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디마지오
연표
1914
[전설의 시작, 조 디마지오 탄생]
이탈리아계 이주민 어부의 여덟 번째 아들로, 캘리포니아주에서 태어났다. 훗날 메이저 리그의 전설이 될 그의 생애가 시작된 날이다.
조지프 폴 '조' 디마지오(Joseph Paul 'Joe' DiMaggio)는 1914년 11월 25일 캘리포니아주 마티네즈에서 이탈리아계 이주민 어부의 9남매 중 여덟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1933
[프로 경력의 화려한 서막, 61경기 연속 안타]
PCL 샌프란시스코의 한 팀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그는 61경기 연속 안타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우며, 메이저 리그 구단들의 뜨거운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1930년대부터 PCL의 샌프란시스코의 한 팀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한 조 디마지오는 1933년 그곳에서 61경기 연속 안타 기록으로 매스컴과 메이저 리그 구단의 관심을 끌었다. 이 기록은 당시 전례 없는 활약으로, 그의 뛰어난 재능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1934
[명문 뉴욕 양키스 입단]
61경기 연속 안타 기록으로 스카우트 경쟁이 불붙은 끝에, 그는 마침내 메이저 리그의 명문 구단인 뉴욕 양키스와 입단 계약을 맺었다.
1933년의 활약으로 뉴욕 양키스를 포함한 명문 구단들의 스카웃 경쟁이 불이 붙었고, 조 디마지오는 1934년 뉴욕 양키스와 입단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무릎 부상으로 인해 바로 메이저 리그에 올라가지는 못했다.
1936
[양키스의 새 별, 메이저 리그 데뷔]
21세의 나이로 뉴욕 양키스의 주전 중견수 자리를 물려받으며 메이저 리그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는 그의 전설적인 커리어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1936년 5월 3일, 조 디마지오는 뉴욕 양키스의 주전 중견수 얼 콤스의 은퇴에 발맞춰 그 자리를 대신하며 메이저 리그 야구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데뷔 첫해부터 타율 .325, 29홈런, 125타점을 기록하며 공격 전 부문 상위권에 올랐고, 올스타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1939
[MVP와 월드시리즈 우승, 최고의 한 해]
타율 0.381로 리그 타격왕에 오르며 생애 첫 MVP를 수상했으며, 팀을 신시네티 레즈와의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루 게릭이 은퇴한 후 팀 내 최고의 공격력을 자랑하며 1939년 타율 0.381로 리그 타격왕에 올랐다. 이 해에 자신의 첫 MVP 수상과 함께 신시네티 레즈와의 월드시리즈에서 우승을 거머쥐며 명실상부한 팀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했다.
1941
[전설적인 56경기 연속 안타 대기록]
메이저 리그 역사상 가장 경이로운 기록 중 하나인 56경기 연속 안타를 달성하며 야구 팬들을 열광시켰다. 이 기록은 88년 윌리 킬러의 44경기 연속 안타 기록을 크게 뛰어넘는 성과였다.
1941년 5월 15일부터 7월 17일까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시합에서 56경기 연속 안타라는 메이저 리그 야구 기록을 달성했다. 이 기록은 1887년 볼티모어의 윌리 킬러의 44경기 연속 안타와 현대 야구 이후 최장 기록인 조지 시슬러의 41경기 연속 안타를 훨씬 뛰어넘는 성적이었다. 9회초 마지막 경기에서 3루수 켄 켈트너의 호수비로 아웃되며 아쉽게 기록 행진이 멈췄지만, 이후 다시 27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며 그의 타격 능력을 입증했다.
1942
[조국을 위한 헌신,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메이저 리그 스타 선수들의 군입대가 이어지는 가운데, 그 역시 조국을 위해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며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야구장을 떠났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행크 그린버그와 밥 펠러로부터 시작된 메이저 리그 스타 선수들의 군입대 행렬에 합류하여 그 역시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야구장을 떠나게 되었다. 이는 그의 선수 경력에 큰 공백을 가져왔다.
1947
[전장 복귀 후 세 번째 MVP, 재기의 드라마]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후 복귀하여 팀 공격을 이끌며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고, 개인 성적에서 자신을 앞섰던 테드 윌리엄스를 제치고 생애 세 번째 MVP를 수상하며 화려하게 재기했다.
긴 공백 기간 후 1946년 복귀하여 처음으로 2할대 타율로 추락했지만, 이듬해인 1947년 다시 3할대 타율로 복귀했다. 신인 포수 요기 베라와 함께 팀 공격을 이끌어 팀을 월드시리즈에서 정상에 올려놓았고, 개인 성적에서 자신을 모두 앞섰던 테드 윌리엄스를 제치고 세 번째 MVP를 차지하는 드라마를 썼다.
1951
[위대한 커리어의 마무리, 은퇴]
자신의 9번째 100타점 이상을 기록한 후, 후배 미키 맨틀에게 중견수 자리를 물려주고 현역 야구 생활을 마감했다. 위대한 '양키 클리퍼'의 시대가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1950년 자신의 9번째 +100타점을 기록한 조 디마지오는 1951년 팀 후배인 미키 맨틀에게 중견수 자리를 물려주고 현역에서 은퇴했다. 통산 0.325 타율, 361 홈런, 1537 타점을 기록했으며, 선구안과 정확한 타격을 겸비한 장타자로 평가받았다.
1954
[세기의 결혼, 마릴린 먼로와의 만남]
당대 최고의 여배우 마릴린 먼로와 결혼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스포츠 영웅과 할리우드 스타의 만남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1954년 1월, 그는 세기의 섹스 심볼이자 당대 최고의 여배우 마릴린 먼로와 결혼식을 올렸다. 이들의 결혼은 스포츠와 할리우드의 만남으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마릴린 먼로와 함께 한국 방문]
신혼여행의 일부로 마릴린 먼로와 함께 대한민국을 방문하여 한국 전쟁 참전 용사들을 위로하고 뜨거운 환대를 받았다.
마릴린 먼로와의 신혼여행 중이던 1954년 2월, 그는 먼로와 함께 대한민국을 방문했다. 이 방문은 한국 전쟁 참전 용사들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당시 한국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세기의 이혼, 마릴린 먼로와의 결별]
결혼 후 불과 10개월 만에 배우 마릴린 먼로와 이혼했다. 이 이혼은 먼로의 주도로 이루어졌으며, 그에게 가정폭력 혐의가 제기되어 논란이 되었다.
마릴린 먼로와 결혼한 지 10개월 만인 1954년 10월, 그는 먼로와 이혼했다. 이 이혼은 먼로가 추진하여 성사되었으며, 조 디마지오가 가정폭력범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대중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1955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 영원한 전설로]
통산 0.325의 타율과 361홈런, 1537타점의 기록을 남기고 은퇴한 그는 88.84%의 득표율로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며 영원한 전설이 되었다.
1955년, 조 디마지오는 은퇴 4년 만에 88.84%의 득표율로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그의 통산 기록은 0.325 타율, 361 홈런, 1537 타점이며, 뛰어난 선구안과 정확한 타격으로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1999
[디마지오 데이 행사]
1967년을 빛낸 영화 졸업의 삽입곡인 Mrs. Robinson에는 조 디마지오 이름이 나오기 때문에 젊은 층에 다시 유명해 졌었는데 1999년 4월 25일 뉴욕 양키스 스타디움에는 폴 사이먼이 초청되어 Mrs. Robinson을 부르며 디마지오 데이 행사를 축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