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앤 폰테인
연표
1917
[조앤 폰테인, 도쿄에서 태어나다]
영국과 미국의 전설적인 배우 조앤 폰테인이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유명한 배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의 동생이기도 하다.
조앤 드 보부아르 드 하빌랜드라는 본명으로 1917년 10월 22일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영국인이었으며, 언니인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역시 배우로 활동하며 할리우드의 주목을 받았다.
1935
1935년부터 배우 활동을 시작하여 여러 작품에 출연하며 연기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그녀는 초기에는 주로 조연 역할을 맡았으나, 꾸준히 활동하며 자신의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갔다.
1939
1939년 배우 브라이언 아언과 첫 결혼을 했지만, 이 관계는 1945년에 이혼으로 끝났다. 그녀는 총 4번의 결혼과 이혼을 경험하며 개인적인 삶에서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1939년 개봉한 '여자들'은 유명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인기작으로, 조앤 폰테인은 이 영화를 통해 초기 경력을 쌓았다. 이 작품은 여성들만의 이야기를 다루며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시도로 주목받았다.
1940
[히치콕의 '레베카'로 첫 주목과 오스카 후보]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명작 영화 '레베카'에 출연하며 비평가와 대중의 뜨거운 주목을 받았고, 첫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1940년 개봉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심리 스릴러 '레베카'에서 주인공 '나' 역할을 맡아 뛰어난 연기를 선보였다. 이 영화로 그녀는 처음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지명되는 영광을 안으며 할리우드의 스타로 급부상했다.
1941
['서스픽션'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서스픽션'에서 열연하여 마침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1941년 개봉한 '서스픽션'에서도 히치콕 감독과 호흡을 맞춰 섬세한 연기를 선보였다. 이 작품으로 그녀는 제1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는 언니인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보다 먼저 오스카를 받은 것이어서 당시 큰 화제가 되었다.
1946
1946년 프로듀서 윌리엄 도저와 두 번째 결혼을 했고, 슬하에 딸 데보라를 두었으나 1951년에 이혼으로 관계를 마무리했다.
1948
[고전 로맨스 '미지의 여인에게서 온 편지' 주연]
막스 오퓔스 감독의 고전 로맨스 영화 '미지의 여인에게서 온 편지'에서 주인공을 맡아 절절한 사랑 연기를 선보였다.
1948년 개봉한 '미지의 여인에게서 온 편지'는 시대를 초월하는 비극적 로맨스 명작으로 꼽히며, 조앤 폰테인의 연기는 많은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영화는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로 손꼽힌다.
1952
1952년 시나리오 작가 겸 프로듀서 콜리어 영과 세 번째 결혼을 올렸으나, 1961년에 이혼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녀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1964
1964년 스포츠 기자이자 사업가인 알프레드 라이트 주니어와 네 번째이자 마지막 결혼을 했으나, 1969년에 이혼했다. 그녀는 이후 재혼하지 않고 싱글로 살았다.
1994
[배우 활동 마무리]
영화, TV, 연극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조앤 폰테인이 1994년을 기점으로 공식적인 배우 활동을 마무리했다.
1935년부터 1994년까지 약 60년간 이어진 오랜 배우 경력을 마감했다. 그녀는 브로드웨이 무대에도 여러 차례 섰으며, TV 드라마에도 출연하는 등 폭넓은 활동을 보여주었으나, 19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은퇴 수순을 밟았다.
2013
[96세의 나이로 사망]
조앤 폰테인이 96세의 나이로 미국 캘리포니아주 카멜하일랜즈에서 사망하며 파란만장했던 삶을 마감했다.
2013년 12월 15일, 96세의 나이로 미국 캘리포니아주 카멜하일랜즈에 위치한 자택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그녀의 사망 소식은 전 세계 영화 팬들에게 슬픔을 안겼으며, 할리우드 고전 시대의 마지막 스타 중 한 명으로 기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