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캐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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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영화배우, 연극배우 영화/드라마 배우

미국의 전설적인 배우 제임스 캐그니는 터프가이 이미지로 할리우드를 사로잡았습니다. 그는 '공공의 적'으로 대스타 반열에 올랐고, '양키 두들 댄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워너 브로스와의 계약 분쟁에서 배우 최초로 제작사를 상대로 승소하는 등 파란만장한 경력을 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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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899

[제임스 캐그니 출생]

미국의 전설적인 배우 제임스 캐그니가 뉴욕에서 태어났다.

1899년 7월 17일, 제임스 프랜시스 캐그니 주니어는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훗날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터프가이 배우가 되었다.

1919

[연기 생활 시작]

여장을 하고 시사풍자극의 코러스 라인에서 춤을 추며 연기 경력을 시작했다.

1919년부터 그는 여장을 하고 시사풍자극의 코러스 라인에서 춤을 추는 등 연기 활동을 시작했으며, 보드빌 무대에서 코미디언과 춤꾼으로 활동하며 연기력을 키웠다.

1925

[보드빌에서 중요한 역할 수행]

코미디언과 춤꾼으로서 보드빌에서 활동하다가 처음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으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1925년, 그는 처음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면서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이는 훗날 워너 브로스와의 계약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1930

[영화 데뷔]

워너 브로스와 계약 후 영화 'Sinners' Holiday'에 출연하며 스크린에 데뷔했다.

여러 사람들에게 주목받은 그는 워너 브로스와 3주 동안 주당 500달러의 계약을 맺고, 영화 'Sinners' Holiday'에 출연하며 스크린 데뷔를 했다. 이 계약은 곧 7년 장기 계약으로 확대되었다.

1931

['공공의 적'으로 대스타 반열에 오름]

7번째 영화 '공공의 적'에 출연하여 당대 가장 영향력 있는 갱스터 영화 배우로 떠오르며 할리우드의 대스타가 되었다.

캐그니의 7번째 영화였던 '공공의 적'은 그를 당대 가장 영향력 있는 갱스터 영화의 상징적인 배우로 만들었다. 특히 그레이프프루트를 뭉개는 장면은 영화사의 명장면으로 남아있으며, 이 작품으로 그는 워너 브로스와 할리우드의 대스타로 자리매김했다.

1934

['히어 컴스 더 네이비' 출연]

영화 '히어 컴스 더 네이비'에 출연했다.

1934년, 제임스 캐그니는 영화 '히어 컴스 더 네이비'에 출연하며 활발한 연기 활동을 이어갔다.

1935

[워너 브로스와의 법정 분쟁 승리]

급부장애를 이유로 워너 브로스를 고소하여 승소했다. 이는 배우가 계약과 관련해 제작사를 상대로 처음으로 승리한 세계 최초의 사례로 기록되었다.

1935년, 그는 급부장애를 이유로 워너 브로스를 고소했고, 승소하는 역사적인 기록을 세웠다. 이는 배우가 계약과 관련하여 제작사를 상대로 법정에서 승리한 세계 최초의 사례로, 배우 권리 신장에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그는 독립 영화 회사에서 일하기도 했다.

1938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 지명]

영화 '더럽혀진 얼굴의 천사'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리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1938년, 제임스 캐그니는 영화 '더럽혀진 얼굴의 천사'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이며 생애 처음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지명되었다.

1942

[캐그니 프로덕션 설립 및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

'캐그니 프로덕션'이라는 자회사를 설립했으며, 영화 '양키 두들 댄디'에서 조지 코핸 역을 맡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1942년, 그는 워너 브로스로 다시 돌아가기 4년 전 '캐그니 프로덕션'이라는 자신의 독립 영화 회사를 설립했다. 같은 해 영화 '양키 두들 댄디'에서 조지 코핸을 완벽하게 연기하여 마침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배우로서 최고의 영예를 안았다.

1955

[세 번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 지명]

영화 '사랑하거나 떠나거나'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세 번째로 지명되었다.

1955년, 제임스 캐그니는 영화 '사랑하거나 떠나거나'에서 또 다른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며 세 번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다.

1960

[TV 프로그램 게스트 출연]

텔레비전 프로그램 'What's My Line'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대중과 만났다.

1960년, 그는 TV 프로그램 'What's My Line'에 게스트로 출연하며 스크린 밖에서도 대중과의 소통을 이어갔다.

1961

[뇌졸중으로 인한 은퇴]

뇌졸중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영화계에서 은퇴하고 약 20년간 농장에서 요양 생활을 시작했다.

1961년, 제임스 캐그니는 뇌졸중으로 건강이 나빠지자 영화계에서 은퇴를 선언하고, 랙타임으로 복귀하기 전까지 약 20년간을 농장에서 요양하며 조용한 시간을 보냈다.

1966

[애니메이션 내레이터 참여]

애니메이션 'The Ballad of Smokey the Bear'에서 목소리 연기와 내레이션을 맡았다.

1966년, 그는 애니메이션 'The Ballad of Smokey the Bear'에서 목소리 연기와 내레이션을 담당하며 색다른 모습을 선보였다.

1981

[영화 '랙타임'으로 복귀]

약 20년의 공백기를 깨고 영화 '랙타임'에 출연하며 성공적으로 연기 활동에 복귀했다.

1981년, 제임스 캐그니는 1961년 은퇴 후 약 20년 만에 영화 '랙타임'으로 스크린에 복귀하여 변함없는 연기력을 선보였다.

1984

['Terrible Joe Moran' 출연]

'Terrible Joe Moran'에 출연하며 그의 말년 연기 활동을 이어갔다.

1984년, 제임스 캐그니는 'Terrible Joe Moran'에 출연하며 생의 마지막 연기 활동 중 하나를 기록했다.

1986

[제임스 캐그니 사망]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며 할리우드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배우의 생을 마감했다.

1986년 3월 30일, 제임스 프랜시스 캐그니 주니어는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영화 역사상 최고의 터프가이 중 한 명이자 위대한 배우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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