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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장군, 삼국시대 인물 + 카테고리

조인(曹仁)은 조조의 육촌 형제이자 위나라 개국 공신으로 용맹과 지략을 겸비한 최고위 장군입니다. 조조 거병 초부터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남군 전투에서 적진에 홀로 뛰어들어 부하를 구하는 초인적 용기를 발휘했습니다. 또한 번성 전투에서 관우의 맹공을 막아내 위나라의 핵심 방어선을 사수하며 대장군 대사마에 이르렀습니다. 그의 용맹은 고대 영웅들에 비견될 정도였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연표

168

[출생]

조인은 168년 패국 초현에서 태어났습니다.

190

[조조와의 첫 만남]

난세에 1천 명의 병력을 모아 조조의 휘하에 들어갔고, 별부사마 여봉교위 직책을 맡으며 군인으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193

[서주 정벌 선봉장]

원술군을 크게 무찌르고, 서주 정벌에서는 기병을 이끌고 선봉에 서서 도겸의 장수 여유를 격파하며 조조군의 대승에 기여했습니다.

194

[서주 재정벌 종군]

조조의 두 번째 서주 정벌에 참전하여 비현 등 여러 현을 함락시키고 동해군으로 진격하는 데 공헌했습니다.

195

[연주 공방전 활약]

여포와의 연주 공방전에서 제음군 구양현을 공략하고 유하를 생포하는 등 뛰어난 전투력을 보여주었습니다.

196

[허도 천도 후 요직]

조조가 천자를 허도로 모신 후 광양태수로 임명되었으나, 조조가 그의 용기와 지략을 높이 사 군에 부임하지 않고 의랑으로서 기병을 통솔하게 했습니다.

이후 장수 정벌전에도 참여했습니다.

199

[수고 토벌 활약]

원소에 속한 수고를 치기 위해 황하를 건너 견성에서 교전 끝에 수고를 참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200

[관도 대전 핵심 활약]

관도 대전 중 원소에 호응한 여남군의 황건적 유벽과 유비를 격파하여 허도 근방을 안정시켰으며, 원소군의 보급선까지 유린하며 대승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206

[호관 전투의 지혜]

조조가 '함락 시 몰살'을 명하여 여러 달 동안 공략하지 못하던 호관 전투에서, 조인은 '살 방도를 보여주면 스스로 지키지 않는다'는 지혜로운 건의로 성의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이 공로로 도정후에 봉해졌습니다.

208

[남군 전투의 초인적 용기]

형주 평정 후 남군 강릉현을 수비하던 중, 적벽 대전의 기세를 탄 주유군에 의해 부하 우금이 궁지에 몰리자, 좌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수십 명만을 이끌고 적진 깊숙이 뛰어들어 우금과 병사들을 구해냈습니다.

이 초인적인 용기에 감복한 조조는 조인을 안평정후에 봉했습니다.

209

[남군 전투 후퇴]

208년부터 이어진 주유와의 남군 전투에서 이릉 방어에 실패하며 결국 성을 포기하고 퇴각했습니다.

211

[동관 전투 지휘]

마초 등 관중 세력에 대항하여 동관에서 대치했습니다.

조조 친정 후 위수 남쪽에서 마초 등을 분쇄하는 데 기여했으며, 반란을 일으킨 소백과 전은을 토벌하기 위해 효기장군 직책으로 7개 군을 지휘했습니다.

217

[손권 대비 거소 주둔]

하후돈, 장료와 함께 거소에 주둔하며 오나라 손권에 대비했습니다.

218

[완현 반란 진압과 승진]

남양군 완현에서 후음과 위개 등이 반란을 일으켜 관우와 연계하려 하자, 정남장군으로서 진압을 명받았습니다.

다음 해 정월, 방덕 등과 함께 완성을 수복하고 반란군을 참했으며, 이 공로로 정남장군에 정식으로 취임했습니다.

219

[번성 위기와 결사항전]

관우가 번성과 양양을 포위하고 한수 범람으로 아군 원군이 궤멸되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성벽이 무너지고 병력과 식량이 바닥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결사항전의 의지를 다지며 병사들을 독려했습니다.

[관우 격퇴, 번성 수호]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서황의 원군에 힘입어 마침내 관우를 격퇴하고 번성을 수호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220

[조비 즉위와 고위직 승진]

조조 사망 후 조비가 위왕에 오르자 거기장군에 임명되고 진후로 봉해졌습니다.

식읍 3,500호를 받았으며 아버지 조치에게도 시호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양번 방어 시설 복구 전 손권이 진출하자 완으로 철수했습니다.

221

[대장군, 대사마 승진]

서황과 함께 진소가 점거한 양양을 탈환하고, 한수 이남으로 넘어갔던 주민들도 되찾는 공을 세워 대장군으로 승진했습니다.

또한 풍익군의 산적 정감을 토벌했으며, 11월에는 최고위직인 대사마에 올랐습니다.

222

[유수 전투 패배]

조비의 오나라 남정에서 유수 방면을 맡아 유수독 주환을 속이려 했으나, 오히려 주환의 유인책에 걸려들어 큰 패배를 당했습니다.

아들 조태와 상조 등이 공격에 나섰으나 격퇴되었고, 결국 합비로 퇴각했습니다.

이 전투에서 상조는 효수되고 왕쌍은 생포되었습니다.

223

[위대한 장군의 죽음]

조위의 충신이자 용맹한 장군이었던 조인은 56세의 나이로 병사했습니다.

사후 충후(忠侯)라는 시호를 받아 그의 충성심을 인정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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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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