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와트
연표
1736
[위대한 발명가의 탄생]
스코틀랜드의 항구도시 그리녹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조선공이자 고위 공무원이었고, 어머니는 명문가 출신으로 뛰어난 교육을 받았습니다.
병약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손재주와 공학, 수학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습니다.
1755
[좌절된 글래스고 입성]
런던에서 1년간 기계 제작법을 배운 뒤, 상공업 중심지 글래스고에 자신만의 공업소를 차리려 했습니다.
하지만 도제공 기간을 채우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장장이 길드의 가입을 거부당하며 큰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1757
[학문과의 만남]
글래스고 대학교의 천문학 기구들을 수리하는 인연으로 대학 내 작은 공업소를 설립했습니다.
이는 길드의 제약을 피해 그의 재능을 펼칠 수 있는 중요한 발판이 되었고, 물리학자 조지프 블랙과 친구가 됩니다.
1759
[새로운 동력원의 발견]
친구 조지프 블랙의 영향으로 증기 동력에 관심을 갖게 되어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직접 증기 기관을 본 적은 없었지만, 스스로 연구하며 증기 기관 작동의 핵심 원리인 잠열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1763
[비효율의 벽에 부딪히다]
대학 소유의 뉴커먼 기관 모델 수리를 맡았지만, 수리 후에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실린더 전체가 냉각되어 열 손실이 심하고 석탄 소모량이 많은 뉴커먼 기관의 근본적인 한계를 절감했습니다.
1764
[첫 번째 결혼]
사촌인 마가렛 밀러와 결혼하여 다섯 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안타깝게도 두 명만이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았습니다.
1769
[세계를 바꾼 발명 특허]
‘화력기관에서 증기와 연료의 소모를 줄이는 새롭게 고안한 방법’에 대한 세계 최초의 특허를 취득했습니다.
실린더와 분리된 응축기를 사용해 증기 기관의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여, 석탄 소모량을 4분의 1 이하로 줄이는 대혁신을 이루었습니다.
이는 산업 혁명의 서막을 알리는 결정적인 발명이었습니다.
1772
[비극과 새로운 시작]
첫 번째 아내 마가렛 밀러가 출산 중 사망하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이후 1777년, 글래스고 염색업자의 딸인 앤 맥그리거와 재혼하여 두 명의 자녀를 더 두었습니다.
1774
[산업 거물과의 동업]
증기 기관 특허 실용화에 난항을 겪던 중, 금속제품 공장 소유주인 사업가 매튜 볼턴의 설득으로 버밍엄으로 이주했습니다.
볼턴은 그의 기술력을 알아보고 그의 증기 기관 특허권 지분을 확보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1775
[혁신 기업의 탄생]
매튜 볼턴과 함께 '볼턴앤드와트'를 설립하고, 특허권 기한이 6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볼턴의 의회 로비를 통해 특허권 기한을 1800년까지 연장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는 사업 성공의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1776
[증기 기관 시대의 개막]
볼턴앤드와트에서 개량된 증기 기관 두 대를 최초로 출시하고 상업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기관은 주로 광산의 지하수를 빼내는 동력 펌프로 활용되며, 그 효율성과 경제성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1780
[사무실 혁명, 복사기 발명]
잉크의 일부를 다른 종이로 옮기는 새로운 방식을 고안하여 초기 형태의 복사기를 발명했습니다.
이 발명은 사무실 업무의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높였고, 이후 20세기까지 널리 사용되는 복사기의 전신이 되었습니다.
1786
[뜻밖의 화학 실험]
파리에서 베르톨레의 염소 생성 실험을 참관하며 화학 분야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미 염산으로 직물 표백 가능성을 입증했던 그는, 염화나트륨을 이용한 염소 생성법을 발견하고 표백제 상업화를 시도했습니다.
1800
[20세기 산업의 기반을 닦고]
증기 기관 특허권 만료와 함께 동업자 볼턴과 함께 은퇴했습니다.
은퇴 후에도 작업실에서 기름 램프 개량, 조각상 제작 기계 등 다양한 연구에 몰두하며 지치지 않는 탐구 정신을 보여주었습니다.
1819
[산업 혁명의 거인, 잠들다]
버밍엄의 핸즈워스 자택에서 83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는 증기 기관의 혁신을 통해 세계 산업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위대한 발명가로 역사에 기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