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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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와의 첫 만남]
난세에 1천 명의 병력을 모아 조조의 휘하에 들어갔고, 별부사마 여봉교위 직책을 맡으며 군인으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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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주 정벌 선봉장]
원술군을 크게 무찌르고, 서주 정벌에서는 기병을 이끌고 선봉에 서서 도겸의 장수 여유를 격파하며 조조군의 대승에 기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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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도 천도 후 요직]
조조가 천자를 허도로 모신 후 광양태수로 임명되었으나, 조조가 그의 용기와 지략을 높이 사 군에 부임하지 않고 의랑으로서 기병을 통솔하게 했습니다.
이후 장수 정벌전에도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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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도 대전 핵심 활약]
관도 대전 중 원소에 호응한 여남군의 황건적 유벽과 유비를 격파하여 허도 근방을 안정시켰으며, 원소군의 보급선까지 유린하며 대승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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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관 전투의 지혜]
조조가 '함락 시 몰살'을 명하여 여러 달 동안 공략하지 못하던 호관 전투에서, 조인은 '살 방도를 보여주면 스스로 지키지 않는다'는 지혜로운 건의로 성의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이 공로로 도정후에 봉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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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군 전투의 초인적 용기]
형주 평정 후 남군 강릉현을 수비하던 중, 적벽 대전의 기세를 탄 주유군에 의해 부하 우금이 궁지에 몰리자, 좌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수십 명만을 이끌고 적진 깊숙이 뛰어들어 우금과 병사들을 구해냈습니다.
이 초인적인 용기에 감복한 조조는 조인을 안평정후에 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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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관 전투 지휘]
마초 등 관중 세력에 대항하여 동관에서 대치했습니다.
조조 친정 후 위수 남쪽에서 마초 등을 분쇄하는 데 기여했으며, 반란을 일으킨 소백과 전은을 토벌하기 위해 효기장군 직책으로 7개 군을 지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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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현 반란 진압과 승진]
남양군 완현에서 후음과 위개 등이 반란을 일으켜 관우와 연계하려 하자, 정남장군으로서 진압을 명받았습니다.
다음 해 정월, 방덕 등과 함께 완성을 수복하고 반란군을 참했으며, 이 공로로 정남장군에 정식으로 취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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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성 위기와 결사항전]
관우가 번성과 양양을 포위하고 한수 범람으로 아군 원군이 궤멸되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성벽이 무너지고 병력과 식량이 바닥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결사항전의 의지를 다지며 병사들을 독려했습니다.
[관우 격퇴, 번성 수호]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서황의 원군에 힘입어 마침내 관우를 격퇴하고 번성을 수호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220
[조비 즉위와 고위직 승진]
조조 사망 후 조비가 위왕에 오르자 거기장군에 임명되고 진후로 봉해졌습니다.
식읍 3,500호를 받았으며 아버지 조치에게도 시호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양번 방어 시설 복구 전 손권이 진출하자 완으로 철수했습니다.
221
[대장군, 대사마 승진]
서황과 함께 진소가 점거한 양양을 탈환하고, 한수 이남으로 넘어갔던 주민들도 되찾는 공을 세워 대장군으로 승진했습니다.
또한 풍익군의 산적 정감을 토벌했으며, 11월에는 최고위직인 대사마에 올랐습니다.
222
[유수 전투 패배]
조비의 오나라 남정에서 유수 방면을 맡아 유수독 주환을 속이려 했으나, 오히려 주환의 유인책에 걸려들어 큰 패배를 당했습니다.
아들 조태와 상조 등이 공격에 나섰으나 격퇴되었고, 결국 합비로 퇴각했습니다.
이 전투에서 상조는 효수되고 왕쌍은 생포되었습니다.
223
[위대한 장군의 죽음]
조위의 충신이자 용맹한 장군이었던 조인은 56세의 나이로 병사했습니다.
사후 충후(忠侯)라는 시호를 받아 그의 충성심을 인정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