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민주당
연표
1987
[용팔이 사건 발생]
통일민주당 출범 직후, '용팔이' 김용남이 깡패들을 동원하여 지구당 창당을 폭력적으로 방해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출입문을 부수고 당원들을 폭행하며 사무실 집기를 불태운 충격적인 사건으로, 김용남 등은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았습니다.
[통일민주당 창당]
당시 제1야당인 신한민주당의 내분으로 김영삼과 김대중이 합의하여 새로운 야당인 통일민주당을 창당했습니다.
상도동계와 동교동계 의원들이 대거 합류하며 민주화 추진의 구심점이 되었습니다.
[김영삼 초대 총재 취임]
통일민주당 창당대회를 개최하고 김영삼 전 신민당 총재를 초대 총재로 추대했습니다.
단일지도체제를 채택하고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핵심 정강정책으로 삼으며 민주화를 위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국민운동본부 결성]
전두환 대통령의 4·13호헌조치에 맞서 비제도권 사회단체들과 함께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를 결성했습니다.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관철하기 위한 장외투쟁을 강화하며 민주화 운동의 중심에 섰습니다.
[6월 민주항쟁 동참]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와 함께 '박종철군 고문살인 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대회'를 개최하여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전국적인 집회와 시위를 유발하며 민주화를 위한 국민적 염원을 표출했습니다.
[국민평화대행진 개최]
'민주헌법쟁취 국민평화대행진'을 벌여 전국적인 시위를 유발, 시민들의 민주화 열망을 결집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이는 민주정의당 노태우 대표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 수용을 골자로 하는 6·29선언을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김대중계 분당]
6월 민주항쟁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후보 선출 문제로 김대중의 동교동계 의원들이 집단 탈당했습니다.
이들은 별도로 평화민주당을 창당함으로써 통일민주당은 큰 분열을 겪게 됩니다.
[김영삼 후보 추대]
임시 전당대회를 개최하여 제13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김영삼 총재를 공식 추대했습니다.
이는 분당 이후 통일민주당이 나아갈 길을 명확히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대선에서 노태우에 패배]
제13대 대통령 선거에 김영삼 후보를 내세워 참여했으나, 유효투표의 28.0%를 득표하는 데 그쳤습니다.
36.6%를 얻은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에게 패배했습니다.
1988
[김영삼 총재 재신임]
임시 전당대회를 통해 당헌을 개정하고 김영삼 총재를 재신임하며 내부 결속을 다졌습니다.
총재단 선출도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제13대 총선 제3당]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역구와 전국구를 합쳐 총 59석을 확보하여, 민주정의당(124석)과 평화민주당(70석)에 이어 제3당이 되었습니다.
이는 여소야대 국면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김영삼 총재 재추대]
정기 전당대회를 통해 당헌당규를 개정하고 김영삼을 다시 총재로 추대했습니다.
민주화 투쟁을 계속할 것을 결의하며 당의 정체성을 재확인했습니다.
1990
[3당 합당으로 해산]
노태우의 민주정의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과의 이른바 '3당 합당'을 통해 민주자유당이 창당되면서 통일민주당은 해산되어 소멸했습니다.
이는 한국 정치사에 큰 변곡점이 되었습니다.
[3당 합당 의결]
임시 전당대회를 통해 민주자유당으로의 삼당합당을 최종 의결하고, 합당 수임기구 결정권을 김영삼 총재에게 일임했습니다.
이는 통일민주당의 해산을 공식화하는 절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