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만식
연표
1902
[위대한 풍자 작가의 탄생]
전라북도 옥구군 군내면 동상리(현 군산시 임피면)의 부유한 가정에서 소설가, 극작가, 평론가 채만식이 태어났습니다.한국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을 그의 삶이 시작된 순간입니다.
1920
[일본 유학길에 오르다]
중앙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은선흥과 결혼한 채만식은 일본 와세다 대학교 문과에 입학하며 학문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1923
[간토 대지진, 학업 중단]
간토 대지진 발생 후 한국인 학살을 피해 학업을 채 마치지 못하고 귀국했습니다.그의 일본 유학 생활은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1924
[문단에 첫발을 내딛다]
《조선문단》에 단편 〈새길로〉를 발표하며 공식적으로 문단에 등단했습니다.같은 해 장기결석으로 와세다 대학에서 퇴학 처리되었습니다.
1933
[사회를 향한 첫 비판]
입센의 희곡을 패러디한 《인형의 집을 나와서》를 발표하며 초기 작품 경향에서 사회주의 문학 공동체 '카프'와 유사한 모습을 보여, '동반자 작가'로 분류되었습니다.
1934
[풍자 문학의 시작]
대표작 중 하나인 단편 〈레디메이드 인생〉을 발표하며, 학력을 갖추고도 직업을 찾지 못하는 지식인 실직자의 현실을 풍자했습니다.이를 계기로 냉소적 풍자 문학으로 작풍을 전환했습니다.
1936
[전업 작가 선언]
기자직을 그만두고 본격적인 전업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하지만 농촌 현실을 그린 《보리방아》가 조선총독부 검열로 연재 중단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1937
[장편 소설 '탁류' 출간]
1930년대 부조리한 사회상을 냉소적 시선으로 담아낸 장편 소설 《탁류》를 발표하며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1938
[역설적 풍자의 정점]
역설적인 풍자 기법이 돋보이는 중편 《태평천하》를 발표하며 풍자 문학의 정점을 찍었습니다.또한 단편 《치숙》, 《쑥국새》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1939
[통속 소설에도 도전]
《매일신보》에 장편 《금의 정열》을 연재하며 통속 소설에도 도전했습니다.동화, 희곡, 문학평론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다작을 했습니다.
1942
[친일 소설 발표의 시작]
일제에 부역하는 친일 소설 《아름다운 새벽》을 발표했습니다.이는 일제강점기 말기 그의 친일 행적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1943
[검열과 친일 단체 가담]
조선총독부 검열로 인해 소설 《어머니》를 《여자의 일생》으로 고쳐 발표해야 했습니다.같은 해 조선문인보국회 평의원으로 가담하며 친일 행위를 이어갔습니다.
1945
1946
[해방 후 풍자, 미스터 방]
해방 후 미군정에 기생하는 한국인과 청산되지 않은 친일파 사회 모습을 풍자한 단편 《미스터 방》, 《맹 순사》를 발표하며 날카로운 풍자 정신을 이어갔습니다.
1947
[최초의 친일 행위 고백]
세계 최초로 광복 후 자전적 성격의 단편 〈민족의 죄인〉을 통해 자신의 친일 행위를 고백하고 변명했습니다.그는 친일 행적을 인정한 작가로 기록되었습니다.
1950
[비극적인 삶의 마무리]
한국 전쟁 발발 직전인 49세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비극적인 그의 삶의 막이 내렸습니다.
2002
[친일 문학인으로 기록되다]
2002년 발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에 그의 이름이 올랐습니다.2002년까지 밝혀진 친일 작품은 총 13편으로 알려졌습니다.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