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마할
연표
1632
[비극적 사랑, 영원한 약속]
무굴 제국의 5대 황제 샤 자한은 14번째 아이를 낳다 세상을 떠난 아내 뭄타즈 마할을 위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을 지어주기로 맹세합니다.
이 비극적인 사랑의 서약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건축 프로젝트 중 하나인 타지마할의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샤 자한은 뭄타즈 마할이 죽은 지 6개월 후부터 무덤 건축을 지시했으며, 그녀의 유언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총 2만여 명이 넘는 노동자와 예술가들이 동원되는 거대한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건축의 총 책임자는 우스타드 아마드 로하리였습니다.
1643
[메인 무덤, 예술의 정점]
타지마할의 심장부인 흰색 대리석 돔 형식의 무덤 건설이 거의 대부분 완료됩니다.
무굴 건축 양식의 걸작으로 꼽히는 이 무덤은 페르시아, 터키, 인도 및 이슬람 양식이 완벽하게 조합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중심부 무덤 건설은 1643년에 대부분 마무리되었으나, 추가적인 보조 작업이 약 10년 동안 진행되어 전체 단지의 완공은 1653년에 이루어집니다. 20,000여 명의 예술가들이 황제 직속 건축가 우스타드 아흐메드 라하우리의 감독 아래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1653
[22년 대장정의 완공]
뭄타즈 마할이 사망한 지 22년 만에 타지마할 전체가 마침내 완공됩니다.
응접실, 모스크, 정원을 포함한 17헥타르에 달하는 거대한 무덤군은 현재 우리가 보는 완벽한 모습으로 그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습니다.
타지마할 건설에는 당시 가치로 3천 2백만 루피아, 현재 가치로는 8억 2천 7백만 달러가 소요된 것으로 추정되며, 제국의 재정이 휘청일 정도로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었습니다. 완벽한 대칭미와 조형미를 자랑하며, 세계 각지에서 공수된 28종의 보석과 준보석으로 장식되었습니다.
1658
[황제의 쓸쓸한 유배]
타지마할 완공 직후, 막대한 건설 비용으로 민심이 악화된 가운데 샤 자한은 아들 아우랑제브의 반란으로 폐위되어 아그라 성에 감금됩니다.
그는 생을 마감할 때까지 아그라 성 창문 너머로 타지마할을 멀리서 바라보는 쓸쓸한 신세가 됩니다.
야사에서는 샤 자한이 타지마할과 똑같은 검은색 대리석 무덤을 자신을 위해 지으려 했다는 설화가 전해지지만, 인도 학계에서는 근거 없는 낭설로 치부합니다.
1665
['검은 타지마할' 설화 등장]
유럽 여행가 장 밥티스트 타베르니에르가 아그라를 방문한 후 자신의 소설에 '검은 타지마할'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샤 자한이 자신을 위해 검은색 타지마할을 만들려 했다는 설화가 널리 퍼지기 시작합니다.
이 설화는 현대 학계에서는 근거 없는 낭설로 여겨지지만, 타지마할을 둘러싼 신비로운 이야기 중 하나로 전해져 내려옵니다.
1666
[황제의 마지막 안식]
아그라 성에 유폐되었던 샤 자한 황제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유해는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 뭄타즈 마할의 곁, 타지마할 안에 안장됩니다.
비극으로 시작된 사랑 이야기가 타지마할에서 영원한 안식을 맞이하는 순간입니다.
샤 자한의 관은 뭄타즈 마할의 관 옆에 자리하며, 타지마할 내부에서 유일하게 대칭 구조를 벗어난 위치에 있습니다. 이는 샤 자한이 자신의 무덤을 미리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추측됩니다.
1800
[돔 첨탑, 순금에서 청동으로]
타지마할 주 돔의 맨 꼭대기를 장식하던 순금 첨탑이 19세기에 들어 청동으로 교체됩니다.
이는 타지마할의 역사 속에서 발생한 작은 변화 중 하나로, 초기 모습과는 또 다른 시대를 거쳐왔음을 보여줍니다.
첨탑의 맨 꼭대기에는 이슬람의 상징인 휘어진 초승달이 위치해 있습니다. 정확한 교체 시기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19세기 중 어느 시점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1942
[전쟁 속 보호막, 위기의 건축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인도를 통치하던 영국은 일본 제국 공군의 공습으로부터 타지마할을 보호하기 위해 무덤 본관에 거대한 가림막을 씌웁니다.
이로써 타지마할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인류의 유산으로 지켜졌습니다.
이후 1965년과 1971년 사이에 발발한 인도-파키스탄 전쟁 당시에도 파키스탄 공군 비행사들의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해 다시 한번 가림막이 설치되었습니다.
1983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타지마할은 그 예술적,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됩니다.
유네스코는 타지마할을 '인도에 위치한 무슬림 예술의 보석이며 인류가 보편적으로 감탄할 수 있는 걸작'이라며 그 위대함을 찬사했습니다.
이 등재로 타지마할은 전 세계인의 문화유산으로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되었으며, 국제적인 보호와 관심의 대상이 됩니다.
2000
[첨탑 기울기, 위험 신호]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BBC 방송은 타지마할의 한 첨탑이 점점 기울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합니다.
야무나강의 수위 하강으로 인한 지반 침하가 원인으로 지목되며, 타지마할의 보존에 대한 우려가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타지마할의 기초는 흑단나무로 되어 있는데, 야무나강이 마르면서 지난 30년간 3.5cm가 기울었다는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환경 오염으로 인한 백색 대리석의 황갈색 변색 또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됩니다.
2007
[⭐세계 7대 기적의 반열에⭐]
전 세계 100만 명 이상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타지마할은 '신(新) 세계 7대 기적'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습니다.
이는 타지마할이 시대를 초월하여 인류에게 영감을 주는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가졌음을 다시 한번 입증한 사건입니다.
수많은 유적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타지마할의 존재감이 전 세계에 공표된 순간입니다.
2010
[수위 하강, 구조적 위협]
야무나강의 수위가 매년 약 1.5m씩 낮아지면서 타지마할 기초부 일부에 균열이 발생하고 미나레트가 기울어지는 징후가 더욱 뚜렷해집니다.
물이 빠져나가 공기와 접촉하게 된 목조 골재의 부패는 무덤 침하 현상을 가속화시켰습니다.
인도 정부는 타지마할 주변 10,400제곱 킬로미터를 보호 구역(TTZ)으로 설정하고 오염 물질 통제 정책을 펼치며 보존에 힘쓰고 있습니다.
2011
[붕괴 경고, 긴급한 보존 노력]
야무나강 수위 하강 문제로 2011년에는 '타지마할이 5년 내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가 발표됩니다.
이는 타지마할의 구조적 안정성에 대한 심각한 경고였으며, 국제 사회의 보존 노력이 더욱 절실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기초부 균열과 미나레트 기울어짐 현상 등 이미 진행 중인 피해는 타지마할의 장기적인 보존에 큰 위협으로 다가왔습니다.
2014
[세계적 명소, 관광객 폭증]
타지마할을 방문하는 연간 관광객 수가 7백만~8백만 명으로 급증하며 세계적인 명소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합니다.
유네스코 조사 결과 연 2백만 명 이상이던 방문객 수가 불과 몇 년 새 엄청나게 늘어난 것입니다.
인도 정부는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인도 현지인에게는 더 싼 가격으로, 외국 관광객에게는 추가적인 요금을 부과하는 입장료 체계를 마련했습니다. 환경 보호를 위해 공해 유발 교통수단 통제 및 전기 버스 이용을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2018
[태풍, 부속 미나레트 훼손]
강력한 태풍으로 인해 타지마할 부속 건물에 서있던 2개의 소규모 미나레트가 훼손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는 자연재해로부터 유산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습니다.
타지마할의 미나레트는 혹시 모를 붕괴 시 본관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미세하게 바깥쪽으로 기울어져 설계되었습니다.
2019
[과도한 체류 제한 정책]
타지마할 유적지 내부의 과도한 인파를 막기 위해 3시간 이상 머무르는 관광객에게 벌금을 부과하는 정책이 도입됩니다.
이는 세계적인 명소로서의 인기와 함께 유적지 보호를 위한 노력의 일환입니다.
타지마할은 평일 6시부터 19시까지 운영하며, 금요일과 라마단 기간을 제외하고 보름달이 뜨는 날 밤에는 특별히 개방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