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세페 베르디
연표
1813
[오페라 거장의 탄생]
이탈리아 파르마현에서 태어난 주세페 베르디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였지만, 특별한 천재 소년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는 평범한 시골 소년이었다.
1832
[좌절과 새로운 시작]
18세의 나이로 밀라노 음악원 입학시험에 응시했으나, 나이 제한 초과와 서툰 음악이라는 평가로 낙방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개인 교수를 통해 작곡 공부를 이어나갔다.
1833
[첫 지휘봉을 잡다]
밀라노 악우협회의 하이든 <천지창조> 연주회에서 대리 지휘를 맡아 능력을 인정받았고, 이를 계기로 자신의 첫 오페라 작곡을 의뢰받으며 전문 작곡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836
1839
[오페라 데뷔 성공]
밀라노로 이주한 해, 그의 첫 오페라 <산 보니파치오의 백작 오베르토>가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되어 성공을 거뒀다.
26세의 젊은 작곡가는 유명 악보 출판사로부터 계약 제안까지 받았다.
1840
[가족을 잃은 슬픔]
첫 오페라의 성공 직후, 아들과 아내를 차례로 잃는 비극을 겪었다.
설상가상으로 의뢰받아 작곡한 오페라 부파 <하루 만의 임금님>마저 무참히 실패하며 작곡을 포기할 생각까지 했다.
1842
[애국 오페라의 탄생]
절망의 시기를 딛고 친구들의 도움으로 작곡한 <나부코>가 밀라노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되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는 이탈리아 독립운동의 열망을 담아 이탈리아 국민들에게 애국심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작품을 통해 베르디는 오페라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나부코>의 성공은 베르디가 1842년부터 1850년까지 14곡의 오페라를 연이어 발표하게 되는 발판이 되었으며, 이 중에는 <제1회 십자군의 롬바르디아인>(1843) 등 이탈리아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작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1851
[오페라 역사의 시작]
37세의 베르디가 40일 만에 작곡한 오페라 <리골레토>가 베네치아에서 초연되며 오페라 사상 유례없는 대성공을 거뒀다.
특히 아리아 <여자의 마음>은 초연 전 유출을 막기 위해 철저히 비밀에 부쳐질 정도로 베르디가 자신했던 곡으로, 전 세계를 풍미하는 명곡이 되었다.
1853
[불멸의 걸작들 탄생]
<리골레토>의 성공 이후, 베르디는 독특한 선율미와 극적 구성력을 발휘하여 <일 트로바토레>와 <라 트라비아타> 등 연이어 걸작들을 발표했다.
이 작품들을 통해 그는 인간 본연의 감정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능력을 인정받았다.
1859
[새로운 삶의 시작]
주세피나 스트레포니와 재혼하여 새로운 가정을 꾸렸고, 1861년부터 1865년까지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국회의원을 역임하며 음악 활동 외에도 활발한 사회 활동을 펼쳤다.
1871
[이집트 요청작 <아이다>]
이집트 정부의 의뢰로 작곡한 오페라 <아이다>가 카이로 오페라 하우스에서 초연되며 베르디의 명성을 세계적으로 확고히 했다.
이 작품은 그의 작품 중 선율미, 극적 표현력 등 모든 요소가 훌륭하게 결합된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1873
1874
[애국시인을 위한 <레퀴엠>]
이탈리아의 애국시인 알레산드로 만초니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의 최대 걸작 중 하나인 <레퀴엠 (진혼 미사곡)>을 작곡했다.
<레퀴엠>은 1873년부터 1874년 사이에 작곡되었다.
1887
[비극 오페라의 최고봉 <오텔로>]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오페라로 재탄생시킨 <오텔로>를 발표하며 비극 오페라의 최고봉을 이룩했다.
셰익스피어의 인간성을 이만큼 훌륭하게 오페라화한 작곡가는 아직까지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1893
[베르디의 마지막 희극]
그의 유일한 희극 오페라 <팔스타프>를 발표했다.
이 작품은 오페라 부파의 정신을 승화시킨 고답적인 웃음과 교묘한 음악화가 돋보이는 걸작으로, 80세가 넘은 나이에 완성한 노년의 역작이다.
1901
[오페라 거장의 영면]
부와 명성을 누리던 그는 밀라노의 한 호텔에서 향년 88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장례식에는 2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 이탈리아 국민들의 깊은 존경과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