기업이 수년간 대출 기관과 보험사를 속이는 명백한 금융 사기를 저질렀다고 인정했습니다. 법원은 회사의 뉴욕주 영업 허가증(Business certificates)을 취소하고 자산을 처분하기 위한 파산 관재인을 임명하라고 명령했는데, 법률 전문가들은 이를 사실상의 '기업 사형 선고(Corporate death penalty)'라고 평가했습니다.
2024
2024.4.1
[항소 보증금 공탁 및 자산 압류 모면]
- 천문학적인 벌금 납부를 유예받고 상징적인 건물들을 빼앗길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극적으로 벗어남. - 깎인 보증금을 납부 기한 마감 직전에 간신히 마련하여 법원에 공탁하며 시간을 버는 데 성공함. - 무너져내리던 거대 제국이 숨통을 트며 검찰과의 처절하고 기나긴 2막의 법정 투쟁을 예고함.2024년 2월, 법원은 트럼프 측에 이자 포함 수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벌금 납부와 함께 뉴욕에서의 사업 금지 명령을 내렸습니다. 자산이 압류될 위기 속에 3월 항소법원이 공탁금을 1억 7,500만 달러로 극적으로 낮춰주었고, 트럼프 기업은 4월 1일 기한에 맞춰 채권을 공탁함으로써 항소심이 끝날 때까지 트럼프 타워 등 주요 자산의 압류를 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