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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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비교
전영록은 대한민국 대중예술계의 상징적인 인물로, 1970년대 청춘 스타로 시작해 1980년대 가요계와 영화계를 동시에 평정한 독보적인 만능 엔터테이너입니다. 배우 황해와 가수 백설희의 아들이라는 화려한 배경 속에서 데뷔했으나, 본인만의 탁월한 음악적 감각과 액션 연기를 통해 '영원한 젊은 오빠'라는 칭호를 얻으며 아이돌의 원조 격인 팬덤을 형성했습니다. 가수로서 '불티',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 봐' 등 수많은 히트곡을 냈으며, 작곡가로서도 '바람아 멈추어다오',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 등을 통해 타 가수들을 스타 반열에 올리는 등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했습니다. 영화 '돌아이' 시리즈를 통해 한국 액션 영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으며, 최근까지도 유튜버와 음악 활동을 병행하며 50년 넘게 현역으로 활동하는 대중예술의 레전드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연표
1954
예술인 집안의 자제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대중문화 환경에서 성장하였습니다.
부모님의 화려한 명성을 이어받아 훗날 가요계와 영화계를 모두 정복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967
어린 시절부터 다재다능한 면모를 보였으며 학창 시절을 거치며 예술적 감수성을 키워나갔습니다.
이 시기 기초적인 교육을 마치고 중학교로 진학하며 본격적인 성장을 준비했습니다.
1970
청소년기 무술과 음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시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고등학교로 진학하여 자신의 재능을 더욱 구체화하기 시작했습니다.
1971
정식 데뷔 이전 방송 경험을 쌓기 시작한 최초의 기록입니다.
이를 통해 대중에게 얼굴을 알리기 시작하며 연예계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1973
본격적인 전문 연기 교육을 받기 위해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를 선택했습니다.
학업과 병행하며 방송 활동을 본격화하여 연기자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드라마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하이틴 스타로서의 입지를 다졌습니다.
극 중 삽입곡인 '편지'를 부른 것이 계기가 되어 가수 데뷔로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1975
드라마를 통해 증명된 노래 실력을 바탕으로 가요계에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이후 배우와 가수를 넘나드는 만능 엔터테이너로서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76
청춘 스타로서의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광고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수많은 히트 광고 시리즈의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1978
당대 최고의 여배우와 함께 모델로 활동하며 전성기를 향한 기세를 보여주었습니다.
대중적인 인지도를 확고히 굳히는 계기가 된 대표적인 광고 활동입니다.
1979
1980년대 대활약을 앞두고 가요계의 주류 스타로 안착했음을 보여주는 수상입니다.
이후 1989년까지 꾸준히 10대 가수상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롱런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1982
[서울국제가요제 금상 및 빌보드상 수상]
MBC 서울국제가요제에서 '지나간 시절의 연가'로 금상과 코리아 빌보드상을 동시에 거머쥐었습니다.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무대에서도 음악적 역량을 인정받은 성과입니다.
특히 빌보드사 대표가 직접 수여하는 상을 받으며 해외 시장에서의 잠재력을 보여주었습니다.
1983
'연민'이라는 곡으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습니다.
가창력과 작곡 능력 모두를 겸비한 아티스트로 인정받는 시기였습니다.
1985
[이미영과 결혼 및 영화 돌아이 개봉]
배우 이미영과 결혼식을 올렸으며, 주연작인 영화 '돌아이'가 개봉하여 흥행에 성공했습니다.가정적으로 안정기를 맞이함과 동시에 영화배우로서의 정점에 올라선 해입니다.
직접 시놉시스를 집필한 '돌아이'는 당대 최고의 액션 영화 흥행작으로 기록되었습니다.
1986
'불티',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 봐' 등의 연이은 히트로 전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습니다.
조용필의 뒤를 잇는 독보적인 남자 솔로 가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87
전년도 남자 부문 대상에 이어 이번에는 남녀 통합 대상을 차지하며 명실상부한 가요계의 제왕이 되었습니다.
'그대 우나 봐', '내 사랑 울보' 등이 대히트하며 가수 활동의 최절정기를 맞이했습니다.
1990
[작곡가로서의 역량 과시]
이즈음 김지애의 '얄미운 사람', 양수경의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 등을 작곡하며 대히트시켰습니다.자신의 곡뿐만 아니라 타 가수의 곡을 프로듀싱하여 성공시키는 천재적인 감각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작곡상을 수상하며 음악적 깊이를 증명했습니다.
1992
새로운 음악 흐름에 대해 '평가는 팬들의 몫'이라며 호의적이고 유연한 태도를 보여주었습니다.
대중음악사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역사적인 순간에 레전드로서 자리를 지켰습니다.
1997
사업 실패와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인해 갈등을 겪다 각자의 길을 걷기로 결정했습니다.
두 딸인 전보람과 전우람은 이후 전영록이 양육하게 되었습니다.
1999
팬이었던 임주연과의 인연으로 결혼에 골인하였으며, 슬하에 두 아들을 두게 되었습니다.
이후 안정을 찾으며 연예 활동에 다시 전념하기 시작했습니다.
2008
전보람은 이후 2009년 걸그룹 티아라의 멤버로 활동하며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자녀들의 연예계 진출을 묵묵히 지원하며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2012
두 딸이 모두 가수로 활동하게 되면서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 예술인 집안임을 입증했습니다.
가족 구성원들이 모두 연예계에서 활약하는 독보적인 행보를 보였습니다.
2013
[암 투병 오보 소동]
대장암과 직장암 투병 중이라는 보도가 나갔으나, 이는 용종 제거 수술에 관한 이야기가 와전된 오보로 밝혀졌습니다.방송 중 용종을 떼어냈다는 발언이 편집 과정에서 오해를 불러일으켜 발생한 해프닝입니다.
건강 이상설을 직접 해명하며 팬들의 걱정을 불식시켰습니다.
2020
[전영록 TV 유튜브 채널 오픈]
유튜브 채널 '전영록 TV'를 개설하여 팬들과 직접 소통하며 음악 활동을 이어가기 시작했습니다.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새로운 플랫폼에서 자신의 히트곡과 팝송 번안곡을 선보였습니다.
'네이키드 뮤직'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시도하며 여전한 음악적 열정을 과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