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
제인 오스틴은 18세기 영국 중·상류층 여성의 삶과 사회를 섬세하고 재치 있는 문체로 그려낸 세계적인 소설가입니다. 생전에는 익명으로 활동하며 큰 명성을 얻지 못했으나 사후 그녀의 작품 《오만과 편견》 《이성과 감성》 등이 영화화되며 대중적인 사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BBC 설문조사 지난 천년간 최고의 문학가에서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2위를 차지할 만큼 문학사적 위상을 인정받았으며 단 여섯 편의 소설로 200년 가까이 전 세계 독자들을 매료시킨 영국 소설의 위대한 전통을 창시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연표
1775
[위대한 작가의 탄생]
잉글랜드 햄프셔주 스티븐턴의 한 교회에서 교구 사제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7명의 형제자매가 있는 대가족의 일원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위대한 작가로서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1783
[짧지만 특별한 교육]
언니 카산드라와 함께 옥스퍼드와 사우샘프턴에서 단기간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는 당시 다른 일반 소녀들보다 충실한 문학 교육의 시작이었으며, 그녀의 문학적 소양을 쌓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1785
[기숙학교에서 문학 탐닉]
다음 해까지 바크셔 리딩에 위치한 리딩 수도원 여자기숙학교에서 배웠습니다.
이 시기에도 그녀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 다양한 문학 작품을 접하며 독서에 깊이 몰입했습니다.
1789
[14세, 첫 소설 습작]
불과 14세의 어린 나이에 소설을 습작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여성의 글쓰기가 억압받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도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작가의 꿈을 키워나갔습니다.
1795
[초기작 《에리나와 메리안》]
편지체 형식의 소설 《에리나와 메리안》을 집필했습니다.
이는 훗날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가 될 《이성과 감성》의 기반이 되는 중요한 초기작이었습니다.
1796
[첫사랑과 《첫인상》 집필]
아일랜드 출신 청년 톰 러프로이와의 짧지만 강렬한 사랑을 경험했습니다.
그의 집안 반대로 결실을 맺지 못하는 아픔을 겪는 와중에 훗날 《오만과 편견》의 초고가 되는 《첫인상》을 집필했습니다.
1797
[《이성과 감성》 집필 착수]
이전에 썼던 《에리나와 메리안》을 바탕으로 하여 대표작 중 하나인 《이성과 감성》의 집필을 시작했습니다.
또한 훗날 《노생거 사원》이 될 《레이디 수잔》도 착수했습니다.
1801
[휴양지 바스로의 이사]
아버지가 사제직을 큰 오빠에게 양도하며 가족과 함께 당시 유명한 휴양지였던 바스로 이사했습니다.
제인은 이 소식에 충격을 받았지만, 바스에서의 경험은 이후 소설의 중요한 배경이 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802
[하루 만에 청혼 거절]
부유한 젊은 해리스 빅 위저드로부터 청혼을 받았습니다.
당시 미혼 여성에게는 절호의 기회였으나, 제인은 하루 만에 마음을 바꿔 청혼을 거절하며 자신의 신념을 지켰습니다.
1803
[미완의 《레이디 수잔》]
《레이디 수잔》을 크로스드사에 판매했지만, 아쉽게도 그녀의 생전에는 출판되지 못했습니다.
이 작품은 사후에 《설득》과 함께 출판되었습니다.
1805
[아버지의 죽음과 이사]
아버지 조지가 사망하자, 어머니와 언니와 함께 사우샘프턴의 캐슬 스퀘어 집으로 이사하여 잠시 평온한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가족의 변화와 함께 그녀의 삶에도 새로운 전환점이 찾아왔습니다.
1809
[초턴 정착, 창작 재개]
아내를 잃은 셋째 오빠 에드워드가 본인의 영지에 있는 관리인 집을 내주면서 초턴에 정착했습니다.
이곳은 그녀가 죽을 때까지 머물며 많은 걸작을 탄생시킨 창작의 산실이 되었고, 현재 기념관으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1811
[《이성과 감성》 익명 출판]
오랜 노력 끝에 첫 번째 소설인 《이성과 감성》을 익명으로 출판했습니다.
이 작품은 그녀의 작가 경력에 중요한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1813
[명작 《오만과 편견》 출판]
이전의 《첫인상》을 기초로 한 걸작 《오만과 편견》이 출판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 독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대표작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814
[《맨스필드 파크》 간행]
또 다른 중요한 작품인 《맨스필드 파크》를 간행했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까지도 그녀의 작품은 모두 익명으로 발표되어 대중에게 작가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1815
[섭정관에게 《엠마》 헌정]
신작 《엠마》의 출판을 앞두고, 우연히 제인의 애독자가 된 당시 섭정관 조지 4세에게 급히 작품을 헌정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이는 작가로서 그녀에게 큰 의미가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1816
[건강 악화 시작]
이 해부터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하여 병상에 누워 있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결핵, 애디슨병 등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병명은 불명확합니다.
건강 악화는 그녀의 남은 삶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817
[마지막 집필과 요양]
마지막 소설인 『샌디턴』을 집필하던 중 병세가 악화되어 요양을 위해 윈체스터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이는 그녀의 마지막 여행이었습니다.
[42세, 짧은 생을 마치다]
윈체스터로 옮긴 지 두 달 만에 42세의 젊은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녀의 유해는 유서 깊은 윈체스터 대성당에 묻혔으며, 그녀의 문학적 유산은 불멸하게 되었습니다.
1818
[유작들 사후 출판]
그녀가 생전에 완성했으나 출판되지 못했던 《노생거 사원》과 《설득》이 사후에 세상에 공개되었습니다.
이 작품들은 그녀의 문학적 재능을 다시 한번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870
[문학 정전으로 인정받다]
찰스 디킨스와 조지 엘리엇 등 빅토리아 시대 소설가들에게 가려져 있다가, 19세기 후반부터 조지 헨리 루이스, 헨리 제임스 같은 비평가들의 격찬에 힘입어 문학 정전의 반열에 오르고 대중적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1970
[대중적 컬트로 자리매김]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수백만의 열광적인 독자들을 확보하게 되었고, 그녀의 소설들은 영화, 연극, 드라마 등으로 무수히 리메이크되면서 대중적인 컬트로 확고히 자리 잡았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녀의 작품은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