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차 고려-몽골 전쟁

num_of_likes 55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no image
전쟁, 역사, 고려시대, 몽골 제국, 전투 + 카테고리
제5차 고려-몽골 전쟁(1253년 7월 ~ 1254년 1월)은 몽골 제국의 제4대 몽케 칸이 즉위한 후, 고려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명분으로 황족 야쿠를 파견하며 발발했습니다. 몽골군은 초반에 양산성, 동주산성, 춘주성 등을 함락시키며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왔고, 고려는 강화도를 사수하며 항전했습니다. 수많은 패배 속에서도 전주 반석역 전투와 충주 금당협 등에서 국지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며, 특히 김윤후가 지휘한 제2차 충주성 전투에서의 결정적인 방어 성공은 전쟁의 흐름을 바꾸었습니다. 결국 고려 국왕 고종이 출륙하여 몽골 사신을 접견하고, 왕자 안경공 창을 인질로 보내 항복 의사를 표시함으로써 몽골군이 철수하며 전쟁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이 전쟁은 고려의 끈질긴 항전 의지와 외교적 노력이 교차한 시기였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연표

1253

[몽골의 침공 개시]

몽골 제국의 제4대 칸인 몽케 칸이 고려가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다는 구실로 침공을 명령합니다.
몽케 칸은 황족인 보르지긴 야쿠를 사령관으로 임명하여 고려를 침공하게 했습니다. 몽골 내부의 대칸 계승 분쟁이 마무리되면서 고려에 대한 침략이 다시 본격화된 시점이었습니다.

[전주 반석역 전투 승리]

전주성 남쪽 반석역에서 별초지유 이주가 이끄는 고려군이 몽골군 척후 기병을 격파했습니다.
이주는 몽골군의 척후 기병 300여 명 중 절반 이상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계속된 패전 속에서 거둔 귀중한 승리 중 하나였습니다.

[양산성 함락]

몽골군이 서해도에 위치한 양산성을 공격하여 함락시켰습니다.
전쟁 초기에 벌어진 전투 중 하나로 고려군이 패배한 기록입니다. 서해도 지역의 방어선이 몽골군의 공격에 의해 무너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동주산성 함락]

몽골군의 공격으로 동주(철원)에 위치한 동주산성이 함락되었습니다.
몽골군은 9월부터 10월 초까지 동주를 비롯한 주요 거점들을 차례로 공략했습니다. 이 시기 고려는 강화도를 굳게 지키는 전략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금당협 전투 승리]

충주의 창정 최수가 금당협에서 몽골군을 기습 공격하여 승리했습니다.
최수는 매복해 있다가 몽골군을 공격하여 15명을 사살했습니다. 소규모 전투였으나 지역 방어군의 저항 의지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춘주성 도륙]

몽골군이 춘주(춘천)를 공격하여 성을 함락시키고 주민들을 도륙했습니다.
몽골군은 동주, 춘주, 양근 등을 차례로 공격하며 남하했습니다. 춘주성의 함락으로 강원도 지역이 큰 피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제2차 충주성 전투 시작]

몽골군이 충주성에 이르러 포위 공격을 시작했으나 김윤후가 지휘하는 고려군이 방어에 나섰습니다.
김윤후는 21년 전 처인성 전투의 영웅으로, 다시 한번 몽골군을 맞이했습니다. 충주성 전투는 70여 일에 걸친 치열한 공방전으로 전개되었습니다.

[등주 포위 해제]

등주를 공격하던 몽골군이 공격을 멈추고 포위를 풀었습니다.
고려군의 방어 혹은 몽골군의 전략적 판단에 의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전투는 고려가 방어에 성공한 사례로 기록되었습니다.

[양근성 함락과 항복]

몽골군이 양근(양평)을 포위하자 방호별감 윤춘이 항복했습니다.
몽골군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지휘관이 항복한 사례입니다. 양근성은 수도권 인근의 중요 방어 거점 중 하나였습니다.

[천룡산성 항복]

몽골군의 공격을 받은 천룡산성이 항복했습니다.
10월에 연이어 발생한 성 함락 및 항복 사례 중 하나입니다. 몽골군의 기세가 등등했음을 보여줍니다.

[양주 함락]

몽골군이 양주(양양)를 공격하여 함락시켰습니다.
동주, 춘주, 양근에 이어 양주까지 몽골군의 수중에 떨어졌습니다. 몽골군은 이후 충주성으로 진격하게 됩니다.

[야쿠의 귀국과 고종의 출륙]

몽골군 사령관 야쿠가 병을 이유로 귀국길에 올랐고, 고려 고종은 강화도를 나와 승천부에서 몽골 사신을 만났습니다.
야쿠는 귀국 도중 개경에서 고려의 철수 요구를 받았습니다. 고종은 어느 정도 타협적인 태도를 취하며 몽골 사신과 회견을 가졌습니다.

[평산 전투 승리]

교위 장자방이 지휘한 고려군이 평산 전투에서 몽골군에게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전쟁 후반부에 거둔 승리로, 고려군의 저항이 여전히 거세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충주성 전투와 함께 전황을 유리하게 만드는 데 기여했습니다.

[충주성 전투 승리와 몽골군 철수]

김윤후의 지휘 하에 충주성이 끝까지 함락되지 않자 불리해진 몽골군이 철수를 시작했습니다.
70여 일간의 치열한 공방 끝에 충주성을 지켜낸 공로로 충주는 국원경으로 승격되었습니다. 이 전투는 제5차 고려-몽골 전쟁의 결정적인 승리로 기록됩니다.

[안경공 창의 파견]

북부 지방에 머물며 철수를 주저하던 몽골군에게 고려 왕자 안경공 창을 보내 항복을 표시했습니다.
고려는 안경공 창(혹은 강)을 몽골에 보내어 전쟁을 끝내고자 했습니다. 이를 통해 주저하던 몽골군이 완전히 철군하게 되었습니다.

1254

[영녕공 신분 논란과 몽케 칸의 접견]

몽케 칸이 안경공 창을 만나는 과정에서 기존 인질이었던 영녕공 왕준의 신분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민칭이라는 자가 영녕공이 왕의 친자가 아니라고 고발했습니다. 이에 영녕공과 최린은 '사랑하는 자식(애자)'이 곧 아들이라는 논리로 대응했습니다.

[표문 확인과 몽케 칸의 수긍]

몽케 칸이 고려에서 보낸 표문을 확인한 결과 거짓이 아님을 확인하고 문제를 불문에 부쳤습니다.
표문에는 실제로 '친자(親子)'가 아니라 '애자(愛子)'라고 적혀 있어 거짓말은 아니었음이 증명되었습니다. 몽케 칸은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넘어갔습니다.

[전쟁의 종결]

몽골군이 고려에서 완전히 철수하며 제5차 고려-몽골 전쟁이 막을 내렸습니다.
안경공 창의 파견과 충주성 전투의 승리 등이 맞물려 몽골군의 철수가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이는 잠시의 휴전일 뿐 이후에도 몽골의 침략은 계속되었습니다.

[안경공 창의 귀국]

몽골에 인질 겸 사신으로 갔던 안경공 창이 고려로 귀국했습니다.
안경공은 몽골에서 생활하다가 1254년 8월에 돌아왔습니다. 그의 귀국은 전쟁 후속 조치가 마무리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제5차 고려-몽골 전쟁
+ 사건추가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