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 회담 (1954년)
연표
1954
[이승만 대통령, 제네바 회담 앞두고 '한국 매각' 강력 경고]
이승만 대통령이 제네바 회담을 앞두고 서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강대국 간 밀실 야합으로 한국 운명이 결정되는 것을 강력히 경고하며, 한국을 팔아넘기는 행위는 곧 미국을 팔아넘기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1954년 1월 17일, 제네바 회담을 앞두고 이승만 대통령은 서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을 팔아넘기는 행위는 곧 미국을 팔아넘기는 것과 같다는 메시지를 전하였다. 그는 한국의 운명을 방관하여 강대국끼리 밀실에서의 뒷거래를 통해 소련에 팔아먹는다면 유엔의 권위와 위신이 과거 국제연맹처럼 유명무실해질 것이며, 이는 과거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을 업신여기며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통해 조선을 일본에 넘겨줌으로 그 다음은 만주, 중국까지 손아귀에 넣은 일제의 칼날이 결국 진주만 습격으로 미국 자신에게 향했던 것처럼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제네바 회담 개시, 한반도와 인도차이나 평화 논의 시작]
스위스 제네바에서 한국 전쟁과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의 현안 해결을 위한 국제 회담이 시작되었다. 소련, 미국, 프랑스, 영국, 중화인민공화국 등 19개국이 참여하여 한반도 평화와 재통일,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평화 유지 및 베트남 분단 협약 등을 논의했다.
1954년 4월 2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19개국이 한국 전쟁과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발생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국제 회담을 시작했다. 주요 참여국은 소련, 미국, 프랑스, 영국, 중화인민공화국이었으며, 그 외 다양한 나라들이 각 문제의 토론에 참가했다. 회담의 주요 목적은 한국 전쟁의 공식적인 종료를 위한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및 한국의 재통일, 그리고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평화 유지 가능성 및 베트남 분단 협약에 대한 토의였다.
[제네바 회담, 한국 문제 합의 실패로 종결]
제네바 회담의 첫 번째 안건이었던 한국 전쟁 종식과 한반도 재통일 논의가 결론 없이 종결되었다. 미국과 소련의 강경한 입장 대립으로 어떠한 선언도 채택되지 못했으며, 특히 미국의 한반도 통일 회피 태도에 대한 비난이 제기되었다.
제네바 회담에서 한국 전쟁의 공식적인 종료와 한국의 재통일을 위한 한반도 평화 협정 체결에 대한 논의는 결실을 맺지 못했다. 남한은 대한민국이 한국의 유일한 합법 정부이며 유엔 주도의 선거와 중국군 철수를 주장했고, 북한은 남북 동등한 인원으로 구성된 위원회와 외국군 전면 철수를 주장했다. 미국은 동북아시아에서 소련과 중국을 감시하고 견제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한반도 통일에 대해 고의적으로 회피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비난을 받았으며, 결국 6월 15일까지 어떤 선언도 만장일치를 얻지 못하고 한국 관련 회담이 종결되었다.
['제네바 합의' 발표, 베트남 분단 공식화]
제네바 회담의 결과로 '제네바 합의'가 발표되며 베트남이 17도선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일시 분단되었다. 이 합의는 비무장지대 설정, 군대 재집결, 인구 이동, 군사동맹 금지 등을 규정했으며, 1956년 7월 총선거를 통한 통일을 명시했으나, 남베트남과 미국은 이를 거부했다.
1954년 7월 21일, 제네바 회담의 인도차이나 문제 논의 결과 '제네바 합의'라 불리는 일련의 문서가 발표되었다. 이 합의에 따라 베트남은 대략 17도선을 따라 임시 군사분계선으로 남북 분단되었고, 북부는 호찌민의 비엣민이, 남부는 전 황제 바오다이를 수장으로 하는 베트남국이 통치하게 되었다. 주요 조건으로는 경계선 양쪽의 비무장지대 형성, 프랑스 연합군 남쪽·베트민 북쪽 재집결, 300일 동안 구역 간 인구의 자유로운 이동, 양측의 군사동맹 가입 및 군사력 증강 금지, 휴전 감시를 위한 국제통제위원회 설립 등이 명시되었다. 또한, 1956년 7월 이전에 보통선거를 통해 통일된 베트남을 수립할 것을 규정했으나, 남베트남이나 미국의 대표들은 이 문서를 채택하지 않았다.
1955
[베트콩 창설 및 베트남 전쟁 발발]
남베트남의 총선거 거부와 응오딘지엠 정권의 공산 세력 탄압에 맞서 호치민 정부는 북베트남군의 지원을 받는 베트콩을 창설하고 무력 충돌을 시작했다. 이는 제네바 합의가 무너지면서 베트남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사건이다.
제네바 회담 이후, 남베트남의 응오딘지엠 정권이 1956년 총선거를 거부하고 국내 공산 세력을 탄압하자, 호치민 정부는 이에 대한 대응으로 북베트남군의 지원을 받는 베트콩(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을 창설했다. 이들은 무력 충돌을 벌임으로서 제네바 합의의 이행 실패와 베트남 분단의 고착화가 베트남 전쟁으로 이어지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베트남 전쟁의 정확한 시작일은 없지만, 총선거 거부 이후 베트콩 창설과 무력충돌 개시로 베트남 전쟁의 실질적인 시작으로 볼 수 있다.)
[남베트남, 통일 총선거 거부 및 프랑스군 최종 철수]
1955년 7월 남베트남 응오딘지엠은 제네바 합의의 구속력 부재 등을 이유로 1956년 7월 예정이던 통일 총선거를 거부하였습니다. 이후 1956년 4월 28일 프랑스군이 베트남에서 최종 철수하였습니다. 한편, 1956년 4월 28일 마지막 프랑스군이 베트남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