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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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치훈
바둑 기사, 프로 기사, 마인드 스포츠 선수 + 카테고리
조치훈은 일본 바둑계를 제패하며 한국 바둑의 자긍심을 드높인 불세출의 천재 기사이자, 끊임없는 투혼의 상징입니다. 6세라는 어린 나이에 홀로 도일하여 기타니 미노루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일본 바둑 역사상 최연소 입단 기록을 세우며 화려하게 등장했습니다. 기성, 명인, 본인방을 동시에 석권하는 '대삼관'을 두 차례나 달성하고 일본 주요 7대 기전을 모두 제패하는 '그랜드슬램'을 사상 최초로 이룩하는 등 수많은 금자탑을 쌓았습니다. 특히 휠체어를 타고 대국에 임한 '휠체어 대국' 일화는 그의 승부사 기질을 보여주는 전설적인 사건으로 회자됩니다. 통산 1,600승이 넘는 경이로운 기록을 보유한 그는 현재까지도 현역으로 활동하며 바둑판 위에 자신의 인생을 묵묵히 써 내려가고 있는 영원한 거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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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56

[조치훈의 탄생]

대한민국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나 바둑계의 거성으로 성장할 첫발을 내디딥니다. 부유한 집안 환경 속에서 어린 시절부터 바둑에 남다른 재능을 보이며 주위의 기대를 모았습니다.
본명은 조치훈이며, 바둑 기사인 조남철의 조카이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영특한 두뇌로 바둑판 앞에서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신동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1962

[6세의 나이로 도일]

바둑 유학을 위해 불과 6세의 어린 나이에 홀로 일본으로 건너갑니다. 일본 바둑의 대부 기타니 미노루 9단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본격적인 수련을 시작합니다.
가족과 떨어져 낯선 타국에서 오직 바둑에만 매진하는 혹독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기타니 도장에서 수많은 일본 유망주들과 경쟁하며 실력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리는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1968

[일본 최연소 입단 기록]

11세 9개월의 나이로 일본기원 전문 기사로 입단하며 당시 사상 최연소 입단 기록을 수립합니다. 일본 바둑계를 깜짝 놀라게 한 천재의 화려한 등장이었습니다.
기타니 도장의 핵심 인재로서 빠르게 프로의 벽을 뚫었습니다. 이 기록은 훗날 나카무라 스미레 등이 경신하기 전까지 수십 년간 일본 바둑계의 전설적인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1973

[제5기 신예토너먼트 우승]

프로 데뷔 후 첫 공식 기전 우승을 차지하며 차세대 리더로서의 가능성을 입증합니다. 신예 기사들 중 단연 돋보이는 기량을 선보이며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강력한 수읽기와 치열한 전투력을 바탕으로 또래 강자들을 차례로 물리쳤습니다. 이 우승은 앞으로 펼쳐질 수많은 타이틀 획득의 기분 좋은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1974

[제22기 일본기원 선수권 우승]

중견급 이상의 강자들이 모인 기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정상급 기사로 발돋움합니다. 단순히 유망주를 넘어 타이틀 홀더로서의 무게감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바둑계의 세대교체를 주도하는 주역으로 꼽히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부터 그의 독특한 기풍인 '폭풍 같은 수읽기'가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1975

[제12기 프로십걸전 우승]

당대 최고수들이 격돌하는 십걸전에서 우승하며 일본 바둑의 최상위권으로 진입합니다. 실력 면에서 더 이상 의문의 여지가 없는 강자로 공인받았습니다.
기라성 같은 선배 기사들을 상대로 정면 승부를 펼쳐 얻어낸 값진 성과입니다. 대중적인 인지도 또한 급상승하며 일본 내 한국인 기사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했습니다.

1976

[8단 승단]

압도적인 성적을 바탕으로 프로 8단으로 승단하며 최고 단위인 9단을 목전에 둡니다. 거침없는 승단 행진은 바둑계의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입단 이후 매년 높은 승률을 기록하며 초고속 승단을 이어갔습니다. 이미 실력은 9단 이상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메이저 타이틀 도전을 준비하던 시기입니다.

1980

[명인전 탈환 및 최연소 기록]

오타케 히데오 9단을 꺾고 제5기 명인 타이틀을 획득하며 일본 바둑 최고의 자리에 오릅니다. 당시 24세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 명인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명인전 우승은 일본 바둑계의 정점에 섰음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를 기점으로 조치훈의 전성기가 본격적으로 열리며 '조치훈 천하'의 서막을 알렸습니다.

1981

[9단 승단]

마침내 바둑 기사의 최고 영예인 9단(입신)에 오릅니다. 24세의 젊은 나이에 최고 단위를 획득하며 완벽한 전성기를 구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바둑계에서 9단은 단순한 실력을 넘어 인품과 권위를 상징합니다. 조치훈은 성적을 통해 이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시키며 명실상부한 일인자로 우뚝 섰습니다.

[제36기 본인방전 우승]

전통의 본인방 타이틀까지 거머쥐며 명인과 본인방을 동시에 보유한 기사가 됩니다. 가문의 명예를 중시하는 일본 바둑에서 본인방 칭호를 얻은 것은 대단한 영광입니다.
무사 가문에서 유래한 본인방 타이틀은 기사들에게 가장 선망받는 직함입니다. 조치훈은 이때부터 '본인방 치훈'으로 불리며 기품 있는 일인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1982

[제30기 왕좌전 우승]

주요 7대 기전 중 하나인 왕좌전마저 제패하며 타이틀 사냥을 멈추지 않습니다. 다관왕으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다지는 한 해였습니다.
매 대국마다 목숨을 거는 듯한 처절한 바둑으로 관객들을 매료시켰습니다. 상대의 실수를 유도하는 날카로운 흔들기와 끝내기는 그의 전매특허로 자리 잡았습니다.

1983

[제7기 기성전 우승 및 대삼관 달성]

최대 상금 기전인 기성(Kisei)전에서 후지사와 히데유키 9단을 꺾고 우승하며, 기성·명인·본인방을 동시에 보유하는 '대삼관(大三冠)'의 위업을 사상 최초로 달성합니다.
일본 바둑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세 개의 타이틀을 한 몸에 지닌 전무후무한 사건이었습니다. 이로써 조치훈은 일본 바둑 역사상 가장 강력한 일인자임을 공식적으로 입증했습니다.

1985

[제10기 작은 기성전 우승]

작은 기성(Gosei)전에서도 정상에 오르며 타이틀 수집을 이어갑니다. 7대 기전 중 아직 정복하지 못한 타이틀을 향해 차근차근 나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끊임없는 도전 정신으로 무장한 그는 메이저와 마이너 기전을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 우승은 훗날 달성할 7대 기전 전관왕 대기록의 중요한 퍼즐 조각이었습니다.

1986

[치명적인 교통사고 발생]

기성전 방어전을 앞두고 대형 교통사고를 당해 전신에 큰 부상을 입습니다. 의사들이 안정을 권유할 정도로 생명이 위태로운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머리와 다리 등에 큰 골절상을 입어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승부사로서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병원 침대에서 대국장으로 향하는 놀라운 결단을 내립니다.

[전설적인 '휠체어 대국']

사고 열흘 만에 휠체어를 타고 대국장에 나타나 기성전 제1국에 임합니다. 전신에 붕대를 감은 채 정신력으로 버티며 대국하는 모습은 전 세계 바둑 팬들에게 깊은 감동과 충격을 주었습니다.
비록 시리즈 결과는 좋지 못했으나, "바둑은 전신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두는 것"이라는 명언을 남기며 투혼을 불태웠습니다. 이 사건은 조치훈이라는 인물을 불굴의 아이콘으로 각인시킨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1987

[제35기 천원전 우승]

천원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일본 바둑 사상 최초로 7대 메이저 기전을 모두 한 번 이상씩 제패하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합니다. 바둑 역사에 영원히 남을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기성, 명인, 본인방, 왕좌, 천원, 작은 기성, 십단전까지 모든 문턱을 넘었습니다. 사고의 후유증을 딛고 일어선 완벽한 부활이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전설로 등극하는 순간이었습니다.

1989

[본인방전 탈환 및 장기 집권 시작]

잠시 내주었던 본인방 타이틀을 다시 찾아오며 기나긴 10년 연속 방어라는 대역사의 첫발을 뗍니다. 본인방전의 신으로 불리기 시작한 해입니다.
다케미야 마사키 9단으로부터 타이틀을 뺏어온 이후, 그는 무려 10년 동안 그 누구에게도 본인방 자리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일본 바둑 역사상 최장기 타이틀 보유 기록 중 하나로 꼽힙니다.

1991

[제11기 응씨배 세계대회 활약]

세계 최고의 상금을 자랑하는 응씨배에 출전하여 상위권 성적을 거두며 국제 무대에서도 경쟁력을 과시합니다. 일본 1인자로서의 자존심을 세계에 떨쳤습니다.
비록 최종 우승에는 닿지 못했으나, 한국과 중국의 강자들을 상대로 특유의 끈질긴 반면 운영을 선보였습니다. 국제 대회가 활성화되기 시작한 시점에서 일본 바둑의 위상을 든든히 지켰습니다.

[제39기 왕좌전 우승]

왕좌전에서 다시 우승을 차지하며 다관왕의 면모를 재확인합니다. 본인방전 집권 중에도 다른 기전들을 부지런히 챙기며 압도적인 지배력을 유지했습니다.
30대 중반에 접어든 나이에도 불구하고 지치지 않는 연구량과 체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매 경기 사활을 건 수읽기로 상대들을 압도하며 일본 바둑의 전성기를 이끌었습니다.

1992

[제25회 바둑대상 최우수기사상 수상]

한 해 동안 거둔 눈부신 성과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아 일본 바둑대상 최우수기사상을 수상합니다. 명실상부한 당대 최고의 선수로 공인받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다수의 타이틀 보유와 높은 승률은 그를 이견 없는 주인공으로 만들었습니다. 팬 투표와 전문가 평가 모두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최고의 한 해를 마무리했습니다.

1994

[제32기 십단전 우승]

십단(Jūdan)전 정상에 오르며 전관왕 타이틀 개수를 늘려갑니다. 상대의 수를 미리 꿰뚫어 보는 정밀한 수읽기로 대국을 완벽하게 주도했습니다.
특유의 '타개' 능력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입니다. 곤마를 수습하며 오히려 집으로 이득을 보는 그의 기술은 전 세계 바둑 지망생들의 교과서적인 모델이 되었습니다.

1996

[제20기 기성전 탈환 및 두 번째 대삼관]

기성 타이틀을 뺏어오며 자신의 커리어에서 두 번째로 기성·명인·본인방을 모두 차지하는 '대삼관'을 재달성합니다. 일본 바둑계를 다시 한번 완벽하게 평정했습니다.
한 번도 하기 힘든 대삼관을 두 번이나 해낸 것은 그의 기량이 일시적인 행운이 아닌 절대적인 실력임을 증명합니다. 조치훈의 두 번째 전성기이자 일본 바둑 역사상 가장 화려한 시기로 평가받습니다.

1998

[본인방전 10연패 대업 달성]

제53기 본인방전에서 타이틀 방어에 성공하며 무려 10년 연속 본인방 자리를 지키는 대기록을 작성합니다. 이 기록으로 '25세 본인방'이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영구히 부여받습니다.
단일 기전 10연패는 일본 바둑사에서 극히 드문 위대한 업적입니다. 이로써 조치훈은 살아있는 전설을 넘어 신화적인 기사의 반열에 올랐으며, 본인방전의 역사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1999

[본인방 타이틀 상실]

10년간 굳건히 지켜왔던 본인방 타이틀을 신예의 거센 도전에 밀려 마침내 내어줍니다. 기나긴 장기 집권이 마감되며 바둑계의 큰 아쉬움과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습니다.
패배 후에도 의연한 모습으로 상대를 축하하며 거장의 품격을 보여주었습니다. 타이틀은 잃었으나 그가 남긴 10년의 기록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거대한 유산으로 남았습니다.

2001

[제40기 십단전 우승]

십단전에서 다시 정상에 오르며 무관으로의 추락을 거부하고 건재함을 과시합니다. 노련한 관록 바둑으로 젊은 기사들의 도전을 뿌리치며 제3의 전성기를 예고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예리한 감각을 뽐냈습니다. 특히 후반부의 치밀한 형세 판단과 끝내기는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임을 다시 한번 입증한 대회였습니다.

2003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우승]

제8회 삼성화재배 결승에서 한국의 박영훈 9단을 꺾고 생애 첫 메이저 세계대회 우승을 차지합니다. 일본 대표 기사로서 자국 바둑의 자존심을 세계 무대에서 화려하게 세웠습니다.
당시 전성기를 달리던 한국 기사들을 상대로 거둔 승리라 더욱 값진 성과였습니다. 40대 후반의 나이에 세계 최정상에 오르는 노익장을 과시하며 전 세계 바둑계에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2005

[제43기 십단전 3연패 달성]

십단전에서 3년 연속 타이틀을 방어하며 특정 기전에 유독 강한 면모를 다시금 보여줍니다. 꾸준한 성적으로 일본 바둑계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의 바둑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유연해지고 깊이가 더해졌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쟁쟁한 후배들과의 대결에서 체력적 한계를 정신력으로 극복하며 이뤄낸 성과입니다.

2007

[통산 타이틀 획득 70회 돌파]

생애 통산 타이틀 획득 횟수가 70회를 넘어서며 일본 바둑 역사상 최다 기록을 경신합니다. 걸어가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곧 새로운 역사가 되는 대기록의 행진입니다.
수십 년간 정상의 자리를 지키며 얻어낸 이 숫자는 그의 성실함과 천재성을 상징합니다. 일본 바둑 역사상 그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압도적인 지표로 역사에 남게 되었습니다.

2010

[일본 자수포장 수훈]

일본 바둑 발전에 기여한 지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본 정부로부터 자수포장을 수여받습니다. 문화 예술계 인사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 중 하나입니다.
한국인 기사로서 일본의 국가적 훈장을 받은 것은 매우 이례적이고 뜻깊은 일입니다. 이는 그의 예술적 성취가 국경을 넘어 일본 사회 전체의 존경을 받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2012

[통산 1,400승 대기록 달성]

프로 데뷔 이후 공식 대국 통산 1,400번째 승리를 거둡니다. 일본 바둑 역사상 사상 최초의 기록으로, 지치지 않는 열정이 만들어낸 위대한 산물입니다.
수천 판의 대국을 치르면서도 승리에 대한 갈증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후배 기사들에게는 경이로움의 대상이자, 영원히 닿고 싶은 거대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2016

[일본판 알파고 '딥젠고'와의 대결]

일본이 야심 차게 개발한 인공지능 '딥젠고(DeepZenGo)'와 특별 대국을 펼쳐 2승 1패로 승리합니다. 인공지능 시대의 초입에서 인간의 직관과 관록이 여전히 힘이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 승부였습니다.
최첨단 알고리즘을 상대로 노련한 흔들기와 복잡한 사활 유도를 통해 기계의 허점을 정확히 찔렀습니다. 이 대국은 인공지능 연구자들에게도 큰 영감을 주었으며, 조치훈의 기력이 여전히 건재함을 만천하에 과시했습니다.

2017

[통산 1,500승 세계 최초 달성]

일본 바둑계를 넘어 세계 바둑 역사상 최초로 공식 대국 통산 1,500승이라는 경이로운 금자탑을 쌓아 올립니다. 승부사로서 도달할 수 있는 궁극의 누적 기록입니다.
반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반상 위에서 헌신해 온 결과물입니다. 그의 꾸준함과 자기 관리 능력은 전 세계 스포츠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모범적인 사례로 칭송받았습니다.

2019

[문화공로자 선정 및 욱일중수장 수훈]

일본 정부로부터 문화공로자로 선정된 데 이어 최고 권위의 욱일중수장을 수훈합니다. 바둑이라는 문화를 보존하고 발전시킨 국보급 인물로 국가적 예우를 받았습니다.
단순한 기사를 넘어 한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 거장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했습니다. 한국과 일본 양국의 문화 가교 역할을 훌륭히 수행한 공로가 다시 한번 빛을 발한 순간입니다.

2021

[통산 타이틀 획득 76회 기록]

작은 기전과 시니어 기전 등에서 꾸준히 승수를 추가하며 통산 타이틀 획득 횟수를 76회까지 늘립니다. 일본 바둑 역사상 부동의 1위 기록을 계속해서 스스로 경신해 나갔습니다.
60대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우승의 환희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승부를 향한 그의 순수한 열정은 나이를 무색하게 만들었으며, 매 대국마다 신중함을 잃지 않는 진지한 자세로 임했습니다.

2023

[시니어 기전 활약 및 후진 양성]

마스터스 컵 등 시니어 대회에서 여전히 강력한 우승 후보로 군림하며 활약합니다. 동시에 후배 기사들에게 자신의 경험과 이론을 아낌없이 전수하며 바둑계의 큰 어른으로서 봉사합니다.
반상 위에서는 여전히 매서운 호랑이 같지만, 반상 밖에서는 자상하고 유머러스한 선배로 통합니다. 그의 조언 한마디는 젊은 기사들에게 세계를 향한 큰 꿈을 심어주는 소중한 영감이 되었습니다.

2025

[통산 1,600승 세계 최초 돌파]

전 세계 바둑계 역사상 그 누구도 도달하지 못했던 공식 대국 통산 1,600승이라는 신화적인 기록을 마침내 달성합니다. 인류 바둑사의 거대한 페이지를 스스로 장식했습니다.
단순한 숫자를 넘어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바둑판을 떠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숭고한 기록입니다. 바둑 기사들에게 1,600승은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신의 경지와도 같은 수치로 받아들여집니다.

2026

[현역 최고령 강자의 위엄 유지]

가장 최근까지도 주요 기전 예선과 본선에 출전하여 손자뻘인 젊은 기사들과 대등하게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지치지 않는 승부욕과 연구열은 현대 바둑계의 살아있는 교과서 그 자체입니다.
70세를 앞둔 나이에도 매일 인공지능 기보를 연구하며 새로운 수법을 익히는 데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조치훈의 바둑 인생은 마침표가 아닌 여전히 가장 뜨거운 현재진행형으로 팬들의 가슴속에 깊이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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