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_of_likes 124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no image
삼국시대 인물, 촉한 장군 + 카테고리

촉한의 용맹하고 지략 뛰어난 장군. 험난한 남만 지역을 15년간 안정시키며 주민들의 절대적 신뢰를 얻음. 뛰어난 통찰력으로 위태로운 상황을 미리 간파함. 병든 몸에도 불구하고 최전선에서 장렬히 전사하며 충절을 보여줌. 그의 죽음은 한족과 비한족 모두의 추모를 받음.

주요사건만
최신순

연표

227

[광한·면죽 소란 평정]

제갈량이 한중에 주둔할 때, 광한과 면죽에서 발생한 소란을 지략을 발휘하여 성공적으로 진압하며 군인으로서의 명성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하지의 도움으로 치병]

중병에 걸려 사경을 헤맬 때, 일면식 없던 촉군태수 하지를 찾아갔습니다.

하지는 그의 명성을 듣고 사재를 털어 치료를 돕는 등 장억의 뛰어난 인덕을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230

[마충과 남만 평정 공헌]

아문장군에 배령된 후, 촉한의 명장 마충과 함께 문산군의 강족과 남쪽 4군의 남만을 평정하는 데 결정적인 계획을 세워 승리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236

[저족 부건 항복 예측]

무도군 저족 왕 부건의 항복이 지연되자, 대장군 장완이 걱정할 때 장억은 부건의 아우가 항복 반대파와 내분을 일으켰을 것이라고 정확히 예측하며 뛰어난 통찰력을 보였습니다.

239

[월수태수 부임]

제갈량의 남정 이후에도 반란이 끊이지 않아 아무도 부임하려 하지 않던 험지, 월수군에 태수로 임명되었습니다.

이는 그의 뛰어난 능력에 대한 촉한 조정의 신뢰를 보여줍니다.

월수군은 수이족의 잦은 모반으로 역대 태수들이 살해당하는 등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으며, 시론들은 월수군의 회복을 염원하고 있었습니다.

[착마족 위랑 회유 성공]

월수 태수 부임 후 은혜와 신의를 통해 비한족들을 복종시켰고, 특히 명령을 따르지 않던 북쪽 착마족의 우두머리 위랑을 사로잡아 회유하여 읍후로 삼는 등 지혜롭게 지역을 안정화했습니다.

240

[동봉·외거 반란 진압]

항복했던 동봉과 그 아우 외거 등이 반란을 일으키자, 동봉을 처단하되 그의 아내는 모우왕의 딸이라 살려두는 기지를 발휘했습니다.

또한 달아난 외거는 역이용하여 제거하고, 과거 태수를 죽인 이구승까지 주살하며 월수군 안정을 공고히 했습니다.

[월수군 완전 평정]

부임 1년 만에 월수군 전역을 완전히 평정했습니다.

그는 본군으로 돌아와 성벽을 쌓는 등 적극적인 안정화 작업을 펼쳤고, 비한족들도 이에 자발적으로 협력하며 장억의 뛰어난 리더십을 입증했습니다.

241

[특산물 독점권 회수]

정작, 대등, 비수 세 현에서 비한족들이 오랫동안 독점해온 특산물을 회수하기 위해 강력한 조치를 취했습니다.

저항하는 우두머리를 처단하고 위협과 회유를 병행하여 결국 특산물 독점권을 성공적으로 되찾았습니다.

242

[모우이족 회유 및 옛길 복원]

동봉의 죽음으로 원한을 품었던 모우이족을 섬세한 계략과 회유로 완전히 귀순시켰습니다.

이로써 무려 100년간 끊겨있던 모우이령의 평탄한 옛 도로를 성공적으로 복원하여 촉한의 교통과 상업에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모우구비왕 임명 및 승진]

모우이족의 왕 낭로를 표를 올려 '모우구비왕'으로 임명하고 황제를 알현하여 조공을 바치게 하는 등 촉한의 영향력을 남만 지역에 확고히 했습니다.

이러한 공로로 '무융장군'에 임명되며 월수태수를 계속 겸임했습니다.

252

[비의에게 경고 편지 발송]

대장군 비의가 위나라 투항자들을 지나치게 대우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며 경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비의는 결국 투항자 곽수에게 암살당했고, 이는 장억의 날카로운 선견지명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제갈각 섣부른 침공 경고]

동오의 태부 제갈각이 위나라 침공을 준비하며 교만한 모습을 보이자, 그의 종제 제갈첨에게 편지를 보내 나라가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섣부른 군사 행동을 경고하도록 촉구했습니다.

제갈각은 이듬해 암살당하며 장억의 예견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254

[병중에도 북벌 출정]

15년간 월수태수직을 수행하고 성도로 돌아와 탕구장군이 된 장억은, 중병에 걸려 몸을 가누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강유의 지휘 아래 농서로 북벌에 출정했습니다.

조정의 의심에도 불구하고 그의 항복이 진실임을 주장하며 최전선에 나섰습니다.

위나라 적도현의 현장 이간이 항복을 청하자, 조정은 이를 의심했지만 장억은 이간의 항복이 참이라고 주장하며 병든 몸을 이끌고 끝내 출전을 감행했습니다. 이는 그의 투철한 충성심과 군인정신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최후의 전투와 전사]

적도현에서 이간의 항복을 받은 후, 위나라의 정촉호군 서질과의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했습니다.

비록 전사했으나 적군에게 배 이상의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큰 공을 세웠습니다.

그의 죽음은 월수군의 한족과 비한족 모두에게 큰 슬픔을 안겨 사당이 세워질 정도로 추모받았습니다.

장억의 전사 후, 그의 맏아들 영은 서향후에 봉해졌고, 둘째 아들 호웅에게는 관내후가 습작되었습니다. 월수군의 백성들은 그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사당을 세우고 제사를 지냈습니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장억
+ 사건추가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