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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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비교
태진아
가수, 기업인, 프로듀서, 방송인 대중음악 가수/아이돌

대한민국 트로트 가요계의 살아있는 역사. 오랜 무명 시절을 딛고 옥경이로 신드롬을 일으키며 국민 가수로 등극했다. 이후 수많은 히트곡과 파란만장한 개인사를 통해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가수협회 회장 역임 및 후배 양성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며 트로트 4대 천왕으로 불리는 레전드 아티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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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53

[태어난 날]

충청북도 보은군에서 4남 3녀 중 사남으로 태어났다.

호적상 생일은 4월 5일이지만, 실제로는 음력 1월 3일로 알려져 있다.

어린 시절 집안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서울로 상경해 구두닦이, 중국집 배달원 등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동생들 학비를 벌었다.

1967

[영화 배우 데뷔]

조방헌 본명으로 영화 《태권도 최후의 일격》의 단역으로 출연하며 배우로 데뷔했다.

1970년에는 영화 《쌍태양》에도 단역으로 출연하며 연기 활동을 이어갔다.

1972

[가수 데뷔와 시련]

작곡가 서승일의 권유로 노래 '내 마음 급행열차'를 발표하며 가수로 데뷔했지만, 앨범 판매에 실패했다.

1973년 '추억의 푸른 언덕'으로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인기가수상을 수상하며 점차 인지도를 얻었으나, 이후 발표한 앨범들('나를 울렸다', '못잊을건 정', '잊지는 못할거야', '보내는 마음')도 연이어 실패하며 긴 무명 시절을 보냈다.

1975

[간통 혐의 구속]

현대건설 사장 부인 김보환과 여관에서 간통을 저지르다 현장에서 발각되어 구속되었다.

김보환은 태진아보다 26살 연상이었고, 경찰에 따르면 약 8개월간 10여 차례 만날 때마다 거액을 지불했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조성근 사장은 사임하고, 그의 장녀는 우울증을 앓다 자살하는 비극적인 결과가 초래되었다.

조성근 사장 부인과의 합의 이혼으로 풀려났으나, 한 가정을 파탄 낸 사건으로 세간의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후임 현대건설 사장으로 이명박이 취임하게 되는 등 사회적 파장이 컸다.

1980

[미국 이민과 결혼]

가수 재기 실패 후 돌연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미국에서 돈을 벌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갔고, 그해 남진의 소개로 현재의 아내 이옥형 씨와 결혼했다.

1988

[서울 올림픽 성화봉송]

미국 뉴욕 교포 자격으로 1988년 서울 하계 올림픽 성화봉송 주자로 참여했다.

서울 서초동 한일은행 지점에서 역삼역까지 뛰는 모습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고, 이때 한밭기획 사장 양승국에게 눈도장을 찍는 계기가 되었다.

1989

['옥경이' 메가 히트]

데뷔 16년 만에 발표한 '옥경이'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이 곡은 원래 나훈아를 위해 만들어졌으나 태진아가 부르게 되었고, 앨범은 최대 판매량 150만장을 기록하며 그를 최고의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엄지춤'을 유행시키고 행사 섭외가 15곳에 달하는 등 전성기를 맞이했다.

아내 이옥형의 이름을 딴 곡이기도 하여 그에게 가장 소중한 노래로 꼽힌다.

'옥경이'로 KBS 가요대상 '올해의 가수상'과 일간스포츠 제4회 골든 디스크상 '본상'을 처음 수상했다.

1990

['거울도 안보는 여자' 골든컵]

엄지춤 돌풍을 이어가며 '거울도 안보는 여자'를 발표했다.

록과 발라드가 주류이던 1990년대 가요계에서 KBS 가요 톱 10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트로트 부문 골든컵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 곡으로 서울가요대상, 골든 디스크 본상, MBC 10대 가수상 등 주요 시상식을 휩쓸었다.

1991

['미안 미안해' 히트]

'미안 미안해'가 여성 댄서들과 함께 'V자 춤'을 추며 KBS 가요 톱 10에서 3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이 노래로 KBS 가요대상 본상, MBC 10대 가수상 등 주요 상을 2년 연속 수상했다.

1993

[진아기획 설립]

재기를 도왔던 한밭기획에서 독립하여 음반사를 지구레코드로 변경하고, 개인 기획사인 진아기획을 설립하여 프로듀서로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성진우를 영입하여 태진아가 배출한 1호 가수로 데뷔시켰다.

['사모곡' 히트로 트로트 부활]

후배 가수 이재성이 준 '장미와 우산'과 돌아가신 부모님을 그리는 '사모곡'을 연이어 히트시켰다.

특히 '사모곡'은 침체되어 가던 트로트 장르를 다시 부활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96

[김자옥 가수 데뷔 지원]

'애인'을 발표하며 활발히 활동하던 중, 배우 김자옥을 스카우트하여 가수로 데뷔시켰다.

김자옥의 히트곡 '공주는 외로워'를 직접 제작하고 기획하는 등 프로듀서로서 역량을 발휘했다.

1997

[배우 및 라디오 DJ 활동]

KBS2 일일시트콤 《마주보며 사랑하며》에 출연하며 배우로 데뷔했고, SBS 파워FM 라디오 《태진아의 트로트 하이웨이》의 진행자로도 활동하는 등 방송 활동 영역을 넓혔다.

[대한민국 저축상 대통령 표창]

모범적인 저축 생활을 인정받아 김영삼 전 대통령으로부터 '대한민국 저축상 대통령 표창장'을 수훈했다.

1998

[만학의 꿈, 검정고시 합격]

어린 시절 가난으로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던 아쉬움을 딛고 늦은 나이에 중학교 입학자격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이듬해 고등학교 입학자격 검정고시까지 합격했다.

1999

[북한 평양 특별 공연]

남북 화해 분위기 속에서 북한 평양 봉화예술극장에서 열린 남북한 특별 공연에 참여하여 의미 있는 무대를 선보였다.

2000

['사랑은 아무나 하나' 뮤직비디오]

'사랑은 아무나 하나'를 발표하며 트로트 곡 사상 처음으로 뮤직비디오를 제작하여 큰 화제가 되었다.

이 곡은 20만장 앨범 판매량을 기록하며 제10회 서울가요대상 본상을 수상하는 등 다시 한번 큰 성공을 거두었다.

같은 해 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까지 합격했다.

2002

[옥관문화훈장 수훈]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제34회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옥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2003

[대구 지하철 참사 추모 공연 기부]

일본 히로시마 후생연금회관에서 대구 지하철 화재 희생자 추모 공연을 개최하고, 수익금 1억원 전액을 희생자 유가족 돕기 기금으로 기부하며 선행을 베풀었다.

2004

['동반자' 19주 연속 1위]

차남 이루가 작사하고 태진아가 작곡한 '동반자'를 발표했다.

이 곡은 1980년 그룹 이쁜이들이 부른 '당신은 새'의 원곡을 부자가 공동으로 작업해 다시 불러 큰 화제를 모았고, 《전국 톱 10 가요쇼》에서 무려 19주 동안 1위를 차지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2008

[방통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2001학번으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하여 3년간 휴학하는 등 학업을 병행한 끝에 2008년 학사 학위를 취득하며 만학의 결실을 맺었다.

2009

[일본 엔카 시장 석권]

일본 데이치쿠 레코드와 계약하고 엔카 곡 'すまない (미안해요)'를 발표하며 일본에 진출했다.

제42회 일본유선대상 유선협회 장려상을 수상하는 대성공을 거뒀고, 전국 유선방송 최단기간 1위, 최장년 데뷔 가수의 최장기간 1위 등 여러 기록을 세우며 일본 대중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2010

[대한가수협회 회장 취임]

송대관의 후임으로 제3대 대한가수협회 회장에 취임하며 가요계 전반에 대한 영향력을 넓혔다.

이후 2013년에는 제4대 회장에 연임되며 총 5년간 협회를 이끌었다.

[이루 낙태 종용 논란]

차남 이루가 작사가 최희진을 임신시키고 태진아가 낙태를 종용했다는 논란에 휘말리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태진아는 이루와 함께 최희진을 상대로 법정 싸움에 들어갔고, 최희진의 자해 공갈과 허위 사실 유포가 드러나 최희진은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으로 태진아의 과거 간통 사건까지 재조명되는 등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2011

[카라 해체 위기 방어]

대한가수협회 회장으로서 과거 자신의 매니저였던 이호연의 회사 DSP 미디어 소속 걸그룹 카라가 멤버 탈퇴로 해체 위기에 몰리자, 직접 DSP 미디어를 찾아가 멤버들을 설득하여 카라의 해체를 막아냈다.

이로 인해 카라 팬들의 깊은 존경을 받았다.

2015

[억대 도박 원정 논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억대 도박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사회적 논란에 휩싸였다.

태진아는 기자회견을 열어 사실이 아니라고 강력히 부인하며 눈물로 호소했고, '다시는 카지노를 쳐다보지도 않겠다'고 맹세했다.

['진진자라' 젊은층 인기]

신곡 '진진자라'를 발표하며 젊은 세대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었다.

KBS2 추석 특집 《아이돌 전국 노래자랑》 심사위원으로 출연하는 등 젊은 팬들과도 소통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6

[은관문화훈장 수훈]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제7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하며 다시 한번 국가적 인정을 받았다.

2018

[평창 올림픽 성화봉송]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이어 30년 만에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성화봉송 주자로 다시 나서며 많은 팬들의 관심을 받았다.

이는 두 번의 올림픽 성화봉송이라는 특별한 기록을 세웠다.

2020

[트롯 100년 가왕상 수상]

제1회 트롯어워즈에서 '트롯 100년 가왕상'을 수상하며 트로트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다시 한번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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