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라트 로렌츠
연표
1903
[동물행동학자 탄생]
오스트리아 빈 교외의 알텐베르크에서 성공한 정형외과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빈의 대저택에서 수많은 동물과 교감하며 자연스레 동물에 대한 애정을 키웠다.
1922
[아버지 권유로 의학 유학]
빈 쇼텐 김나지움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으나, 아버지의 강권으로 뉴욕 컬럼비아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게 된다.
콘라트는 본래 고생물학과 동물학을 공부하고 싶어했지만, 의사였던 아버지의 현실적인 조언을 따랐다. 이 배경에는 가난한 정원사의 딸 마르가레테 게프하르트와 어릴 적부터 결혼을 약속한 콘라트의 관계를 끊으려는 아버지의 의도도 숨어 있었다. 그러나 콘라트는 충분치 못한 영어실력과 알텐베르크의 자연에 대한 그리움으로 결국 돌아온다.
1927
[첫 논문 발표]
의학 공부 중에도 동물 관찰에 몰두해 자신의 관찰 일기를 남겼고, 이를 바탕으로 첫 논문 <갈가마귀 관찰>을 조류학회지에 실으며 평생의 스승인 슈트레제만, 하인로트와 인연을 맺었다.
1928
1933
1935
[각인 현상 발견의 서막]
오리와 거위 새끼의 학습 행동에 대한 중요한 연구를 통해, 새끼 조류가 태어나 처음 본 움직이는 물체를 어미로 인식하는 '각인' 현상의 존재를 기술하며 동물 행동 연구의 새 지평을 열었다.
로렌츠는 '각인' 현상 자체를 최초로 관찰한 것은 아니지만, 이 현상이 생애 초기의 '결정적 시기'에 일어난다는 점을 최초로 언급하여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1937
[비교행동학의 탄생]
회색기러기 사육을 시작하며 새로운 관찰 연구에 몰두했고, 이 연구는 훗날 동물의 행동 양상을 비교 분석하는 '비교행동학'의 시초가 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1939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나치의 편을 들어 독일군에 참전했다.
오스트리아 국적이 참전에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이며, 이 일은 그의 인생에서 큰 오점으로 남아있다.
1940
1942
1948
[연구소 소장 부임]
제2차 세계대전 후 오스트리아로 돌아와 알텐베르크 비교행동학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며 다시 학문 연구에 매진했다.
1949
1950
[막스플랑크 연구소 설립]
베스트팔렌 불데른의 막스플랑크 연구소에 비교생태학과를 설립하고, 1954년에는 연구소의 공동 책임자가 되며 연구 활동을 확장했다.
1957
1963
[<공격행위에 관하여> 출판]
인간과 동물의 공격성에 대한 심오한 통찰을 담은 <공격행위에 관하여>를 출판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73
[노벨 생리학·의학상 수상]
카를 폰 프리슈, 니콜라스 틴베르헌과 함께 동물의 행동 양상에 대한 획기적인 발견으로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공동 수상하며 세계적인 학자로 인정받았다.
1989
[콘라트 로렌츠 사망]
1989년 2월 27일, 8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학문적 유산은 동물행동학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