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연평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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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충돌, 해전, 남북 관계, 현대사 + 카테고리

2002년 6월 29일 한일 월드컵 열기 속에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발생한 남북 해군 간의 군사적 충돌입니다. 대한민국 해군 참수리 357호가 침몰하고 6명이 전사했으며 북한 경비정 등산곶 684호도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 사회에 큰 안보 의식을 일깨우고 교전 수칙 및 전사자 보상 체계 개선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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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99

[제1연평해전 발발]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 북한 경비정에 대한 대한민국 해군의 '밀어내기 작전' 중 북한의 선제 공격으로 남북 간 첫 해상 전투가 발발했습니다.이 전투에서 북한 등산곶 684호는 대한민국 참수리 325호의 반격으로 반파되었고, 북한군 최소 30명 사망, 70명 이상 부상 등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한국 해군은 1명의 부상자를 제외하고 큰 피해 없이 승리했으나, NLL 수호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웠습니다.

[北, NLL 무효 선언]

제1연평해전 이후 북한은 서해 북방한계선(NLL)의 무효를 주장하고, 일방적으로 자신들의 해상 군사통제수역을 선포했습니다.대한민국 정부는 북한의 주장을 즉각 반박하며 NLL 사수 의지를 확고히 했습니다.이는 이후 서해에서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주요 배경이 되었습니다.

2002

[제2연평해전 발발]

한일 월드컵 3·4위전이 열리던 2002년 6월 29일, 연평도 근해 북방한계선(NLL) 이남에서 북한 경비정 등산곶 684호의 기습 공격으로 대한민국 해군 참수리 357호가 침몰했습니다.이 전투로 윤영하 정장을 포함한 해군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했습니다.북한 경비정 역시 대한민국 해군의 반격으로 함교가 완전히 파괴되고 약 3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며 반파된 채 퇴각했습니다.대한민국의 월드컵 열기가 뜨겁던 시기에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으로, 전 국민에게 큰 슬픔과 안보 의식을 일깨웠습니다.

교전 당일 09시 54분, 북한 경비정 등산곶 388호가 NLL을 넘어 남하하며 대응 기동이 시작되었습니다. 10시 01분에는 등산곶 684호가 추가 남하했고, 10시 25분 등산곶 684호가 참수리 357호에 85mm 함포를 기습 발사하며 교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참수리 357호 조타실이 파괴되고 윤영하 정장이 전사했습니다. 이후 대한민국 해군은 반격에 나서 10시 51분 화염에 휩싸인 북한 경비정이 퇴각했고, 10시 56분 교전이 종료되었습니다. 심한 선체 손상을 입은 참수리 357호는 예인 중 11시 59분 침몰했습니다.

[전사 장병 훈장 추서]

전사 및 실종 장병 5명에게 1계급 특진과 훈장을 추서하였습니다. 윤영하 소령에게는 충무무공훈장이, 조천형 중사 등 4명에게는 화랑무공훈장이 수여되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당일 예정대로 월드컵 폐막식 참석을 위해 일본으로 출국하였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경고]

일본에서 귀국한 김대중 대통령은 "만약 북한이 또다시 군사력으로 우리에게 피해를 입히려 한다면 그때는 북한도 더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했습니다.또한 국군수도병원을 방문하여 서해교전에서 부상당한 장병들을 직접 위로했습니다.그러나 합동영결식에 불참한 것에 대한 비판 여론이 고조되기도 했습니다.

[대통령, 유가족 위로]

제2연평해전 발생 한 달 뒤, 김대중 대통령은 서해교전에서 전사하거나 실종된 장병 5명의 가족 12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위로의 뜻을 전했습니다.이는 국가 수장으로서 희생자 가족들에게 대한 예우를 다하는 자리였습니다.

[357호 인양 작업 시작]

태풍으로 여러 차례 연기되었던 침몰 고속정 참수리 357호의 수색 및 인양 작업이 8월 5일 마침내 시작되었습니다.악화된 기상 조건 속에서도 실종 장병의 유해 수습과 침몰 선체 인양을 위한 노력이 계속되었습니다.

[한상국 중사 유해 수습]

침몰한 참수리 357호 조타실에서 실종되었던 한상국 중사(당시 하사)의 유해가 수습되었습니다.교전 발생 41일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한 중사의 발견은 유가족과 국민들에게 깊은 슬픔을 안겼습니다.

[357호 인양 완료]

침몰 53일 만에 참수리 357호가 해저 28m에서 인양되었습니다.인양된 선체에는 수백 군데의 포탄과 파편 자국, 축구공 크기의 구멍들이 생생하게 남아 있어 당시 치열했던 교전 상황을 보여주었습니다.함교 뒤 돛에 걸려 있던 태극기는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2003

[盧 대통령 유가족 위로]

제2연평해전 1주기를 앞두고 노무현 대통령은 유가족과 국가유공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하여 위로했습니다.이어서 6월 27일에는 2함대를 방문, 안보공원의 참수리 357호정 모형에 묵념하고 헌화하며 희생 장병들을 추모했습니다.

2004

[교전 수칙 3단계 개정]

제2연평해전 당시 5단계에 달했던 대응기동 절차가 해군의 큰 손실을 초래했던 교훈을 바탕으로, 국방부는 교전 수칙을 '경고방송·시위기동 → 경고사격 → 격파사격'의 3단계로 간소화했습니다.특히 기습 공격에 취약했던 '차단기동' 단계가 삭제되어 보다 적극적인 응전이 가능하도록 개정되었습니다.이는 훗날 대청해전 승리의 바탕이 됩니다.

[北 경비정 '김영식호' 개칭]

제2연평해전에서 대한민국 해군의 반격으로 반파되었던 북한 경비정 등산곶 684호가 수리를 완료하고, 전투에서 사망한 함장의 이름을 따 '김영식 영웅호'로 개칭되었습니다.이는 북한이 자국 내에서 전사자를 영웅화하고, 전투의 의미를 부여했음을 보여줍니다.

[군인연금법 시행령 개정]

국방부는 전사자의 공로에 비해 보상금이 적다는 지적에 따라, '공무사망'과 '적과의 교전에 의한 전사'를 분리하여 보상을 할 수 있도록 군인연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공포했습니다.이로써 국내외 전사자들에게 더 합당한 보상이 가능해졌으나, 제2연평해전 전사자들에게는 소급 적용되지 못하여 이후 보상금 논란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北 '김영식호' NLL 재침범]

수리를 마치고 '김영식 영웅호'로 개칭된 북한 등산곶 684호가 다시 NLL을 침범했습니다.그러나 대한민국 해군의 강력한 경고 사격을 받고 즉시 이북으로 도주했습니다.이는 개정된 교전 수칙과 강화된 대비 태세의 효과를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2007

['윤영하함' 진수]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윤영하 소령을 기리기 위해 참수리 고속정을 대체할 차기 고속함 1번함이 '윤영하함'으로 명명되어 진수되었습니다.이는 희생 장병의 넋을 기리고, 서해 수호 의지를 다지는 상징적인 조치였습니다.윤영하급 고속함은 76mm 속사포와 대함 미사일을 탑재해 기존 고속정보다 월등한 화력을 자랑합니다.

2008

['서해교전' 명칭 변경]

이명박 정부 집권 후 국방부는 기존의 '서해교전' 명칭을 '제2연평해전'으로 변경했습니다.이는 단순한 충돌이 아닌, 국가를 수호하기 위한 '전투'였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역사적 가치를 재평가하려는 의지였습니다.또한 제2연평해전 추모식을 정부기념행사로 승격시키는 등 국가적 예우를 강화했습니다.

2009

[대청해전 발생]

북한 경비정의 NLL 침범에 대한민국 해군이 새로 개정된 교전 수칙에 따라 즉각적이고 강력하게 대응하여 북측 경비정을 반파시킨 해상 전투입니다.이 전투에서 대한민국 해군은 인명 피해 없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제2연평해전 이후 강화된 해상 방어 능력과 교전 수칙의 효과를 입증했습니다.

[윤영하함 실전 배치]

제2연평해전 전사자 윤영하 소령의 이름을 딴 차기 고속함 '윤영하함'이 대한민국 해군에 실전 배치되었습니다.이로써 해군의 연안 방어 능력이 크게 강화되었고, 서해 NLL 수호에 큰 힘을 보태게 되었습니다.

[한상국함, 조천형함 진수]

제2연평해전 전사자 한상국 상사와 조천형 중사를 기리기 위한 2번함 '한상국함'과 3번함 '조천형함'이 진수되었습니다.희생 장병의 이름을 딴 고속함들이 연이어 해군 함대에 합류하며 서해 수호 의지를 공고히 했습니다.

[황도현함, 서후원함 진수]

제2연평해전 전사자 황도현 중사와 서후원 중사를 기리는 4번함 '황도현함'과 5번함 '서후원함'이 진수되었습니다.전사자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이어받아 명명된 이들 고속함은 대한민국의 해양 수호에 기여하게 됩니다.

2010

[연평도 포격 사건 발생]

북한이 연평도 육상 지역을 포격하여 대한민국 해병 2명과 민간인 2명이 사망하고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습니다.제2연평해전 이후 북한의 대남도발은 해상에 이어 육상으로 확대되었음을 보여주는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박동혁함 진수]

제2연평해전의 마지막 전사자인 박동혁 병장(당시 상병)을 기리는 6번함 '박동혁함'이 진수되었습니다.참수리 고속정 357호의 모든 전사자들의 이름이 고속함으로 명명되어 대한민국의 바다를 지키게 되었습니다.

[전사자 소급보상 불가 통보]

국방부는 제2연평해전 희생자에 대한 전사자 예우 및 소급 보상이 법적 안정성 및 형평성 문제로 어렵다고 통보했습니다.천안함 침몰사건 전사자들과의 보상금 격차로 인해 유가족들의 큰 반발을 샀으며,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2012

[MB, 10주년 행사 참석]

이명박 대통령은 제2연평해전 10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했습니다.이는 2002년 해전 이후 처음으로 군 통수권자가 관련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희생 장병에 대한 국가의 예우를 강화하고 안보 의지를 표명하는 중요한 자리였습니다.

2015

[영화 '연평해전' 개봉]

제2연평해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연평해전'이 개봉했습니다.제작비 모금의 어려움 속에서도 일반 국민과 해군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당시의 치열했던 전투와 장병들의 희생을 생생하게 그려내며 대중에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이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대중의 이해와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8

[전사자 특별법 제정]

문재인 정부에서 '제2연평해전 전사자 보상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 및 시행되었습니다.이로써 전사자 유가족들은 1인당 최소 1억 4천만 원에서 최대 1억 8천여만 원의 추가 보상금을 지급받을 수 있게 되었으며, 오랜 시간 이어져 온 보상금 논란이 해소되었습니다.이는 국가가 희생에 대한 합당한 예우를 뒤늦게나마 다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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