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네딘 지단
연표
1972
[축구 황제 지단 탄생]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알제리계 이민자 가정의 막내로 태어났다.
5세에 축구를 시작하며 전설의 서막을 알렸다.
1989
[칸에서 프로 데뷔]
FC 낭트와의 디비시옹 1 경기에서 AS 칸 소속으로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이 경기를 시작으로 4년간 칸에서 활약하며 축구 커리어를 시작했다.
1991
[칸에서 데뷔골 기록]
FC 낭트전에서 프로 데뷔골을 기록했다.
첫 골을 넣을 경우 차를 선물하겠다는 구단 회장의 약속을 이행시키며 기분 좋게 첫 득점을 올렸다.
[칸, UEFA컵 진출]
지단의 활약 속에 AS 칸은 리그 4위로 시즌을 마감하며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UEFA컵 진출권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1992
[보르도로 이적]
1992-93 시즌을 앞두고 FC 지롱댕 드 보르도로 둥지를 옮겼다.
이곳에서 빅상트 리자라쥐, 크리스토프 뒤가리와 함께 팀의 상징으로 거듭났다.
1994
[프랑스 국가대표 데뷔]
체코와의 친선경기에서 교체로 프랑스 국가대표팀에 데뷔, 0-2로 뒤진 상황에서 혼자 2골을 기록하며 경기를 2-2 무승부로 이끌었다.
1995
[인터토토컵 우승]
보르도 소속으로 카를스루에 SC를 꺾고 UEFA 인터토토컵 우승을 차지하며 유럽 무대에서 첫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1996
[리그 1 올해의 선수]
프랑스 리그에서 뛰어난 활약을 인정받아 트로페 UNFP 드 풋볼 리그 1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이는 그가 유럽 정상급 구단의 관심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UEFA컵 준우승]
보르도와 함께 UEFA컵 1995-96 시즌 결승에 진출했으나, FC 바이에른 뮌헨에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아쉽지만 그의 재능을 유럽에 각인시킨 대회였다.
[유벤투스로 이적]
유럽 정상급 구단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 UEFA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한 유벤투스 FC로 이적했다.
이는 그의 선수 경력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유벤투스 첫 우승]
유벤투스 FC 소속으로 세리에 A와 인터콘티넨털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이탈리아 무대에서의 성공적인 시작을 알렸다.
세계 무대에서의 첫 우승컵이었다.
1997
[챔스 결승 좌절]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1997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1-3으로 패배하며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다.
첫 챔스 우승의 꿈은 다음으로 미뤄졌다.
1998
[세리에 A 2연패]
유벤투스 FC에서 32경기 7골을 기록하며 세리에 A 2연패를 달성, 팀의 리그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이탈리아 리그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챔스 준우승 연속]
유벤투스가 3년 연속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진출했지만, 레알 마드리드에 0-1로 패배하여 또다시 준우승에 머물렀다.
챔스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월드컵 첫 퇴장 기록]
1998년 FIFA 월드컵 조별리그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 푸아드 아민을 밟아 퇴장당했다.
이로써 그는 프랑스 국가대표팀 선수 중 최초로 월드컵 본선 퇴장이라는 불명예 기록을 남겼다.
[프랑스의 월드컵 우승 견인]
브라질과의 1998년 FIFA 월드컵 결승전에서 두 번의 코너킥을 머리로 마무리하며 2골을 기록, 프랑스의 사상 첫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다.
결승전 2골은 프랑스를 열광시켰다.
그의 2골은 프랑스를 전반에만 2-0으로 앞서게 했고, 결국 3-0 승리로 첫 FIFA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지단은 즉시 국가적인 영웅으로 칭송받았고, 샹-젤리제 거리에 웅집한 100만명은 에투알 개선문에 '고마워요 지주'라는 글과 함께 비추어지는 그의 사진을 보며 우승을 자축했다.
[레지옹 도뇌르 훈장 수훈]
1998년 FIFA 월드컵 우승의 국가적 영웅으로서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슈발리에 훈장을 받았다.
[FIFA 올해의 선수 수상 (1회)]
1998년 뛰어난 활약을 인정받아 FIFA 올해의 선수와 발롱도르를 동시에 석권하며 세계 최고의 선수임을 입증했다.
이 해는 그의 선수 경력의 절정이었다.
2000
[유로 2000 우승 및 MVP]
UEFA 유로 2000에서 2골을 기록하고 대회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며 프랑스의 우승을 이끌었다.
이로써 프랑스는 월드컵과 유로를 동시에 석권한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챔스 조기 탈락 및 퇴장]
함부르크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요헨 킨츠를 머리로 가격해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고, 유벤투스는 1차 조별리그에서 조기 탈락했다.
[FIFA 올해의 선수 (2회)]
2000년에도 FIFA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며 개인 통산 두 번째 수상을 기록, 세계 축구계에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2001
[세리에 A 올해의 외국인]
세리에 A에서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두 번째 선정되며 이탈리아 리그에서의 영향력을 다시 한번 인정받았다.
그의 꾸준함이 돋보이는 수상이었다.
[레알 마드리드 이적 (세계 기록)]
당시 역대 최고 이적료인 €77.5M(약 150B ITL)에 유벤투스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며 '갈락티코스'의 일원이 되었다.
이는 당시 축구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며 그의 위상을 보여주었다.
2002
[챔스 우승 및 환상골]
바이어 04 레버쿠젠과의 2002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환상적인 왼발 발리슛으로 결승골을 기록하며 레알 마드리드의 우승을 이끌었다.
이 골은 대회 역사상 최고의 골 중 하나로 회자된다.
이 골은 UEFA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최고의 골 중 하나로 수식되며, 지단은 이 우승으로 개인 통산 4대 주요 대회 우승을 성공했다.
2003
[라 리가 우승 및 FIFA 올해의 선수 (3회)]
루이스 피구와 함께 레알 마드리드의 라 리가 우승에 기여했으며, 개인 통산 세 번째 FIF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며 세계 최고의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2004
[펠레의 FIFA 100 포함]
축구의 신 펠레가 선정한 살아있는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 목록인 'FIFA 100'에 이름을 올리며 역대 최고 선수 반열에 올랐다.
[유럽 최고 선수 선정]
UEFA 골든 주빌리 여론 조사에서 지난 50년간의 최고 유럽 축구 선수로 선정되며 그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명실상부한 유럽 축구의 전설이 되었다.
2005
[국가대표 복귀]
프랑스의 2006년 FIFA 월드컵 본선행 위기 상황에서 레몽 도메네크 감독의 간곡한 부탁으로 국가대표팀에 복귀, 주장 완장을 차고 페로 제도와의 경기에서 복귀전을 치렀다.
2006
[레알 마드리드 해트트릭]
세비야와의 라 리가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개인적으로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이는 그의 레알 마드리드 마지막 시즌에 이루어졌다.
[현역 은퇴 선언]
2006년 FIFA 월드컵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할 것임을 선언하며 축구 팬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그의 마지막 불꽃을 월드컵에서 태우려 했다.
[레알 마드리드 고별전]
비야레알과의 라 리가 경기에서 레알 마드리드 고별전을 치렀다.
8만 명의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관중들은 '마법에 감사합니다'라는 배너를 들고 그를 배웅했다.
[프랑스 A매치 100경기]
멕시코와의 친선경기에서 프랑스 국가대표로 100번째 경기를 치렀다.
드사이, 튀람, 데샹에 이어 프랑스 축구 역사상 4번째로 A매치 100경기를 달성한 선수로 기록되었다.
[월드컵 골든볼 수상]
2006년 FIFA 월드컵 결승전 직전 대회 최우수 선수에게 주어지는 골든볼을 수상하며 뛰어난 활약을 인정받았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의 실력은 빛났다.
[월드컵 결승 최다골]
이탈리아와의 2006년 FIFA 월드컵 결승전에서 페널티킥으로 선제골을 기록했다.
이로써 펠레, 바바, 파울 브라이트너에 이어 두 번의 월드컵 결승전에서 득점한 4번째 선수가 되었다.
[월드컵 결승전 퇴장]
2006년 FIFA 월드컵 결승전 연장전에서 마르코 마테라치에게 박치기를 하여 퇴장당하며 불명예스럽게 선수 경력을 마무리했다.
이는 전 세계 언론의 1면을 장식하며 큰 충격을 주었다.
이 사건은 축구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순간 중 하나로 회자되며, 지단은 FIFA 월드컵 경기에서 가장 많은 카드(6장)를 받은 선수로 기록되었다. 마테라치가 지단의 누이를 모욕한 것이 원인으로 나중에 밝혀졌다. 그러나 프랑스 국민들은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았다며 그를 옹호했다.
2009
[레알 마드리드 고문 임명]
플로렌티노 페레스 레알 마드리드 회장의 요청으로 구단의 특수 조언가로 임명되며 행정가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은퇴 후에도 축구계에 대한 열정을 이어갔다.
2010
[카타르 월드컵 유치 홍보]
카타르의 2022년 FIFA 월드컵 유치 홍보 대사로 위촉되어 아랍 국가 최초의 월드컵 개최에 기여했다.
그의 영향력은 축구장을 넘어섰다.
2011
[레알 마드리드 단장]
레알 마드리드의 신임 단장으로 임명되며 구단 내에서의 역할을 확장했다.
이는 그의 행정 능력을 시험하는 무대가 되었다.
2013
[레알 마드리드 수석코치]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의 수석 코치로 보직을 옮겨 지도자 경력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세계적인 감독 밑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2014
[카스티야 감독 부임]
레알 마드리드의 2군인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의 감독으로 임명되어 젊은 선수들을 지도하는 역할을 맡았다.
비공식 감독 자격 논란이 있기도 했다.
2016
[레알 마드리드 감독 부임 (1회)]
라파엘 베니테스 감독의 후임으로 레알 마드리드 1군 감독에 부임하며 전설적인 클럽을 이끌게 되었다.
모두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챔스 우승 (감독, 1회)]
부임 첫해 레알 마드리드를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로써 선수와 감독으로서 모두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한 7번째 인물이 되는 위업을 달성했다.
2017
[라 리가 & 챔스 동시 우승]
레알 마드리드를 이끌고 라 리가와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동시에 달성했다.
특히 챔피언스리그 개편 이래 최초로 2연패를 기록한 감독이 되며 역사를 썼다.
[슈퍼컵 & 스페인 슈퍼컵 우승]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꺾고 UEFA 슈퍼컵 우승을 차지했으며, 라이벌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도 우승하며 트로피를 추가했다.
이는 단일 시즌 4대회 우승의 시작이었다.
[FIFA 올해의 감독 (1회)]
2017년의 성공적인 감독 활동을 인정받아 FIFA 올해의 감독 상을 수상하며 지도자로서도 세계적인 인정을 받았다.
선수와 감독으로서 모두 FIFA 최고상을 받은 유일한 인물이 되었다.
2018
[챔스 우승 (감독, 3회)]
레알 마드리드를 UEFA 챔피언스리그 3연패로 이끌며 전례 없는 기록을 세웠다.
이는 그의 지도자 경력의 정점 중 하나이며, 챔피언스리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레알 마드리드 감독 사임 (1회)]
UEFA 챔피언스리그 3연패를 달성한 직후 레알 마드리드 감독직에서 전격 사임하며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의 갑작스러운 결정은 축구계의 큰 화제였다.
2019
[레알 마드리드 재부임 (2회)]
사임한 지 약 10개월 만에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으로 다시 부임하며 팀의 위기 극복을 위해 돌아왔다.
그의 복귀는 팬들에게 큰 기대를 안겨주었다.
2020
[라 리가 우승 (감독, 2회)]
두 번째 임기 중 레알 마드리드를 이끌고 라 리가 우승을 차지하며 다시 한번 팀의 리그 정상을 되찾았다.
그의 지도력이 다시 한번 빛났다.
2021
[레알 마드리드 재사임 (2회)]
두 번째 레알 마드리드 감독 임기를 마치고 팀을 떠났다.
총 200승을 기록하며 팀에 큰 족적을 남겼으며, 명예롭게 지휘봉을 내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