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배
연표
1954
[천정배 출생]
전라남도 신안군 암태면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목포에서 성장했습니다.
목포중학교, 목포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는 등 학창 시절부터 뛰어난 학업 능력을 보였습니다.
1972
[서울대 법대 수석 입학]
목포고등학교를 전체 수석으로 졸업한 해, 대학예비고사 인문계 전국 수석을 차지하며 서울대학교 법대에 수석으로 입학했습니다.
이로 인해 '목포 3대 천재'라는 평을 들었습니다.
1976
[제18회 사법시험 합격]
서울대학교 법학 학사 학위 취득과 동시에 제18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습니다.
대학 1학년 때 1차 합격 후 기간 만료로 다시 응시하여 합격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1978
[사법연수원 수료 및 변호사 전향]
사법연수원을 3등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했습니다.
당시 주변의 예상과 달리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계기로 전두환 정권에서 법관 임용을 거부하고 변호사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1981
[김앤장 국제변호사 활동]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입사하여 4년간 외환, 무역, 조세 관련 국제변호사로 활동하며 전문성을 쌓았습니다.
1985
[인권변호사 활동 시작]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의 보장된 미래를 뒤로하고 조영래 변호사와 함께 '남대문합동법률사무소'를 열어 본격적으로 인권변호사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88
[민변 창립 멤버 활동]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창립 멤버로 참여하여 상임간사와 국제인권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인권 변호사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졌습니다.
1994
[음반 사전심의제 위헌 승소]
가수 정태춘 사건의 변론을 맡아 헌법재판소로부터 '음반 사전심의제' 위헌 결정을 이끌어냈습니다.
이는 표현의 자유 신장에 기여한 중요한 판결로 평가됩니다.
1996
[제15대 국회의원 당선]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으로 경기 안산 을(현 안산시 단원구)에 출마하여 제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정계에 본격적으로 입문했습니다.
2000
[제16대 국회의원 재선]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경기 안산 을에 출마해 재선에 성공하며 제16대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이 해에 민주당 수석원내부총무를 지냈습니다.
2002
[노무현 후보 경선 지지]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현역 의원 중 처음으로 노무현 후보를 공개 지지하며, 그의 당선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2003
[열린우리당 창당 주도]
민주당의 발전적 해체를 주장하며 '천신정(천정배, 신기남, 정동영)'으로 불리는 당내 강경개혁세력의 일원으로서 민주당 분당과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했습니다.
2004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사퇴]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를 지냈으나, 4대 쟁점법안 처리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임기 도중 사퇴했습니다.
[제17대 국회의원 3선]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경기 안산시 단원구 갑에 출마하여 제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3선 의원이 되었습니다.
2005
[강정구 교수 수사지휘 논란]
강정구 동국대학교 교수의 한국 전쟁 관련 발언에 대해 검찰에 불구속 수사를 지휘하여 김종빈 검찰총장의 사퇴를 초래했습니다.
과거 본인이 발의한 검찰청법 개정안과 배치되는 행동으로 비판받았습니다.
2007
[열린우리당 탈당 및 대선 경선]
열린우리당을 탈당하고 대통합민주신당에 입당했습니다.
이후 2007년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하였으나 예비경선에서 탈락했습니다.
[한미 FTA 반대 단식 투쟁]
노무현 정부에서 한미 FTA 비준을 위한 합동담화문에 서명했으나, 김근태 전 장관과 더불어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며 단식투쟁을 벌이는 등 입장을 번복하여 논란이 되었습니다.
2008
[제18대 국회의원 4선]
통합민주당 소속 의원으로 경기 안산시 단원구 갑에 출마하여 당선, 4선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동시에 안산시 최초로 4선 의원의 영광을 안았습니다.
2009
[미디어법 반대 의원직 사퇴]
18대 국회에서 미디어법이 강행 처리되자 이에 반대하며 의원직 사퇴를 선언하고 원외 투쟁에 주력했습니다.
이후 2010년 2월 공식 복귀를 선언했습니다.
2010
[민주당 최고위원 당선]
민주당 전당대회 지도부 경선에서 총득표수 5598표, 득표율 10.05%로 5위에 오르며 최고위원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이명박 정부 비판 논란]
이명박 정부에 대해 “확 죽여 버려야 하지 않겠나”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이 발언으로 청와대로부터 “패륜아”라는 반박을 들었으며, 한 시민에게 국가내란죄로 고발당하는 논란을 겪었습니다.
2011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선언]
오세훈 서울시장 사퇴 후, 후임 서울시장 자리에 도전하기 위해 민주당에서 제일 먼저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9월 25일 민주당 경선에서 박영선 후보에게 패해 출마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한미 FTA 반대 기고문 게재]
미 의회 소식지 <더 힐>에 한미 FTA 비준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기고문을 게재했습니다.
이는 노무현 정부 당시 자신의 입장과 상반되어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2012
[제19대 총선 낙선 (송파구 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신의 지역구 대신 새누리당 강세 지역인 서울 송파구 을에 출마했습니다.
총선 당일 여론조사 예측 1위였으나, 유일호 후보에게 3천여 표 차이로 아쉽게 낙선했습니다.
2015
[4·29 재보선 5선 당선]
4·29 재보궐선거 광주 서구 을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5선 의원이 되었습니다.
이는 광주에서 야권을 심판하며 '호남 맹주'로 우뚝 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신당 창당 공식 선언]
"한국 정치를 전면 재구성할 '개혁적 국민정당'의 창당을 제안한다"며 신당 창당을 공식 선언했습니다.
'전국 정당화'와 '온건한 진보와 합리적 보수를 아우르는 중용의 길'을 제시했습니다.
2016
[국민의당 공동대표 취임]
국민회의를 창당한 후 안철수가 창당한 국민의당과 합당하여 안철수와 함께 국민의당 공동대표를 맡아 활동했습니다.
[제20대 국회의원 6선]
국민의당 소속으로 광주 서구 을에 출마하여 제20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6선 국회의원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