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철
연표
1972
1992
[최고의 특급 신인 등장]
고졸 우선 지명으로 빙그레 이글스에 입단, 꿈에 그리던 프로 무대에 첫발을 내딛는다.
데뷔 첫해부터 14승을 거두며 '특급 신인'으로 이름을 알렸다.
특히, 순수 신인으로서 단일 시즌 특정 팀을 상대로 3완봉승을 기록하는 대기록을 세우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1993
[리그 최고 투수의 시작]
1993년 KBO 승률왕을 시작으로, 1994년에는 압도적인 피칭으로 방어율왕과 탈삼진왕을 동시에 석권한다.
이후 1997년에도 탈삼진왕을 차지하며 명실상부 리그 최고의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1997
[아쉬운 퍼펙트 게임]
OB 베어스를 상대로 역사에 길이 남을 무사사구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다.
퍼펙트 게임을 눈앞에 두고 아쉽게 포수 실책으로 놓쳐 팬들의 탄식을 자아냈지만, 그의 뛰어난 제구력과 압도적인 구위를 보여준 경기였다.
1999
[최연소 100승 달성]
해태 타이거즈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역대 11번째로 KBO 통산 100승 고지를 '최연소'로 달성하는 기염을 토한다.
이는 그의 97번째 선발승이었다.
그는 1992년부터 1999년까지 8년 연속 두 자릿수 선발승이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우며 '꾸준함의 대명사'로 불렸다.
[선발 100승과 우승 견인]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완투승을 거두며 역대 5번째로 KBO 통산 100선발승을 달성했다.
이 해 그는 한화 이글스의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에 결정적으로 기여하며 팀의 레전드로 등극한다.
하지만 혹사로 인한 팔꿈치 통증이 이때부터 시작되어 이후 선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쳤다.
2000
[일본 진출과 아쉬운 도전]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국내 리그 최고 에이스였지만, 일본 현지 적응 실패와 리그 격차, 그리고 알 수 없는 구단의 운영 방식 속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2시즌 만에 국내로 복귀한다.
그는 훗날 '시스템이 참 이상했다'고 회고했다.
2002
[불굴의 재기 성공]
친정팀 한화 이글스로 복귀하지만, 이전과 같지 않은 구위와 팔꿈치 통증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2004년에는 수술대에 오르지만, 불굴의 의지로 재기를 다짐하며 2005년부터 가능성을 보였고, 2006년부터 기교파 투수로 변신하여 성공적인 복귀를 알린다.
특히 2006년 6월 6일에는 KBO 역사상 4번째로 '최연소, 최소 경기 2000이닝 투구'라는 대기록을 달성한다.
이 시기 1500탈삼진도 기록하며 전설의 발자취를 이어갔다.
2007
[완벽한 부활과 대기록]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승리를 거두며 역대 3번째로 '최연소, 최소 경기 150승' 고지를 밟는다.
이 해 12승 5패 2점대 평균자책점으로 완벽하게 부활하며 팬들을 열광시켰고, 역대 2번째로 KBO 통산 20완봉승을 달성하는 등 꾸준함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다.
2009
[야구인의 다채로운 삶]
은퇴 후에도 야구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한화 이글스 투수 코치(2010~2014년),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투수 코치(2017~2019년), MBC 스포츠플러스 야구 해설위원(2015~2019년)으로 활약하며 다양한 방면에서 야구 발전에 기여했다.
[영원한 23번의 은퇴]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은퇴식과 함께 등번호 23번이 한화 이글스의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는 영예를 안으며 18년간의 찬란했던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다.
이는 한화 이글스 역사상 '첫 영구 결번'이었다.
그는 팬들의 뜨거운 박수 속에 마운드를 떠났다.
2020
[친정팀 단장 역임]
한화 이글스의 단장으로 취임하며 프런트에서도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2022년까지 단장직을 수행하며 팀 재건에 힘썼다.
2023
[해설위원 복귀]
MBC 스포츠플러스 야구 해설위원으로 복귀하여 깊이 있는 분석과 특유의 입담으로 팬들에게 다시금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