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루스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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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비교
키루스 2세(Cyrus II), 또는 키루스 대제(Cyrus the Great)는 고대 근동의 문명 국가들을 정복하여 아케메네스 제국을 건설한 페르시아의 위대한 통치자입니다. 그는 메디아, 리디아, 신바빌로니아 제국을 차례로 무너뜨리고 당대 역사상 가장 거대한 영토를 다스렸습니다. 키루스 2세는 정복지의 종교와 관습을 존중하는 관용 정책으로 유명하며, 특히 바빌론 유수 상태에 있던 유대인들을 해방시켜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한 것으로 성경과 역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의 통치 철학은 인권과 정치 행정의 선구적인 모델로 평가받으며, '키루스 원통'은 고대 인권 선언의 상징으로 여겨집니다.
연표
BC 6C
전설에 따르면 외할아버지 아스티아게스가 그를 죽이려 했으나 목동에 의해 비밀리에 양육되었다고 전해집니다. 페르시아의 안샨 지역에서 출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안샨은 메디아 제국의 속국 상태였으며, 키루스는 메디아의 지배를 받는 봉신으로서 통치를 시작했습니다.
메디아의 장군 하르파고스와 내통하여 군사를 일으켰으며, 이는 페르시아가 제국으로 성장하는 첫걸음이 되었습니다.
이 승리로 키루스는 페르시아와 메디아를 통합하고 아케메네스 제국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그는 아스티아게스의 목숨을 살려주었습니다.
이 정략결혼을 통해 박트리아, 파르티아, 사카 등 메디아의 속국들을 진정시키고 자신의 지배력을 공고히 했습니다.
전투는 밤이 될 때까지 치열하게 전개되었으나 승부를 가리지 못했고, 크로이소스는 다음 날 사르디스로 철수했습니다.
키루스는 낙타 부대를 전면에 배치하여 리디아 기병대의 말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전술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로써 소아시아 지역의 패권을 장악하고 막대한 부를 획득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키루스는 크로이소스를 처형하지 않고 조언자로 삼았다고 합니다.
리디아 정복 후 주변 국가들을 차례로 복속시키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영토 확장이었습니다.
539년 바빌론 정복 전까지 소그디아, 박트리아, 아라코시아 등 동부 이란과 중앙아시아 지역을 평정했습니다.
바빌로니아 침공을 위한 전초 기지를 확보하고 제국의 남서부 전선을 강화했습니다.
또한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허락하고 지원했습니다. 이는 성경(에스라, 이사야 등)에 기록된 '고레스 칙령'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유물은 바빌론의 신들을 복원하고 추방된 민족들을 귀환시킨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최초의 인권 선언문 중 하나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이 전투의 승리로 바빌로니아의 방어선이 무너졌으며, 이후 시파르 등 주요 도시들이 저항 없이 항복했습니다.
오피스 전투 패배 후 나보니두스 왕은 도주했고, 시파르 시민들은 저항하지 않고 키루스의 군대를 맞이했습니다.
유프라테스 강의 물길을 돌려 수위를 낮춘 뒤 강바닥을 통해 침투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나보니두스 왕은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마르두크 신의 선택을 받은 해방자로 칭하며 평화로운 정복자로서의 면모를 과시했습니다.
나보니두스 연대기에 따르면 바빌로니아에서도 3월 21일부터 26일까지 공식적인 애도가 이루어졌습니다.
서부 인도 지역에 위성국을 세우고 제국의 동쪽 경계를 확장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의 무덤은 소박한 구조로 지어졌으며, '나, 키루스는 페르시아 제국을 세웠으니 이 작은 흙 무덤을 부러워하지 말라'는 비문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시르다리야 강 인근에서 벌어진 격렬한 전투 끝에 토미리스 여왕이 이끄는 군대에 패배하여 생을 마감했습니다. (크세노폰은 침상에서 평화롭게 죽었다고 기록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