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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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비교
퀸 (밴드)
록 밴드, 음악 그룹, 전설 + 카테고리

- 전 세계를 열광시킨 영국의 전설적인 록 밴드. -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혁신적인 음악을 선보인 개척자. - 역사상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아티스트 중 하나로 기록. - 세계 최초 기록들을 세우며 대중문화사에 지대한 영향. - 압도적인 라이브 퍼포먼스로 공연의 신이라 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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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70

[전설의 시작, 퀸 결성]

밴드 스마일이 해체된 후,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와 드러머 로저 테일러가 보컬 프레디 머큐리와 합류하며 퀸을 결성했습니다.

이들은 음악적 역사의 첫 페이지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1971

[황금기 라인업 완성]

베이시스트 존 디콘이 마지막으로 합류하며 퀸의 황금기를 함께할 4인의 최종 라인업이 완성되었습니다.

이로써 퀸은 완벽한 하모니와 폭발적인 시너지를 낼 준비를 마쳤습니다.

1973

[데뷔 앨범, 일본 인기]

데뷔 앨범 'Queen'을 발표하고, 첫 싱글 'Keep Yourself Alive'는 자국 차트에서는 큰 빛을 보지 못했지만 일본에서 예상치 못한 인기를 얻으며 국제적인 팬덤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1974

[영국 차트 맹활약]

2집 'Queen II'의 싱글 'Seven Seas of Rhye'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으며, 같은 해 발매된 3집 'Sheer Heart Attack'의 싱글 'Killer Queen'은 영국 차트 2위에 오르며 퀸을 유망주에서 주역으로 급부상시켰습니다.

3집 수록곡 'Stone Cold Crazy'는 스피드 메탈/스래쉬 메탈의 첫 번째 예시로 평가되며 음악사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당시 소속사의 불합리한 월급에 불만을 품은 퀸은 계약을 해지하고 자신들만의 소속사 'Queen Production Ltd'를 설립하며 자주적인 활동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1975

[‘보헤미안 랩소디’ 신화]

4집 'A Night at the Opera'와 시대를 초월한 명곡 'Bohemian Rhapsody'를 발표하며 퀸은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밴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특히 'Bohemian Rhapsody'는 투어 중 방송 활동이 어려웠던 프레디 머큐리의 제안으로 제작된 세계 최초의 뮤직 비디오로 기록되며, 음악 산업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세계 최초의 뮤직 비디오는 이후 많은 아티스트들에게 영감을 주며 음악 마케팅의 패러다임을 바꿨습니다.

1976

[EMI 예약 판매 최고 기록]

히트곡 'Somebody To Love'를 탄생시켰으며, 이 곡이 수록된 5집 'A Day At The Races'는 EMI 레코드사 역사상 최고의 예약 판매 기록을 달성하며 퀸의 폭발적인 인기를 증명했습니다.

1977

[국민 응원가 탄생]

6집 'News of the World'에서 'We Will Rock You'와 'We Are The Champions'가 전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하며 스포츠 경기장과 대중의 일상 속에 깊이 스며들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Bohemian Rhapsody'로 브릿 어워드를 수상하며 음악적 위상을 확고히 했습니다.

1978

[앨범 표지 논란]

앨범 'Jazz'를 발매했으나, 첫 싱글 'Bicycle Race/Fat Bottomed Girls'의 표지(나체 여성)가 논란이 되어 수정한 후 재발매해야 했습니다.

이 일로 퀸은 영국 학부모 협회의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하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1979

[세계 최초 공연 비디오]

일본 부도칸(무도관) 콘서트 공연을 세계 최초로 비디오로 발매하며, 시대를 앞서가는 미디어 활용 능력을 선보였습니다.

라이브 앨범 'Live Killers'의 유일한 싱글 'Love of My Life'는 약 1년 동안 아르헨티나 차트에 머무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Don’t Stop Me Now’ 발매]

새로운 싱글 'Don't Stop Me Now'를 추가로 발매하며 특유의 활기찬 에너지로 팬들을 사로잡았습니다.

1980

[미국 시장 정복 및 기록]

9집 'The Game'의 두 싱글 'Another One Bites The Dust'와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가 대성공을 거두며 미국에서까지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퀸은 주요 밴드 중 최초로 남아메리카 투어를 진행했으며, 단일 밴드로서는 세계 최다 유료 관중 기록을 세우며 그들의 압도적인 영향력을 전 세계에 증명했습니다.

[영화 사운드트랙 발매]

SF 영화 'Flash Gordon'의 사운드트랙 앨범이 발매되어 앨범 차트 10위를 기록하며 영화 음악 분야에서도 성공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1981

[데이비드 보위와 협업]

데이비드 보위와의 협업곡 'Under Pressure'를 싱글로 발매하여 차트 1위에 올랐습니다.

또한 1981년까지의 히트곡을 모은 앨범 'Greatest Hits'는 영국 앨범 차트에 무려 550주간 머물며 540만 장이라는 경이로운 판매 기록을 세웠습니다.

1982

[앨범 실패와 위기]

디스코풍의 앨범 'Hot Space'가 대중의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를 내면서 퀸은 큰 위기를 맞았고, 1983년에는 공식 활동 없이 해체설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1984

[화려한 재기, 한국 방문]

새 스튜디오 앨범 'The Works'와 18개국에서 1위를 차지한 싱글 'Radio Ga Ga'로 퀸은 제2의 전성기를 맞으며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싱글 'I Want to Break Free'의 뮤직 비디오는 멤버 전원의 여장으로 인해 미국에서 방송 불가 판정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 해 로저 테일러와 존 디콘이 대한민국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아프리카 선 시티 공연으로 아파르트헤이트 옹호라는 누명을 쓰기도 했으나, 로저 테일러는 훗날 큰 실수였다고 언급했습니다.

1985

[락 인 리오 피날레]

브라질에서 열린 합동 공연 'Rock In Rio'에서 퀸은 과거 남아메리카 투어의 인기에 힘입어 오프닝과 엔딩을 모두 장식하며 그들의 압도적인 위상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습니다.

[전설의 라이브 에이드]

아프리카 난민 구제를 위한 합동 공연 'Live Aid'에서 퀸은 역사에 길이 남을 환상적인 라이브 공연을 선보였습니다.

주최자 밥 겔도프와 엘튼 존 등 동료 아티스트들로부터 "그들이 쇼를 훔쳤다"는 극찬을 받으며 전설적인 무대를 완성했습니다.

1986

[공산권 최초 공연]

영화 '하이랜더' 사운드트랙을 수록한 앨범 'A Kind Of Magic'의 동명 싱글이 35개국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특히 'Magic 투어'에서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공연을 가졌는데, 이는 민주주의권 밴드가 최초로 공산권 지역에서 공연을 한 사례로 기록되며 역사적인 의미를 더했습니다.

1989

[투어 중단과 루머]

3년 만에 스튜디오 앨범 'The Miracle'을 발매했지만, 이 시기에 퀸이 투어 공연을 중단하면서 프레디 머큐리의 에이즈 발병설이 불거졌습니다.

퀸 측은 이를 강력히 부인하며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1991

[‘Innuendo’로 화려한 부활]

싱글 'Innuendo'가 발매되어 10년 만에 영국 차트 1위에 올랐고, 이어 2월 5일에는 동명의 앨범이 유럽 전역을 휩쓸며 퀸의 화려한 부활을 알렸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 브릿 어워드 수상 당시 프레디 머큐리는 이미 병색이 완연한 상태였습니다.

[프레디 머큐리 사망]

전 세계 수많은 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날, 보컬 프레디 머큐리가 폐렴을 동반한 에이즈 합병증으로 사망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음악계에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겼지만, 그의 음악은 영원히 남게 되었습니다.

1992

[추모와 불멸의 기록]

프레디 머큐리 사후, 에이즈 환자들을 위한 기금 '머큐리 피닉스 트러스트' 설립을 위해 'Bohemian Rhapsody' 싱글이 재발매되었습니다.

이 곡은 싱글 앨범 역사상 처음으로 1차 발매(1975년)와 재발매에서 모두 차트 1위를 기록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습니다.

또한 'These Are The Days Of Our Lives'로 브릿 어워드를 수상하고, 프레디 머큐리 추모공연이 성대하게 개최되었습니다.

1995

[프레디 유작 앨범]

프레디 머큐리의 유작 앨범 'Made in Heaven'이 발매되어 큰 인기를 얻었으며, 대한민국에서도 플래티넘을 기록하는 등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앨범은 프레디의 마지막 열정과 멤버들의 헌신이 담겨 팬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1997

[존 디콘 활동 중단]

컴필레이션 앨범 'Queen Rocks'와 프레디 머큐리 추모곡 'No-One But You'가 발매되었습니다.

이 싱글을 끝으로 베이시스트 존 디콘은 프레디 머큐리 없는 퀸은 퀸이 아니라며 활동 중단을 선언했지만, 퀸은 공식적인 해체 없이 명맥을 이어갔습니다.

2002

[뮤지컬 ‘We Will Rock You’]

퀸의 업적을 기리는 뮤지컬 'We Will Rock You'가 제작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 뮤지컬은 퀸의 음악을 새로운 세대에 알리는 역할을 하며 전 세계적으로 공연되었습니다.

2005

[새로운 투어 시작]

브라이언 메이와 로저 테일러는 보컬 폴 로저스와 함께 '퀸 + 폴 로저스'라는 이름으로 18년 만에 투어 공연을 시작하며 팬들을 열광시켰습니다.

영국 셰필드 공연 실황을 담은 라이브 앨범 'Return of the Champions'도 발매되었습니다.

2008

[앨범 발매 및 투어]

퀸 + 폴 로저스의 첫 스튜디오 앨범 'The Cosmos Rocks'가 발매되었고, 같은 해 넬슨 만델라 90회 생일 기념 '46664 콘서트'에서 공연하며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동참했습니다.

또한 우크라이나 하리코프에서 'Rock the Cosmos' 투어를 시작했습니다.

2009

[폴 로저스와의 이별]

폴 로저스가 자신의 전 소속 밴드 '배드 컴퍼니'의 재결합 투어를 시작하면서 '퀸 + 폴 로저스'의 해산을 선언했습니다.

이는 퀸의 또 다른 변화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2012

[애덤 램버트 합류]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엘튼 존 에이즈 재단 주최 자선 공연을 시작으로, 새로운 보컬 애덤 램버트를 영입하여 무대에 섰습니다.

이는 퀸의 새로운 활동 시대를 예고하는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2014

[역대급 첫 내한공연]

퀸과 애덤 램버트가 대한민국 서울에서 슈퍼소닉 페스티벌을 통해 첫 내한 공연을 가졌습니다.

공연 내내 팬들의 열광적인 반응은 이번 투어 중 가장 뜨거운 반응에 속할 정도로 인상 깊었으며, 멤버들은 공연 후 팬들과 직접 소통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브라이언 메이와 로저 테일러는 팬들에게 직접 사인해주고 포옹하는 등 특별한 팬 서비스를 선보여 뜨거운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2018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퀸의 명곡에서 이름을 따온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개봉하여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켰습니다.

영화는 1970년 퀸 결성부터 1985년 라이브 에이드 공연까지의 여정을 그려내며 퀸의 음악과 스토리를 다시 한번 대중들에게 각인시켰습니다.

2020

[한국 첫 단독 공연]

퀸과 애덤 램버트가 고척 스카이돔에서 한국에서의 첫 단독 공연을 이틀간(18일, 19일) 진행했습니다.

이틀 동안 45,000여 명의 관중이 찾아와 퀸의 변치 않는 인기를 증명하며 성공적인 공연을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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