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하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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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시인, 빅토리아 시대 작가, 자연주의 작가 문학가(시인/소설가)

영국의 대표적인 소설가이자 시인 토머스 하디는 빅토리아 시대의 사실주의를 계승하면서도 낭만주의적 영향을 받은 작가입니다. 그는 특히 고향인 영국의 농촌 사회와 사람들의 몰락을 비판적으로 묘사하며 당대 사회의 핵심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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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840

[영국의 대문호 탄생]

영국 도싯 스틴스퍼드에서 석공 아버지와 독서를 즐기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훗날 영국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길 대문호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토머스 하디는 1840년 6월 2일 영국 도싯 도체스터 근방 스틴스퍼드에서 석공인 아버지와 독서를 좋아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1862

[킹스 칼리지 런던 입학]

킹스 칼리지 런던에서 프랑스어를 공부하며 학문의 폭을 넓혔습니다. 한때 미술 평론가를 꿈꾸기도 했지만, 결국 시 창작에 매료되었습니다.

1862년부터 킹스 칼리지 런던에서 프랑스어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한때 미술 평론가가 되려 했었으나 시 창작에 뜻을 두었습니다.

1867

[첫 소설 《빈자와 숙녀》 출판 실패]

첫 소설 《빈자와 숙녀》를 완성했으나, 멘토 조지 메러디스의 조언에 따라 출판을 단념했습니다. 이 경험은 훗날 그의 작품 세계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1867년 집필을 마친 하디의 첫 소설 《빈자와 숙녀 The Poor Man and the Lady》은 출판사를 찾는데 실패했습니다. 그의 멘토이자 친구였던 조지 메러디스는 이 소설이 정치적으로 큰 논란을 낳을 것이라고 조언했고, 하디는 이에 따라 책 출판을 단념했습니다. 그는 이후 원고를 없앴지만 훗날의 작품에서 이 책에서 선보였던 몇 가지 아이디어를 사용했습니다.

1872

[운명의 만남, 에마 기퍼드]

《녹림 나무》 작업을 하던 중, 훗날 그의 첫 아내가 될 에마 기퍼드를 만났습니다. 이 만남은 그의 다음 작품 《두 파란 눈》의 배경이 됩니다.

《필사적 수단》 (1871)과 《녹림 나무 the Greenwood Tree》 (1872)라는 두 권의 새 책을 익명으로 썼습니다. 그가 자신의 아내가 될 에마 기퍼드를 만난 것은 후자의 작업을 하고있을 때였습니다.

1873

['클리프행어'의 유래가 된 《두 파란 눈》 출간]

에마와의 교제를 바탕으로 쓴 《두 파란 눈》을 자신의 이름으로 출간했습니다. 이 소설은 '클리프행어'라는 단어의 유래로 알려지며 흥미로운 플롯으로 주목받았습니다.

에마와의 교제를 바탕으로 쓴 《두 파란 눈 A Pair of Blue Eyes》은 1873년 하디 자신의 이름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의 줄거리상의 기교는 찰스 디킨스에 의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클리프행어 cliffhanger”라는 단어는 틴슬리스 매거진에서 1872년 9월부터 1873년 7월까지 간행된 연재판 《두 파란 눈》의 등장인물 중 하나인 헨리 나이트가 절벽에서 말 그대로 목을 매어 죽은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여겨집니다.

1874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 대성공, 전업 작가 선언]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의 성공으로 건축 일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 작품에서 그의 고향인 사우스 웨스트 잉글랜드를 배경으로 한 '웨식스'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선보였습니다.

그의 다음 소설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 Far from the Madding Crowd》 (1874)에서 하디는 웨식스를 배경으로 서 잉글랜드 지방의 분위기를 떠올리게 하는 착상을 처음으로 내놓습니다. 웨식스는 초기 색슨 왕국의 이름이며, 잉글랜드에서 대략적으로 그 왕국의 영역이었던 부분을 뜻합니다.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는 하디에게 건축 일을 그만두고 문학 활동을 추구하게 하는 데에 있어 충분히 성공적이었습니다.

1891

[《더버빌가의 테스》 등 웨식스 소설 전성기]

맥스 게이트로 이사 후 《캐스터브리지의 시장》, 《삼림인》, 그리고 비평의 대상이 되었던 《더버빌가의 테스》 등 10권이 넘는 웨식스 소설을 집필하며 작가로서의 전성기를 보냈습니다.

1885년 하디가는 하디가 설계하고 하디의 남자 형제가 지은 도체스터 근교에 위치한 맥스 게이트로 마지막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캐스터브리지의 시장 The Mayor of Casterbridge》 (1886), 《삼림인 The Woodlanders》 (1887)와 《더버빌가의 테스 Tess of the d'Urbervilles》 (1891)를 썼는데, 그 중 더버빌가의 테스는 책 속 “타락한 여인”의 초상을 동정적으로 묘사한 것에 대하여 비평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 책의 부제, '순수한 여인: 충실히 표현된'은 빅토리아 시대 중산층들의 눈살을 찌푸리게끔 하고자 의도해서 쓰였습니다. 그 후 25년간 하디는 10권이 넘는 소설을 집필했습니다.

1912

[첫 번째 아내 에마 기퍼드 사망]

오랜 세월을 함께했던 첫 번째 아내 에마 기퍼드를 떠나보내며 깊은 슬픔을 겪었습니다.

토머스 하디의 첫 번째 아내 에마 기퍼드가 1912년에 사망했습니다.

1914

[플로렌스 더그데일과 재혼]

첫 아내 사망 후, 플로렌스 더그데일과 재혼하여 남은 생을 함께했습니다.

1914년, 토머스 하디는 플로렌스 더그데일과 재혼했습니다.

1925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 명예 박사 학위 수여]

케임브리지 대학교(1920년)와 옥스퍼드 대학교(1925년)에서 명예 문학박사학위를 받으며 학계에서도 그의 업적을 인정받았습니다.

하디는 1920년과 1925년에 각각 케임브리지 대학교와 옥스퍼드 대학교로부터 명예 문학박사학위를 받았고, 애버딘 대학교, 브리스틀 대학교 등에서도 명예 학위를 받았습니다. 1925년에는 많은 유명 인사들을 접견하던 하디의 저택, 맥스게이트에 왕세자가 방문하기도 했었습니다.

1928

[영국의 대문호 토머스 하디 서거]

뇌졸중을 앓던 중 87세의 나이로 영면했습니다. 그의 유해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심장은 첫 아내 옆에 묻히며 애틋한 마지막을 맞이했습니다.

1928년 1월 11일, 하디는 아내 플로렌스 더그데일에게 오마르 하이얌의 《루바이야트》 시편을 읽어달라고 부탁하고 밤 9시경 사망했습니다. 1927년 12월 뇌졸중에 시달렸으며, 1928년 1월 11일 9시 직후 맥스 게이트에서 사망했습니다. 사망증명서에는 그의 사인이 '심장성실신'와 '고령'으로 기재되어있습니다. 그의 장례식은 1월 16일에 웨스터민스터 사원에서 치러졌습니다. 결국 그의 심장은 첫 번째 아내 에마와 함께 스틴스퍼드에 안장되고, 유해는 시인 코너에 안장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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