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조 데 키리코
연표
1888
[키리코, 그리스에서 태어나다]
이탈리아 혈통을 가진 부모님 밑에서, 당시 철도 기술자였던 아버지의 근무지였던 그리스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동생 알베르토 사비노는 훗날 유명한 작곡가가 됩니다.
1906
[뮌헨 예술원에서 예술가의 꿈을 키우다]
아버지의 임종 이후, 예술적 열정을 좇아 독일 뮌헨 예술원에 입학하여 그림을 공부했습니다.
이 시기는 그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아버지 에바리스토 디 키리코의 임종은 1905년에 있었으며, 이후 1906년부터 1909년까지 뮌헨 예술원에서 수학했습니다.
1911
[파리에서 형이상학파의 씨앗을 뿌리다]
예술의 중심지 파리로 건너가 당시 유행하던 입체파의 영향을 받았지만, 자신만의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화풍을 구축하며 '형이상학파'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앙데팡당 전에서 작품을 선보였고, 파블로 피카소, 앙드레 드랭, 콘스탄틴 브랑쿠시 등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이름을 알렸습니다.
1915
[고향으로 돌아와 예술에 몰두]
파리를 떠나 이탈리아 페라라로 이주하며 작품 세계에 새로운 변화를 주었습니다.
이 시기 그는 도시의 타워, 아케이드 등 세 가지 주요 모티프에 집중하며 자신만의 시그니처 스타일을 더욱 확고히 했습니다.
또한, 1915년경부터 1925년경까지 얼굴 없는 인형들이 놓인 정물화를 주로 그렸습니다.
1918
[모란디와 형이상학 회화 심화]
동료 화가 조르조 모란디와 함께 '형이상학적 회화'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이들의 심층적인 탐구는 키리코 예술의 핵심적인 특성인 비현실적이고 꿈꾸는 듯한 공간의 표현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습니다.
1918년부터 1919년까지 조르조 모란디와 형이상학적 회화를 연구했습니다.
1920
[형이상학파 잡지 《피투라 메타피지카》 창간!]
카를로 카라와 함께 형이상학적 회화를 전문으로 다루는 잡지, 《피투라 메타피지카(Pittura Metafisica)》를 창간했습니다.
이는 그의 예술 사조가 널리 알려지고 발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924
[초현실주의에 영감을 주다]
다시 파리를 방문하여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여했지만, 자신의 예술관과 맞지 않음을 느끼고 독자적인 길을 걸었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신비롭고 환상적인 작품들은 초현실주의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었습니다.
1939
[이탈리아 귀국 및 예술 활동 지속]
이탈리아로 돌아와 생을 마감할 때까지 고국에서 예술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의 후기 작품들은 여전히 꿈꾸는 듯한 생경한 사물들을 비현실적인 구도로 배치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 세계를 지켜냈습니다.
1978
[조르조 데 키리코, 영면하다]
80년대에 가까운 긴 생을 마감하며, 현대 미술사에 형이상학파라는 독자적인 장르와 초현실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거장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