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대학교 어바인
1965년 오렌지 카운티의 광활한 목초지 위에 세워진 캘리포니아 대학교 어바인(UCI)은 짧은 역사 속에서도 두 개의 노벨상을 동시에 배출하며 세계적 수준의 연구 대학으로 급성장했습니다. 윌리엄 페레이라의 미래지향적 마스터 플랜에 따라 설계된 원형 캠퍼스는 학문 간의 벽을 허무는 혁신의 상징이 되었으며, 지구 온난화의 원인을 밝혀낸 오존층 연구부터 최첨단 의학 및 법학 교육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당면 과제를 해결하는 선봉에 서 있습니다. 개미핥기(Anteater)라는 독특한 마스코트 아래 자유롭고 도전적인 학풍을 이어가며, 공립 교육의 가치를 실현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퍼블릭 아이비' 대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연표
1957
[신규 캠퍼스 필요성 제기]
캘리포니아 대학교 시스템은 전후 베이비붐 세대의 폭발적인 입학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새로운 캠퍼스 설립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로스앤젤레스 인근 지역의 교육 인프라 확충을 위한 전략적 결정이었습니다. 이 계획은 훗날 오렌지 카운티의 지형을 바꿀 거대 프로젝트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1950년대 당시 캘리포니아 정부는 고등 교육 마스터 플랜에 따라 대학 교육 기회를 대폭 확대하고자 했습니다.
로스앤젤레스 주변 지역 중에서도 인구 증가세가 가팔랐던 오렌지 카운티가 최적의 후보지로 떠올랐습니다.
기존의 UCLA와 UC 리버사이드를 보완하면서도 독자적인 연구 역량을 갖춘 캠퍼스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습니다.
1959
[어바인 목장 부지 선정]
오렌지 카운티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광활한 농업 지대인 어바인 목장이 새로운 캠퍼스 부지로 최종 선정되었습니다. 성장하는 인구를 수용하고 주변 지역과의 시너지를 내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로 평가받았습니다. 계획 도시인 어바인 시의 탄생을 예고하는 결정이었습니다.
어바인 컴퍼니가 소유한 광대한 부지 중 일부가 대학 건립을 위해 할당되었습니다.
선정 위원회는 이 부지가 로스앤젤레스와 샌디에이고 사이의 핵심 거점이 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이곳은 단순한 학교 부지를 넘어 주변 지역 전체를 마스터 플랜 하에 개발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었습니다.
1960
[1달러의 역사적 거래]
어바인 컴퍼니는 대학 설립을 위해 1,000에이커의 땅을 단돈 1달러에 캘리포니아 대학교에 매각했습니다. 공공 기관에 대한 직접 기부를 금지하는 회사 방침을 우회하기 위한 상징적인 거래였습니다. 이 파격적인 결정으로 UCI 캠퍼스의 물리적 토대가 마련되었습니다.
당시 어바인 컴퍼니는 지역 사회의 발전을 위해 대학 유치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습니다.
형식상 매매 계약이었으나 사실상의 무상 기증으로, 대학과 기업의 강력한 파트너십을 상징합니다.
이 부지는 현재 캠퍼스의 중앙 녹지인 알드리치 파크를 포함한 핵심 영역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1962
[초대 총장 알드리치 임명]
다니엘 G. 알드리치가 UC 어바인의 초대 총장으로 선임되어 학교의 기틀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대학의 초기 학문적 방향과 캠퍼스의 조경 및 환경 구축에 깊은 관심을 쏟았습니다. 그의 리더십 아래 UCI는 개성 있는 연구 중심 대학으로 성장했습니다.
알드리치 총장은 캠퍼스 내에 지중해성 기후에 적합한 수만 그루의 나무를 심도록 지시했습니다.
그는 대학이 예술적, 환경적, 교육적 목적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가 설계한 학문적 구조는 훗날 UCI가 융합 연구의 메카가 되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UC 어바인 명칭 공식화]
캘리포니아 대학교 이사회는 새로운 캠퍼스의 명칭을 'UC 어바인'으로 공식 확정했습니다. 당시에는 어바인이라는 도시가 존재하지 않았기에 땅 주인인 제임스 어바인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대학의 이름이 훗날 설립될 도시의 이름을 결정하게 된 드문 사례입니다.
대부분의 UC 캠퍼스가 소재지 도시 이름을 따르는 것과 대조적인 결정이었습니다.
어바인 컴퍼니와의 역사적 유대 관계를 상징하는 이름이기도 했습니다.
이후 1971년에 도시가 법인화되면서 대학의 이름을 따서 '어바인 시'가 되었습니다.
1964
[추가 토지 매입 완료]
대학 측은 향후 확장과 주거 및 상업 시설 개발을 위해 510에이커의 토지를 추가로 매입했습니다. 초기 계획보다 더 큰 규모의 캠퍼스 타운을 조성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이로써 캠퍼스는 총 1,500에이커가 넘는 광활한 면적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초기 1,000에이커만으로는 마스터 플랜을 완성하기에 부족하다는 건축가 페레이라의 조언이 있었습니다.
추가 부지는 주로 학생 주거 시설과 연구 단지 조성을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이는 대학이 단순한 교육 공간을 넘어 하나의 자급자족 도시로 성장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존슨 대통령의 기공식 참석]
린든 B. 존슨 미국 대통령이 직접 참석한 가운데 역사적인 UC 어바인 기공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약 15,000명의 인파가 모여 미국 서부의 새로운 지적 거점의 탄생을 축하했습니다. 대통령이 참석한 기공식은 대학의 국가적 중요성을 상징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존슨 대통령은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UCI가 미래 세대를 위한 빛이 될 것임을 강조했습니다.
당시 캠퍼스 부지는 여전히 야생 상태였으나 대통령의 방문으로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날의 행사는 UCI의 권위와 위상을 초기부터 확립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1965
[문리대학 학부 체계 구축]
초대 총장 알드리치는 문리대학을 중심으로 한 초기 학사 운영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생명과학, 예술, 인문학, 물리과학, 사회과학의 5개 부문을 주축으로 학위 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훗날 각 부문이 독립적인 '학교'로 성장하는 모태가 되었습니다.
부총장 이반 힌더레이커가 학술 계획의 주요 저자로 참여하여 기틀을 닦았습니다.
각 부문의 학장들에게 강력한 권한을 부여하여 학문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구조를 채택했습니다.
이러한 분권화된 구조는 UCI가 다른 대학보다 유연하게 융합 연구를 수행할 수 있게 했습니다.
[UC 어바인 공식 개교]
UC 어바인이 1,589명의 학생과 함께 공식적으로 수업을 시작하며 캠퍼스의 역사를 열었습니다. 일부 건물이 아직 건설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첫 학기의 뜨거운 열기가 캠퍼스를 채웠습니다. 샌디에이고, 산타크루즈와 함께 UC의 1960년대 3대 신설 캠퍼스로서의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개교 당시 캠퍼스 완성도는 약 75% 수준이었으며 조경 작업이 한창이었습니다.
초기 학생들은 건설 현장 속에서도 새로운 대학 문화를 창조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첫 수업은 생명과학, 예술, 인문학, 물리과학, 사회과학 등 5개 부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개미핥기 마스코트 탄생]
학생 투표를 통해 '개미핥기(Anteater)'가 대학의 공식 마스코트로 최종 선정되었습니다. 다른 흔한 동물들 대신 독창적이고 개성 있는 캐릭터를 원했던 학생들의 의지가 반영되었습니다. 'Zot!'이라는 구호와 함께 UCI만의 독특한 응원 문화가 형성되었습니다.
당시 인기 만화 'B.C.'에 등장하는 개미핥기 캐릭터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강력한 경쟁 후보였던 독수리나 바다사자 등을 제치고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이후 '피터 더 앤티터(Peter the Anteater)'는 학교의 가장 사랑받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1966
[역사적인 첫 졸업식]
UC 어바인의 첫 번째 졸업식이 거행되어 14명의 학생이 학위를 수여받았습니다. 학사 10명, 석사 3명, 박사 1명으로 구성된 작지만 의미 있는 첫 배출이었습니다. 대학이 공식적인 교육 기관으로서 실질적인 결실을 본 첫 번째 순간이었습니다.
졸업생 수가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전체가 축제 분위기 속에 진행되었습니다.
첫 박사 학위 수여는 UCI의 연구 역량이 초기부터 입증되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졸업생들은 훗날 UCI 동문회의 전설적인 1기 멤버들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1967
[캘리포니아 의대 합병]
1896년 설립된 유서 깊은 캘리포니아 의과대학이 UC 어바인 체계로 정식 합병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UCI는 설립 초기부터 강력한 의학 교육 및 연구 인프라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종합 대학으로서 전문직 교육 과정을 완성하는 중대한 전환점이었습니다.
미국 서남부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의학 전문 교육 기관의 전통을 계승했습니다.
합병 이후 의과대학은 UCI 연구비 수주와 학술적 명성에 핵심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이는 훗날 어바인과 오렌지 지역을 잇는 거대 의료 시스템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학부 분과를 '학교'로 재지정]
UCI 학회는 기존의 학부 부문들을 독립적인 '학교(School)' 체계로 개편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각 학교의 학장들에게 더 큰 자율성을 부여하여 학문의 전문성을 높이려는 조치였습니다. 이는 다른 UC 캠퍼스와 차별화된 UCI만의 행정 구조가 되었습니다.
이전의 거대한 단과대학 시스템보다 유연하고 빠른 의사결정이 가능해졌습니다.
각 학교의 학장들은 부총장에게 직접 보고하며 독립적인 예산과 인사권을 행사했습니다.
이후 UCI의 모든 학문 단위는 이 '학교' 구조를 중심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1968
[정보 및 컴퓨터 과학부 설립]
컴퓨터 과학 분야의 중요성을 예견하고 관련 학부를 독립적으로 설치하여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당시로서는 매우 선구적인 결정으로, 미래 디지털 시대를 준비하는 포석이었습니다. 이 학부는 훗날 도널드 브렌 학부로 명명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됩니다.
초기에는 작은 규모로 시작했으나 하이테크 산업의 성장과 함께 급속히 확장되었습니다.
독립적인 학교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며 컴퓨터 과학 전 분야의 연구를 주도했습니다.
현재 이 학부는 미국 내에서 가장 큰 컴퓨터 과학 관련 학부 중 하나로 성장했습니다.
1969
[첫 NCAA 국가 챔피언십 우승]
UCI 수구 팀이 NCAA 디비전 II에서 국가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하며 스포츠 역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했습니다. 개교한 지 불과 몇 년 만에 거둔 쾌거로 학교의 자부심을 드높였습니다. 이는 UCI가 스포츠 강교로 성장하는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신설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전력을 구축하여 전미 무대를 제패했습니다.
이 우승은 캠퍼스 내 스포츠 열기를 북돋우고 학생들의 소속감을 강화했습니다.
이후 UCI는 9개 종목에서 총 28회의 국가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1970
[중앙 도서관 완공]
캠퍼스의 지적 심장부인 중앙 도서관이 완공되어 학생과 연구자들에게 개방되었습니다. 윌리엄 페레이라의 건축 철학이 담긴 이 건물은 캠퍼스의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현재는 잭 랭슨 도서관으로 불리며 방대한 자료를 소장하고 있습니다.
캠퍼스의 원형 배치를 강조하는 핵심적인 위치에 자리 잡았습니다.
초기 학생들에게 쾌적한 연구 환경과 최신 문헌 자료를 제공하는 보금자리가 되었습니다.
이후 도서관은 디지털 시대를 맞아 방대한 온라인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며 진화했습니다.
[사회생태학부 독립 설립]
인간과 환경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독창적인 학문 분야인 사회생태학부가 창설되었습니다. 범죄학, 심리학, 환경학을 융합한 UCI만의 혁신적인 학풍을 상징하는 학부입니다. 전통적인 분과학문의 경계를 허무는 융합 교육의 선구적 모델이었습니다.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학문적 도구를 결합하는 접근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미국 내에서도 매우 드문 독립된 사회생태학부로서 독자적인 연구 영역을 개척했습니다.
이 학부는 현재까지도 UCI의 가장 인기 있고 영향력 있는 학부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1971
[어바인 시 법인화]
대학의 성장에 발맞춰 주변 지역이 공식적으로 어바인 시로 법인화되었습니다. 대학의 이름이 도시의 이름이 된 역사적인 사건으로, 대학과 도시의 운명 공동체가 형성되었습니다. 대학은 도시 경제의 핵심 엔진이자 중심지로 기능하게 되었습니다.
마스터 플랜에 따라 설계된 도시로서 대학을 중심으로 한 정주 여건을 갖췄습니다.
법인화 이후 어바인 시는 미국에서 가장 안전하고 계획적인 도시 중 하나로 발전했습니다.
대학과 도시는 교육, 문화, 경제 모든 면에서 긴밀하게 협력하는 파트너십을 맺었습니다.
1974
[오존층 파괴 물질 발견]
UCI의 F. 셔우드 롤런드와 마리오 몰리나 교수가 CFC 가스가 오존층을 파괴한다는 사실을 최초로 발견했습니다. 인류의 환경 보호 인식을 완전히 바꾼 전 지구적 발견이었습니다. 이 연구는 훗날 이들에게 노벨 화학상을 안겨주는 영광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냉장고와 스프레이 등에 쓰이던 화학 물질의 위험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했습니다.
초기 학계의 반발을 무릅쓰고 끈질기게 연구를 지속하여 전 세계적 대책 마련을 이끌어냈습니다.
이 발견은 UCI가 지구 시스템 과학 분야에서 세계 최정상의 위상을 확보하게 했습니다.
1975
[어바인 시 공식 설립 완료]
어바인 시가 완전한 자치 도시로서의 지위를 확립하며 법적 절차를 마무리했습니다. 대학 캠퍼스를 품은 광활한 영토가 현대적인 행정 시스템 아래 놓였습니다. UCI는 어바인 시 최대의 고용주이자 문화의 중심지로 확고히 자리 잡았습니다.
어바인 컴퍼니와 시 정부, 대학이 협력하는 독특한 거버넌스 모델이 구축되었습니다.
도시의 성장은 우수한 교수진과 학생들을 유인하는 강력한 배경이 되었습니다.
이 시기부터 어바인 지역은 남부 캘리포니아의 새로운 교육 및 기술 중심지로 부상했습니다.
1976
[오렌지 카운티 의료 센터 인수]
대학은 임상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오렌지 시에 위치한 의료 센터를 공식 인수했습니다. 이후 'UC 어바인 메디컬 센터'로 개칭되어 대학의 주력 병원이 되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와 어바인 캠퍼스를 잇는 의료 연구 네트워크가 완성되었습니다.
기존의 공공 병원을 인수하여 최신 장비와 우수한 인력을 투입해 현대화했습니다.
의과대학 학생들에게 폭넓은 임상 경험을 제공하는 핵심 시설이 되었습니다.
현재 이 센터는 오렌지 카운티 내 유일한 대학 교육 병원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1980
[알드리치 파크 나무 지도 완성]
캠퍼스 중앙 공원인 알드리치 파크에 수만 그루의 나무가 식재되어 울창한 숲을 이뤘습니다. 초대 총장의 유산을 이어받아 생물 다양성이 풍부한 정원으로 거듭났습니다. 이 공원은 학생들에게 안식처이자 캠퍼스의 상징적인 휴식 공간이 되었습니다.
33종의 유칼립투스를 포함하여 캠퍼스 전체에 24,000그루 이상의 나무가 관리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훗날 '트리 캠퍼스 USA'로 지정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알드리치 파크의 원형 배치는 UCI 캠퍼스 디자인의 정수이자 소통의 공간입니다.
1982
[제2대 총장 잭 펠타슨 취임]
헌법 학자이자 행정가인 잭 펠타슨이 UCI의 새로운 총장으로 부임했습니다. 그는 알드리치 총장의 기초 위에 대학의 학술적 수월성을 높이는 데 주력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UCI는 연구와 교육 모든 면에서 한 단계 도약했습니다.
펠타슨 총장은 교수진의 연구 활동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대외적인 학교 홍보를 강화하여 UCI의 브랜드 인지도를 전국 수준으로 올렸습니다.
그는 훗날 캘리포니아 대학교 시스템 전체의 총장으로 발탁될 만큼 탁월한 역량을 보였습니다.
1983
[테니스부 NCAA 디비전 I 우승]
UCI 남자 테니스 팀이 최고 수준인 디비전 I에서 국가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대학 스포츠의 정점에 올랐음을 증명한 쾌거였습니다. 이 사건은 UCI의 스포츠 위상을 전국적인 명문 대학 반열에 올렸습니다.
강력한 사립 대학들을 제치고 공립 대학의 저력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스포츠를 통한 학교의 명성 제고는 우수한 학생들의 유입으로 이어졌습니다.
테니스부는 이후에도 꾸준히 우수한 성적을 내며 UCI의 대표 효자 종목이 되었습니다.
1985
[최초의 '퍼블릭 아이비' 선정]
UCI는 리처드 몰의 저서에서 아이비리그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는 공립 대학으로 선정되었습니다. '퍼블릭 아이비'라는 칭호는 학교의 학문적 권위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이었습니다. 이 선정 이후 UCI의 입학 경쟁률은 비약적으로 상승했습니다.
학비가 저렴하면서도 최고의 교육 환경을 갖춘 대학으로 전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연구 성과와 학생 지원 시스템이 명문 사립 대학에 뒤지지 않음을 입증했습니다.
이후 UCI는 매년 미국 최고의 공립 대학 순위에서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프랭크 게리 설계 건물 수상]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정보 및 컴퓨터 과학 연구동이 권위 있는 건축상을 받았습니다. 캠퍼스 내에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건축 문화가 도입된 사례였습니다. UCI는 학문뿐만 아니라 건축 미학적으로도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진보적인 건축 양식을 반영하여 창의적인 연구 환경을 조성하고자 했습니다.
당시 대학 캠퍼스에서는 보기 드문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 건물은 훗날 더 큰 규모의 시설 확충을 위해 철거되었으나 역사적 유산으로 기록되었습니다.
2004
[어윈 로즈 교수 노벨상 수상]
의과대학의 어윈 로즈 교수가 유비퀴틴을 이용한 단백질 분해 원리를 밝혀낸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받았습니다. 세포의 생명 연장 기전을 규명한 이 연구는 의학계의 혁명이었습니다. UCI의 연구 역량이 다시 한번 전 세계의 정점에 섰습니다.
이 발견은 암과 파킨슨병 등 수많은 질병의 치료제 개발에 직접적인 단서를 제공했습니다.
UCI 소속 교수로서 단독으로 수상하며 학교의 지적 자부심을 드높였습니다.
전 세계 연구자들이 어윈 로즈 교수의 연구실이 있는 UCI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2005
[폴 머레이지 경영대학 명명]
지역 기업가 폴 머레이지의 기부금을 바탕으로 경영대학이 그의 이름을 따서 공식 명명되었습니다. 기업 경영의 혁신과 창업 정신을 교육하는 메카로 거듭났습니다. 실리콘 비치의 경제 성장을 뒷받침하는 인재 양성소가 되었습니다.
대규모 기금은 세계적인 경영학 교수 영입과 최신 연구 시설 확충에 쓰였습니다.
실리콘밸리와 남부 캘리포니아 하이테크 벨트를 연결하는 경영 네트워크를 구축했습니다.
현재 이 대학은 미국 내 가장 혁신적인 경영대학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2010
[어바인 11 사건 논란]
이스라엘 대사의 강연을 방해한 11명의 학생이 징계를 받으며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란이 일었습니다. 이 사건은 대학 내 정치적 의사 표현과 질서 유지 사이의 깊은 갈등을 보여주었습니다. 전국적인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다양한 사회적 담론을 형성했습니다.
학생들의 행동이 정당한 항의인지 학문적 자유 침해인지에 대한 법적 공방이 이어졌습니다.
대학 당국은 학사 규정에 따라 징계를 결정했으나 인권 단체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습니다.
이후 UCI는 캠퍼스 내 대화와 소통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2018
[아야라 이름 삭제 및 사임]
성희롱 혐의가 입증된 유명 생물학자 프란시스코 아야라의 이름이 학교 건물과 도서관에서 삭제되었습니다. 대학은 학문적 성과보다 도덕적 윤리가 우선임을 명확히 하며 그의 사임을 발표했습니다. 성 평등한 캠퍼스 문화를 향한 대학의 강력한 의지였습니다.
내부 조사를 통해 피해자들의 증언이 사실로 확인되자 즉각적인 조치가 취해졌습니다.
그의 기부로 세워진 시설들에서 이름을 지우는 상징적인 결단을 내렸습니다.
이 사건은 미국 대학 사회 전반에 큰 파장을 일으키며 윤리 의식을 일깨웠습니다.
2021
[앤티터 러닝 파빌리온 개관]
최신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능동적 학습' 전용 건물인 앤티터 러닝 파빌리온이 문을 열었습니다. 캘리포니아 최초의 대규모 능동 학습 공간으로, 교육 방식의 혁신을 주도했습니다. 미래형 교실의 표준을 제시하며 학생들의 학습 효율을 높였습니다.
전통적인 강의식 수업에서 벗어나 학생 중심의 협동 학습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건물 전체에 초고속 네트워크와 첨단 멀티미디어 장비가 완비되었습니다.
이 시설의 완공으로 UCI는 디지털 교육 혁명 시대의 리더로 자리매김했습니다.
2023
[연구비 수주 신기록 달성]
UCI는 한 해 동안 총 6억 960만 달러라는 사상 최대의 연구비를 수주하며 연구 활동의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전미 대학 중 연구비 수주 순위 56위에 오르는 쾌거였습니다. 이 자금은 기후 변화, 의료, 기술 전 분야의 혁신 연구에 투입되고 있습니다.
정부 기관뿐만 아니라 민간 기업들의 투자가 비약적으로 증가한 결과입니다.
특히 환경 과학과 바이오 공학 분야에서의 대형 프로젝트 수주가 두드러졌습니다.
강력한 자본력은 전 세계 유능한 연구자들을 UCI로 끌어들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2024
[역대 최다 학생 등록]
가을 학기 기준으로 학부생과 대학원생을 포함해 약 37,297명의 학생이 등록하며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습니다. 매력적인 교육 과정과 안전한 캠퍼스 환경이 학생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UCI는 이제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활발하고 거대한 교육 공동체로 성장했습니다.
전 세계 각국에서 온 유학생들의 비율도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폭증하는 학생 수를 수용하기 위해 캠퍼스 내 거주 시설과 편의 시설을 지속적으로 확충하고 있습니다.
이는 개교 당시 1,500명 수준이었던 대학이 60여 년 만에 이뤄낸 경이로운 성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