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각

num_of_likes 116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제갈각
정치가, 군인, 권신, 태부, 대장군 + 카테고리
제갈각은 동오의 중신 제갈근의 장남이자 촉한의 승상 제갈량의 조카로, 어려서부터 뛰어난 재치와 언변으로 손권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단양의 산월족을 토벌하여 군사적 재능을 입증하였고, 손권 사후 탁고 대신으로서 권력을 장악하여 초기에는 선정으로 민심을 얻고 동흥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는 등 큰 공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승리에 도취하여 무리하게 북벌을 감행하다 합비 신성에서 대패하였고, 이후 자신의 실책을 덮기 위해 공포 정치를 펼치다 결국 손준의 계략에 빠져 암살당하고 삼족이 멸문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연표

203

[제갈각 출생]

낭야현 양도에서 동오의 중신 제갈근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제갈각은 촉한의 승상 제갈량의 조카이기도 합니다. 어릴 때부터 재치와 언변이 뛰어나 그 누구도 말싸움에서 그를 이기지 못했으며, 자라면서 더욱 탁월한 재능을 보여 손권의 큰 찬사를 받았습니다.

222

[기도위 임명 및 태자 보좌]

약관의 나이에 기도위로 임명되어 태자 손등을 모셨습니다.
고담, 장휴 등과 함께 태자의 빈객이 되어 학문과 기예를 논하며 보좌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이후 중서자에서 좌보도위로 자리를 옮기며 조정 내에서 점차 입지를 다져나갔습니다.

234

[단양태수 겸 무월장군 발탁]

손권에 의해 무월장군으로 발탁되어 단양태수 직을 겸임하게 되었습니다.
제갈각은 험준한 지형으로 인해 조정의 통제가 미치지 못하던 단양의 산월족을 토벌하겠다고 스스로 나섰습니다. 아버지 제갈근조차 가문이 몰락할 것이라며 반대했으나, 그는 3년 안에 4만 명의 병사를 모으겠다고 호언장담하며 당당히 부임했습니다.

237

[산월족 평정 성공]

견벽청야 전술을 성공적으로 실행하여 산월족의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산월족의 식량줄을 끊어 굶주리게 한 뒤, 항복하는 자들을 절대 구금하거나 해치지 못하도록 엄격히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를 어기고 투항자를 구금한 구양장 호항을 처형하여 신뢰를 얻자 수많은 산월족이 귀순하였고, 이 공로로 위북장군에 임명되었습니다.

243

[시상 지역으로의 수비 이동]

위나라 사마의의 공격 계획을 피하기 위해 시상으로 진영을 옮겼습니다.
위나라 장수 사마의가 제갈각을 공격하려 하자, 손권은 병력을 보내 대응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점술가가 출병에 불리하다고 예언함에 따라, 제갈각을 시상(현재의 장시성 주장시) 지역으로 이동시켜 방어 수비를 맡게 했습니다.

245

[대장군 승진 및 형주 관할]

승상 육손이 사망한 후 대장군으로 승진하여 형주 관련 업무를 총괄하게 되었습니다.
앞서 육손이 자신을 의심한다는 것을 알고 대국을 위해 협력하자는 편지를 보내 불화를 불식시킨 바 있습니다. 육손 사후 대장군 겸 가절로 승진하였고, 무창에 주둔하며 군사적 실권을 확고히 쥐게 되었습니다.

252

[탁고 대신으로 지명]

병세가 위독해진 손권에 의해 후계자 손량을 보좌할 수석 보정대신으로 선택받았습니다.
손권은 초기에 제갈각의 강퍅한 성격을 우려해 망설였으나, 당시 조정에 그만한 인물이 없다는 손준의 강력한 추천을 결국 받아들였습니다. 이에 제갈각은 손홍, 등윤, 여거, 손준 등과 함께 탁고 대신이 되어 국가의 후사를 부탁받았습니다.

[동흥 방어선 구축]

위나라의 침공에 대비하여 동흥 지역에 둑과 성을 쌓아 방어선을 강력하게 구축했습니다.
위나라 대장군 사마사가 손권의 병사를 틈타 동오를 침공하려 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이에 제갈각은 백성들을 대거 동원해 두 산 사이에 큰 둑을 쌓고 두 개의 성을 축조하여 적의 진격을 막을 방어 기지를 미리 마련했습니다.

[동흥 전투 대승]

4만 명의 구원군을 이끌고 동흥으로 직접 출병하여 위나라 대군을 크게 물리쳤습니다.
폭설 속에 위나라 군대가 술을 마시며 방심한 틈을 타, 정봉이 이끄는 선봉대가 기습을 감행했습니다. 이어 오나라 수군이 부교를 공격하자 위군은 크게 패주하며 1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냈고, 제갈각은 이 대승의 공로로 양도후에 봉해지고 양주와 형주의 목이 되었습니다.

[손홍 숙청 및 태부 취임]

자신을 암살하려던 손홍을 선제 처형하고, 손권의 상을 치른 뒤 태부에 올랐습니다.
중서령 손홍은 평소 제갈각과 불화가 있어 손권의 죽음을 숨기고 그를 먼저 제거하려 했습니다. 제갈각은 이를 간파하여 손홍을 죽인 뒤 부음을 발표했으며, 손량이 즉위하자 태부로 임명되어 군정과 국정을 홀로 장악했습니다.

[대대적인 선정과 민심 확보]

권력을 장악한 직후 백성들에게 혜택을 주는 다양한 은책을 실시하여 환호를 받았습니다.
관민을 감시하는 귀와 눈 역할을 하던 관리를 대대적으로 파면하고, 체납된 세금을 면제하며 관세를 철폐하는 등 백성들을 위한 유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쳤습니다. 그 결과 외출할 때마다 수많은 군중이 그의 모습을 보려고 몰려들 정도로 막대한 민심을 얻었습니다.

253

[무리한 북벌 추진]

동흥 전투 승리에 도취하여 신하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위나라 정벌을 고집했습니다.
전투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오나라 병사들이 매우 피로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대대적인 출병을 준비했습니다. 거세게 반대하는 중산대부 장연을 강제로 끌어내고, 친우인 섭우의 간언마저 묵살하며 20만 대군의 출병을 강행하여 민심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합비 신성 철군 및 대패]

오나라 군대가 질병으로 크게 무너지자 결국 철군을 결정했으나, 위군의 거센 추격을 받아 참패했습니다.
조정에서 철군을 재촉하는 조서가 계속 내려오고 위나라 구원군까지 당도하자 마지못해 철수를 명했습니다. 퇴각하는 도중 문흠이 이끄는 위군의 맹렬한 추격을 받아 1만 명이 넘는 군사를 잃는 대참패를 당했지만, 제갈각은 반성하는 기색 없이 태연한 태도를 유지했습니다.

[촉한 연합 제안]

위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사마 이형을 촉한에 사신으로 보내 동시 북벌 연합을 제안했습니다.
촉한의 군사적 실권자인 강유는 제갈각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하여 양면에서 위나라를 압박하고자 뜻을 모았습니다. 이는 제갈각이 천하의 정세를 동오에 유리하게 이끌어가고자 단행했던 대규모 군사 및 외교적 행보였습니다.

[합비 신성 포위와 고전]

합비의 신성을 90일 넘게 포위했으나 적장 장특의 거짓 항복에 속아 성을 함락시키지 못했습니다.
위나라 수장 장특이 100일을 버티면 항복해도 가족이 무사하다는 핑계를 대자, 이를 섣불리 믿고 공격을 멈추었습니다. 그러나 장특은 그 틈을 타 방벽을 수리하고 결사항전을 선언했고, 한여름의 무더위 속에 전염병이 돌아 수많은 오나라 병사들이 고통받으며 쓰러졌습니다.

[권력 남용과 공포 정치]

수도 건업으로 돌아온 후 패전의 책임을 회피하고 관리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하며 공포 정치를 폈습니다.
자신에게 철군을 재촉하는 조서를 내렸던 중서령 손묵을 심하게 꾸짖어 칩거하게 만들었고, 원정을 간 사이 새로 임명된 관리들을 전부 강제 파면시켰습니다. 또한 근위대를 자신의 측근들로 대거 교체하고 서주와 청주로 또다시 출병을 꾀하며 조정을 두려움에 몰아넣었습니다.

[손준의 계략과 참혹한 암살]

독단적인 전횡으로 깊은 원한을 산 끝에 손준과 손량의 함정에 빠져 살해당했습니다.
손준은 제갈각이 모반을 꾸민다고 황제 손량에게 참소한 뒤 그를 함정인 연회에 초대했습니다. 개가 옷을 물어뜯는 등 불길한 징조가 있었고 주위의 만류가 있었으나 결국 칼을 찬 채 입궐했다가, 손준이 매복시킨 병사들에게 암살당하고 그의 삼족 역시 모두 멸문되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258

[사후 명예 회복]

오나라 경제 손휴가 손준 일파를 모두 제거한 뒤 억울하게 죽은 제갈각의 명예를 회복해 주었습니다.
사망 당시 시신이 갈대자리에 엉성하게 말려 버려지는 끔찍한 수모를 겪었으나, 훗날 권신 손침을 주살한 손휴에 의해 신원되어 무덤이 이장되고 제사를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부 신하들이 비석을 세우자고 건의했을 때, 그가 탁고 대신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점이 지적되어 비석 건립은 기각되었습니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제갈각
+ 사건추가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