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눌
연표
1158
[지눌의 탄생]
고려 황해도 서흥군 동주에서 국자감 학정 정광우와 조씨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훗날 한국 불교의 큰 별이 될 그의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1165
[승려의 길을 걷다]
8세의 어린 나이에 사굴산파의 종휘를 은사로 삼아 승려가 되었습니다.
출세와는 거리가 먼 삶, 오직 도를 구하는 길에 들어서며 자신만의 길을 모색했습니다.
1182
[첫 깨달음과 결사 약속]
승과에 급제했으나 출세를 포기하고, 개경 보제사에서 동료들과 함께 불교 개혁을 위한 '결사'를 약속했습니다.
이후 창평 청원사에서 《육조단경》을 읽던 중 '진여자성(眞如自性)은 항상 자유롭고 자재하다'는 구절에서 첫 깨달음을 얻고 혜능을 평생 스승으로 삼았습니다.
1185
[화엄경을 통한 심화된 깨달음]
속세를 떠나 하가산 보문사에 들어가 《대장경》을 읽던 중, 《화엄경》의 핵심 구절에서 또 다른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로써 선(禪)과 교(敎)가 본래 하나라는 '선교일원'의 원리를 발견하고 독자적인 사상 체계를 확립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1188
[정혜결사 조직]
뜻을 같이하는 득재, 몽선 등과 함께 팔공산 거조사로 거처를 옮겨 '정혜결사(定慧結社)'를 조직했습니다.
이는 혼란한 당시 불교계를 바르게 이끌고자 수행과 지혜를 함께 닦는 새로운 공동체의 시작이었습니다.
1190
[《권수정혜결사문》 선포]
정혜결사의 정신과 목적을 널리 알리고 더 많은 동참자를 모으기 위해, 그의 대표적인 저작 중 하나인 《권수정혜결사문》을 지어 세상에 선포했습니다.
이 글은 불교 개혁의 깃발이 되었습니다.
1197
[상무주암에서 보살행 깨달음]
결사에 참여한 무리 중 일부가 시비를 일으키자, 지리산 상무주암으로 들어가 홀로 수행에 전념했습니다.
이곳에서 《대혜어록》을 보며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보살행'의 중요성을 깨닫고, 대중과의 소통을 통한 교화를 다짐했습니다.
1200
[송광산 길상사에서 가르침을 펼치다]
송광산(현 조계산) 길상사(현 송광사)로 옮겨 11년 동안 수많은 제자들에게 설법을 전했습니다.
《금강경》, 《육조단경》 등으로 가르치며 성적등지문, 원돈신해문, 경절문의 세 가지 수행법을 제시하여 많은 이들이 깨달음에 이르도록 이끌었습니다.
1204
[희종, 송광산에 '조계산' 명명]
희종이 즉위하여 송광산을 '조계산'으로, 길상사를 '수선사'로 개명하고 친필 제방을 보냈습니다.
또한 희종은 지눌에게 만수가사를 하사하고 120일 동안 낙성법회를 열게 하여 그의 가르침을 크게 인정하고 불교 개혁에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1210
[법석에서 입적하다]
4월 22일, 제자들을 소집하여 법복을 입고 설법을 하던 도중, 주장(주장자)을 잡은 채 평화롭게 입적했습니다.
희종은 그에게 '불일보조국사'라는 시호와 '감로'라는 탑호를 내렸고, 지눌은 한국 불교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고승으로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