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홉스
연표
1588
[가난했지만 재능 넘쳤던 어린 시절]
토머스 홉스는 잉글랜드 윌트셔주 웨스트포트에서 가난한 교구 목사의 칠삭둥이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술주정뱅이 아버지 대신 부유한 삼촌의 도움으로 학업에 전념할 수 있었으며, 일찍부터 언어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습니다.
1602
[명문 옥스퍼드 대학 입학]
열네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옥스퍼드 대학의 청교도적 학풍을 자랑하는 마그덜린 단과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곳에서 5년간 공부해 학사 학위를 받았으며, 진취적인 교장 존 윌킨슨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1608
[유럽 여행과 학문적 교류의 시작]
캐번디시 가문의 가정교사로 지내며 그들의 후원으로 유럽을 여행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 시기에 영국의 위대한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과 교류하며 학문적 시야를 넓혔습니다.
1629
[기하학에 매료되다]
프랑스 여행 중 에우클레이데스의 기하학을 접하고, 그 논증 방식을 자신의 학문 방법으로 적극 수용하게 됩니다.
이는 그의 철학 체계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고전 번역 활동 시작]
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의 명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번역하며 자신의 학문적 기틀을 다졌습니다.
이는 그의 평생에 걸친 저술 활동의 중요한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1640
[정치 철학 저술의 첫걸음]
《법의 요소들》을 집필하며 정치 철학에 대한 본격적인 사상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은 후대의 주요 저작들의 기반이 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정치적 혼란 속 프랑스 망명]
열렬한 절대군주제 지지자였던 홉스는 당시 영국에서 의회와 왕실 간의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자, 혼란을 피해 프랑스로 망명 생활을 떠나게 됩니다.
1642
[국가론의 씨앗, 《시민에 대하여》]
철학의 요소들 중 하나인 《시민에 대하여》를 출간했습니다.
이 책은 그의 국가론과 사회계약 사상의 초기 형태를 보여주는 중요한 저작으로 평가받습니다.
1651
[세계적 명저 《리바이어던》 출간]
서구 근대 정치철학의 토대를 마련한 그의 대표작 《리바이어던》을 출간했습니다.
이 책에서 홉스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인 자연권을 확보하기 위해 강력한 국가 권력(리바이어던)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사회계약론을 명확하고 자세하게 제시한 최초의 근대 정치철학자로 기록됩니다.
이 책은 당시 유럽에서 망명 중이던 찰스 2세에게 헌정되었으나, 왕권이 시민들로부터 나온다는 홉스의 논리가 왕권은 신이 부여한다는 '왕권신수설'과 배치되어 거절당했습니다. 그러나 홉스의 사회계약 개념은 후대의 존 로크 같은 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며 서구 정치철학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655
[물체론 저술을 통한 학문 확장]
철학의 요소들 중 《물체에 관하여》를 출간하며 물리학 및 형이상학적 관점에서 그의 철학을 전개했습니다.
이는 그의 광범위한 학문적 깊이를 보여줍니다.
1658
[인간 본성 탐구에 몰두하다]
《인간에 관하여》를 출간하며 인간의 본성과 심리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그의 정치 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1670
[출판 금지된 또 다른 역작, 《비히모스》]
《비히모스》 또는 롱 팔라먼트를 집필했으나, 당시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출판이 금지되었습니다.
이 책은 영국 내전과 관련된 그의 정치적 견해를 담고 있으며, 무려 19년 뒤에야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습니다.
1675
[고전 번역 활동 지속]
만년에도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를 번역하는 등 왕성한 학문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이는 그가 철학뿐만 아니라 고전문학에도 깊은 조예를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1679
[91세의 나이로 영원히 잠들다]
대학 졸업 후 망명기를 제외하고 평생 동안 의지했던 캐번디시 가문의 저택에서 9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는 90세가 넘어서도 저서를 출판할 정도로 말년까지 왕성하게 학문 활동을 펼친 진정한 사상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