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
연표
1346
[조준의 탄생]
고려 말과 조선 초기를 관통하는 중요한 인물, 조준이 태어났습니다.
훗날 조선 건국의 핵심 주역으로 활약하며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게 됩니다.
1371
[음서로 관직 진출]
공민왕 21년, 특별한 시험 없이 음서 제도를 통해 문관 관직에 처음으로 천거되며 관료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1374
[문과 급제]
공민왕 24년, 문과에 급제하며 정식 관료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이후 공민왕과 우왕 시대를 거치며 문무 관직을 두루 역임했습니다.
1384
1388
[위화도 회군 후 복귀]
위화도 회군 이후, 이성계의 깊은 신임을 얻어 관직에 전격 복귀했습니다.
지밀직사사, 대사헌 등을 거쳐 '충의군'에 봉해지며 새로운 권력의 핵심으로 떠올랐습니다.
[우왕에게 개혁 요구]
우왕에게 백관을 바로잡고, 사적인 욕심 없이 국가만을 위하며 위엄 있는 인재가 양부에 들어와야 한다는 등 관제 개혁을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그의 시무책은 혼란스러운 고려 말에 개혁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1389
[폐왕과 새 왕 추대]
밀직사사 겸 대사헌으로서 문하시중 조민수를 탄핵하여 축출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이어 창왕을 폐위시키고 공양왕을 새로운 왕으로 추대하는 데 깊이 개입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했습니다.
1392
[조선 건국 공신]
정도전 등과 뜻을 모아 공양왕을 폐위하고 이성계를 조선 태조로 추대하며 개국공신이 되었습니다.
특히 경제와 재정 분야에 밝아 '전제 개혁안'을 통해 조선의 경제적 기반을 획기적으로 개편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1394
[문하좌정승 취임]
조선 건국 후 도통사, 문하우시중을 거쳐 문하좌정승에 취임하며 새 왕조의 핵심 요직을 맡았습니다.
이는 그의 정치적 입지가 더욱 확고해졌음을 의미합니다.
1397
[《경제육전》 편찬]
하륜 등과 함께 조선 초기 법전인 《경제육전》을 편찬하는 데 참여하여 국가의 기틀을 다지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는 그의 뛰어난 실무 능력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1398
[1차 왕자의 난 관여]
정치적 동반자였던 정도전과는 요동정벌 문제로 결별한 뒤, 제1차 왕자의 난에 적극 협조하여 정도전 일파를 제거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이 사건으로 태종 이방원과의 관계가 더욱 공고해졌습니다.
1403
[최고 관직 영의정]
조선 초기를 통틀어 최고의 관직인 영의정부사에 올랐습니다.
태종 이방원은 그를 '조정승'이라 부르며 존경을 표했고, 그의 아들은 공주와 혼인하여 왕실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이는 그의 권세가 절정에 달했음을 보여줍니다.
1405
[조준의 서거]
조선 초기의 기틀을 다지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위대한 정치가 조준이 6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시호는 '문충'이며, 그의 업적은 역사에 길이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