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위 (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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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위 (후한)
후한의 무장, 조조의 친위대장, 악래, 삼국지 인물 + 카테고리

전위는 후한 말기의 혼란 속에서 혜성처럼 등장해 짧지만 강렬한 빛을 남기고 산화한 조조의 호위대장입니다. 그는 단순한 장수가 아니라, 주군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방패로 삼은 '충의(忠義)의 화신'으로 기억됩니다. 괴력과 쌍철극을 앞세워 전장을 누비던 그의 용맹은 고대 최고의 장사였던 '악래'에 비견되었으며, 복양 전투에서 조조를 구출한 무용담은 전설이 되었습니다. 최후의 순간, 완성 전투에서 배신으로 인해 무기를 잃고도 맨몸으로 적군을 막아내며 조조의 탈출로를 연 그의 죽음은 삼국지 역사상 가장 비장한 최후 중 하나로 꼽힙니다. 그의 죽음 앞에 조조는 자식과 조카를 잃은 슬픔보다 전위를 잃은 것을 더 애통해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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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0

[한 손으로 깃발을 든 거인]

반동탁 연합군이 결성되자 장막의 휘하에 투신하여 군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거대한 아문기가 바람에 쓰러지려 하자, 남들은 수십 명이 붙어도 세우지 못하던 것을 한 손으로 거뜬히 지탱해 내며 괴력을 과시했습니다.

당시 그는 사마 조총(趙寵)의 휘하에 있었습니다. 군영의 깃발(아문기)이 매우 크고 무거웠는데, 거센 바람이 불어 깃대 줄이 끊어지고 병사들이 우왕좌왕하며 깃발을 세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전위가 나서서 한 손으로 깃대를 잡고 버티니 깃발이 꼼짝도 하지 않았고, 이를 본 사람들은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직감하고 경외심을 가졌습니다.

192

[하후돈과의 만남과 조조군 합류]

장막과 조조가 결별하게 되자, 전위는 하후돈에게 그 무용을 인정받아 소속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하후돈은 전위를 '용맹하고 무예가 뛰어난 인재'라며 조조에게 직접 천거했습니다.

하후돈은 전위의 남다른 무용을 눈여겨보고 그를 자신의 휘하 사마로 삼았습니다. 이후 전위는 하후돈을 따라 여러 전투에 참여하였으며, 적의 수급을 베어 공을 세우는 일이 많았습니다. 조조 역시 전위의 풍채와 힘을 보고 옛날의 장사 '악래(惡來)'가 환생한 것 같다며 크게 기뻐했습니다.

194

[복양 전투의 결사대]

조조가 여포에게 기습을 당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자, 전위는 결사대를 지원해 선봉에 섰습니다. 갑옷을 두겹으로 껴입고 방패도 버린 채, 오직 창과 도끼만을 들고 적진을 향해 돌격 준비를 마쳤습니다.

복양에서 여포군에게 포위된 조조군은 빗발치는 화살 때문에 꼼짝할 수 없었습니다. 전위는 긴 창 수십 자루를 챙겨 들고 병사들에게 '적이 10보 앞에 오면 알려라'라고 지시했습니다. 화살이 빗발치는 와중에도 그는 미동도 하지 않고 적을 기다리며 자신의 거리를 계산했습니다.

[십보와 오보의 필살]

적이 십보, 그리고 오보 앞까지 육박하자 전위는 손에 든 단창을 투창처럼 던져 적들을 쓰러뜨렸습니다. 그의 손에서 창이 떠날 때마다 여포군의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졌고, 이 기세에 눌려 포위망이 뚫렸습니다.

병사들이 '10보입니다!', '5보입니다!'라고 외치자 전위는 그제야 몸을 일으켜 양손에 든 단창을 던졌습니다. 던지는 족족 적병의 갑옷을 뚫고 명중하니 여포의 군사들도 공포에 질려 물러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틈을 타 조조는 무사히 본진으로 귀환할 수 있었고, 전위는 이 공로로 도위(都尉)에 임명되었습니다.

195

[쌍철극과 주량]

전위는 무거운 쌍철극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군중의 동경을 받았습니다. 그는 전투뿐만 아니라 식사 자리에서도 남다른 대식가이자 애주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며 조조의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았습니다.

군중에는 '장막 아래 장사가 있으니, 바로 전위라. 쌍철극의 무게는 80근이나 된다네'라는 노래가 유행할 정도였습니다. 그는 음식을 먹을 때도 몇 사람 몫을 먹었고, 술도 말술을 마셨기에 조조는 그의 식사 시중을 들 사람을 따로 붙여주며 그를 아꼈습니다. 전위는 거대한 덩치와 무기로 조조의 침실 밖을 지키며 완벽한 경호를 수행했습니다.

196

[황건적 토벌과 교위 승진]

황건적의 잔당인 하의 등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조조는 그의 충성심과 무공을 높이 평가하여 그를 교위(校尉)로 승진시키고 친위대의 지휘를 맡겼습니다.

이 시기 전위는 허저와 맞붙었다는 민간 전승(삼국지연의)이 있을 정도로 무용이 절정에 달해 있었습니다. 정사에서는 황건적 토벌의 공으로 무맹교위로 승진하였으며, 수백 명의 친위대를 직접 거느리고 조조의 장막 주위를 빈틈없이 순찰하며 호위 임무를 총괄하게 되었습니다.

197

[완성 입성과 장수의 항복]

조조가 형주 북부의 완성을 공략하자, 이곳을 지키던 장수(張繡)가 군대를 이끌고 항복해 왔습니다. 조조는 이를 기뻐하며 연회를 베풀었고, 전위는 거대한 도끼를 들고 조조의 뒤에 서서 위압감을 뽐냈습니다.

연회 자리에서 조조가 장수 휘하의 장수들에게 술을 권할 때마다, 전위는 큰 도끼(대부)를 들고 눈을 부라리며 조조의 뒤를 따랐습니다. 장수와 그 부하들은 감히 전위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로 그 기세에 눌려 있었으며, 이는 잠시나마 장수의 딴마음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완성의 배신과 야습]

장수는 조조가 자신의 숙모를 건드린 것에 분개하여 기습적인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한밤중에 적들이 조조의 영채를 덮쳤고, 조조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장수는 모사 가후의 계략을 받아들여, 전위가 무기를 제대로 쓰지 못하도록 손을 쓴 뒤(연의에서는 호거아가 쌍철극을 훔침) 기습을 감행했습니다. 조조의 군영은 불길에 휩싸였고, 조조는 황급히 말을 타고 후문으로 도망쳐야 했습니다. 전위는 조조가 도망칠 시간을 벌기 위해 군문 앞에 홀로 섰습니다.

[최후의 혈전, 움직이지 않는 수문장]

전위는 몰려드는 적병들을 상대로 홀로 문을 지키며 처절한 사투를 벌였습니다. 무기가 부러지자 적병 두 사람을 양손에 잡아 무기처럼 휘두르며 적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습니다.

전위가 긴 창을 휘두르며 10여 명을 쳐 죽이자 적들은 감히 접근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배후의 다른 문으로 들어온 적들이 등 뒤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위는 온몸에 수십 개의 창에 찔리는 중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고함을 지르며 적에게 달려들어 수명을 더 죽였습니다. 적군은 그가 산 사람인지 죽은 사람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어 공포에 질렸습니다.

[서서 죽은 영웅]

수많은 상처를 입은 전위는 눈을 부릅뜬 채 큰 소리로 욕을 퍼붓다가 마침내 숨을 거뒀습니다. 그가 죽어서도 쓰러지지 않고 서 있자, 적병들은 한참 동안이나 그가 살아있는 줄 알고 접근하지 못했습니다.

전위가 마침내 숨이 끊어져 멈추었지만, 시신은 여전히 문 앞에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 한참 후에야 그가 죽은 것을 확인한 적병들이 다가가 그의 목을 베었고, 그의 머리는 돌려지며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백성들과 병사들은 그의 시신을 보고 모두 경탄하며 두려워했다고 전해집니다.

[조조의 통곡]

간신히 탈출한 조조는 전위의 죽음을 전해 듣고 통곡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들 조앙과 조카 조안민의 죽음보다 전위의 죽음을 더 슬퍼하며, 그의 장례를 후하게 치러주었습니다.

조조는 무음(舞陰)으로 물러난 뒤 전위의 장례를 치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후 양읍(襄邑)에 시신을 안장하고 그의 아들 전만(典滿)을 낭중으로 임명해 거두었습니다. 조조는 훗날 이 전투를 회상할 때마다 전위를 잃은 것을 가장 큰 손실로 꼽으며 애석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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