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바티칸 공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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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비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황 요한 23세의 소집으로 열린 가톨릭 교회의 21번째이자 가장 최근의 보편 공의회입니다. '현대화(아조르나멘토)'를 핵심 목표로 삼아 전례에서 자국어 사용을 허용하고 평신도의 참여를 장려하는 등 교회의 실천과 제도를 획기적으로 개혁했습니다. 이 공의회를 통해 4개의 헌장, 9개의 교령, 3개의 선언 등 총 16개의 공식 문헌이 반포되었으며, 타 종교를 포용하고 현대 세계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개방적 태도를 확립함으로써 가톨릭 교회의 현대적 방향성을 결정지은 거대한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연표
1959
1959.1.25
[공의회 소집 의향 최초 발표]
교황 요한 23세가 로마 교구 시노드와 보편 교회를 위한 에큐메니컬 공의회를 소집하겠다는 의향을 전격적으로 발표합니다. 이는 교황으로 선출된 지 3개월도 채 되지 않아 내려진 결정이었습니다.성 바오로 대성당 부속 베네딕토회 수도원 참사회의실에서 이루어진 이 발표는 현장에 있던 추기경들에게 큰 충격과 놀라움을 안겨주었습니다. 교황은 현대 세계와 더 잘 소통하기 위해 교회의 관습을 개선하는 '아조르나멘토(aggiornamento)'를 목표로 내세웠습니다.
1959.5.17
[공의회 예비 준비 위원회 설립]
교황청 차원에서 공의회 예비 준비 위원회(Antepreparatory Commission)를 조직하여 광범위한 의견 수렴 절차에 착수합니다. 전 세계 가톨릭계를 대상으로 공의회 의제에 대한 자문이 시작됩니다.전 세계의 주교들, 가톨릭 대학교와 신학부, 그리고 교황청의 부서들이 자문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듬해 여름까지 총 2,049명의 개인 및 기관으로부터 9,438건의 구체적인 제안과 바람(vota)이 접수되었습니다.
1960
1960.6.5
[10개의 공의회 준비 위원회 창설]
공의회 본회의에 제출될 공식 초안(의안)을 작성하기 위해 10개의 예비 준비 위원회가 공식적으로 창설됩니다. 각 부서에 소속된 수백 명의 주교와 전문가들이 투입됩니다.총 871명의 주교와 신학 전문가들이 각 교황청 부서의 책임에 맞춰 위원회에 임명되었습니다. 이들은 수집된 제안들을 바탕으로 처음에는 70개의 초안을 작성했으나, 이후 여러 병합과 검토를 거쳐 22개로 축소 및 재정비했습니다.
1961
1961.12.25
[교황령을 통한 공의회 공식 소집]
교황 요한 23세가 교황령인 '인류의 구원(Humanae Salutis)'을 반포하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공식적으로 소집합니다. 길었던 준비 기간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회의를 선언하는 단계입니다.이 칙서의 발표로 1959년부터 진행되었던 광범위한 의견 조율과 의안 작성 단계가 공식적인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이로써 전 세계 가톨릭 교회는 보편 공의회의 개막을 확정적으로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1962
1962.8.6
[공의회 규정 자의 교서 발표]
공의회의 운영 방식을 규정한 자의 교서 '공의회 개최를 앞두고(Appropinquante concilio)'가 발표됩니다. 회의 참석자의 자격과 투표 방식 등이 세밀하게 규정되었습니다.이 규정에 따라 전 세계의 주교들과 주요 남성 수도회의 장상들이 공식적인 발언권과 투표권을 지닌 '공의회 교부(Council Fathers)'로 정의되었습니다. 공식적인 결의를 위해서는 모든 투표에서 참석자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는 규칙도 확립되었습니다.
1962.10.11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제1회기 개막]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요한 23세의 개막 연설인 '어머니인 교회가 기뻐한다(Gaudet Mater Ecclesia)' 낭독과 함께 거대한 공의회가 막을 올립니다. 세계 전역에서 모인 교부들이 역사적인 자리에 함께했습니다.이 개막식에는 최대 2,625명의 교부들이 참석했으며, 유럽 중심이었던 과거 제1차 바티칸 공의회와는 달리 아시아와 아프리카 출신의 주교만 약 250명에 이르는 등 진정한 의미의 세계적 규모를 자랑했습니다.
1962.10.13
[공의회 산하 10개 위원회 위원 선출]
공의회 초반부의 실무 절차로서 향후 의안들을 검토하고 수정할 10개의 공의회 위원회 소속 위원들을 선출하는 작업이 개시됩니다. 다양한 국적과 성향의 교부들이 조율을 거쳐 위원회에 배정되었습니다.위원 선출 절차는 10월 16일까지 이어졌습니다. 각 위원회는 공의회에서 자체적으로 선출한 16명의 교부와 교황이 직접 임명한 9명 등 총 25명의 교부로 구성되어, 문서 수정과 조율이라는 중대한 실무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1962.10.22
[첫 의안인 '전례' 문제 논의 시작]
공의회 본회의에서 첫 번째 공식 의안으로 '전례(Liturgy)' 관련 초안이 상정되어 논의가 시작됩니다. 이 토론은 보름에 걸쳐 뜨겁게 진행됩니다.전례 의안에 대한 격렬한 토론은 15일간 이어졌으며, 이후 원칙적인 수준에서 문서가 수용되어 보다 구체적인 수정을 위해 담당 위원회로 회부되었습니다. 이는 향후 전례의 자국어 도입 등 대규모 개혁의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1962.11.20
[계시 의안에 대한 반대 예비 투표]
하느님의 계시를 다루는 의안을 놓고 예비 투표를 진행한 결과, 참석 교부의 62%가 해당 초안을 거부하는 쪽으로 표를 던집니다. 공의회 내 보수파와 쇄신파 간의 이견이 겉으로 드러난 사건이었습니다.초안을 부결시키자는 의견에 과반수 이상이 동의했지만, 규정에 명시된 3분의 2 이상의 비율에는 도달하지 못해 규정상으로는 공식 부결이 아닌 교착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1962.11.21
[계시 의안의 특별 위원회 회부 결정]
교황 요한 23세가 전날 투표로 교착 상태에 빠진 계시 의안 문제에 직접 개입합니다. 교황은 해당 초안을 전면 재검토하기 위해 특별 위원회로 돌려보내겠다고 선언합니다.보수적인 교황청 부서가 주도하여 작성했던 초안을 쇄신적 방향으로 수정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중대한 결정이었습니다. 이 개입은 공의회가 과거의 낡은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현대적 갱신을 지향할 수 있는 분수령이 되었습니다.
1963
1963.11.22
[전례 헌장 초안 예비 투표 가결]
수정을 거친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의 초안에 대한 본회의 예비 투표가 진행되어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결됩니다. 신자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지향하는 개혁안이 사실상 확정된 순간이었습니다.투표 결과 찬성 2,159표 대 반대 19표라는 결정적인 지지를 얻었습니다. 이 문서는 의식을 간소화하고, 공동 집전의 부활 및 자국어의 제한적 사용 허용 등을 담고 있었습니다.
1963.11.24
[매스 미디어 교령 예비 투표 가결]
매스 미디어에 관한 교령의 초안에 대한 예비 투표가 실시되어 성공적으로 통과됩니다. 교회가 매체와 사회적 소통 수단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다루는 문서였습니다.투표 결과 찬성 1,598표 대 반대 503표로 통과되었습니다. 전례 헌장 투표에 비해 반대표가 꽤 많이 나왔으나, 교회가 현대 대중 매체의 영향력을 인정하고 이를 사목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기초를 마련했습니다.
1963.12.4
['전례 헌장' 및 '매스 미디어 교령' 최종 반포]
제2회기를 마무리하는 공개 회기에서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Sacrosanctum Concilium)'과 '매스 미디어에 관한 교령(Inter mirifica)'이 최종 투표를 거쳐 공식 문헌으로 반포됩니다.전례 헌장은 최종 투표에서 2,147표 대 4표, 매스 미디어 교령은 1,960표 대 164표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승인되었습니다. 특히 전례 헌장은 신자들의 전례 참여를 극대화하기 위해 라틴어 대신 자국어를 허용하는 등 교회 생활에 가장 가시적인 혁신을 불러왔습니다.
1964
1964.11.19
[교회 헌장 초안 예비 투표 통과]
가톨릭 교회의 본질과 구조를 깊이 있게 재정립하는 교회 헌장(Lumen gentium) 초안에 대한 예비 투표가 진행되어 훌륭한 성적으로 가결됩니다.찬성 2,134표 대 반대 10표라는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제1차 바티칸 공의회가 남겨두었던 과제인 주교단의 역할과 평신도의 신학적 위치를 구체화하는 데 중점을 둔 초안이었습니다.
1964.11.20
[동방 교회 및 일치 운동 교령 예비 투표]
동방 가톨릭 교회에 관한 교령과 타 그리스도교 종파와의 관계를 다루는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의 초안에 대한 예비 투표가 성공적으로 진행됩니다.동방 교회 관련 교령 초안은 찬성 1,964표 대 반대 135표, 일치 운동 관련 초안은 찬성 2,054표 대 반대 64표로 각각 가결되었습니다. 배타주의를 버리고 형제 기독교인들을 껴안으려는 교회의 변화 의지가 돋보였습니다.
1964.11.21
['교회 헌장' 및 2개 교령 최종 반포]
제3회기가 끝나는 시점에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동방 가톨릭 교회들에 관한 교령',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 등 3개의 핵심 문헌이 공식적으로 반포됩니다.'인류의 빛(Lumen gentium)'으로 불리는 교회 헌장은 최종 투표에서 2,151표 대 5표로 승인되며 교회 안의 모든 이들이 보편적 성덕으로 부름받았음을 천명했습니다. 일치 운동 교령(Unitatis redintegratio)은 타 교단과의 화해와 재결합을 공식적인 목표로 삼았습니다.
1965
1965.10.6
[주교 임무 교령 초안 예비 투표]
주교들의 권한과 사목적 임무를 다루는 주교 임무 교령 초안이 본회의 예비 투표에 부쳐져 큰 반대 없이 통과됩니다.투표 결과 찬성 2,167표 대 반대 14표로 가결되었습니다. 이 문서(Christus Dominus)는 교황의 수위권과 균형을 이루는 주교들의 단체성과 지역 교구 운영의 재량권을 강화하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1965.10.11
[수도 생활 쇄신 교령 초안 예비 투표]
수도자들의 생활 규범과 영성을 현대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수도 생활 쇄신 적응에 관한 교령의 예비 투표가 가결됩니다.찬성 2,126표 대 반대 13표를 획득했습니다. 교령(Perfectae caritatis)의 핵심은 복음 정신과 각 수도회의 창립 초기 정신으로 돌아가되, 변화하는 현대 사회의 환경에 맞게 생활 방식을 쇄신하라는 지침이었습니다.
1965.10.13
[사제 양성 교령 초안 예비 투표]
신학교의 교육 과정을 개선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사제 양성에 관한 교령 초안이 예비 투표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됩니다.찬성 2,196표 대 반대 15표로 승인된 이 문서(Optatam totius)는 예비 사제들이 영적, 지적, 사목적 측면에서 현대 교회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도록 종합적인 훈련 체계를 개편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1965.10.14
[그리스도교 교육 선언 초안 예비 투표]
가톨릭 교회의 교육 철학과 지침을 담은 그리스도교 교육에 관한 선언 초안이 예비 투표를 통과하여 문서의 기초를 굳힙니다.투표 결과 찬성 1,912표 대 반대 183표로 가결되었습니다. 선언(Gravissimum educationis)은 현대 사회 속 교육의 가치를 인정하며, 특히 자녀 교육에 있어 부모가 가지는 일차적이고 고유한 권리를 재천명했습니다.
1965.10.15
[비그리스도교 선언 초안 예비 투표]
타 종교와의 관계 개선을 다루는 파격적인 내용의 비그리스도교와 교회의 관계에 관한 선언 초안이 다소 논란 속에서도 예비 투표를 통과합니다.찬성 1,763표, 반대 250표로 통과되었습니다. 유대교, 이슬람교, 힌두교 등 여타 종교에도 진리와 거룩함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획기적인 입장 때문에 보수층의 반발이 섞인 반대표가 일정 부분 발생했습니다.
1965.10.28
[주교 임무 교령 등 5개 문헌 동시 반포]
주교 사목 교령, 수도 생활 쇄신 교령, 사제 양성 교령, 교육 선언, 그리고 비그리스도교 선언 등 총 5개의 문헌이 공의회 최종 투표를 거쳐 공식 반포됩니다.모든 문헌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최종 확정되었습니다. 특히 '비그리스도교 선언(Nostra aetate)'의 반포는 가톨릭 교회가 오랫동안 유지해 온 타 종교에 대한 배타적인 시각을 걷어내고 포용과 종교 간 대화의 장을 여는 획기적인 발판이 되었습니다.
1965.10.29
[계시 헌장 수정 초안 예비 투표]
1962년에 교착 상태에 빠져 전면 수정 지시를 받았던 하느님의 계시에 관한 교의 헌장 초안이 마침내 새로운 모습으로 예비 투표를 통과합니다.수정된 초안은 찬성 2,081표, 반대 27표의 압도적인 성적으로 가결되었습니다. 이 문서는 성경 연구를 가톨릭 신학의 중심으로 격상시키고, 일반 신자들도 성경을 자주 읽도록 강력히 장려하는 진보적인 입장을 확고히 했습니다.
1965.11.10
[평신도 사도직 교령 예비 투표]
평신도의 권한과 활동을 규명한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 초안에 대한 예비 투표가 사실상 만장일치의 지지를 얻어 통과됩니다.찬성 2,201표 대 반대 2표라는 놀라운 결과를 보였습니다. 이 문서(Apostolicam actuositatem)는 수직적이고 성직자 중심적인 교회 관행을 탈피하여, 세속 사회 속에서 평신도가 복음을 전파하는 고유한 사도적 역할을 지니고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1965.11.18
['계시 헌장' 및 '평신도 사도직 교령' 반포]
신학의 기초를 다루는 '하느님의 계시에 관한 교의 헌장'과 실천적 성격을 띤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이 최종 승인을 받아 반포됩니다.계시 헌장(Dei verbum)은 최종 2,344표 대 6표로, 평신도 교령은 2,305표 대 2표로 반포되었습니다. 두 문헌은 각각 가톨릭 내에서 성경에 기반한 신학 연구의 부흥을 이끌고 평신도들의 주체적인 신앙 활동을 폭넓게 보장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1965.11.19
[종교 자유 선언 예비 투표]
개인의 양심과 종교 선택의 자유를 천명하는 종교 자유에 관한 선언 초안이 치열한 토론 끝에 예비 투표에서 가결됩니다.찬성 1,954표 대 반대 249표로 통과되었습니다. 가톨릭 국가 내에서 다른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은 전통적인 교회 국가론과 충돌하는 면이 있어 보수파의 거센 반대가 있었으나 시대적 조류 속에서 수용되었습니다.
1965.12.2
[선교 활동 교령 예비 투표]
교회의 선교 방침을 다루는 교회의 선교 활동에 관한 교령 초안이 예비 투표에서 압도적인 찬성표를 받으며 가결됩니다.찬성 2,162표, 반대 18표로 통과된 이 문서(Ad gentes)는 제3세계 출신 주교들의 경험과 요구가 크게 반영되었습니다. 교회의 본질을 선교에 두면서도 현지의 고유한 문화를 존중하는 '토착화'의 방향성을 제시했습니다.
1965.12.4
[사제 직무 교령 예비 투표]
사제들의 구체적인 삶과 영성을 다루는 사제의 직무와 생활에 관한 교령 초안이 예비 투표를 통과하여 최종 반포를 앞두게 됩니다.투표 결과 찬성 2,243표, 반대 11표로 통과되었습니다. 이 문서(Presbyterorum ordinis)는 사제들이 주교와 가지는 친교적 관계와 평신도를 섬기는 봉사자로서 지켜야 할 영성적이고 실천적인 삶의 지침을 총망라했습니다.
1965.12.6
[사목 헌장 예비 투표]
현대 세계의 징표를 읽고 연대하려는 의지를 담은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 초안이 다수의 지지로 예비 투표를 통과합니다.찬성 2,111표, 반대 251표를 얻어 가결되었습니다. 이 문서(Gaudium et spes)는 전쟁, 기아, 저개발 문제 등 인류가 직면한 사회·경제적 위기에 교회가 어떻게 동참하고 기여할 것인지를 심도 있게 짚어냈습니다.
1965.12.7
['사목 헌장' 등 마지막 4개 문헌 반포]
사목 헌장, 종교 자유 선언, 사제 직무 교령, 선교 활동 교령 등 공의회에서 남은 마지막 4개의 공식 문헌이 일제히 최종 반포됩니다. 이로써 공의회가 목표한 모든 문서화 작업이 마무리되었습니다.이날의 반포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4개의 헌장, 9개의 교령, 3개의 선언 등 총 16개의 공식 문헌 구성을 완성했습니다. 반포된 문서들은 교회가 세상 밖에서 율법적 단죄를 내리는 대신, 세상 속으로 들어가 현대 인류의 기쁨과 고뇌를 함께 나누겠다는 굳은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1965.12.8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공식 폐막]
1962년에 시작되어 가을마다 열린 총 4차례의 긴 회기를 끝으로,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공식적인 폐막식이 거행됩니다.이 거대한 공의회는 과거의 공의회들처럼 새로운 도그마를 정의하거나 이단을 단죄하는 방식이 아닌, 사목적인 관점에서 교회를 쇄신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폐막 이후 공의회의 결정 사항들은 전례의 토착화, 타 종교와의 화해 등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의 일상과 신앙생활에 영구적이고 거대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