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세움
연표
64
서기 64년 로마 대화재로 기존 주거 지역이 전소하자, 네로 황제는 팔라티노와 에스퀼리노 언덕 사이에 거대한 황금 궁전(도무스 아우레아), 인공 호수, 정원을 지었다. 그는 또한 자신의 모습을 본뜬 거대한 청동 거상을 궁전 옆에 세웠다.
72
[콜로세움 건설 시작]
네로 황제 살해 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네로의 궁전을 허물고 대중에게 돌려준다는 상징적 의미로 콜로세움 건설을 시작했다.
네로의 폭정에 반발한 반란으로 황제가 살해되자, 후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네로의 황금 궁전을 헐어버리고 그 부지에 거대한 원형 경기장을 짓기로 결정했다. 이는 황제의 사유지를 군중에게 돌려준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으며,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전리품과 유대인 노예 10만 명을 동원하여 건축에 박차를 가했다. 콜로세움은 도시 외곽이 아닌 도심 한가운데에 계획되었다.
79
콜로세움은 서기 70~72년경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에 의해 건설이 시작되었으며, 79년에는 콜로세움의 3층이 완공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80
[콜로세움 완공 및 개막식]
베스파시아누스의 아들 티투스 황제 치세에 콜로세움이 완공되었고, 개막식에서 9,000마리가 넘는 야생 동물들이 희생되었다.
서기 80년, 티투스 황제 치세 하에 콜로세움 건축이 완료되었고 성대한 개막식이 열렸다. 이 개막식에서는 9,000마리가 넘는 야생 동물들이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이를 기념하는 주화까지 발행되었다.
81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콜로세움 개축]
도미티아누스 황제 아래에서 콜로세움 하부에 지하 터널이 생기고 좌석 수가 크게 늘어나는 개축이 이루어졌다.
콜로세움은 도미티아누스 황제 아래에서 개축되어 콜로세움 하부에 지하 터널이 생겼으며, 좌석 수도 크게 늘어났다. 또한 최상층에 목재 좌석열이 추가되어 도시의 최빈층과 노예들을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217
서기 217년, 콜로세움에 낙뢰로 인한 화재가 일어나 목재로 지어진 상층부가 완전히 타버렸다. 이 손상된 부분은 240년까지도 복구되지 못했다.
250
217년에 발생한 낙뢰 화재로 소실된 콜로세움의 상층부가 250년에 이르러서야 완전히 복구되었다.
443
서기 443년에 대규모 지진이 일어나 콜로세움이 손상을 입었고, 이를 복원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523
콜로세움 경기장은 6세기까지 계속 사용되었으며, 동물 사냥은 적어도 523년까지 계속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550
6세기 후반 유럽 전역에 기독교가 확산되면서 콜로세움은 큰 변화를 겪었다. 작은 예배당이 경기장 한 귀퉁이에 세워졌고, 경기장은 묘지로 사용되었다. 기존 좌석 자리에는 상점과 주택이 들어서 적어도 12세기 후반까지 임대되었다.
1200
약 1200년경, 한 가문이 콜로세움을 점령하고 자신들의 성으로 개조하여 사용하려 시도했다.
1349
1349년 로마에 대규모 지진이 발생하여 콜로세움의 남쪽 벽이 무너져 내렸다. 무너진 벽의 잔해들은 다른 건물에 사용되기 위해 옮겨졌다. 이로 인해 14세기 중반에는 교회가 콜로세움의 북쪽 부분으로 이전하게 된다.
1585
16~17세기 사이, 교회는 콜로세움을 보다 생산적인 용도로 사용하고자 했다. 교황 식스투스 5세(재위 1585-1590)는 콜로세움을 양모 공장으로 사용할 계획을 세웠으나, 그의 조기 사망으로 인해 이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1671
1671년 한 추기경이 콜로세움에서 투우 경기를 개최하는 것을 승인했지만, 대중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곧바로 사업을 철회해야만 했다.
1749
[콜로세움 성지 지정]
교황 베네딕토 14세가 콜로세움을 초기 기독교인들이 박해받았던 상징적인 장소로 선언하며 성지로 지정하고 채석을 금지했다.
1749년 교황 베네딕토 14세는 콜로세움이 초기 기독교인들이 박해받았던 상징적인 장소임을 주장하며 성지로 지정했다. 그는 이곳을 채석장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순례길을 만들어 콜로세움 전역을 성역화하고자 했다. 다만 그의 주장을 뒷받침할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고 대다수 역사학자들은 보고 있다.
1807
교황의 주도 하에 콜로세움 복원 프로젝트가 시작되어 건물에 무성했던 잡초와 초목들이 제거되었다. 1807년에는 외벽이 쐐기로 보강되었고, 1827년에도 추가 보강이 이루어졌다.
1827
1807년에 이어 1827년에도 콜로세움의 외벽이 쐐기를 사용하여 보강되었다. 내부 수리는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1850
콜로세움 경기장의 하부 구조는 19세기에 점진적으로 발굴되기 시작했으며, 1930년대 무솔리니 독재 하에 모두 발굴되어 그 구조가 완전히 노출되게 되었다.
1930
19세기부터 시작된 콜로세움 경기장 하부 구조 발굴 작업이 1930년대 무솔리니 독재 하에 모두 완료되어, 지하 구조물의 전체 모습이 완전히 드러나게 되었다.
1993
[콜로세움 대규모 보수 작업]
이탈리아 정부가 오염과 훼손 문제 해결을 위해 400억 이탈리아 리라를 투입하여 대규모 보수 작업을 실시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염 및 훼손 문제들이 발생하자, 이탈리아 정부는 400억 이탈리아 리라를 들여 1993년부터 2000년까지 대규모 보수 작업을 실시하였다.
2011
[콜로세움 복원 후원 계약]
신발 회사 토즈의 대표인 디에고 델라 벨라가 콜로세움 복원을 위해 2,500만 유로를 후원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2011년, 신발 회사 토즈의 대표인 디에고 델라 벨라가 콜로세움의 복원을 위해 2,500만 유로를 후원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복원 계획은 2011년 말 시작하여 최대 2년 반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2012
콜로세움은 사형제 폐지 국제 캠페인의 상징이 되었으며, 로마 시는 사형수 석방 또는 사형제도 폐지 국가가 생길 때마다 콜로세움 야간 조명 색깔을 흰색에서 금빛으로 바꾼다. 가장 최근의 변화는 2012년 11월, 미국 코네티컷 주가 사형제를 폐지하며 일어났다.
2013
[콜로세움 복원 사업 시작]
2011년에 체결된 후원 계약에도 불구하고, 복원 비용 조달 문제로 인해 콜로세움 복원 사업이 2013년에야 시작되었다.
2011년 말 시작될 것으로 예상되었던 콜로세움 복원 사업은 복원 비용 조달 문제로 인해 2013년에야 실제 착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