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관우
연표
1965
[국악 명문가 출생]
판소리 명창 조통달의 아들로 국악을 대대로 해온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이모할머니이자 양할머니인 박초월 또한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예능보유자였다.
1984
1985
[가야금 연주자 데뷔]
1985년, 국악 예술고등학교 졸업 이듬해 가야금 연주자로 음악계에 첫 발을 내디뎠다.
이후 어언 9년간 국악 분야에 몸담았다.
1989
[미국 유학 및 중퇴]
1989년부터 1990년까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미술학과에 재학했으나 중퇴했다.
이 시기 '케빈 조'라는 영어 이름을 사용했다.
1994
[1집 'My First Story' 발매]
늦깎이 팝 발라드 가수로 정식 데뷔하며 1집 앨범 《My First Story》를 발매했다.
130만 장이라는 경이로운 판매 기록을 올리며 가요계에 큰 충격을 주었고, 특히 남성이 내는 고음의 가성은 파격적이었다.
'늪'의 가사로 논란이 있었고, '얼굴 없는 가수'로 불리며 신비주의를 유지했다.
1995
[2집 'Memory' 300만장]
이듬해 발매한 2집 리메이크 앨범 《Memory》는 무려 300만 장이 팔리며 조관우의 음악 인생 최고 기록을 세웠다.
이 앨범으로 그는 '리메이크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으며, '꽃밭에서' 등이 큰 사랑을 받았다.
대중음악평론가들에게 90년대 대표 명반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1996
[골든디스크 및 인기가수 수상]
한국영상음악협회 골든디스크 부문 본상과 KMTV 가요대전 인기가수상을 수상하며 그 해 음악적 성과를 인정받았다.
[3집 'My 3rd Story About']
1, 2집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제작자와의 불리한 계약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다 소속사를 옮긴 후 3집 《My 3rd Story About》을 발매했다.
타이틀곡 '영원'을 앞세워 130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고, 이후 전국 투어 콘서트 연속 매진 기록을 세우기 시작했다.
1997
[4집 'Waiting' 발매]
4집 《Waiting》 발매와 함께 슬럼프를 겪기 시작했다.
악성 루머와 전 소속사와의 갈등에 시달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은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아 100만 장을 돌파하는 저력을 보였다.
1999
[5집 '실락원' 방송 불가]
5집 《실락원》의 타이틀곡 '실락원'이 가사가 자살을 미화한다는 이유로 방송 불가 판정을 받으며 앨범 판매에 악영향을 미쳤다.
2001
[6집 '연' 발매]
슬럼프를 벗어나고자 초심으로 돌아가 만든 6집 《연》은 대중에게 비교적 호평을 받았다.
데이콤 심마니에서 네티즌 음반펀드 형식으로 투자자를 공모해 화제를 모았고, 타이틀곡 '사랑했으므로'에서 고음의 극치를 보여줬다.
[드라마/영화 OST 참여]
2001년부터 영화 《클럽 버터플라이》, 《베사메무쵸》, KBS 드라마 《명성황후》, MBC 드라마 《그 여자네 집》 등 다수의 드라마 및 영화 OST에 참여하며 활동 영역을 넓혔다.
특히 《명성황후》 OST '나 가거든'은 큰 인기를 얻었다.
2002
[7집 'My Memories II' 발매]
두 번째 리메이크 앨범인 7집 《My Memories II》를 발표하며 팝페라라는 새로운 장르로 음악적 지평을 넓혔다.
클래식 음악가들로부터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2011
['나가수' 및 배우 데뷔]
MBC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여 뛰어난 가창력을 다시금 대중에게 각인시켰고, 같은 해 JTBC 시트콤 《청담동 살아요》에 출연하며 배우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2015
[영화 '조선명탐정' 출연]
영화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에서 악역 '조악사'로 출연, 코믹 연기를 선보이며 존재감을 발휘했다.
감독에게 속아 악역을 맡았다는 후일담을 전하기도 했다.
2018
[9집 '다시 시작' 발매]
2018년, 리메이크곡이 아닌 새로운 곡들로만 채워진 정규 9집 앨범 《다시 시작 Begin Again》을 발매하며 음악적 변신을 시도했다.
총 16곡이 수록되었으며, 타이틀곡은 '바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