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아리 칼초

num_of_likes 89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no image
축구 클럽, 스포츠 팀, 이탈리아 세리에 A 축구 구단

이탈리아 사르데냐 섬 칼리아리를 연고로 하는 축구 클럽입니다. 1920년 창단 이후 주로 세리에 A와 B를 오가며 활약했습니다. 특히 1970년, 전설적인 루이지 리바의 활약으로 세리에 A에서 유일한 우승을 차지하며 클럽 역사상 최고의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1993-94 시즌 UEFA컵 준결승에 진출하며 유럽 무대에서도 뛰어난 성과를 냈습니다. 여러 차례 강등과 승격을 반복하며 팬들의 열정 속에 늘 다시 일어서는 저력을 보여주는 팀입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연표

1920

[칼리아리 칼초 창단]

칼리아리 칼초가 이탈리아 사르데냐 섬 칼리아리에 공식적으로 창단되었습니다.

이탈리아 사르데냐 섬 칼리아리를 연고로 하는 축구 클럽인 칼리아리 칼초가 1920년에 창단되었습니다. 현재는 이탈리아 최상위 리그인 세리에 A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1935

[클럽 재창단]

창단 후 15년 만에 칼리아리 칼초가 재창단되는 과정을 겪었습니다.

칼리아리 칼초는 창단 15년 후인 1935년에 재창단되어, 클럽의 역사를 이어갔습니다.

1951

[세리에 C 첫 챔피언]

칼리아리는 1951-52 시즌 동안 세리에 C에서 명백한 첫 챔피언 자리에 올랐습니다.

과거 세리에 C 챔피언 자리를 다른 팀과 공유하기도 했지만, 1951-52 시즌에 칼리아리가 세리에 C 사상 명백한 첫 단독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이후 1950년대 대부분을 세리에 B에서 보냈습니다.

1964

[세리에 A 첫 승격]

칼리아리 칼초는 1960년대 초 세리에 C로 내려갔다가, 놀라운 반전으로 세리에 A로 승격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1960년대 초 세리에 C로 강등되었던 칼리아리는 1964년에 극적인 승격을 통해 클럽 역사상 처음으로 세리에 A 무대를 밟게 되었습니다.

1967

[북미 리그 참가]

칼리아리는 여름에 United Soccer Association이라는 북미 신생 리그에 '시카고 머스탱스'라는 이름으로 참가했습니다.

1967년 여름, 칼리아리는 유럽과 남미 클럽들이 북미 도시 명칭으로 경기를 치르는 United Soccer Association 리그에 '시카고 머스탱스'라는 이름으로 출전하여 서부 리그에서 13점을 획득했습니다. 로베르토 보닌세냐가 팀의 12경기 중 9경기에서 10골을 넣으며 득점 선두를 차지했습니다.

1969

[세리에 A 준우승]

칼리아리는 1968-1969 시즌 세리에 A 우승 경쟁에서 AC 밀란과 ACF 피오렌티나와 치열한 다툼 끝에 준우승을 차지하며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1968-1969 시즌, 칼리아리는 AC 밀란, ACF 피오렌티나와 함께 세리에 A 우승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펼쳤으나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이 활약은 다음 시즌의 영광을 예고하는 중요한 발판이 되었습니다.

1970

[세리에 A 우승]

안젤로 도멘기니가 합류한 칼리아리는 리그 단 2패와 11실점이라는 놀라운 기록으로 세리에 A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루이지 리바는 득점왕에 오르며 팀의 역사적인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1969-70 시즌, 칼리아리는 안젤로 도멘기니의 합류와 루이지 리바의 활약에 힘입어 리그에서 단 2패와 11실점(유럽 주요 리그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기록)이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세리에 A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는 클럽 역사상 처음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리그 우승입니다. 체라, 도멘기니, 리바 등 팀의 주축 선수들은 1970년 FIFA 월드컵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 참가하여 결승전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1976

[세리에 A 강등 및 리바 은퇴]

1970년대 중반, 칼리아리의 성적은 하락세를 보였고, 루이지 리바의 선수 경력이 사실상 막을 내리면서 팀은 세리에 A에서 강등되었습니다.

1970년대에 접어들며 칼리아리의 성적은 점차 하락하기 시작했고, 1976년에는 세리에 A에서 강등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이 시즌은 팀의 전설적인 공격수 루이지 리바의 선수 경력이 사실상 마감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1979

[세리에 A 재승격]

강등된 후 3년 만에 플레이오프 승격전에서 승리하며 다시 세리에 A로 복귀했습니다.

1976년 강등 이후, 칼리아리는 다음 시즌 플레이오프 승격전에서 패했으나, 1979년에 세리에 A로 다시 승격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프란코 셀바지, 마리오 브루녜라, 알베르토 마르케티 등의 선수들이 활약하며 4년간 상위권을 유지했습니다.

1983

[두 번째 세리에 A 강등]

강등 후 4년간의 상위권 유지에도 불구하고, 칼리아리는 1983년에 다시 세리에 A에서 강등되었습니다.

1979년 세리에 A 재승격 후 4년 동안 상위권에 머물렀던 칼리아리는 1983년에 두 번째로 세리에 A에서 강등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1987

[세리에 C1 강등 및 암흑기]

칼리아리는 1980년대에 암흑기를 겪으며, 1987년에는 세리에 C1으로 강등되었습니다. 이는 이전 20년과는 확연히 다른 부진한 시기였습니다.

1980년대는 칼리아리에게 암흑기였습니다. 특히 1987년에는 세리에 C1으로 강등되면서, 이전 20년간의 영광과는 대조적인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1988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 부임 및 세리에 B 승격]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이 부임한 후, 칼리아리는 1988년에 세리에 B로 성공적으로 승격했습니다.

세리에 C1에서 두 시즌을 보낸 칼리아리는 1988년에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을 선임했습니다. 라니에리 감독의 지휘 아래 팀은 곧바로 1988년에 세리에 B로 승격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1990

[세리에 A 재승격 (라니에리 감독)]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의 지휘 아래, 칼리아리는 세리에 B 승격 2년 만에 세리에 A로 다시 승격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의 성공적인 리더십 아래, 칼리아리는 1988년 세리에 B 승격에 이어 1990년에는 세리에 A로 다시 승격하며 상위 리그로 복귀했습니다.

1993

[유럽 클럽 대항전 참가 순위 진입]

카를로 마초네 감독의 지휘 아래, 칼리아리는 1992-93 시즌 유럽 클럽 대항전 참가 순위에 오르는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세리에 A 복귀 후 처음 두 시즌 동안 강등권에 머물렀던 칼리아리는 1992-93 시즌에 카를로 마초네 감독의 지휘를 받으며 유럽 클럽 대항전에 참가할 수 있는 순위까지 올라서는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1994

[UEFA컵 준결승 진출]

칼리아리는 1993-94 시즌 UEFA컵에서 전례 없는 준결승 진출이라는 역사적인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는 사르데냐 클럽으로서는 최초의 업적이었습니다.

1993-94 시즌, 칼리아리는 UEFA컵에서 준결승까지 진출하는 클럽 역사상 전례 없는 대기록을 달성했습니다. 이는 사르데냐를 연고로 하는 클럽 중 유럽 대회에서 이토록 높은 성적을 거둔 최초의 사례였습니다.

1997

[세리에 A 강등]

UEFA컵 준결승 진출의 영광 이후 몇 년간 중위권에 머물렀던 칼리아리는 1996-97 시즌 피아첸차와의 플레이오프에서 패하며 강등되었습니다.

UEFA컵 준결승 진출 후 몇 년간 세리에 A에서 중위권을 유지했던 칼리아리는 1996-97 시즌에 피아첸차와의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패하면서 다시 강등되었습니다.

1998

[세리에 A 초고속 복귀]

강등된 지 단 1년 만에 칼리아리는 다시 세리에 A로 복귀하는 저력을 보여주었으나, 2년만 잔류했습니다.

1997년 강등되었던 칼리아리는 1년 만인 1998년에 다시 세리에 A로 복귀하며 저력을 과시했지만, 안타깝게도 단 2년만 최상위 리그에 머물렀습니다.

2004

[세리에 B 우승 및 세리에 A 승격 (잔프랑코 촐라)]

2003-04 시즌, 사르데냐 출신 잔프랑코 촐라의 지휘 아래 칼리아리는 세리에 B 우승을 차지하고 세리에 A로 다시 승격했습니다.

세리에 B에서 4년간 평범한 중위권을 유지했던 칼리아리는 2003-04 시즌에 사르데냐의 전설적인 스타 잔프랑코 촐라의 지휘를 받으며 세리에 B 우승을 차지하고 세리에 A로 성공적으로 승격했습니다. 다음 시즌에는 세리에 A에서 존경받을 만한 중위권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2007

[감독 교체 및 전력 보강]

2007-08 시즌 초반 나쁜 성적으로 마르코 잠파올로 감독이 경질되고, 네도 소네티가 감독직을 맡았습니다. 겨울 이적 시장에서 전력을 보강하며 14위로 시즌을 마쳤습니다.

2007-08 시즌 초반 리그 최하위를 기록하는 등 부진한 결과로 인해 마르코 잠파올로 감독이 경질되고, 2007년 11월 네도 소네티가 칼리아리 감독직을 맡았습니다. 12월 겨울 이적시장에서 골키퍼 교체와 함께 공격수 제다, 미드필더 안드레아 코수 등을 영입하며 전력을 보강했습니다. 이 새로운 선수들 덕분에 칼리아리는 많은 경기에서 승리하며 지속적으로 순위를 끌어올려 최종 14위로 시즌을 마쳤습니다.

2010

[피에르파올로 비솔리 해임 및 로베르토 도나도니 선임]

피에르파올로 비솔리 코치가 해임되고, 전 국가대표 감독이자 나폴리의 감독이었던 로베르토 도나도니가 칼리아리 감독으로 선임되었습니다.

2010년 11월 15일, 당시 칼리아리의 코치였던 피에르파올로 비솔리가 해임되었고, 이어서 이탈리아 국가대표팀과 나폴리의 감독을 역임했던 로베르토 도나도니가 새로운 감독으로 선임되었습니다.

2011

[로베르토 도나도니 감독 경질]

2010년 선임된 로베르토 도나도니 감독이 칼리아리에서의 감독직을 약 1년 만에 경질당했습니다.

2010년에 감독으로 부임했던 로베르토 도나도니는 2011년 8월 12일에 경질되며 칼리아리와의 인연을 마무리했습니다.

2012

[새로운 홈구장 스타디오 이스 아레나스 사용 시작]

스타디오 산텔리아 폐쇄 후, 칼리아리는 2012-13 시즌부터 콰르투산텔레나에 위치한 스타디오 이스 아레나스에서 홈경기를 치르기 시작했습니다.

기존 홈구장인 스타디오 산텔리아의 폐쇄 이후, 칼리아리는 2012-13 시즌부터 콰르투산텔레나에 위치한 스타디오 이스 아레나스를 새로운 홈구장으로 사용하며 경기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홈구장 스타디오 산텔리아 폐쇄]

칼리아리의 오랜 홈구장이었던 스타디오 산텔리아가 2011-12 시즌을 마지막으로 폐쇄되었습니다.

2011-12 시즌은 칼리아리가 기존 홈구장이었던 스타디오 산텔리아에서 치렀던 마지막 시즌이었습니다. 이 역사적인 홈구장은 2012년 3월에 문을 닫았습니다.

2022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 재선임]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이 칼리아리 칼초에 다시 감독으로 부임했습니다.

칼리아리를 세리에 A로 승격시켰던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이 2022년에 다시 칼리아리 칼초의 지휘봉을 잡게 되었습니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칼리아리 칼초
+ 사건추가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