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휘 (고려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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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반란자, 쌍성총관부 총관, 한양 조씨 + 카테고리
조휘는 고려 고종 대 동북면의 토착 세력으로, 몽골의 침략이라는 국가적 위기 속에서 고려를 배반하고 원나라에 투항한 인물이다. 1258년 병마사 신집평을 살해하고 철령 이북의 땅을 바치며 세운 '쌍성총관부'는 이후 99년간 원나라의 직할령이 되어 고려 영토 수복의 최대 과제가 되었다. 그의 가문은 이 지역을 대대로 세습하며 독자적인 권세를 누렸고, 역설적으로 그의 손녀는 이성계의 조부 이춘에게 시집가며 훗날 조선 건국 세력과도 묘한 인연을 맺게 된다. 한 개인의 배신이 한반도 동북방의 지도를 1세기 동안 바꿔놓은 기록적 사건의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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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258

[동북면의 반란과 투항]

몽골 군대가 동여진을 거쳐 화주에 침입하자, 조휘는 탁청과 공모하여 고려 관료들을 살해하고 몽골에 투항했다. 이 사건으로 철령 이북의 광활한 영토가 몽골의 직할지로 넘어가게 되었다.
동북면 병마사 신집평, 등주부사 박인기, 화주부사 김선보 등을 죽이고 성을 바쳤다. 당시 고려 조정의 강압적인 피난 정책(입보)에 불만을 품은 토착 세력의 반발이 배경이 되었다. [출처: 고려사]

1259

[한계성 공격 실패]

조휘의 일당은 몽골군을 이끌고 강원도 양양의 한계성을 공격했으나 고려 방호별감 안홍민에게 패배했다. 투항 직후 고려의 수비군을 직접 공격하며 적대적 행보를 보였다.
안홍민의 야별초 군사들이 기습적으로 반격하여 몽골군을 크게 격퇴했다. 조휘는 이 작전을 통해 자신의 충성심을 증명하려 했으나 군사적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국가 예물 강탈 사건]

보룡역에서 고려 국왕이 몽골군 주둔소에 보내는 선물을 운반하던 사자 김기성 일행을 습격하여 살해하고 물품을 약탈했다. 고려 조정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는 극단적 행위였다.
김기성을 포함한 수행원 13명을 무참히 살해하고 예물을 탈취했다. 이는 조휘 일당이 단순한 투항자를 넘어 범죄 집단과 같은 대우를 고려사에서 받게 된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

[쌍성총관부 초대 총관]

몽골(원나라)은 투항한 지역을 다스리기 위해 화주에 쌍성총관부를 설치하고 조휘를 초대 총관으로 임명했다. 탁청은 그 아래에서 천호의 직책을 맡았다.
이로써 조휘는 몽골의 관리가 되어 고려 영토를 원나라의 이름으로 통치하게 되었다. '쌍성'은 화주의 옛 이름인 정평의 두 성을 의미한다.

1260

[동진국 군대 유인]

조휘 일당은 동진국의 군대를 유인하여 춘주(춘천) 천곡촌에 주둔시키며 고려 내부를 더욱 위협했다. 원나라의 힘을 빌려 자신의 영향력을 남쪽으로 확장하려 시도했다.
신의군 등의 저지로 더 이상의 남진은 막혔으나, 강원도 북부 일대까지 조휘의 선동과 세력권이 미쳤음을 보여준다.

1271

[양주 반란군 조력]

양주에서 반란을 일으킨 세력을 도와 수령을 사로잡는 데 가담했다. 고려 중앙 정부의 행정력이 미치는 곳곳에서 혼란을 부추기는 역할을 지속했다.
원나라의 권위를 등에 업고 고려 내 반정부 세력과 결탁하여 지방 통제력을 무력화하려 했다.

1273

[조휘의 사망]

쌍성총관부의 초대 총관으로 군림하던 조휘가 사망했다. 그의 직위는 아들 조양기에게 세습되며 가문의 통치가 본격화되었다.
그가 사망한 뒤에도 쌍성총관부는 그의 자손들에 의해 1356년 공민왕이 수복할 때까지 99년 동안 유지되었다. 이는 고려 후기 영토 분쟁의 가장 뼈아픈 기록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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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 (고려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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