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
연표
1392
[태조, 4대조 왕 추존]
조선 태조가 즉위 12일 만에 자신의 4대 조상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에게 왕의 칭호를 올리고, 그 왕비들에게도 존호를 올렸다.
이는 조선 왕실의 정통성을 확립하는 중요한 절차였다.
1394
[한양 천도 최종 결정]
조선 태조가 한양을 새로운 도읍지로 최종 결정했다.
신하들의 반발로 잠시 유보되었던 천도 계획이 확정되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한양 천도 단행]
태조가 새 도읍지 한양으로 천도를 단행했다.
이는 조선 왕조의 안정적인 기틀을 마련하는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종묘 건립 시작]
태조가 유교 이념에 따라 궁궐인 경복궁 동쪽에 종묘를 가장 먼저 짓기 시작했다.
이는 조상에 대한 예와 효를 중시하는 조선의 건국 정신을 보여주는 행보였다.
1395
[종묘 정전 완공]
1394년 12월에 시작된 종묘 건설 공사가 이듬해 9월에 마쳐졌다.
창건 당시 대실 7칸, 석실 5칸 규모였으며, 공신당, 신문 등이 함께 지어졌다.
[4대조 신주 봉안]
종묘가 완성되자 태조는 날을 받아 4대 조상의 신주를 개성에서 옮겨와 종묘에 봉안했다.
이는 종묘가 조선 왕조의 정신적 중심지로 자리매김하는 순간이었다.
1419
[정종 신위 봉안 논의]
세종 원년에 2대 왕 정종이 승하하며 그의 신위를 종묘에 모시게 되었다.
그러나 종묘 정전 5칸에 태조와 4대조 신위가 모두 차 있어, 정종 신위를 어떻게 모실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1421
[영녕전 건립 결정]
정종 신위 봉안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 송나라의 예를 따라 종묘 서쪽 바깥에 별묘를 세워 목조의 신위를 옮겨 모시기로 결정했다.
이 별묘가 바로 '영녕전'이다.
[영녕전 완공 및 신위 이전]
“조종과 자손이 함께 길이 평안하라”는 뜻의 영녕전이 완공되었다.
목조의 신위는 영녕전으로 옮겨졌고, 정전에는 익조 이하의 신위가 차례로 위로 옮겨졌다.
1443
[망묘루 연못 조성]
세종 25년에 망묘루 옆에 사각형 연못이 조성되었다.
연못 가운데 둥근 섬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평평하다는 고대 사상을 반영하며, 향나무가 심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1592
[종묘, 임진왜란 소실]
임진왜란 발발로 종묘 정전과 영녕전이 모두 불에 타 소실되었다.
이는 조선 왕실의 정신적 상징이 큰 타격을 입은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1608
[종묘 재건 시작]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종묘의 재건 공사가 선조 41년(1608년) 1월에 시작되었다.
재건 형식 논의 끝에 임진왜란 이전의 11칸 규모로 정전이 재건되었다.
[종묘 재건 완공]
1608년 1월에 시작된 종묘 재건 공사가 광해군이 즉위하고 나서 5개월 뒤인 5월에 완공되었다.
소실되었던 종묘가 다시 왕실의 중심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1667
[영녕전 증축]
영녕전이 현종 8년에 좌우 협실 각 1칸씩 증축되었다.
이는 모셔야 할 신위 수가 늘어남에 따라 공간 확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1726
[정전 4칸 증축]
종묘 정전이 영조 2년에 4칸 증축되었다.
불천위 제도의 영향으로 정전에 모시는 신위 수가 늘어나면서 건물이 확장되었다.
1836
[정전·영녕전 대규모 증축]
헌종 2년에 종묘 정전이 4칸, 영녕전 좌우 협실이 각 2칸 증축되었다.
이로써 정전은 19칸, 영녕전은 현재의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1963
1969
[종묘제례 연 1회 봉행]
조선시대 횃불과 초를 밝히고 한밤중에 봉행되던 종묘 제례가 1969년부터 해마다 한 차례씩 낮에 봉행되기 시작했다.
1971
[종묘제례 정기 봉행]
1971년 이후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서 매년 5월 첫째 주 일요일 낮에 정전과 영녕전에서 각각 한 차례씩 종묘제례를 올리고 있다.
1995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종묘의 건축물과 600여 년간 이어진 제례행사의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은 조선 왕실의 보물이다..
2001
[종묘제례악 무형유산 등재]
조선 왕조의 역대 왕과 왕비에게 올리는 종묘제례와 세종대왕이 작곡한 종묘제례악이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등록되었다.
이미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종묘와 함께 그 문화적 가치를 더욱 드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