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헨드릭스
연표
1942
[전설의 시작, 탄생]
미국 시애틀에서 '제임스 마셜 헨드릭스'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을 겪었으며, 탭댄서인 아버지와 함께 유년기를 보냈다.
1956
[첫 악기와의 만남]
아홉 살 때 부모님의 이혼 후, 탭댄서인 아버지와 살던 헨드릭스는 열네 살 때 아버지가 구해온 우쿨렐레를 첫 악기로 만나며 음악에 대한 열정을 키우기 시작했다.
1958
[음악 꿈의 전환점]
알코올 의존자였던 어머니의 사망 소식은 16세 소년 헨드릭스가 기타리스트로서 꿈에 더욱 집중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1960
1962
[군 복무와 의병 제대]
낙하산병으로 입대해 복무하는 동안에도 'The King Casuals'라는 밴드를 조직하며 음악 활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훈련 도중 부상을 입고 스무 살의 나이에 의병 제대했다.
[세션 기타리스트 활동]
의병 제대 후 1965년까지 리틀 리처드, 아이크 & 티나 터너, 샘 쿡 등 당대 최고의 뮤지션들과 함께하며 세션 기타리스트로서 활약했다.
이 시기 그의 왼손 연주만이 특별할 뿐, 음악적 자질은 크게 인정받지 못했다.
1965
[밴드 결성, 독립 시작]
리틀 리처드 밴드를 떠나 자신만의 음악을 하고 싶었던 헨드릭스는 '지미 제임스 앤드 블루 플레임스(Jimi James and Blue Flames)'를 결성하며 독립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1966
[전설의 밴드 결성]
노엘 레딩, 미치 미첼을 만나 전설적인 3인조 밴드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를 조직했다.
영국에서 먼저 발표한 'Foxy Lady', 'Hey Joe', 'Purple Haze' 등의 불후의 명곡들은 그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1967
[몬터레이 팝 데뷔]
몬터레이 팝 페스티벌에서 열정적인 연주로 세계를 놀라게 했고, 기타의 판도를 완전히 바꾼 기념비적인 데뷔 앨범 《Are You Experienced》를 발표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 앨범은 발매와 동시에 전 세계 음악 팬들을 열광시키며 지미 헨드릭스를 20세기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의 독창적이고 원초적인 기타 사운드는 음악계에 충격을 주었다.
[두 번째 명작 공개]
같은 해 두 번째 앨범 《Axis : Bold As Love》를 발표하며 'Spanish Castle Magic', 'Little Wing' 등 불멸의 고전들을 탄생시켰다.
이 앨범은 그의 음악적 깊이를 더욱 확장시켰다.
1968
[밴드 마지막 앨범]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의 마지막 앨범인 《Electric Ladyland》를 발표했다.
이 앨범의 'Voodoo Child (Slight Return)'는 수많은 기타리스트들의 모티브가 되었으며, 'All Along The Watchtower'는 밥 딜런의 원곡보다 더 유명해지며 그의 음악적 영향력을 입증했다.
1969
[밴드 해체와 실험]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가 해체된 후, 그는 개인 스튜디오 '일렉트릭 레이디랜드'를 꾸며 매우 실험적인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녹음하며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이어갔다.
[우드스탁의 전설]
이전 동료 미치 미첼과 친구 빌리 콕스와 함께 우드스탁 페스티벌에 참여하여 'The Star Spangled Banner' 등 역사적인 공연을 선보였다.
이는 그의 상징적인 퍼포먼스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특히 미국 국가 'The Star Spangled Banner'를 연주하며 베트남 전쟁에 대한 저항과 평화를 표현한 그의 공연은 시대를 초월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전 세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1970
[밴드 오브 집시스 결성]
오랜 친구 버디 마일스, 빌리 콕스와 함께 '밴드 오브 집시스'를 결성하고 필모어 이스트 공연 실황을 담은 라이브 앨범 《Band Of Gypsys》를 발표했다.
[전설의 갑작스런 죽음]
영국 런던의 스마르칸트 호텔에서 수면제 과다 복용 상태로 발견되어, 토사물이 기도를 막아 질식사한 것으로 알려진 가장 유력한 사망원인으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