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거 JK
연표
1974
[서울에서 태어난 힙합 유망주]
한국 팝 평론가 서병후의 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난 타이거 JK는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마이애미에서 삼촌과 함께 성장하며 힙합 음악에 눈을 떴다.
1992
[한인 비하에 랩으로 맞서다]
힙합 그룹 N.W.A의 멤버 아이스 큐브의 'Black Korea'에 분노, 역사 수업 논문과 랩으로 반박해 교내 상을 받았다.
이후 힙합 페스티벌에서 'Call Me Tiger'로 즉흥 랩 부문 수상, '쟈니윤 쇼'에 출연하며 주목받았다.
이는 그의 음악적 신념과 실력을 대중에게 처음 알린 계기가 되었다.
1995
[첫 솔로 앨범, 씁쓸한 실패]
오아시스 엔터테인먼트의 지원으로 DJ 샤인, 스크램과 함께 한국에 돌아와 솔로 음반 'Enter the Tiger'를 발매했으나, 당시 힙합에 대한 선입견과 서태지와 아이들의 '컴백홈' 열풍 속에서 실패를 겪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1997
[한국 재도전, 클럽 공연 시작]
한 동호회의 초청으로 다시 한국을 찾은 타이거 JK는 여러 차례 길거리와 클럽에서 공연을 시작하며 한국 힙합 씬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대중과 소통을 시도했다.
1998
[전설의 시작, 드렁큰 타이거 결성]
미국으로 돌아간 타이거 JK는 힙합 페스티벌에서 만난 친구 DJ 샤인과 함께 '드렁큰 타이거'를 결성하며 한국 힙합 역사에 한 획을 그을 본격적인 활동의 발판을 마련했다.
1999
[드렁큰 타이거 데뷔]
드렁큰 타이거 1집 'Year of The Tiger'를 발매하며 한국 힙합 씬에 강렬한 존재감을 알리고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2004
[DJ 샤인, 그룹 탈퇴]
드렁큰 타이거 5집 이후, 오랜 파트너였던 DJ 샤인이 그룹을 탈퇴하며 타이거 JK는 홀로 드렁큰 타이거의 활동을 이어가게 되었다.
이는 그룹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
2006
[척수염 진단, 활동 난관]
희귀병인 척수염 진단을 받고 가수 활동에 큰 어려움을 겪었으나, 투병 중에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고 대중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2007
[운명적 만남, 윤미래와 결혼]
오랫동안 외부에 비밀로 지켜졌던 가수 윤미래와의 관계를 공개하고 결혼하며 힙합계의 대표적인 부부 뮤지션이자 든든한 동반자가 되었다.
2008
[아들 조단 탄생]
윤미래와의 사이에서 아들 서조단을 얻으며 가족의 삶을 시작했고, 이는 그의 음악 세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2013
[MFBTY 결성, 새로운 시도]
가수 윤미래, 비지와 함께 프로젝트 그룹 MFBTY를 결성하여 음악적 스펙트럼을 확장하고 새로운 협업을 선보였다.
2014
[필굿뮤직 설립, 독립 선언]
윤미래와 함께 기존 소속사에서 독립하여 자신만의 레이블 '필굿뮤직'을 설립하며 한국 힙합 씬에 독립적인 움직임을 더했다.
이는 그의 음악적 자율성과 비전을 보여주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2016
[굿 라이프 크루 결성]
도끼와 함께 새로운 크루 '굿 라이프 크루'를 결성하여 슈퍼비, 면도, 주노플로 등 실력 있는 후배 뮤지션들과 함께 활동 영역을 넓혔다.
2017
[드렁큰 타이거 마지막 앨범 예고]
오랜 시간 한국 힙합의 상징이었던 '드렁큰 타이거'의 마지막 정규 앨범을 준비 중임을 발표하며, 팬들에게 아쉬움과 기대를 동시에 안겼다.
이는 그룹의 마무리가 아닌, 타이거 JK의 새로운 전환점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쇼미더머니6 프로듀서 합류]
인기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Show Me The Money 6'에 필굿뮤직 소속 비지와 함께 프로듀서로 합류하며 대중적 인기를 다시 한번 입증하고 후배 양성에도 힘썼다.
2018
[드렁큰 타이거 20년 역사 마무리]
마지막 정규 앨범 'Drunken Tiger X'를 발매하며 20년 동안 한국 힙합 씬에 큰 족적을 남긴 드렁큰 타이거의 활동을 공식적으로 마무리했다.
이는 한 시대의 마감이자 타이거 JK의 새로운 시작을 의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