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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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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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선수, 축구 감독, 축구 해설가, 스포츠 평론가 축구 선수

대한민국 축구의 살아있는 전설 차붐 차범근은 은퇴한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 해설가 평론가입니다. 현재는 독일 분데스리가 레전드 네트워크 앰버서더로 활동 중이며 선수 시절 공격수로 활약하며 한국인 최초로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했습니다.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와 바이어 레버쿠젠에서 UEFA컵을 두 번이나 우승시켰고 아시아인 역대 분데스리가 최다 98골을 기록했습니다. 국가대표팀에서는 최다 득점 기록과 함께 1978년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획득했고 세계 최연소 센추리 클럽 가입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감독으로서도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K리그 2회 우승으로 이끄는 등 탁월한 리더십을 보였습니다. 그는 20세기 아시아의 선수 등으로 선정되며 아시아 축구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주요사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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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53

[한국 축구 전설의 탄생]

경기도 화성시에서 대한민국 축구의 전설, '차붐' 차범근이 태어났습니다.

훗날 전 세계를 놀라게 할 대형 스트라이커의 시작이었습니다.

1970

[청소년 국가대표 발탁]

고등학생 신분으로 대한민국 청소년 국가대표에 발탁되며 자신의 재능을 일찌감치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그의 화려한 선수 경력의 첫 발걸음이었습니다.

1971

[아시아 청소년 축구대회]

1971년과 1972년 연속으로 아시아 청소년 축구대회(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며 국제 무대 경험을 쌓고 기량을 연마했습니다.

1972

[메르데카컵 첫 우승]

국가대표 데뷔와 함께 메르데카컵에서 첫 국제대회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 대회는 그의 활약을 통해 한국 축구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1975, 1977, 1978년에도 우승).

[AFC 아시안컵 준우승]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주전 공격수로 활약하며 1972년 AFC 아시안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최연소 국가대표 데뷔]

만 19세, 고려대학교 재학 중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최연소로 발탁되었습니다.

이라크와의 AFC 아시안컵 경기에서 데뷔하며 그의 놀라운 재능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1975

[체육훈장 기린장 수훈]

대한민국 축구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체육훈장 기린장을 수훈했습니다.

이는 그의 성실하고 뛰어난 플레이에 대한 국가의 첫 번째 찬사였습니다.

1976

[전설의 '6분 해트트릭']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말레이시아전에서 1-4로 뒤지던 경기 막판, 단 6분 만에 3골을 몰아넣는 기적 같은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을 무승부로 이끌었습니다.

그의 폭발적인 득점력을 보여준 상징적인 경기였습니다.

1977

[세계 최연소 센추리 클럽]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최초로 A매치 100경기 이상 출전하는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습니다.

동시에 만 24년 139일로 세계 축구 역사상 최연소 센추리 클럽 가입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1978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78년 아시안 게임 축구에서 맹활약하며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이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한국인 최초 분데스리가]

한국인 선수 최초로 독일 프로 축구 리그인 푸스발-분데스리가의 SV 다름슈타트 98에서 데뷔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이는 한국 축구 해외 진출의 포문을 연 사건이었습니다.

1978년 12월 30일 VfL 보훔과의 리그 경기에 출전해 77분을 소화했고, 키커 평점 3점을 받는 등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그러나 병역 문제로 인해 1979년 1월 5일 귀국해야 했으며, 계약은 파기되었습니다.

1979

[체육훈장 백마장 수훈]

국가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체육훈장 백마장을 수훈하며 그의 국가대표로서의 기여를 다시 한번 인정받았습니다.

[프랑크푸르트 UEFA컵 우승]

병역 문제 해결 후 푸스발-분데스리가의 명문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 스카우트되었습니다.

이적 후 1980년에 팀을 UEFA컵 챔피언 자리에 올려놓으며 유럽 무대에서의 존재감을 각인시켰습니다.

1981

[DFB-포칼 우승]

프랑크푸르트 소속으로 1981년 독일 축구 협회 컵인 DFB-포칼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팀의 또 다른 영광을 이끌었습니다.

1983

[바이어 레버쿠젠 이적]

푸스발-분데스리가 내 바이어 04 레버쿠젠으로 이적하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이곳에서 그의 선수 경력의 황금기를 이어갔습니다.

1985

[분데스리가 한 시즌 최다골]

1985-86 시즌에 17골을 기록, 분데스리가에서 아시아 출신 선수 중 한 시즌 동안 가장 많은 골을 넣은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 기록은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습니다.

1986

[월드컵 본선 참가 및 은퇴]

1986년 FIFA 월드컵에 참가하여 이탈리아와의 경기가 자신의 마지막 A매치가 되었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출전한 월드컵 본선 무대였습니다.

1988

[2팀 UEFA컵 우승 기록]

바이어 레버쿠젠 소속으로 1988년 다시 한번 UEFA컵에서 우승하며, 각기 다른 두 팀에서 UEFA컵 우승을 차지한 9번째 선수라는 진기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1989

[현역 선수 은퇴]

1989년 현역에서 은퇴하며 화려했던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분데스리가 통산 98골을 기록하며 당시 외국인 선수 최다 골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후 기록 경신됨).

1990

[울산 현대 감독 부임]

K리그 팀 울산 현대의 감독을 맡으며 지도자로서의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1991

[울산 현대 K리그 준우승]

감독 부임 첫 해인 1991년, 울산 현대를 K리그 준우승으로 이끌며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입증했습니다.

1994

[울산 현대 감독 경질]

1994년 시즌 전반기 1위를 달리며 우승이 유력했으나, 후반기 팀 부진으로 4위로 밀려나 결국 감독직에서 경질되었습니다.

1997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

혼란스러웠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선임되어, 1998년 FIFA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역사적인 '도쿄 대첩']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숙적 일본을 상대로 2-1 역전승을 거두며 '도쿄 대첩'이라 불리는 명승부를 연출했습니다.

이는 월드컵 본선 진출에 결정적인 발판이 되었습니다.

[월드컵 본선 직행 확정]

1998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압도적인 성적으로 조 1위를 차지하며 월드컵 본선 직행 티켓을 확보했습니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5회 연속 월드컵 진출이라는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1998

[월드컵 도중 감독 경질]

1998년 FIFA 월드컵 본선에서 멕시코와 네덜란드에 연패하며 성적 부진으로 대회 도중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직에서 경질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습니다.

이는 한국 축구사에 처음 있는 일이었고, 같은 대회 사우디아라비아 감독에 이은 2번째 사례였습니다.

대한민국 이외의 3개 팀인 네덜란드, 멕시코, 벨기에가 전부 무승부를 기록하여, 한국과의 경기 결과로 16강 진출이 결정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경질 후 김평석 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아 벨기에전을 준비했습니다.

[중국 선전 핑안 감독]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 경질 이후, 중국 슈퍼리그의 선전 핑안 감독으로 부임하며 해외 무대에서 지도자 경력을 이어갔습니다.

[국내 지도자 자격 정지]

K리그 승부 조작 관련 발언으로 인해 대한축구협회로부터 5년간 국내 지도자 자격 정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이는 그에게 큰 시련이었습니다.

2001

[MBC 해설위원 데뷔]

지도자 자격 정지 기간 중 MBC 축구 해설 위원으로 발탁되어 새로운 분야에 도전했습니다.

2002년 FIFA 월드컵 해설을 맡아 높은 시청률에 기여했습니다.

2003

[수원 삼성 감독 복귀]

징계가 해제된 후 K리그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다시 K리그 현장으로 돌아왔습니다.

2004

[수원 삼성 K리그 우승]

수원 삼성 감독으로서 2004년 K리그 우승을 이끌며 지도자로서 첫 우승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이는 그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2005

[수원 삼성 컵대회 우승]

수원 삼성 감독으로서 2005년 K리그 컵대회 우승을 차지하며 팀의 강세를 이어갔습니다.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

서울월드컵경기장 내 월드컵 기념관에 마련된 축구 명예의 전당에 선수 부문 헌액자로 선정되며 한국 축구사에 위대한 발자취를 남겼음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2008

[수원 삼성 '더블' 달성]

수원 삼성 감독으로서 K리그와 컵대회 동시 우승(더블)을 달성하며 팀을 최정상에 올려놓았습니다.

이는 그의 뛰어난 지도력을 다시 한번 증명한 결과였습니다.

2010

[수원 감독 사임 의사 표명]

강원 FC전 패배로 팀이 5연패를 기록하자, 팬들의 퇴진 운동 속에서 인터뷰를 통해 감독직 사임 의사를 밝혔습니다.

[수원 삼성 감독 사임 발표]

기자회견을 통해 6월 6일부로 수원 삼성 블루윙즈 감독직에서 공식적으로 물러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SBS 축구 해설위원]

수원 삼성 감독직에서 물러난 후, 2010년 FIFA 월드컵을 앞두고 SBS에 영입되어 축구 해설위원으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16

[U-20 월드컵 부위원장]

'2017 FIFA 20세 월드컵 조직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임되며 행정가로서 한국 축구 발전에 기여하게 되었습니다.

2017

[분데스리가 홍보대사]

독일 분데스리가의 홍보 대사인 '푸스발-분데스리가 앰버서더'로 선정되어, 독일과 한국 축구의 가교 역할을 맡았습니다.

2019

[독일 십자공로훈장 수훈]

독일과의 오랜 인연과 축구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독일 정부로부터 '십자공로훈장'을 수훈했습니다.

이는 한국인으로서 매우 영예로운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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