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엘리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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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시인, 언론인, 번역가 + 카테고리

영국의 소설가, 시인, 언론인, 번역자로 빅토리아 시대의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입니다. 본명은 메리 앤 에번스이며, 여성 작가에 대한 편견을 피하고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필명 조지 엘리엇을 사용했습니다. 시골 잉글랜드를 배경으로 한 사실주의적 소설들로 유명하며, 심리적 통찰을 보여주었습니다. 대표작으로는 《플로스 강변의 물방앗간》, 《사일러스 매너》, 《미들마치》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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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819

[조지 엘리엇 출생]

영국의 소설가이자 작가인 조지 엘리엇(본명 메리 앤 에번스)이 워릭셔 너니턴에서 로버트 에번스와 크리스티나 피어슨의 셋째 자녀로 태어났습니다.

워릭셔 너니턴에서 로버트 에번스(1773-1849)와 크리스티나 피어슨(1788-1836)의 세 번째 자식인 메리 앤 에번스가 태어났다.

1820

[그리프 하우스로 이사]

가족들이 너니턴과 베드워스 사이의 그리프 하우스로 이사했습니다.

1820년 초 가족들은 너니턴와 베드워스 사이의 그리프 하우스라는 이름의 집으로 이사를 간다.

1824

[미스 라텀 학교 입학]

5세부터 9세까지 누나 크리시와 함께 아틀버러에 있는 미스 라텀 학교에 다녔습니다.

5살부터 9살까지 그녀는 누나 크리시와 함께 아틀버러에 있는 미스 라텀 학교에 다녔다.

1828

[월링턴 부인 학교 입학]

9세부터 13세까지 너니턴의 월링턴 부인 학교에서 기숙 생활을 했습니다.

9살부터 13살까지는 너니턴의 월링턴 부인 학교에서 기숙 생활을 했다.

1832

[미스 프랭클린 학교 입학]

13세부터 16세까지 코벤트리의 미스 프랭클린 학교에서 기숙 생활을 했습니다.

13살부터 16살까지는 코벤트리의 미스 프랭클린 학교에서 기숙 생활을 했다.

1836

[어머니 사망 및 가정생활 시작]

어머니가 사망하자 16세의 나이에 가정 살림을 맡기 위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1836년 에번스의 어머니가 사망하자 에번스는 (당시 16살) 가정 살림을 맡기 위해 집으로 돌아왔지만서도 자신을 가르치던 마리아 루이스하고 계속 편지를 주고받았다.

1840

[코번트리 폴실로 이사]

21세가 되자 오빠 아이작이 결혼하여 집을 차지했고, 에번스는 아버지와 함께 코번트리 근처 폴실로 이사했습니다.

그녀가 21살이 되자 오빠 아이작은 결혼하며 집을 차지했는데 그런 고로 에번스와 그녀의 아버지는 코번트리 근처 폴실로 이사를 가게 된다.

1846

[《예수의 생애》 번역본 출간]

'로즈힐 서클'의 다른 구성원들이 시작했다가 중단한 데이비드 스트라우스의 《예수의 생애》 영어 번역을 완성했습니다. 이것은 그녀의 첫 주요 문예 작품이었습니다.

엘리엇의 첫 주요 문예 작품은 ‘로즈힐 서클’의 다른 구성원들이 번역을 하다 만 것을 그녀가 끝낸 슈트라우스의 《예수의 생애》 (1846) 영어 번역이라 할 수 있겠다.

1849

[아버지 사망 및 스위스 여행]

30세가 되던 해 아버지가 사망하자, 장례식 5일 후 브레이 부부와 함께 스위스로 여행을 떠나 제네바에 머물렀습니다.

엘리엇은 공손히 교회를 다니며 아버지를 위해 1849년 그녀가 30살이 되고 아버지가 사망할 때까지 집을 지킨다. 아버지의 장례식이 거행된 날로부터 5일 후 그녀는 브레이 부부와 함께 스위스로 여행을 떠난다. 그녀는 제네바에 혼자 머물기로 결정하며, 먼저 플롱종에 있는 호숫가에 살다가 (현재 유엔 건물 근처) 이후로는 그녀의 친구 프랑수아와 쥘리에 달베르 뒤라르가 소유한 샤누안 로 (현재 펠리세리 로)에 위치한 저택 2층에서 살게 된다.

1850

[런던 이사 및 작가 활동 시작]

잉글랜드로 돌아와 작가가 되기 위한 목적으로 런던으로 이사했으며, 이때부터 자신을 메리언 에번즈라 불렀습니다.

같은 해에 잉글랜드로 돌아온 (1850) 엘리엇은 작가가 되고자하는 목적을 갖고 런던으로 이사를 갔으며 그곳에서 자기 자신을 메리언 에번즈라 불렀다. 엘리엇은 전에 로즈힐에서 만난 급진적인 출판업자이자 그녀의 슈트라우스 번역을 출판해준 존 채프먼의 집에 머물렀다.

1851

[보조 편집자 활동]

급진적인 신문사 의 보조 편집자가 되었습니다. 이후 1854년 중반까지 많은 수필과 논평을 기고하며 실질적인 출판 작업을 담당했습니다.

채프먼은 행동하는 좌파 신문 회사 를 얼마 전에 샀었고 에번즈는 1851년에 보조 편집자가 된다. 채프먼이 공식적으로는 편집자였지만 실질적으로 신문을 출간하는 작업을 하며 1852년 1월자부터 많은 수필과 논평을 기고하고 1854년 중반에 를 그만 둘 때까지 계속 일한 이는 에번즈였다.

1854

[《기독교의 본질》 번역]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의 《기독교의 본질》을 번역했습니다.

훗날 그녀는 포이어바흐의 《기독교의 본질》 (1854)을 번역하게 된다.

[조지 헨리 루이스와의 동거 시작]

유부남인 조지 헨리 루이스와 1878년까지 동거를 시작했습니다. 이는 그녀가 '조지 엘리엇'이라는 필명을 사용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대중들이 자신의 사생활을 파해치는 것을 막아 그녀와 유부남 조지 헨리 루이스와의 관계가 초래할 스캔들을 피하고자 필명을 사용했다고 사료된다. 조지 헨리 루이스 (1854년 - 1878년 사이 동거)

1859

[장편소설 《아담 비드》 출간]

첫 장편소설 《아담 비드》를 출간하며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아담 비드》 (1859) 등 총 7권의 소설을 썼다.

1860

[《플로스 강변의 물방앗간》 출간]

대표작 중 하나인 《플로스 강변의 물방앗간》을 출간했습니다. 이 작품은 시골 잉글랜드를 배경으로 한 사실주의와 심리적 통찰을 잘 보여줍니다.

그녀는 《플로스 강변의 물방앗간》 (1860) 등 총 7권의 소설을 썼다. 주요 작품 = ''[[플로스 강변의 물방앗간]]'' (1860년)

1861

[《사일러스 매너》 출간]

그녀의 중요한 작품 중 하나인 《사일러스 매너》를 출간했습니다.

그녀는 《사일러스 매너》 (1861) 등 총 7권의 소설을 썼다. 주요 작품 = ''[[사일러스 매너]]'' (1861년)

1862

[《로몰라》 출간]

장편 소설 《로몰라》를 출간했습니다.

그녀는 《로몰라》 (1862–63) 등 총 7권의 소설을 썼다.

1871

[《미들마치》 출간]

소설가 마틴 에이미스와 줄리언 반스에게 영문학에서 가장 위대한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은 대표작 《미들마치》를 출간했습니다.

그녀는 《미들마치》 (1871–72) 등 총 7권의 소설을 썼다. 주요 작품 = ''[[미들마치]]'' (1871년) 엘리엇의 미들마치는 소설가 마틴 에이미스와 줄리언 반스가 영문학에서 가장 위대한 소설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1876

[《다니엘 데론다》 출간]

그녀의 마지막 소설인 《다니엘 데론다》를 출간했습니다.

그녀는 《다니엘 데론다》 (1876) 등 총 7권의 소설을 썼다. 주요 작품 = ''[[다니엘 데론다]]'' (1876년)

1880

[존 크로스와 결혼]

사망 직전 존 크로스와 결혼했습니다.

배우자 = 존 크로스 (m. 1880)

[조지 엘리엇 사망]

영국 런던 첼시에서 60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1880년 1월 1일 (60세) 영국 런던 첼시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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