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 윌리엄스
연표
1918
좌익수로 메이저 리그에서 활약하며, 역사상 마지막 4할 타자로 기록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과 6.25 전쟁에 참전한 경력도 있다.
1937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인연 시작]
보스턴 레드삭스 스카우터 에디 콜린스에 의해 재능을 발견하며 프로 야구선수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다.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인연은 에디 콜린스의 발견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이는 그의 위대한 커리어의 서막을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939
[메이저 리그 데뷔 및 첫 안타 기록]
뉴욕 양키스와의 경기에서 라이벌 투수 루핑을 상대로 우익선상을 가르는 2루타를 기록하며 화려하게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다.
20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3할 타율, 31홈런, 메이저 리그 신인 최다인 145타점을 기록하며 보스턴의 차세대 주포로 자리매김했다.
1941
[메이저 리그 마지막 4할 타율 달성]
시즌 막바지까지 4할 타율을 유지하며 꿈의 4할에 도전, 최종 타율 0.406을 기록하며 메이저 리그 역사상 마지막 4할 타자로 이름을 남겼다.
9월 27일까지 타율 .401을 기록했으나 감독의 권유를 거절하고 출전, 다음날 5타수 4안타를 기록하며 타율을 .406까지 끌어올렸다. MVP는 조 디마지오에게 돌아갔지만, 그의 4할 타율은 전설이 되었다.
1942
[첫 트리플 크라운 달성 및 2차 세계대전 참전]
타율 .356, 36홈런, 137타점으로 리그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지만, 시즌 중반 해군에 입영 신청하며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3년간 공백기를 가졌다.
기자들과의 불편한 관계로 MVP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국가의 부름을 받고 전쟁에 참전하며 야구 경력을 중단했다.
1946
[MLB 복귀 및 첫 MVP 수상]
2차 세계대전 참전 후 복귀하여 타율 .342, 38홈런, 123타점을 기록하며 팀을 월드시리즈로 이끌었고, 염원하던 첫 MVP를 수상했다.
팔꿈치 부상으로 월드시리즈에서는 아쉬운 성적을 기록했지만, 군 복무 공백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실력으로 팀의 활약을 이끌며 리그 최고 선수임을 입증했다.
1947
[두 번째 트리플 크라운 달성]
타율 .343, 32홈런, 114타점으로 개인 통산 두 번째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며 꾸준한 기량을 선보였다.
클리블랜드의 루 부드로 감독이 '윌리엄스 쉬프트'를 고안할 정도로 압도적인 타격을 선보였으나, 월드시리즈 우승에 기여한 디마지오에게 MVP를 다시 빼앗겼다.
1949
[생애 최다 타점 및 두 번째 MVP 수상]
생애 최다인 159타점과 43홈런, 타율 .343을 기록하며 개인 통산 두 번째 MVP를 수상했다.
타격왕 조지 켈에 0.002 차이로 뒤지며 아쉽게 타격왕은 놓쳤지만, 팀 성적 하락세에도 불구하고 그의 타격은 지칠 줄 몰랐다.
1950
부상에도 불구하고 10년 가까이 3할 이상의 타율을 꾸준히 유지하며 그의 뛰어난 기량을 증명했다.
1952
[한국 전쟁 참전으로 인한 공백]
1952년과 1953년에 걸쳐 한국 전쟁에 참전하며 시즌의 대부분을 결장, 다시 한번 야구 경력에 큰 공백을 가지게 되었다.
20대 초반에 겪었던 2차 세계대전 참전에 이어 30대 중반의 나이로 또다시 국가의 부름을 받아 전쟁터로 향했다.
1957
한국 전쟁 참전으로 인한 공백 후에도 꾸준히 3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하며 변함없는 기량을 보여주었다. 이듬해 1958년에도 타율 .322로 타격왕에 올랐다.
1959
오랜 선수 생활 끝에 처음으로 2할대 타율을 기록하며 선수로서의 황혼기를 맞이하기 시작했다.
1960
말년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투수들을 압박하는 선구안으로 대기록을 달성했다.
[현역 은퇴 및 고별 홈런]
41세의 나이로 현역 은퇴를 발표한 후, 볼티모어와의 홈경기 마지막 타석에서 홈런을 장식하며 통산 521홈런을 기록하고 팬들의 뜨거운 환호 속에서 그라운드를 떠났다.
그의 은퇴는 한 시대의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으며, 마지막 경기에서의 극적인 홈런은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1966
[명예의 전당 헌액]
은퇴 후 자격이 주어진 첫 해에 93.38%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며 역사상 최고의 타자임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6차례 타격왕, 12차례 최고 출루율, 올스타 17회, 최다 득점 6회 등 공격 전 부문에서 압도적인 기록을 남겼다.
1969
[워싱턴 세너터스 감독 부임]
선수 시절 이루지 못한 월드시리즈 우승의 한을 풀기 위해 워싱턴 세너터스(이후 텍사스 레인저스)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1969년부터 1972년까지 감독직을 수행했으나, 5할 승률을 넘기지 못하고 씁쓸하게 그라운드를 떠나야 했다.
1984
[보스턴 레드삭스 영구 결번 지정]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그의 등번호 9번이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며 팀의 전설적인 선수로서 영원히 기억되게 되었다.
그의 등번호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역사와 팬들에게 테드 윌리엄스의 위대한 업적을 상기시키는 상징이 되었다.
1999
[토니 그윈과 올스타전 시구]
당대 최고 타자로 불리던 토니 그윈이 윌리엄스와 함께 올스타전에서 시구하며 그의 위대한 유산을 기렸다.
토니 그윈은 윌리엄스와의 시구를 자신의 야구 인생 중 가장 멋진 장면으로 꼽을 만큼 후배들에게도 존경받는 선수였다.
2002
그는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인정받았으며, 그의 죽음은 전 세계 야구 팬들에게 큰 슬픔을 안겨주었다.
[시신 냉동 보존 및 관련 논란]
사망 후 유족 간의 유언 해석을 둘러싼 논란 끝에, 당초 화장 유언과 달리 시신이 알코어 생명 연장 재단에 냉동 보존되었다.
이후 재단 관계자의 저서에 따르면 시신이 손상되고 부적절하게 보관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며 큰 논란을 낳았다. 이는 그의 사후에도 대중의 큰 관심을 받게 된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