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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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시
패션 브랜드, 오트 쿠튀르, 향수, LVMH + 카테고리
지방시(Givenchy)는 1952년 위베르 드 지방시가 파리에서 창립한 프랑스의 대표적인 럭셔리 오트 쿠튀르 및 프레타포르테 하우스입니다. 창립 초기부터 '베티나 블라우스'와 '셔츠 드레스' 등 혁신적이고 우아한 실루엣을 선보이며 파리 패션계를 사로잡았습니다. 특히 여배우 오드리 헵번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영화 의 리틀 블랙 드레스를 제작하는 등 패션과 대중문화를 아우르는 상징적인 브랜드로 성장했습니다. 1988년 세계적인 명품 대기업 LVMH에 인수된 후 존 갈리아노, 알렉산더 맥퀸, 리카르도 티시, 매튜 M. 윌리엄스 등 시대를 대표하는 천재적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을 기용하며 클래식함과 아방가르드, 스트리트 패션까지 유연하게 넘나드는 글로벌 브랜드로 굳건히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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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52

[지방시(Givenchy) 하우스 창립]

위베르 드 지방시가 프랑스 파리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오트 쿠튀르 패션 하우스 '지방시'를 창립했습니다.
첫 컬렉션부터 보그(Vogue) 잡지로부터 '웅장한 첫 컬렉션'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단숨에 이름을 알렸습니다. 특히 당시 최고 모델이었던 베티나 그라지아니의 이름을 딴 하얀색 '베티나 블라우스(Blouse Bettina)'가 가장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1953

[오드리 헵번과의 운명적 만남]

창립자 위베르 드 지방시가 할리우드 전설의 여배우 오드리 헵번을 만나 평생의 우정과 협력 관계를 시작했습니다.
오드리 헵번은 이후 지방시의 가장 대표적인 영감의 원천(뮤즈)이자 브랜드의 홍보대사 역할을 하며 수많은 영화에서 지방시의 의상을 입었습니다. 이들의 협력은 패션과 영화 산업 간의 가장 성공적이고 우아한 콜라보레이션 중 하나로 역사에 남게 되었습니다.

1954

[최초의 셔츠 드레스(Robe-chemise) 발표]

지방시가 여성 패션계에 혁신을 가져온 최초의 '셔츠 드레스' 디자인을 전격적으로 선보였습니다.
이 디자인은 전통적인 코르셋의 억압에서 여성을 해방시키며, 더 자유롭고 실용적이면서도 우아한 실루엣을 제안했습니다. 이 셔츠 드레스는 이후 1957년에 발표되는 지방시의 유명한 '자루 드레스(Robe-sac)'의 중요한 디자인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1955

[지방시 공식 법인 설립]

이날을 기점으로 지방시(Givenchy) 법인이 공식적으로 설립되어 온전한 기업 구조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오트 쿠튀르 하우스로서의 성공적인 데뷔 이후, 브랜드를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확장하기 위한 기업 형태를 확립했습니다. 파리의 상징적인 조르주 5세(George-V) 거리로 본사를 옮기며 글로벌 브랜드로의 힘찬 도약을 시작했습니다.

1957

[지방시 향수(Parfums Givenchy) 부문 창설]

위베르 드 지방시가 패션을 넘어 뷰티 산업으로 영역을 본격 확장하며 '지방시 향수' 브랜드를 창설했습니다.
향수 라인의 창설은 지방시를 옷뿐만 아니라 향기까지 책임지는 완전한 럭셔리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성장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후 지방시의 향수는 오트 쿠튀르 정신을 담아내며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자루 드레스(Robe-sac) 실루엣 발전]

1954년 선보인 셔츠 드레스를 더욱 발전시켜 몸의 윤곽을 넉넉하게 덮는 이른바 '자루 드레스(Robe-sac)' 형태를 선보였습니다.
허리선을 억지로 강조하지 않고 어깨부터 아래로 툭 떨어지는 이 혁신적인 실루엣은 당시 여성 패션의 고정관념을 통쾌하게 파괴했습니다. 동시대 거장 디자이너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와 함께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유행을 강하게 주도했습니다.

1961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리틀 블랙 드레스 화제]

유명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Diamants sur canapé)'에서 오드리 헵번이 착용한 지방시의 '리틀 블랙 드레스'가 세계적인 대유행을 일으켰습니다.
영화 오프닝 장면에서 헵번이 입고 나온 이 검은색 이브닝드레스는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유명한 의상 중 하나로 영원히 각인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지방시 브랜드의 럭셔리한 위상이 전 세계 대중들에게 깊이 뿌리내렸습니다.

1988

[LVMH 그룹에 브랜드 인수]

프랑스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의 명품 대기업인 LVMH(모에 헤네시·루이 비통) 그룹이 지방시 브랜드를 전격 인수했습니다.
이 거대한 기업 인수합병을 통해 지방시는 한층 더 안정적인 재정적 지원과 압도적인 글로벌 유통망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오트 쿠튀르 명가의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대규모 상업 브랜드로 폭발적인 확장을 이룰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1991

[팔레 갈리에라 브랜드 40주년 회고전]

파리의 유명 패션 박물관인 팔레 갈리에라(Palais Galliera)에서 지방시 하우스 창립 4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헌정 회고전이 성대하게 열렸습니다.
위베르 드 지방시가 무려 40년 동안 직접 창조해 온 수많은 아카이브와 환상적인 오트 쿠튀르 드레스들이 대중에게 아낌없이 공개되었습니다. 이 뜻깊은 전시를 통해 지방시가 프랑스 패션계에 남긴 압도적이고 역사적인 영향력을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1995

[창립자 위베르 드 지방시 은퇴]

브랜드의 설립자이자 40년 넘게 크리에이티브 수장으로 군림해 온 위베르 드 지방시가 공식적으로 패션계에서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오트 쿠튀르의 찬란한 황금기를 이끌었던 위대한 마지막 거장 중 한 명의 퇴장은 전 세계 패션계에 깊은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그의 명예로운 은퇴 이후 지방시는 LVMH의 전략에 따라 더욱 파격적인 디자이너들을 기용하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존 갈리아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임명]

영국 출신의 전위적이고 파격적인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가 위베르 드 지방시의 뒤를 이어 브랜드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전격 발탁되었습니다.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의 강력한 주도로 이루어진 이 파격적인 인사는, 우아함의 대명사였던 지방시에 매우 극적이고 아방가르드한 에너지를 불어넣는 충격 요법이었습니다. 비록 재임 기간은 짧았지만 브랜드를 완전히 새롭게 재해석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1996

[알렉산더 맥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승계]

크리스챤 디올로 자리를 옮긴 존 갈리아노를 대신하여, 영국의 또 다른 천재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이 디렉터로 임명되었습니다.
맥퀸 특유의 어둡고 반항적이며 낭만적인 파괴적 미학은 기존의 단정했던 지방시 이미지와 맹렬하게 충돌하면서도 패션계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는 기술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테일러링을 바탕으로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컬렉션들을 쏟아냈습니다.

2001

[줄리앙 맥도날드, 디렉터 임명]

알렉산더 맥퀸의 후임으로 영국의 웨일스 출신 디자이너 줄리앙 맥도날드(Julien Macdonald)가 지방시 여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새롭게 임명되었습니다.
화려한 글래머 룩으로 명성이 높았던 그는 지방시에 조금 더 대중적이고 상업적이면서도 화려한 레드카펫 스타일을 더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이전의 강력한 디자이너들에 비해 브랜드의 확고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데는 다소 부침을 겪었습니다.

2003

[오즈월드 보텡, 남성복 디렉터 임명]

영국 새빌 로(Savile Row)의 유명한 비스포크 테일러인 오즈월드 보텡(Ozwald Boateng)이 지방시 옴므(Givenchy Homme)의 수장으로 발탁되었습니다.
보텡은 영국의 정통 맞춤형 테일러링 기술과 대담하고 현대적인 색채 감각을 결합하여 지방시 남성복 라인을 매력적으로 재정비했습니다. 이는 여성복뿐만 아니라 남성 라인에도 뚜렷한 독자적 정체성을 부여하기 위한 LVMH의 전략이었습니다.

2005

[리카르도 티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임명]

이탈리아 출신의 실력파 디자이너 리카르도 티시(Riccardo Tisci)가 브랜드를 이끌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전격 임명되었습니다.
티시는 지방시에 매혹적인 다크 로맨티시즘과 고딕 양식, 그리고 하이엔드 스트리트웨어의 요소를 완벽하게 융합시키며 브랜드의 제2의 전성기를 화려하게 열어젖혔습니다. 톱모델 마리아칼라 보스코노(Mariacarla Boscono) 등과 함께 강력한 팬덤을 형성하며 상업적 대성공을 이뤄냈습니다.

2006

[오즈월드 보텡 임기 종료 및 리카르도 티시 총괄]

2006년 말, 지방시 남성복을 훌륭하게 이끌던 오즈월드 보텡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보텡이 하우스를 떠난 후, 리카르도 티시가 여성복뿐만 아니라 남성복 컬렉션까지 모두 전적으로 총괄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지방시는 남녀 라인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적이고 강력한 고딕 스트리트 비전을 제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14

[필립 포르투나토, CEO 취임]

리카르도 티시 체제 하에서 브랜드가 비약적으로 성장하던 중, 명품 업계 베테랑 필립 포르투나토(Philippe Fortunato)가 지방시의 신임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했습니다.
그는 글로벌 리테일 유통망의 공격적인 확장을 진두지휘하며 특히 아시아와 미주 시장에서 지방시의 입지를 폭발적으로 키웠습니다. 그의 리더십 아래 지방시는 매출과 브랜드 파워 양면에서 굵직한 상업적 성과를 달성했습니다.

2017

[클레어 웨이트 켈러, 최초의 여성 디렉터 임명]

오랜 기간 헌신한 리카르도 티시가 떠난 후, 영국 출신 클레어 웨이트 켈러(Clare Waight Keller)가 브랜드 역사상 최초의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부임했습니다.
그녀는 전임자의 짙은 스트리트웨어적 감성을 덜어내고, 창립자 위베르 드 지방시 시절의 우아하고 정제된 클래식 실루엣을 부활시키는 데 집중했습니다. 영국 메건 마클 왕자비의 기품 있는 웨딩드레스를 직접 디자인하여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습니다.

2020

[르노 드 레스캉, CEO 취임]

전임 필립 포르투나토의 뒤를 이어 르노 드 레스캉(Renaud de Lesquen)이 지방시의 새로운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랐습니다.
크리스챤 디올 등 유수 명품 브랜드에서 굵직한 경험을 쌓은 그는, 새롭게 부임한 매튜 M. 윌리엄스와 긴밀하게 호흡을 맞추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비즈니스 생존 전략과 대대적인 브랜드 이미지 쇄신을 이끌었습니다.

[클레어 웨이트 켈러 파트너십 조기 종료]

클레어 웨이트 켈러가 3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임기를 끝으로 지방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직에서 조기 사임한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습니다.
우아한 디자인에도 불구하고 기대에 못 미친 상업적 성과와 LVMH 그룹 경영진과의 향후 브랜드 방향성 차이 등이 주요 사임 원인으로 지목되었습니다. 비록 임기는 짧았지만 브랜드의 오트 쿠튀르적 하이엔드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제고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

[매튜 M. 윌리엄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임명]

하이엔드 스트리트웨어 브랜드 '알릭스(1017 ALYX 9SM)'의 창립자인 매튜 M. 윌리엄스(Matthew M. Williams)가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었습니다.
LVMH는 지방시에 다시 한번 젊고 트렌디한 스트리트 패션의 강력한 상업적 에너지를 불어넣고자 그를 전격 발탁했습니다. 특유의 인더스트리얼한 금속 장식과 날카롭고 현대적인 테일러링을 결합하여 지방시의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구축했습니다.

2024

[알레산드로 발렌티, 신임 CEO 임명]

루이 비통의 최고위 임원 출신인 알레산드로 발렌티(Alessandro Valenti)가 르노 드 레스캉의 뒤를 이어 지방시의 신임 최고경영자로 임명되었습니다.
LVMH 그룹 내 핵심 브랜드에서 축적한 풍부한 글로벌 리테일 운영 및 경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갈수록 치열해지는 명품 시장에서 지방시의 수익성을 극대화하고 새로운 차원의 성장을 주도할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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