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루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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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루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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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독, 제작자, 각본가, 기업가 + 카테고리

조지 루카스는 세계적인 영화 감독이자 제작자, 각본가, 기업가로, 《스타워즈》와 《인디아나 존스》라는 불멸의 프랜차이즈를 창조했습니다. 루카스필름, 인더스트리얼 라이트 & 매직 등 혁신적인 회사를 설립하며 현대 블록버스터 영화의 선구자가 되었죠. 할리우드 시스템에 얽매이지 않고 독립적인 영화 제작을 추구했으며, 특수효과 기술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그의 상상력과 비전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며 대중문화에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연표

1944

[영화 거장의 탄생]

캘리포니아주 머데스토에서 태어나 영화 산업에 혁명을 가져올 인생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조지 월턴 루카스 주니어는 1944년 5월 14일 캘리포니아주 머데스토에서 태어났습니다. 도로시 엘리노어 루카스와 조지 월튼 루카스 시니어의 아들로, 독일계, 스위스-독일계, 영국계, 스코틀랜드계 혈통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만화와 과학 소설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 '플래쉬 고든' 연속극을 즐겨 보며 영화적 상상력을 키웠습니다.

1955

[디즈니랜드 방문]

가족과 함께 디즈니랜드 개장 주간에 방문하여 테마파크에 대한 열정을 키웠습니다.

1955년 7월 디즈니랜드 개장 주간에 가족과 함께 방문했으며, 이 경험은 그의 상상력과 창의성에 영향을 미쳤고, 이후로도 이 공원에 대한 열정을 지속하였습니다.

1962

[치명적인 자동차 사고]

고등학교 졸업을 며칠 앞두고 겪은 심각한 자동차 사고로 카레이서의 꿈을 접고 다른 관심사를 추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62년 6월 12일, 고등학교 졸업을 며칠 앞두고 개조한 차량을 운전하다 측면 충돌 사고를 당했습니다. 이 사고로 폐에 타박상을 입는 등 심각한 부상을 입었지만, 안전벨트가 끊어져 차 밖으로 튕겨 나간 덕분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 경험은 그가 레이싱 선수의 꿈을 포기하고 영화 예술로 눈을 돌리게 만들었습니다.

1965

[초기 단편 영화 제작 활동]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재학 시절부터 '룩 앳 라이프' 등 비서사적인 시각 영화를 다작하며 카메라 워크와 편집에 대한 열정을 보였습니다.

1965년부터 루카스는 USC 대학에서 수업 중 접한 영감을 주는 영화들, 특히 캐나다 국립영화위원회에서 제작된 시각적 영화들에 매료되었습니다. 그는 '룩 앳 라이프', '프라이하이트', '허비'와 같은 줄거리나 등장인물이 없는 16mm 필름 기반의 시각적 톤 시(詩)와 시네마 베리테 작품들을 빠르게 만들었으며, 자신을 감독이 아닌 영화 제작자로 정의했습니다.

1967

[학사 졸업 및 학생 영화제 수상]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단편 영화 '전자 미로 THX 1138 4EB'로 전국 학생 영화제 1등상을 수상하며 재능을 인정받았습니다.

1967년 영화 예술학 학사 학위를 받고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같은 해 USC 대학원 영화 제작과에 재입학하여 미 해군 학생들의 수업 강사로 일하면서 단편 영화 《전자 미로 THX 1138 4EB》를 감독했고, 이 작품은 1967-68년 전국 학생 영화제에서 1등상을 수상하여 그의 재능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1969

[아메리칸 조트로프 설립 및 결혼]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와 함께 '아메리칸 조트로프' 스튜디오를 공동 설립하고 영화 편집자 마샤 그리핀과 결혼하며 독립적인 영화 제작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1969년,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로 이주하여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와 함께 아메리칸 조트로프 스튜디오를 공동 설립했습니다. 이는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의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또한 이 시기에 미래의 아내가 될 영화 편집자 마샤 그리핀과 결혼했습니다.

1971

[장편 데뷔작 《THX 1138》]

학창 시절 단편 영화를 바탕으로 한 첫 장편 영화 《THX 1138》의 각본을 쓰고 연출했으나, 비평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흥행에는 실패했습니다.

1971년, 학창 시절 단편 영화 《전자 미로 THX 1138 4EB》를 원작으로 한 장편 영화 《THX 1138》의 각본을 쓰고 연출했습니다. 이 영화는 비평가들에게 호평을 받았지만, 상업적으로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루카스의 독특한 비전과 연출 스타일을 보여주는 중요한 시작점이었다.

1973

[루카스필름 설립과 《청춘 낙서》의 성공]

자신의 회사 루카스필름을 설립하고, 1960년대 초 십대 시절을 배경으로 한 영화 《청춘 낙서》를 감독하여 비평과 흥행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1973년, 루카스는 자신의 영화 제작사 루카스필름을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1960년대 초 캘리포니아 머데스토에서의 십대 시절에서 영감을 받은 영화 《청춘 낙서》를 감독했습니다. 이 영화는 비평적으로 극찬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흥행에서도 크게 성공하며, 아카데미상에서 감독상과 작품상을 포함한 5개 부문 후보에 오르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이는 루카스의 초기 경력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였습니다.

1977

[전설의 시작, 《스타워즈》 개봉]

스페이스 오페라 서사 영화 《스타워즈》(이후 《스타워즈 에피소드 4: 새로운 희망》)를 개봉하여 예상 뛰어넘는 대히트를 기록하며 영화계에 혁명을 가져왔습니다.

1977년, 루카스는 자신의 독창적인 우주 모험 이야기를 담은 《스타워즈》를 개봉했습니다. 제작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당시의 모든 예상을 뛰어넘는 대히트를 기록하며 역대 최고 흥행작이 되었습니다. 아카데미상 6개 부문을 수상하며 단순한 영화를 넘어선 문화적 현상을 일으켰고, 현대 블록버스터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하며 영화 산업의 판도를 바꿨습니다. 루카스는 이 영화의 라이선싱 및 머천다이징 권리를 확보하여 막대한 수익을 창출했습니다.

[잉크팟 어워드 수상]

영화 산업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아 잉크팟 어워드를 수상했습니다.

1977년, 루카스는 영화와 만화 산업에 대한 그의 초기 기여를 인정받아 잉크팟 어워드를 수상했습니다. 이는 그가 《스타워즈》를 통해 대중문화에 미친 영향이 시작되던 시기에 받은 중요한 상이었습니다.

1979

[픽사(그래픽스 그룹) 설립]

루카스필름 내에 컴퓨터 그래픽 전문 부서인 '그래픽스 그룹'을 설립했으며, 이 부서는 훗날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 발전했습니다.

1979년, 루카스는 루카스필름의 컴퓨터 부문 중 하나로 '그래픽스 그룹'을 설립했습니다. 이 그룹은 초기 컴퓨터 그래픽 연구와 디지털 영화 기술 개발에 집중했으며, 《스타 트렉 2: 칸의 분노》와 《피라미드의 공포》 같은 영화의 획기적인 특수효과로 이어졌습니다. 이 그룹은 훗날 스티브 잡스에게 매각되어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픽사'로 성장합니다.

1980

[《제국의 역습》 제작]

《스타워즈》의 성공적인 후속작인 《제국의 역습》을 제작하고 공동 각본을 맡아 시리즈의 세계관을 확장했습니다.

1980년, 루카스는 《스타워즈》의 속편인 《제국의 역습》을 제작하고 스토리 크레딧을, 레이 브래킷과 함께 공동 각본 크레딧을 맡았습니다. 이 영화는 어빈 커슈너 감독에게 연출을 맡기며 자신은 제작에 집중했습니다. 《제국의 역습》은 《스타워즈》 시리즈의 깊이와 복잡성을 더하며 팬들로부터 큰 찬사를 받았습니다.

[《카게무샤》 제작 총괄]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카게무샤》의 제작 총괄을 맡아 일본 영화계와의 협력에 기여했습니다.

1980년, 루카스는 일본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카게무샤》의 제작 총괄을 맡았습니다. 이는 그가 영화계에서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1981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탄생]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함께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첫 작품인 《레이더스》를 제작하고 공동 각본을 맡아 또 하나의 전설적인 프랜차이즈를 탄생시켰습니다.

1981년, 루카스는 오랜 친구이자 동료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협력하여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시작인 《레이더스》를 제작하고 공동 각본을 맡았습니다. 이 영화는 모험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며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고, 《스타워즈》와 함께 루카스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첫 딸 입양]

첫 딸 어맨다 루카스를 입양했습니다.

1981년, 조지 루카스와 마샤 루 그리핀 부부는 첫 딸인 어맨다 루카스를 입양하며 가족을 이루었습니다.

1983

[《제다이의 귀환》 제작]

《스타워즈》 오리지널 삼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제다이의 귀환》을 제작하고 공동 각본을 맡았습니다.

1983년, 루카스는 《스타워즈》 오리지널 삼부작의 대단원인 《제다이의 귀환》을 제작하고 로런스 캐즈던과 각본 크레딧을 공유했습니다. 리처드 마퀀드 감독에게 연출을 맡겨 시리즈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습니다.

[마샤 그리핀과의 이혼]

아내 마샤 루 그리핀과 이혼했습니다. 이는 《스타워즈》 영화 제작 과정의 어려움으로 인한 관계의 긴장 때문이었습니다.

1983년, 조지 루카스는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영화 편집자이자 그의 아내였던 마샤 루 그리핀과 이혼했습니다. 《스타워즈》 및 후속작들의 후반 작업에 루카스가 쏟은 막대한 노력과 스트레스가 관계에 긴장을 초래했고, 결국 이혼으로 이어졌습니다.

[THX 설립]

오디오 전문 회사 THX를 톰린슨 홀먼과 함께 설립하여 영화 음향 기술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1983년, 루카스는 톰린슨 홀먼과 함께 오디오 회사 THX를 설립했습니다. 이 회사는 영화와 음악을 위한 스테레오, 디지털, 극장 음향 장비를 포함하며, 루카스필름의 음향 및 시각 효과 부문과 함께 영화 기술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984

[《인디아나 존스: 마궁의 사원》 제작 등]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인디아나 존스: 마궁의 사원》 제작 및 공동 각본. 《이워크: 용기의 캐러밴》 제작 총괄.

1984년, 루카스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인디아나 존스: 마궁의 사원》의 제작 및 공동 각본을 맡아 시리즈를 이어갔습니다. 또한 《스타워즈》 스핀오프 영화인 《이워크: 용기의 캐러밴》의 제작 총괄을 담당하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했습니다.

1985

[다양한 영화 제작 총괄]

《이워크: 엔도르 전투》와 《미시마 - 그의 인생》의 제작 총괄을 맡았습니다.

1985년, 루카스는 《이워크: 엔도르 전투》와 《미시마 - 그의 인생》 등 다양한 영화의 제작 총괄을 맡으며 제작자로서의 역량을 발휘했습니다.

1986

[픽사 매각]

루카스필름의 컴퓨터 그래픽 부문 '그래픽스 그룹'(픽사의 전신)을 스티브 잡스에게 5백만 달러에 매각했습니다.

1986년, 루카스는 루카스필름의 컴퓨터 그래픽 부문이자 픽사의 전신인 '그래픽스 그룹'을 스티브 잡스에게 5백만 달러에 매각했습니다. 이는 루카스가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기술 도구 연구 프로젝트로 인한 현금 유출을 중단하고, 회사가 엔터테인먼트 창출에 집중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매각은 픽사가 애니메이션 업계의 거장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라의 미로여행》 제작]

짐 헨슨 감독의 판타지 영화 《사라의 미로여행》을 제작했습니다.

1986년, 루카스는 짐 헨슨 감독의 판타지 영화 《사라의 미로여행》을 제작하며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었습니다.

1988

[딸 케이티 입양 및 제작 활동]

딸 케이티 루카스를 입양하고, 론 하워드 감독의 《윌로우》, 돈 블루스 감독의 《공룡시대》 제작 총괄을 맡았습니다.

1988년, 루카스는 딸 케이티 루카스를 입양하며 가족을 확장했습니다. 같은 해 론 하워드 감독의 판타지 영화 《윌로우》와 돈 블루스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공룡시대》의 제작 총괄을 맡아 활발한 제작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1989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 제작]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함께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을 제작하고 공동 각본을 맡아 《인디아나 존스》 삼부작을 마무리했습니다.

1989년, 루카스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함께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인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을 제작하고 공동 각본을 맡았습니다. 이 영화는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큰 성공을 거두며 《인디아나 존스》 삼부작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1991

[어빙 G. 솔버그 기념상 수상]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산업에 대한 지대한 공헌을 인정받아 어빙 G. 솔버그 기념상을 수상했습니다.

1991년, 루카스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제작자로서 영화 산업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에게 수여하는 어빙 G. 솔버그 기념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는 그의 영화적 업적과 영향력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이었습니다.

1992

[《영 인디아나 존스》 제작 총괄]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텔레비전 프리퀄 스핀오프인 《영 인디아나 존스》의 제작 총괄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92년부터 1993년까지 루카스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프리퀄 텔레비전 스핀오프인 《영 인디아나 존스》의 제작 총괄을 맡아 캐릭터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확장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1993

[아들 입양 및 《스타워즈》 프리퀄 발표]

아들 제트 루카스를 입양하고, 《스타워즈》 프리퀄 삼부작의 제작 계획을 공식 발표하며 팬들의 기대를 모았습니다.

1993년, 루카스는 아들 제트 루카스를 입양하며 세 자녀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같은 해, 《버라이어티》를 비롯한 여러 매체를 통해 《스타워즈》 프리퀄 삼부작을 제작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그는 프리퀄이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다크 사이드로의 전락을 다루는 비극적인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1994

[프리퀄 시나리오 작업 시작]

잠정적으로 '에피소드 I: 시작'이라는 제목의 첫 번째 《스타워즈》 프리퀄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1994년, 루카스는 잠정적으로 《에피소드 I: 시작》(Episode I: The Beginning)이라는 제목으로 첫 번째 《스타워즈》 프리퀄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이 시나리오는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여 그의 죽음으로 끝나는 하나의 긴 이야기의 시작이 될 것으로 구상되었습니다.

1997

[《스타워즈》 스페셜 에디션 재개봉]

《스타워즈》 20주년을 기념하여 오리지널 삼부작을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수정한 '스페셜 에디션'으로 극장에 재개봉했습니다.

1997년, 《스타워즈》 개봉 20주년을 기념하여 루카스는 오리지널 삼부작을 복원하고 새롭게 사용 가능해진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여 수많은 수정을 가해 그의 원래 비전에 더 가깝게 만들었습니다. 이 영화들은 '스페셜 에디션'으로 극장에 재개봉되어 팬들에게 다시 한번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1999

[감독 복귀 및 《스타워즈》 프리퀄 시작]

20년 이상 만에 감독으로 복귀하여 《스타워즈》 프리퀄 삼부작의 첫 작품인 《스타워즈 에피소드 1: 보이지 않는 위험》을 감독 및 개봉했습니다.

1999년, 루카스는 20년 이상 만에 감독으로 복귀하여 《스타워즈》 프리퀄 삼부작의 첫 번째 영화인 《스타워즈 에피소드 1: 보이지 않는 위험》을 완성하고 개봉했습니다. 이 영화는 팬들 사이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여전히 그의 독창적인 세계관과 기술적 혁신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었습니다. 그의 세 자녀도 이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2002

[《스타워즈 에피소드 2: 클론의 습격》 개봉]

《스타워즈》 프리퀄 삼부작의 두 번째 작품인 《스타워즈 에피소드 2: 클론의 습격》을 감독 및 개봉했습니다.

2002년, 루카스는 《스타워즈》 프리퀄 삼부작의 두 번째 영화인 《스타워즈 에피소드 2: 클론의 습격》을 감독 및 개봉했습니다. 이 영화는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성장과 제다이 기사단의 갈등을 다루며 시리즈의 주요한 전개를 이끌었습니다.

2004

[《THX 1138》 감독판 출시]

《THX 1138》의 감독판을 출시하며 자신의 초기 장편 영화에 CGI 요소를 추가하여 재편집했습니다.

2004년, 루카스는 자신의 장편 데뷔작인 《THX 1138》의 감독판을 출시했습니다. 그는 장면을 재편집하고 다수의 CGI 요소를 추가하여 자신의 초기 비전을 현대적인 기술로 구현하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2005

[《스타워즈》 프리퀄 삼부작 마무리]

《스타워즈》 프리퀄 삼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스타워즈 에피소드 3: 시스의 복수》를 감독 및 개봉하며 아나나킨 스카이워커의 다스 베이더로의 전락을 그렸습니다.

2005년, 루카스는 《스타워즈》 프리퀄 삼부작의 마지막 영화인 《스타워즈 에피소드 3: 시스의 복수》를 감독 및 개봉했습니다. 이 영화는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다스 베이더로 전락하는 과정을 비극적으로 그려내며 기존 팬과 젊은 팬들 모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미국 영화 연구소 평생공로상 수상]

미국 영화 연구소(AFI)로부터 평생공로상을 수상하며 영화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2005년 6월 9일, 루카스는 미국 영화 연구소로부터 평생공로상을 수여받았습니다. 그는 《스타워즈 에피소드 3: 시스의 복수》 개봉 직후 이 상을 받으며, 《스타워즈》 시리즈 전체를 하나의 영화로 보고 이제야 '영화를 완성했다'고 농담하며 소감을 밝혔습니다.

2006

[멜로디 홉슨과의 교제 시작]

아리엘 인베스트먼츠의 사장이자 스타벅스 이사회 의장인 멜로디 홉슨과 교제를 시작했습니다.

2005년 비즈니스 컨퍼런스에서 멜로디 홉슨을 만난 후, 2006년부터 그녀와 교제를 시작했습니다. 홉슨은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이사회 의장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과학소설 명예의 전당 입성]

과학소설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며 SF 장르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2006년, 루카스는 과학소설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습니다. 이는 스티븐 스필버그에 이어 두 번째로 '영화, 텔레비전, 미디어' 공헌자로 선정된 것으로, SF 장르에 대한 그의 지대한 영향력을 보여줍니다.

2007

[로즈 퍼레이드 대원수]

새해 첫날 로즈 퍼레이드의 대원수를 맡고 로즈볼에서 의식용 동전 던지기를 했습니다.

2007년 새해 첫날, 루카스는 로즈 퍼레이드의 대원수를 맡았으며 로즈볼에서 의식용 동전 던지기를 했습니다. 이는 미국 대중문화에서 그의 위상을 보여주는 행사였습니다.

2008

[《인디아나 존스》 속편과 《클론 전쟁》 시작]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함께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의 각본을 공동 집필하고, 애니메이션 시리즈 《스타워즈: 클론 전쟁》의 제작을 시작했습니다.

2008년, 루카스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의 각본을 공동 집필하며 시리즈를 이어갔습니다. 동시에 카툰 네트워크에서 방영된 애니메이션 시리즈 《스타워즈: 클론 전쟁》의 제작자이자 총괄 프로듀서로 활동하며 《스타워즈》 세계관을 확장했습니다. 이 시리즈는 동명의 극장판 영화로 시작되었습니다.

2009

[캘리포니아 명예의 전당 입성]

캘리포니아 박물관의 캘리포니아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습니다.

2009년, 루카스는 캘리포니아 박물관의 캘리포니아 명예의 전당에 13명의 입성자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이는 그가 캘리포니아 주에 미친 문화적, 경제적 영향을 인정받은 것입니다.

2012

[《레드 테일스》 제작]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터스키기 에어맨의 활약상을 다룬 영화 《레드 테일스》를 자체 제작하고 총괄 프로듀서 및 재촬영 감독으로 참여했습니다.

2012년, 루카스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실제 영웅들을 다룬 전쟁 영화 《레드 테일스》를 자체 제작하고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했습니다. 앤서니 헤밍웨이 감독이 다른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동안 일부 재촬영 감독 역할도 맡았습니다. 이 영화는 그의 마지막 주요 작품 중 하나였습니다.

[블록버스터 영화 은퇴 선언]

대규모 블록버스터 영화 제작에서 은퇴하고 소규모 독립 예산 작품에 집중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2012년 1월, 루카스는 대규모 블록버스터 영화 제작에서 은퇴하고 대신 소규모의 독립 예산 작품에 집중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는 더 이상 거대한 스튜디오 시스템에 얽매이지 않고 개인적인 영화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루카스필름 공동 회장 임명]

오랜 협력자 캐슬린 케네디가 루카스필름 공동 회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2012년 6월, 스티븐 스필버그와 오랫동안 협력해 온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제작자인 캐슬린 케네디가 루카스필름 공동 회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이는 루카스가 회사 경영에서 점차 물러나고 있음을 시사하는 중요한 인사이동이었습니다.

[루카스필름의 디즈니 매각]

자신이 설립한 루카스필름을 월트 디즈니 컴퍼니에 매각하며 영화 제작자로서의 거대한 시대에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막을 열었습니다.

2012년 10월, 조지 루카스는 자신이 설립하고 세계적인 영화 기업으로 성장시킨 루카스필름을 월트 디즈니 컴퍼니에 매각했습니다. 이 거래로 그는 스티브 잡스의 유산 다음으로 디즈니의 두 번째로 큰 개인 주주가 되었습니다. 이 매각은 그가 대규모 블록버스터 제작에서 은퇴하겠다는 선언의 연장선상에 있었으며, 《스타워즈》와 《인디아나 존스》 프랜차이즈의 미래를 디즈니에 넘기는 역사적인 결정이었습니다.

2013

[멜로디 홉슨과 약혼]

멜로디 홉슨과 약혼을 발표했습니다.

2013년 1월, 루카스는 아리엘 인베스트먼츠의 사장이자 스타벅스의 이사회 의장인 멜로디 홉슨과의 약혼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멜로디 홉슨과의 결혼]

캘리포니아 마린 카운티의 스카이워커 랜치에서 멜로디 홉슨과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2013년 6월 22일, 루카스는 자신의 스카이워커 랜치에서 멜로디 홉슨과 결혼식을 올리며 새로운 가정을 꾸렸습니다. 이 결혼은 그의 사생활에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국가 예술 훈장 수여]

미국 영화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아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국가 예술 훈장을 수여받았습니다.

2013년 7월, 루카스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국가 예술 훈장을 수여받았습니다. 이는 그의 영화적 업적과 미국 문화에 대한 기여를 국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입니다.

[딸 에베레스트 출산]

대리모를 통해 딸 에베레스트 홉슨 루카스를 얻었습니다.

2013년 8월, 루카스와 멜로디 홉슨 부부는 대리모를 통해 딸 에베레스트 홉슨 루카스를 얻으며 가족이 더욱 늘어났습니다.

2014

[SMPTE 명예회원 및 《클론 전쟁》 종료]

영화텔레비전기술자협회(SMPTE)의 명예회원이 되고, 애니메이션 시리즈 《스타워즈: 클론 전쟁》이 종료되었습니다.

2014년 10월, 루카스는 영화텔레비전기술자협회(SMPTE)의 명예회원이 되었습니다. 이는 영화 기술 발전에 대한 그의 기여를 인정받은 것입니다. 같은 해, 2008년부터 시작된 애니메이션 시리즈 《스타워즈: 클론 전쟁》이 종료되었습니다.

2015

[《스트레인지 매직》 각본 및 디즈니 레전드 선정]

첫 뮤지컬 CGI 영화 《스트레인지 매직》의 각본을 썼고, 디즈니 레전드로 선정되었습니다.

2015년, 루카스는 스카이워커 랜치에서 제작된 첫 뮤지컬 CGI 영화 《스트레인지 매직》의 각본을 썼습니다. 같은 해 8월, 월트 디즈니 컴퍼니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에게 수여되는 디즈니 레전드로 선정되었습니다.

[디즈니의 스토리 아이디어 폐기]

디즈니가 자신의 《스타워즈》 시퀄 스토리 아이디어를 폐기했다고 밝혔습니다.

2015년 1월, 루카스는 디즈니가 자신이 구상했던 《스타워즈》 시퀄 삼부작의 스토리 아이디어를 폐기하고 다른 방향으로 제작을 진행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그가 프랜차이즈의 창작자로서 느낀 아쉬움을 드러낸 것이었습니다.

[케네디 센터 아너스 수상]

케네디 센터 아너스의 수상자가 되어 미국 문화 예술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2015년 12월 6일, 루카스는 케네디 센터 아너스의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이는 미국 예술 및 문화에 대한 그의 평생 공헌을 기리는 최고 권위의 상 중 하나입니다.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개봉]

《스타워즈》 시퀄 삼부작의 첫 번째 영화인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가 개봉되었고, 그는 크리에이티브 자문으로 참여했습니다.

2015년 12월 18일, J. J. 에이브럼스가 감독한 《스타워즈》 시퀄 삼부작의 첫 번째 영화인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가 개봉되었습니다. 루카스는 이 영화의 초기 스토리 회의에 참여하며 크리에이티브 자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2016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 개봉]

《스타워즈》 앤솔로지 시리즈의 첫 영화인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가 개봉되었으며, 루카스는 이 영화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습니다.

2016년, 《스타워즈》 앤솔로지 시리즈의 첫 번째 영화인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가 개봉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원작 《스타워즈》 영화에 등장하는 데스 스타의 설계도를 훔친 저항군들의 이야기를 다루었으며, 루카스는 《깨어난 포스》보다 이 영화를 더 좋아했다고 보도되었습니다.

[《인디아나 존스 5》 참여 역할 발표]

《인디아나 존스 5》의 스토리에 관여하지 않고 총괄 프로듀서로만 참여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2016년 10월, 루카스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의 스토리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을 것이지만 총괄 프로듀서로 남을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그의 잠정 은퇴 선언과 맥을 같이 합니다.

2017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개봉]

《스타워즈》 시퀄 삼부작의 두 번째 영화인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가 개봉되었고, 루카스는 이 영화를 "아름답게 만들어졌다"고 평했습니다.

2017년, 《스타워즈》 시퀄 삼부작의 두 번째 영화인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가 개봉되었습니다. 루카스는 이 영화에 대해 "아름답게 만들어졌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습니다.

2018

[《한 솔로: 스타워즈 스토리》 개봉]

《한 솔로: 스타워즈 스토리》 개봉에 간접적으로 관여했습니다.

2018년, 《스타워즈》 세계관의 스핀오프 영화인 《한 솔로: 스타워즈 스토리》 개봉에 간접적으로 관여했습니다.

2019

[《왕좌의 게임》 및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참여]

《왕좌의 게임》 시즌 8 프리미어 및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개봉에 간접적으로 관여했습니다.

2019년, 루카스는 인기 드라마 《왕좌의 게임》 시즌 8의 프리미어에 간접적으로 관여했으며, 《스타워즈》 시퀄 삼부작의 마지막 영화인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의 각본 작업 전 J. J. 에이브럼스와 만나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이 영화는 2019년에 개봉되며 40여 년에 걸친 스카이워커 사가를 마무리했습니다.

2020

[《스타워즈: 클론 전쟁》 재개봉]

애니메이션 시리즈 《스타워즈: 클론 전쟁》이 재개봉되어 마지막 시즌이 방영되었습니다.

2008년부터 2014년까지 방영되었던 애니메이션 시리즈 《스타워즈: 클론 전쟁》이 2020년에 재개봉되어 마지막 시즌이 방영되었습니다. 이 시리즈는 루카스가 주요하게 참여한 마지막 《스타워즈》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2021

[루카스필름 50주년 기념 피규어]

루카스필름 창립 50주년을 맞아 스톰트루퍼로 변장한 루카스의 액션 피규어가 핫브로의 '스타워즈: 블랙 시리즈'로 출시되었습니다.

2021년, 루카스필름 창립 50주년을 기념하여 루카스가 스톰트루퍼로 변장한 모습의 액션 피규어가 핫브로의 '스타워즈: 블랙 시리즈'의 일부로 출시되었습니다. 이는 그의 상징적인 지위를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2023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간접 참여]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의 사전 및 사후 제작에 총괄 프로듀서로서 간접적으로 참여했습니다.

2023년 개봉한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의 사전 및 사후 제작에 총괄 프로듀서로서 간접적으로 참여하며, 자신이 창조한 프랜차이즈에 대한 애정을 이어갔습니다.

2024

[칸 영화제 명예 황금종려상 수상]

칸 영화제에서 영화 산업에 대한 평생의 공헌을 인정받아 명예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습니다.

2024년 5월, 루카스는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영화 산업에 대한 지대한 공헌을 인정받아 명예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는 영화계에서 가장 높은 영예 중 하나로, 그의 위대한 경력을 공식적으로 기념하는 자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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