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그룹
코오롱그룹은 1954년 나일론 유통회사인 개명상사를 시작으로 대한민국 섬유 산업의 현대화를 이끌어온 한국 경제 성장의 주역입니다. '의복을 통해 국민을 빨래의 고통에서 해방시키겠다'는 이원만 선대회장의 창업 정신과 '기다림과 나눔'을 실천한 이동찬 선대회장의 리더십 아래, 국내 최초의 나일론 원사 생산이라는 금자탑을 쌓았습니다. 이후 화학, 패션, 건설을 넘어 미래 수소 에너지와 첨단 바이오 헬스케어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을 추구해왔습니다. 오늘날 코오롱은 고객에게 독보적인 가치를 제공하는 'One&Only' 정신을 바탕으로 소재 산업의 글로벌 리더이자 라이프스타일 혁신 기업으로서 새로운 100년을 향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연표
1904
[이원만 선대회장 탄생]
코오롱그룹의 기틀을 닦은 이원만 선대회장이 경북 영일군에서 태어납니다. 그는 장차 대한민국 수출 산업을 이끌 기업인이자 정치가로서의 운명을 시작합니다.
그의 도전 정신은 훗날 한국에 나일론이라는 혁신 소재를 들여오는 원동력이 됩니다.
이원만 선대회장은 경상북도 영일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기업가적 자질을 보였습니다.
그는 일찍이 일본으로 건너가 실무 경험을 쌓으며 국제적인 비즈니스 감각을 익혔습니다.
이후 한국 경제 발전의 초석이 된 섬유 산업을 일으키는 데 평생을 헌신하게 됩니다.
1922
[이동찬 선대회장 탄생]
코오롱그룹의 실질적인 성장을 주도한 이동찬 선대회장이 경북 영일군에서 태어납니다. 그는 아버지 이원만 회장과 함께 코오롱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써 내려가게 됩니다.
그의 온화하면서도 강인한 리더십은 코오롱만의 독특한 기업 문화를 형성하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이동찬 선대회장은 이원만 회장의 장남으로 태어나 부친의 기업가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았습니다.
그는 청년 시절 일본에서 교육을 받으며 현대적인 경영 기법과 산업의 흐름을 파악했습니다.
훗날 그는 코오롱을 종합 화학 섬유 기업으로 성장시키며 대한민국 1세대 기업인의 표상이 됩니다.
1935
[아사히공예 설립]
이원만 회장이 일본에서 자신의 첫 사업체인 아사히공예를 설립하며 경영 활동을 시작합니다. 이는 코오롱 가문이 제조업에 처음으로 발을 들이게 된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초기 사업 경험은 이후 대규모 섬유 공장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밑거름이 됩니다.
일본 오사카에서 설립된 아사히공예는 이원만 회장의 본격적인 기업가로서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제품의 품질 관리와 인력 운영의 중요성을 직접 체험하며 사업 수완을 발휘했습니다.
당시의 성공은 그에게 더 큰 시장과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자신감을 주었습니다.
1937
[아사히피복 설립]
제조업의 연장선상에서 의류 생산을 위한 아사히피복을 설립하며 사업 영역을 넓힙니다. 이 시기부터 이미 섬유와 의복이라는 분야에 대한 그의 혜안이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피복 사업을 통해 섬유 소재가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을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이원만 회장은 아사히피복을 통해 의류 제조 공정 전반을 아우르는 전문성을 확보했습니다.
이는 훗날 코오롱이 원사 생산뿐만 아니라 패션 사업까지 성공시키는 기초 자산이 되었습니다.
생산과 유통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며 일본 내에서도 유능한 경영인으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1951
[삼경물산 주식회사 설립]
일본 도쿄에서 삼경물산을 창립하며 한일 무역의 교두보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곳을 통해 당시 꿈의 신소재였던 나일론을 한국으로 들여올 준비를 본격화합니다.
코오롱그룹의 전신이 되는 무역 네트워크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삼경물산은 한국과 일본 사이의 물자 교류를 전담하며 전후 복구 시기에 필요한 자원을 공급했습니다.
이원만 회장은 일본 내에서 확보한 인맥과 자본을 바탕으로 무역 규모를 빠르게 키워나갔습니다.
이 회사의 설립은 코오롱이 나일론 원사 독점 판매권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1953
[국내 나일론 독점 판매]
삼경물산을 통해 한국 시장에 나일론을 독점적으로 공급하며 섬유 혁명을 주도합니다. 당시 나일론은 질기고 관리가 쉬워 전 국민적인 폭발적 인기를 끌었습니다.
원료를 공급하며 국내 섬유 제조 업체들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게 됩니다.
나일론의 국내 상륙은 한국인들의 의복 생활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은 사건이었습니다.
부녀자들의 빨래 고통을 덜어주겠다는 창업주의 비전이 실현되기 시작한 첫 단계였습니다.
독점 판매를 통해 확보된 수익은 훗날 국내에 직접 공장을 세우는 자본금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1954
[개명상사 창업]
이원만 선대회장이 대구에서 나일론 유통 회사인 개명상사를 세웁니다. 이것이 현재 코오롱그룹의 역사적인 시발점이자 기업 활동의 근간이 됩니다.
가족 경영의 틀을 넘어 현대적인 상사 시스템을 도입하여 시장을 장악해 나갑니다.
개명상사는 국내외 네트워크를 활용해 나일론의 전국적인 유통망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동찬 선대회장도 이곳에서 경영 수업을 받으며 실질적인 유통 현장의 감각을 익혔습니다.
단순한 상업 회사를 넘어 제조업으로 나아가기 위한 전초기지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습니다.
1957
[한국나이롱 주식회사 설립]
본격적인 제조업 진출을 위해 한국나이롱을 설립하며 코오롱그룹의 공식 시작을 알립니다. 유통을 넘어 직접 생산에 도전하겠다는 창업주의 강한 의지가 담긴 결정입니다.
'코리아 나일론(Korea Nylon)'의 약자인 'KOLON' 브랜드의 탄생 배경이 됩니다.
정부의 적극적인 산업 육성 정책과 발맞추어 나일론 국산화라는 거대한 목표를 설정했습니다.
당시 전후 복구 중이던 한국 사회에서 대규모 공장을 짓는 것은 엄청난 모험이었습니다.
한국나이롱은 오늘날 코오롱인더스트리의 전신으로서 그룹의 주력사로 성장하게 됩니다.
1958
[스트레치 나일론 공장 준공]
가공 기술의 집약체인 스트레치 나일론사 제조 공장을 완공하며 생산 능력을 갖춥니다. 신축성이 좋은 특수 원사를 생산하여 양말 등 생필품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입니다.
국내 섬유 가공 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는 기술적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대구에 세워진 이 공장은 최신 설비를 갖추고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습니다.
이곳에서 생산된 스트레치 나일론은 전국 양말 공장에 공급되어 의류 혁명을 가속화했습니다.
제조업자로서 코오롱이 품질 관리와 생산 효율화에 눈을 뜨게 된 시기입니다.
1960
[이동찬 대표이사 사장 취임]
이동찬 선대회장이 개명상사의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하며 경영 전면에 나섭니다. 부친의 뜻을 이어받아 상사의 내실을 다지고 해외 수출 기반을 닦는 데 주력합니다.
젊은 경영인의 패기와 혜안으로 회사의 유통 역량을 비약적으로 증대시켰습니다.
이동찬 사장은 현장 중심의 경영을 통해 유통 과정의 비효율을 제거하는 데 힘썼습니다.
그는 전국 대리점주들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탄탄한 영업망을 구축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러한 현장 경험은 훗날 그가 그룹 전체를 이끄는 리더십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협화실업 설립]
건설 및 무역업 확장을 위해 협화실업을 설립하며 사업 다각화의 초석을 다집니다. 이는 현재 코오롱글로벌의 건설 부문과 무역 부문의 초기 모태 중 하나가 됩니다.
섬유 이외의 인프라 및 물류 분야로 시야를 넓히기 시작한 중대한 변화입니다.
협화실업은 다양한 산업 자재의 유통과 소규모 건설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성장했습니다.
그룹의 자본력이 안정화되면서 국가 기간 시설 건설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았습니다.
이 회사의 성장은 코오롱이 종합 그룹으로 발돋움하는 데 중요한 가교 역할을 했습니다.
1963
[국내 최초 나일론 원사 생산]
대구 공장에서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나일론 원사 자체 생산에 성공합니다. 수입에만 의존하던 섬유 소재를 직접 뽑아내며 산업 보국의 꿈을 실현합니다.
이로써 한국은 섬유 원사 제조국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하며 수출 한국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기계가 돌아가며 투명한 원사가 뽑혀 나오자 공장은 환호성으로 가득 찼습니다.
이원만 회장은 기념사를 통해 '동포들에게 헐하고 질긴 의복을 입히겠다'는 감동적인 포부를 밝혔습니다.
이 성공은 코오롱이 국내 섬유 시장의 압도적인 리더로 자리 잡는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1968
[코오롱상사 설립]
유통과 패션 사업을 전문화하기 위해 코오롱상사를 주식회사 형태로 설립합니다. 가공된 원사를 활용한 완제품 의류 사업과 글로벌 무역 비즈니스를 본격적으로 결합합니다.
전문적인 마케팅 시스템을 도입하여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데 주력했습니다.
코오롱상사는 단순 유통을 넘어 브랜드 기획과 디자인 역량을 강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국내 시장의 패션 트렌드를 선도하며 고품질의 의류를 대중에게 선보였습니다.
해외 지사들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국산 의류의 글로벌 진출 가능성을 타진한 시기입니다.
1969
[한국포리에스텔 설립]
나일론에 이어 폴리에스테르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한국포리에스텔을 설립합니다. 합성 섬유의 양대 산맥인 두 소재를 모두 생산하는 종합 화학 섬유 기업으로 도약합니다.
글로벌 화학 기업들과의 기술 제휴를 통해 생산 설비의 선진화를 꾀했습니다.
폴리에스테르는 나일론보다 용도가 더 광범위하여 그룹의 매출 성장에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울산과 구미 등 주요 산업 단지에 거점을 마련하고 대규모 생산 라인을 구축했습니다.
이로써 코오롱은 화학 소재 분야에서 독보적인 포트폴리오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1970
[코오롱인더스트리(나일론) 대표 취임]
이동찬 선대회장이 나일론 부문의 대표이사로 취임하며 제조 현장의 책임 경영을 강화합니다. 현장 근로자들과 소통하며 생산 효율성을 높이고 품질 제일주의 원칙을 세웁니다.
회사의 성장 동력을 제조 경쟁력에서 찾으려는 그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되었습니다.
이동찬 대표는 공장 곳곳을 돌며 설비를 직접 점검하고 작업 환경 개선에 힘썼습니다.
그의 솔선수범하는 자세는 임직원들에게 큰 귀감이 되어 노사 화합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품질에 대한 타협 없는 고집은 코오롱 제품이 시장에서 신뢰받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습니다.
1971
[구미공단 1호 입주 기업]
국가 산업 단지인 구미공단에 1호로 입주하며 대규모 생산 거점을 확보합니다. 이는 정부의 수출 주도형 경제 발전 정책에 코오롱이 가장 적극적으로 화답한 사례입니다.
구미공장의 대규모 설비 가동은 그룹의 생산량을 비약적으로 증대시키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최첨단 시설을 갖춘 구미공장은 코오롱의 주력 제품인 나일론과 폴리에스테르의 생산 기지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며 구미 지역 사회 발전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현재까지도 구미공장은 코오롱인더스트리의 핵심 생산 인프라로서 기능하고 있습니다.
[최초 해외지사 설립]
오사카, 홍콩, 뉴욕 등에 최초의 해외 지사들을 설립하며 글로벌 경영의 닻을 올립니다. 국산 섬유 원사와 의류를 전 세계 시장에 직접 판매하겠다는 포부를 실행에 옮깁니다.
한국 기업의 위상을 해외에 알리는 민간 외교관의 역할도 병행하게 됩니다.
세계 경제의 중심지인 뉴욕과 아시아의 거점인 홍콩에 지사를 세워 시장 정보를 빠르게 흡수했습니다.
수출 물량을 대폭 늘리며 '수출 한국'의 선봉장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현지 바이어들과의 파트너십을 강화하여 코오롱의 인지도를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렸습니다.
1973
[코오롱스포츠 탄생]
국내 최초의 전문 아웃도어 브랜드인 코오롱스포츠를 런칭하며 레저 문화의 새 지평을 엽니다. 당시 생소했던 고기능성 등산 의류와 캠핑 장비를 선보여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라는 가치를 담은 상록수 로고가 대중에게 처음 공개되었습니다.
코오롱스포츠는 한국의 지형과 기후에 최적화된 등산 장비를 개발하여 등산인들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기술력과 패션을 결합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여 대한민국 아웃도어 시장의 전설이 되었습니다.
단순한 의류 브랜드가 아닌 한국의 야외 활동 문화를 만든 선구자적인 브랜드로 평가받습니다.
1975
[양사 기업 공개 및 주식 상장]
한국나이롱과 한국포리에스텔이 동시에 기업 공개를 단행하고 주식 시장에 상장합니다. 투명한 경영을 약속하고 국민들로부터 직접 자본을 조달하는 공개 기업으로 변모합니다.
조달된 자금은 대규모 공장 증설과 미래 신소재 연구 개발에 집중 투입되었습니다.
기업 공개는 코오롱이 가족 중심의 경영을 넘어 사회적 기업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주주들에게 수익을 배분하고 투명한 재무 구조를 확립하는 현대적 경영의 기틀을 닦았습니다.
상장을 통해 확보된 자본력은 그룹이 종합 화학 대기업으로 도약하는 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1976
[코오롱유화 설립 및 석유수지 생산]
정밀 화학 분야 진출을 위해 코오롱유화를 설립하고 국내 최초로 석유수지 생산에 성공합니다. 섬유의 상류 원료 산업까지 진출하여 수직 계열화를 완성하려는 전략적 포석입니다.
수입에 의존하던 핵심 화학 소재를 국산화하여 국내 산업 경쟁력을 높였습니다.
석유수지는 타이어, 접착제 등 다양한 산업군에 필수적인 소재로 고도의 기술력이 요구됩니다.
코오롱유화의 성공은 그룹이 소재 전문 기업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세계 시장 점유율 상위권을 기록하며 글로벌 화학 시장의 주역으로 우뚝 섰습니다.
1977
[주식회사 코오롱으로 상호 변경]
한국나이롱과 한국포리에스텔을 통합하여 '주식회사 코오롱'으로 사명을 변경합니다. 파편화된 기업 이미지를 코오롱이라는 단일 브랜드로 결집시키는 상징적인 조치입니다.
브랜드 가치를 극대화하고 종합 소재 기업으로서의 이미지를 확고히 했습니다.
사명 변경을 통해 대외적인 신인도를 높이고 계열사 간의 시너지를 도모했습니다.
KOLON이라는 이름이 주는 신뢰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사업 영역을 전방위로 넓혔습니다.
이는 훗날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되는 과정에서도 그룹의 중심 축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이동찬 선대회장 그룹 회장 취임]
이동찬 선대회장이 코오롱그룹의 회장으로 취임하며 본격적인 2세 경영 시대를 엽니다. 그는 '기다림과 나눔'의 철학을 바탕으로 그룹의 내실을 다지고 외연을 확장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그의 리더십 아래 코오롱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굴지의 대기업 집단으로 성장했습니다.
회장 취임 후 그는 노사 관계 안정화와 기술 혁신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습니다.
권위적인 총수의 모습이 아닌 임직원들과 소통하는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조직을 이끌었습니다.
이 시기 코오롱은 화학, 건설, 레저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다각화하며 전성기를 구상했습니다.
1978
[경주 코오롱호텔 개관]
관광 및 레저 산업에 진출하기 위해 경주에 코오롱호텔을 정식으로 개관합니다. 제조업을 넘어 고객에게 쉼과 문화를 제공하는 서비스 분야로 사업의 지평을 넓혔습니다.
당시 지방 호텔 중 최고 수준의 시설을 갖추어 관광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천년 고도 경주를 찾는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품격 있는 휴식 공간을 제공했습니다.
호텔 사업의 성공은 향후 리조트, 골프장 등 그룹의 레저 비즈니스가 확장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지역 사회의 문화적 가치를 높이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상생의 모델로도 평가받습니다.
1981
[오운문화재단 설립]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사회공헌 재단인 오운문화재단을 설립합니다. 이동찬 회장의 아호인 '오운(五雲)'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복지 및 장학 사업을 체계화했습니다.
'벌어서 남 주자'는 나눔의 경영 철학을 실천하는 핵심적인 기구가 되었습니다.
오운문화재단은 소외된 이웃을 돕고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매년 '우정선행상'을 통해 우리 사회의 숨은 봉사자들을 발굴하고 시상하며 따뜻한 공동체 형성에 기여합니다.
코오롱그룹이 추구하는 지속 가능한 상생 경영의 상징적인 이정표입니다.
1982
[국내 최초 인조잔디 생산]
섬유 기술을 응용하여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인조잔디 생산에 성공합니다. 스포츠 인프라의 현대화를 이끌고 다양한 경기장 조성에 필수적인 소재를 국산화했습니다.
국내 기술력으로 천연잔디의 한계를 극복하고 레저 산업의 효율성을 높였습니다.
코오롱이 생산한 인조잔디는 내구성과 탄성이 뛰어나 전국 축구장과 야구장에 보급되었습니다.
수입 소재를 대체함으로써 외화 절감에 기여하고 국내 스포츠 수준을 향상시켰습니다.
이후 친환경 무충진 시스템 등 혁신 기술로 발전하며 현재까지도 시장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취임]
이동찬 선대회장이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의 회장으로 추대되어 재계 리더로서 활동합니다. 노사 화합과 합리적인 경영 환경 조성을 위해 헌신하며 국가 경제 발전에 이바지했습니다.
특유의 포용력으로 노사정 대타협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는 회장 재임 기간 동안 '노사분규 없는 기업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주력했습니다.
경영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면서도 근로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균형 잡힌 시각을 견지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재계뿐만 아니라 노동계로부터도 깊은 존경을 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1983
[삼영신약 인수 (현 코오롱제약)]
의약품 분야 진출을 위해 삼영신약을 인수하고 바이오·헬스케어 사업의 싹을 틔웁니다. 정밀 화학의 연장선상에서 생명 공학 기술력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선택입니다.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제약 기업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인수 후 적극적인 시설 투자와 연구 개발 지원을 통해 제품 라인업을 강화했습니다.
특히 호흡기 및 소화기 질환 치료제 분야에서 강점을 보이며 시장 점유율을 높였습니다.
이후 코오롱제약으로 사명을 변경하며 그룹의 헬스케어 사업 중심 축으로 성장했습니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 회장 취임]
이동찬 선대회장이 섬유 업계의 수장인 한국섬유산업연합회 회장을 맡아 산업 전반을 이끕니다. 한국 섬유 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도록 정책적 지원과 기술 교류를 주도했습니다.
'섬유 보국'의 신념을 업계 전체로 확산시킨 중대한 시기입니다.
그는 섬유 산업을 국가의 기간 산업으로 확고히 자리 잡게 하기 위해 다양한 진흥책을 제시했습니다.
해외 선진 섬유 단체들과의 교류를 통해 국산 섬유의 수출 길을 넓히는 데 기여했습니다.
그의 헌신은 한국 섬유가 세계 3대 수출국으로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985
[대한골프협회 회장 취임]
이동찬 선대회장이 대한골프협회 회장에 취임하며 한국 골프 대중화와 인재 양성에 힘씁니다. 그는 직접 대회를 유치하고 선수들을 후원하며 한국 골프의 저력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특히 엘리트 선수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이 즐길 수 있는 골프 문화를 전파했습니다.
그의 각별한 골프 사랑은 국가대표 선수들의 실력 향상으로 이어지는 체계적인 지원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 골프가 현재 세계적인 위상을 갖추게 된 배경에는 그의 선구적인 공헌이 큽니다.
코오롱은 현재까지도 '코오롱 한국오픈' 등을 통해 골프 발전에 지속적으로 기여하고 있습니다.
1987
[코오롱세이렌 설립 (현 코오롱글로텍)]
자동차 인테리어 소재 사업을 전문화하기 위해 일본 세이렌사와 합작하여 코오롱세이렌을 설립합니다. 자동차 시트 원단 등 고기능성 생활 소재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하기 시작했습니다.
소재의 질감을 고도화하여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파트너로 성장하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이 회사는 이후 코오롱글로텍으로 발전하며 자동차 내장재 분야의 글로벌 강자가 되었습니다.
감성 품질을 중시하는 자동차 산업의 흐름에 발맞춰 디자인과 기능성을 동시에 잡았습니다.
현재는 카시트 외에도 인조잔디, 복합소재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1990
[코오롱정보통신 설립]
정보화 시대의 흐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코오롱정보통신을 설립합니다. 그룹 내부의 전산 시스템 통합뿐만 아니라 대외 IT 솔루션 사업을 전담하게 되었습니다.
제조업 중심의 그룹 체질에 IT라는 첨단 두뇌를 장착한 중대한 전환점입니다.
초기에는 그룹의 업무 효율화에 집중했으나 점차 시스템 통합(SI) 분야로 영역을 넓혔습니다.
선진 IT 기술을 도입하여 국내 기업들의 디지털 전환을 돕는 선구자적 역할을 했습니다.
훗날 코오롱베니트로 발전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IT 서비스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1992
[코오롱중앙연구소 설립]
R&D 경쟁력 강화를 위해 그룹 차원의 통합 연구 기관인 코오롱중앙연구소를 설립합니다. 신소재, 생명공학, 정보통신 등 미래 유망 분야의 원천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거점을 마련했습니다.
기술 주도형 그룹으로 변모하려는 코오롱의 의지가 반영된 연구 공간입니다.
용인에 세워진 이 연구소는 수많은 우수한 석·박사 인재들을 영입하여 연구에 매진하게 했습니다.
이곳에서의 연구 성과는 훗날 아라미드, 바이오 신약 등 그룹의 핵심 사업으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기술의 시너지를 극대화하여 계열사 간의 벽을 허무는 융합 연구의 요람이 되었습니다.
[체육훈장 '청룡장' 수훈]
이동찬 선대회장이 한국 스포츠 발전에 기여한 지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체육훈장 최고 등급인 청룡장을 받습니다. 그는 농구, 골프, 마라톤 등 다양한 종목을 후원하며 비인기 종목의 활성화에도 힘썼습니다.
기업의 이윤을 사회의 건강한 문화로 환원하려는 그의 진심이 국가적으로 인정받은 결과입니다.
특히 '코오롱 구간마라톤대회'를 창설하여 마라톤 꿈나무들을 길러내는 데 정성을 쏟았습니다.
그의 후원 덕분에 한국 육상은 세계적인 선수를 배출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스포츠를 통해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했던 그의 순수한 열정은 대중의 깊은 공감을 샀습니다.
1994
[국내 최초 Car 에어백 생산]
자동차 안전의 핵심 부품인 에어백 원단을 국내 최초로 생산하며 자동차 소재 사업을 고도화합니다. 나일론 가공 기술의 정수를 보여준 사례로 안전이 중시되는 글로벌 표준을 충족했습니다.
이로써 국산 자동차의 안전 수준을 높이고 부품 국산화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에어백은 생명과 직결되는 부품인 만큼 극도의 품질 관리가 요구되는 분야입니다.
코오롱은 까다로운 국제 인증을 모두 통과하며 글로벌 완성차 메이커들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현재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세계 에어백 쿠션 시장 점유율 1위권의 글로벌 강자로 자리 잡았습니다.
[국내 최초 인공피혁 생산]
고급 소재 기술인 인공피혁(샤무드)을 국내 최초로 개발하고 대량 생산 체제를 구축합니다. 천연 가죽의 한계를 넘어서는 기능성과 심미성을 갖춘 신소재를 세상에 선보였습니다.
의류, 가구, 자동차 인테리어 등 다양한 산업군에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했습니다.
샤무드는 내구성이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촉감을 유지하여 프리미엄 브랜드들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동물의 가죽을 대체하는 친환경적인 측면에서도 주목받으며 글로벌 수출량이 급증했습니다.
이 소재의 성공은 코오롱이 감성 소재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임을 입증한 사례입니다.
[김천 폴리에스터 공장 준공]
경상북도 김천에 최신 설비를 갖춘 대규모 폴리에스터 생산 공장을 완공합니다. 폭증하는 글로벌 수요에 대응하고 생산 공정의 자동화를 통해 원가 경쟁력을 확보했습니다.
코오롱의 소재 생산 능력을 한 차원 끌어올린 중요한 인프라 투자입니다.
김천 공장은 환경 오염을 최소화하는 친환경 설비와 높은 생산성을 동시에 갖춘 모델 공장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생산된 고품질 원사는 전 세계 패션 시장으로 수출되어 국위 선양에 기여했습니다.
지역 고용 창출과 경제 활성화에도 이바지하며 상생하는 공장의 표본이 되었습니다.
1996
[KTP 설립 (현 코오롱플라스틱)]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전문 기업인 KTP를 설립하며 고성능 플라스틱 소재 시장에 진출합니다. 금속을 대체하는 가볍고 강한 플라스틱을 통해 자동차 및 전자 부품의 경량화를 주도했습니다.
글로벌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시장의 리더로 성장하기 위한 중요한 첫걸음입니다.
인천과 김천에 거점을 마련하고 고도의 화학 합성 기술을 바탕으로 제품군을 확대했습니다.
전기·전자 부문의 정밀 부품 소재로 각광받으며 글로벌 IT 기업들에 제품을 공급했습니다.
훗날 코오롱플라스틱으로 이름을 바꾸며 그룹의 핵심 소재 사업의 한 축으로 우뚝 섰습니다.
[이동찬 선대회장 명예회장 추대]
이동찬 선대회장이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나 명예회장으로 추대되며 2선으로 물러납니다. 그는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를 돕고 원로로서 그룹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후배 경영진들에게 자율권을 주면서도 지혜를 나누어주는 스승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명예회장으로서 대외 활동과 사회 공헌 사업에 더욱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다림과 나눔'이라는 자신의 좌우명을 실천하며 아름다운 은퇴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품격 있는 승계는 코오롱이 내부적인 갈등 없이 재도약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이웅열 그룹 회장 취임]
이웅열 회장이 코오롱그룹의 3대 회장으로 취임하며 공격적인 혁신 경영을 선포합니다. 그는 'One&Only'라는 경영 방침을 내걸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급변하는 글로벌 경쟁 환경 속에서 젊고 역동적인 리더십으로 그룹의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이웅열 회장은 취임 직후 사업 구조의 과감한 재편과 미래 신사업 발굴에 역량을 집중했습니다.
바이오, 우주 항공, 고기능성 소재 등 첨단 산업으로 그룹의 체질을 개선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그의 혁신 정신은 코오롱이 IMF 외환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1997
[세계 최초 수첨수지 개발 생산]
정밀 화학의 꽃이라 불리는 수첨 석유수지 생산 기술을 세계 최초로 독자 개발하고 양산합니다. 냄새가 없고 무색투명한 고품질 수지를 통해 글로벌 시장의 독보적인 지위를 확보했습니다.
고도의 촉매 기술과 공정 제어 기술이 집약된 코오롱 화학 기술의 결정체입니다.
위생용품과 고급 포장재 등에 필수적인 이 소재는 글로벌 바이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해외 경쟁사들보다 앞선 기술력을 선보이며 한국 정밀 화학의 수준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이 제품은 현재까지도 코오롱인더스트리의 주력 수익원으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과천 코오롱타워 준공]
경기도 과천에 그룹의 통합 사옥인 코오롱타워를 준공하고 과천 시대를 엽니다. 계열사들이 한곳에 모여 소통과 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물리적인 통합 거점을 마련했습니다.
자연 친화적인 설계와 첨단 오피스 시스템을 도입하여 선진적인 근무 환경을 조성했습니다.
과천 사옥은 코오롱의 아이덴티티를 담은 상징적인 건축물로서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계열사 간의 벽을 허무는 융합 경영의 시도가 이곳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20여 년간 코오롱의 핵심 전략이 수립되고 실행되는 그룹의 두뇌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1998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 구축]
금융감독원의 전자공시시스템(DART)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중책을 맡아 IT 기술력을 증명합니다. 이는 한국 자본 시장의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높인 국가적 인프라 사업입니다.
코오롱정보통신의 시스템 통합 역량이 공공 분야에서 빛을 발한 사례입니다.
모든 기업의 정보를 온라인으로 실시간 조회할 수 있는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구현해 냈습니다.
이 성공적인 프로젝트 수행은 코오롱이 IT 전문 기업으로서 신뢰를 얻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수많은 공공 및 금융 기관의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POM 상업생산 개시 (KOCETAL®)]
고기능성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인 POM의 상업 생산을 시작하며 글로벌 소재 시장을 선도합니다. KOCETAL®이라는 독자 브랜드를 런칭하여 전 세계 부품 시장 공략에 나섰습니다.
금속처럼 단단하면서도 가공이 쉬운 특성으로 자동차 및 가전 부품 시장의 혁신을 이끌었습니다.
코오롱의 POM은 엄격한 품질 관리를 통해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표준 소재로 채택되었습니다.
생산 라인의 효율화를 통해 글로벌 가격 경쟁력까지 갖추며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키워갔습니다.
이 기술력은 현재 세계 시장에서 손꼽히는 생산 규모와 품질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1999
[퇴행성 관절염 유전자 치료제 개발 개시]
미국에 티슈진을 설립하고 세계 최초의 퇴행성 골관절염 세포유전자 치료제 개발에 착수합니다. 이는 그룹의 미래를 생명공학에 걸겠다는 이웅열 회장의 강력한 의지가 담긴 도전입니다.
화학 소재 기업을 넘어 바이오 혁신 기업으로 변모하려는 대담한 행보의 시작입니다.
당시에는 생소했던 유전자 치료 분야에 과감히 뛰어들어 원천 기술 확보에 매진했습니다.
글로벌 임상을 위해 미국 법인을 세우고 세계적인 과학자들과 협력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훗날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코오롱 바이오 사업의 상징적 과제가 되었습니다.
[㈜라이거시스템즈 설립 (현 코오롱베니트)]
글로벌 IT 기업들과의 제휴를 통해 라이거시스템즈를 설립하고 IT 서비스 전문성을 고도화합니다. 시스템 통합(SI)과 IT 컨설팅 분야에서 차별화된 솔루션을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조업 중심의 그룹 내부 프로세스를 디지털로 혁신하는 중추적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 회사는 이후 코오롱베니트로 발전하며 그룹의 디지털 전환(DX)을 주도하게 됩니다.
국내외 유수의 기업들에게 스마트 팩토리, 빅데이터 솔루션을 제공하는 핵심 파트너로 성장했습니다.
기술과 비즈니스를 잇는 교량으로서 그룹의 지식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2000
[티슈진아시아 설립]
아시아 시장의 바이오 사업 거점인 티슈진아시아를 설립하며 신약 개발의 보폭을 넓힙니다. 미국 법인과 협력하여 아시아인의 특성에 맞는 치료제 임상과 인허가를 준비했습니다.
바이오 사업의 글로벌 밸류체인을 완성하려는 체계적인 경영 전략의 일환입니다.
국내 우수 연구 인력들을 집중 배치하여 파이프라인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주력했습니다.
이 회사는 이후 코오롱티슈진으로 성장하며 유전자 치료제 분야의 선두 주자로 자리 잡았습니다.
코오롱이 추구하는 미래 가치가 바이오 분야에서 구체화되기 시작한 시기입니다.
2004
[코오롱웰케어 설립]
헬스케어 유통 전문 기업인 코오롱웰케어를 설립하고 드럭스토어 사업에 진출합니다. 치료를 넘어 예방과 관리를 아우르는 토털 헬스케어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하고자 했습니다.
고객의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케어하는 브랜드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시작했습니다.
전통적인 제약 사업의 한계를 넘어 소비자 밀착형 건강 관리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고품질의 건강기능식품과 뷰티 제품을 런칭하며 시장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이후 이 분야의 노하우는 그룹의 다양한 서비스 비즈니스와 결합하여 시너지를 냈습니다.
2005
[국내 최초 파라아라미드 섬유 사업화]
강철보다 강하고 열에 강한 꿈의 소재인 파라아라미드 섬유를 국내 최초로 사업화합니다. 고도의 기술 장벽이 존재하던 특수 섬유 시장에 한국의 기술력을 당당히 각인시켰습니다.
방탄복, 타이어 보강재, 광케이블 등 첨단 산업의 핵심 소재를 공급하게 되었습니다.
코오롱인더스트리의 아라미드 브랜드 '헤라크론'은 글로벌 시장에서 높은 신뢰를 얻었습니다.
생산 설비 증설을 통해 전 세계적인 공급 부족 사태에 기민하게 대응하며 매출을 키웠습니다.
이 성공은 코오롱이 글로벌 딥테크 기업으로 인정받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6
[신비전 'Lifestyle Innovator' 선포]
고객의 삶을 혁신하는 동반자가 되겠다는 'Lifestyle Innovator' 비전을 대내외에 선포합니다. 단순한 제품 공급자가 아닌 고객의 생활 양식 자체를 변화시키는 기업이 되겠다는 선언입니다.
그룹의 모든 사업 영역을 고객 가치 중심으로 정렬시키려는 경영 철학의 집약입니다.
패션, 소재, 건설 전 분야에서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혁신을 시작했습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결합하여 삶의 질을 높이는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이 비전은 현재까지도 코오롱이 추구하는 고객 지향적 경영의 핵심 가이드가 되고 있습니다.
[코오롱생명과학 출범]
바이오와 원료 의약품 사업을 통합하여 코오롱생명과학을 공식 출범시킵니다. 그룹 내 분산되어 있던 생명과학 역량을 결집시켜 시너지를 극대화하려는 조치입니다.
글로벌 바이오 시장 공략을 위한 주력 함대를 띄운 것과 다름없는 중대 사건입니다.
일본 등 해외 시장에 원료 의약품을 대규모로 수출하며 실질적인 수익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동시에 세포 유전자 치료제의 상업화를 위한 연구 개발의 핵심 기지로 기능했습니다.
바이오 부문의 전문 경영 체제를 확립하여 신약 개발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데 주력했습니다.
2007
[덕평자연휴게소 개장]
국내 최초의 테마형 프리미엄 휴게소인 덕평자연휴게소를 개장하여 휴게소 문화의 혁신을 이끕니다. 단순히 거쳐 가는 곳이 아닌 머물며 즐기는 문화 공간으로 휴게소를 재정의했습니다.
환경 친화적인 설계와 다양한 쇼핑·식음료 시설을 갖추어 전국 최고의 인기를 얻었습니다.
애견 파크와 산책로 등 차별화된 콘텐츠를 통해 고객들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제공했습니다.
코오롱의 서비스 경영 철학이 유통·레저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구현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후 수많은 수상이 이어지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답고 성공적인 휴게소 모델로 자리 잡았습니다.
2010
[㈜코오롱 지주회사 출범]
투명한 지배구조 확립과 책임 경영을 위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고 (주)코오롱을 공식 출범시킵니다. 사업 부문과 투자 부문을 분리하여 경영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높였습니다.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선진적인 기업 지배구조를 갖춘 역사적 순간입니다.
지주사는 그룹의 중장기 비전을 수립하고 자회사들은 사업 본연의 경쟁력 강화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순환 출자 고리를 해소하여 주주 가치를 제고하고 대외적인 신인도를 상승시켰습니다.
이후 코오롱은 더욱 기민하고 유연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미래 신사업 투자를 가속화했습니다.
2012
[업사이클링 패션 브랜드 RE;CODE 런칭]
지속 가능한 패션을 위해 국내 최초의 업사이클링 전문 브랜드 RE;CODE를 공식 런칭합니다. 재고 의류를 해체하고 재조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지닌 패션 아이템으로 탄생시키는 혁신을 보여주었습니다.
패션 산업의 환경적 책임을 통감하고 대안을 제시한 선구자적인 행보입니다.
RE;CODE는 디자인적 우수성을 인정받아 세계 유수의 패션 위크와 전시회에 초대받았습니다.
단순한 환경 캠페인을 넘어 수익성을 갖춘 비즈니스 모델로서의 가능성을 입증했습니다.
코오롱이 추구하는 환경 경영(ESG)의 진심이 담긴 상징적인 브랜드로 평가받습니다.
2013
[수소 연료전지 수분제어장치 양산 개발]
세계 최초로 수소 연료전지의 핵심 부품인 수분제어장치 개발에 성공하고 양산을 시작합니다. 이는 코오롱의 섬유 및 화학 기술력이 수소 에너지라는 미래 영역으로 확장된 쾌거입니다.
수소차의 효율을 높이는 필수 소재를 공급하며 수소 경제의 핵심 주역으로 떠올랐습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의 협력을 통해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고도의 분리막 기술을 바탕으로 습도를 미세하게 조절하는 원천 기술을 확보했습니다.
이 기술력은 현재까지도 코오롱이 수소 밸류체인의 강자로 군림하는 든든한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2015
[커먼그라운드 개장]
서울 건대입구에 국내 최초의 팝업 컨테이너 쇼핑몰인 커먼그라운드를 개장하며 유통 시장의 파격을 선사합니다. 200여 개의 대형 컨테이너를 활용한 독창적인 건축 디자인으로 젊은 층의 핫플레이스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쇼핑 문화를 창조하려는 코오롱의 실험 정신이 돋보인 공간 혁신 사례입니다.
기존 백화점과는 다른 감각적인 매장 구성과 스트리트 문화를 접목하여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지역 사회의 버려진 공간을 재생시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한 도시 재생의 모범 사례로 꼽힙니다.
이후 전 세계적인 건축 상을 휩쓸며 코오롱의 공간 기획 능력을 세계에 과시했습니다.
2018
[마곡 코오롱 One&Only타워 준공]
서울 마곡 산업단지에 그룹의 새로운 미래를 책임질 원앤온리 타워를 준공하고 입주를 완료합니다. 계열사 간의 벽을 허물고 연구와 비즈니스가 융합되는 스마트 오피스를 구현했습니다.
'세상에 하나뿐인 가치'를 창조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그룹의 새로운 심장부입니다.
세계적인 건축가 톰 메인의 설계로 지어진 이 건물은 창의적인 소통이 가능하도록 공간이 설계되었습니다.
첨단 에너지 절감 기술이 적용된 친환경 빌딩으로서 코오롱의 기술력을 집약한 건축물입니다.
R&D 인력들이 한곳에 모여 시너지를 내면서 미래 신소재 개발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졌습니다.
2019
[CPI 세계 최초 양산 개시]
폴더블 폰의 핵심 소재인 투명 폴리이미드(CPI) 필름을 세계 최초로 양산하며 디스플레이 시장의 혁명을 이끕니다. 유리의 투명함과 플라스틱의 유연함을 동시에 갖춘 혁신 소재를 상용화했습니다.
차세대 스마트폰 시장의 소재 패러다임을 선도하며 압도적인 기술 우위를 증명했습니다.
수년간의 끈질긴 연구 개발 끝에 양산에 성공하여 글로벌 스마트폰 제조사들에 공급을 시작했습니다.
일본의 수출 규제 국면에서도 국산 소재의 자존심을 지키며 공급 안정화에 기여했습니다.
이 기술력은 웨어러블 기기 등 미래 IT 기기 전반으로 확장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2020
[수소차용 멤브레인 양산 체제 구축]
수소 연료전지의 심장이라 불리는 고분자 전해질막(PEM) 양산 설비를 구축하고 본격 가동에 들어갑니다. 수소 경제 활성화를 위한 핵심 부품의 국산화를 가속화한 중대한 성과입니다.
청정 에너지 시장의 글로벌 공급망에서 코오롱의 영향력을 결정적으로 강화했습니다.
수소차 부품 시장에서 멤브레인과 수분제어장치를 동시에 공급할 수 있는 독보적 지위를 확보했습니다.
탄소 중립 실현을 위한 친환경 에너지 소재 기업으로서의 포트폴리오를 완성했습니다.
지속적인 기술 고도화를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수소 에너지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2021
[주민 참여형 풍력발전 단지 완공]
국내 최초로 지역 주민들이 직접 투자하고 수익을 나누는 참여형 풍력발전 단지 1단계를 완공합니다. 재생 에너지 사업과 지역 상생을 결합한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코오롱글로벌의 건설 역량과 환경 가치가 만난 성공적인 ESG 경영 사례입니다.
주민들의 반대를 극복하고 이익 공유를 통해 민관 상생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었습니다.
청정 에너지를 생산하며 탄소 중립 목표 달성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이 모델은 향후 다른 지역의 풍력 및 태양광 발전 사업으로 확대 적용될 예정입니다.
2023
[코오롱모빌리티그룹 출범]
수입차 유통 및 모빌리티 서비스를 전문화하기 위해 코오롱모빌리티그룹을 공식 출범시킵니다. 급변하는 미래 이동 수단 시장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고객 경험을 고도화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수입차 유통 1위의 저력을 바탕으로 디지털 기반의 모빌리티 플랫폼 기업으로 진화합니다.
기존 코오롱글로벌에서 인적 분할하여 경영의 효율성과 전문성을 극대화했습니다.
BMW, 아우디, 볼보 등 프리미엄 브랜드 네트워크를 통합하여 압도적인 시장 경쟁력을 확보했습니다.
단순 판매를 넘어 구독 서비스, 케어 서비스 등 차세대 모빌리티 솔루션을 전방위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2024
[코오롱스페이스웍스 설립]
미래 우주·항공 및 특수 복합소재 사업을 전담할 코오롱스페이스웍스를 설립하고 첨단 산업에 진입합니다. 그룹의 소재 기술력을 극한의 환경인 우주와 항공 분야로 확장하려는 야심찬 계획입니다.
뉴스페이스 시대를 맞아 혁신적인 복합재 솔루션을 제공하는 글로벌 리더를 꿈꿉니다.
가벼우면서도 강한 탄소 섬유 및 특수 복합재 기술을 바탕으로 항공기 및 위성 부품 시장을 공략합니다.
기존 방산 및 우주 관련 역량을 하나로 모아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미래 먹거리로서 우주 산업을 그룹의 새로운 성장 축으로 키워나가겠다는 의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